천풍전설 2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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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44화
244화
소름이 오싹 끼친 염사진은 홱 몸을 틀며 공손이향의 장력에 맞섰다.
그로선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상대가 여자라는 걸 알고 무의식중에 저지른 실수.
퍼벅!
장력이 마주친 순간, 염사진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이를 악물었다.
손을 타고 스며든 한기는 순식간에 그의 두 팔을 마비시켜버렸다. 그리고 곧 어깨마저 굳어갔다.
기겁한 그는 전력을 다해서 땅을 박찼다.
‘크윽, 이놈들은 남자나 계집이나 모두 괴물들만 있구나!’
마도연합은 열일곱 구의 시신과 다섯 명의 중상자를 남기고서 공자묘를 빠져나갔다.
풍천은 도주하는 그들을 쫓지 않았다. 별동대 역시 광귀박도 오광문이 죽고, 상당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들을 놔둔 채 적을 쫓을 수는 없었다.
‘섭위릉, 염사진. 오늘 그냥 보내준다고 너무 좋아하지는 마슈.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풍천은 그때까지만 해도 천룡회가 마도연합을 공격하기 위해서 대월산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2
사우에게 천룡회 무사들이 삼십 리 거리까지 몰려왔다는 보고가 전해진 것은, 섭위릉이 이끄는 오십 인의 마도고수가 별동대를 공격하던 바로 그때였다.
사우는 그 보고를 받자마자 즉시 비상을 건 후 혁련궁에게 달려갔다.
천룡회의 주요 전력 이십여 명이 후방을 교란하기 위해서 빠진 만큼, 전격적인 공격보다 하루 이틀 더 국지전을 하며 기회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고대로라면 전 무력이 동원된 전면공격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공격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터였다.
여차할 경우 이십 인의 고수를 버릴 각오가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는 계획.
‘이런 강수를 쓰다니.’
살을 주고 뼈를 자를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더구나 그 살의 가치가 크다면 상대를 속이기도 더 쉽다.
그런데 자신들은 그들을 잡기 위해 오십 인의 고수를 내보냈다. 전력의 공백이 저들보다 더 큰 것이다.
결국 교비은의 꼼수에 넘어갔다는 말.
‘제길, 교비은을 너무 얕봤군! 놈은 후방교란보다 대월산장에서 본 성의 고수를 최대한 빼내는 게 목적이었어!’
혁련궁은 천룡회가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았다.
암중기습이 아닌 정면대결이라면 불리할 것도 없었다. 대월산장은 완만한 언덕 위에 있었다.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철목보와 달리 방어에 유리한 지형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에게는 암암리에 만든 천동탄과 독암기, 그리고 군에서 빼돌린 이백 대의 쇠뇌가 있었다.
기간이 짧아서 계획했던 양의 반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최소한 적 오백은 격살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
“놈들이 첫 번째 방어벽을 뚫고 오면, 두 번째 방어벽에서 천동탄과 독암기를 쓸 생각입니다, 성주.”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라. 이겨도 피해가 크면 천의맹에게 당할 게야.”
“명심하겠습니다.”
3
천룡회의 삼천 무사는 성난 해일처럼 대월산장을 향해 밀려갔다.
이번 싸움에 모든 것을 결정짓겠다는 듯 무사들의 표정에는 결사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일정한 걸음걸이.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였지만 느린 속도는 아니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 사람이 열심히 뛰어야 할 속도였으니까.
그렇게 이동하던 그들이 마도연합의 이천 무사와 마주친 것은 대월산장을 칠 리 정도 남겨놓았을 때였다.
이천 무사는 대월산장으로 향하는 계곡을 막고 있었다.
계곡의 양쪽은 경사가 심했다. 그리고 이십 장이 조금 넘는 폭은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갈 수 없었다.
계곡을 통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앞을 막은 적을 쓰러뜨리는 것.
천룡회에서는 천외천의 무사 오백이 선봉에 섰다. 수장은 도룡단주 사공화였다.
그들은 이천 무사와 마주치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거리가 오십여 장으로 줄어들자 일제히 무기를 뽑았다.
쩌저정, 스르릉, 차차창!
오백 무사가 빼든 무기에서 웅혼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때 사공화의 목소리가 계곡을 뒤흔들었다.
“천외천의 무사들이여! 놈들에게 천외천의 위대함을 알려주어라!”
동시에 가공할 기의 파도가 이천 무사를 향해 밀려갔다.
성난 파도처럼 밀려간 천외천의 무사들은 곧장 마도연합 무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강했다. 마도연합 무사들이 목검이라면 그들은 철검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지 근 일 년. 그런데도 마도연합 무사들은 새삼 그들의 강함에 또다시 전율하며 떨어야 했다.
“으아악!”
“물러서지 말고 막아라!”
계곡을 울리는 비명소리. 대지를 적시는 시뻘건 핏물.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공포에 찬 절규!
그들은 두려움 속에서도 악착같이 버텼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일각도 지나기 전에 후퇴명령이 내려졌다.
“후퇴하라!”
“물러서!”
마도연합 무사들은, 살이 갈라지고 뼈가 잘려서 피로 범벅된 오백여 명의 동료를 계곡에 남긴 채 몸을 돌렸다.
천외천 무사들은 도주하는 자들을 급하게 쫓지 않았다.
그들이라 해서 희생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죽거나 중상을 입은 자가 오십여 명. 개중에는 같은 핏줄인 사람도 있고, 형제처럼 지냈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노를 삭인 채 여전히 일정한 걸음걸이로, 도주하는 자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오 리 정도 되는 계곡을 거의 다 통과하고, 바닥이 흙 대신 암반으로 이루어진 곳에 도착했을 때 마도연합의 무사들이 또다시 앞을 막아섰다.
두 번째 방어벽이었다.
천외천의 무사들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얼음판 위를 미끄러지듯 죽죽 나아갔다.
공손무백은 뒷짐 진 채 나아가며 전면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대월산장이 보였다. 그 앞쪽 메마른 언덕 위에 마도연합의 무사들이 모조리 몰려나와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언뜻 봐도 이삼천 명은 될 듯했다. 마도연합의 무사가 모두 나온 것 같았다.
하긴 저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월산장이 제아무리 육안 제일의 장원이라 해도 오천이 넘는 무사가 뒤엉켜서 싸우기에는 턱없이 비좁으니까.
‘혁련궁, 오늘 이곳에서의 승자가 차후 천하를 쥐게 될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까지 삼백여 장. 앞에 있는 방벽만 치우면 지척이었다. 일 년간 끌어온 전쟁을 끝낼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차 방어벽과의 거리가 순식간에 십사오 장으로 좁혀졌다.
바로 그때,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의 둥근 물체 수십 개가 그들을 향해서 날아왔다.
천외천 무사들 중 일부는 피하고, 일부는 무기로 둥근 물체를 후려쳤다.
누군가가 그 광경을 보고 소리쳤다.
“안 돼! 건들지 말고 피하시오!”
하지만 그의 외침은 곧 굉음에 파묻혀버렸다.
쾅! 콰과광!
귀청을 찢어발기는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비명조차 묻어버린 그 소리와 함께 천동탄의 파편이 골육을 찢고 부수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시뻘건 혈우와 함께 독암기들이 쏟아졌다.
사우는 굉음을 들으며 살소를 지었다.
바닥이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졌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굳이 두 번째 방어벽에서 천동탄을 쓴 이유 중 하나였다.
천동탄은 강한 충격에 의해서 터지게끔 만들어졌다. 외부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면 안쪽에 붙은 두 개의 부싯돌이 마찰을 일으켜 불꽃이 튀고 화약이 터지는 것이다.
하기에 흙이 많은 곳에서는 터지지 않는 것이 많이 나올지 몰랐다.
“전쟁은 무공이 강하다 해서 이기는 게 아니다, 공손무백. 어디 이제 독우(毒雨)를 뚫고 와보라.”
4
공자묘를 나온 별동대는 더 서쪽으로 이동했다.
이령진이라는 마을에 도착한 그들은 객잔에 방을 얻고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 시진쯤 지났을 때 한 사람이 그들을 찾아왔다. 사십 대의 중년인이었는데 상당한 거리를 달려온 듯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비검당의 풍천 소협이 아니십니까?”
“누구시죠?”
찾아온 자는 솔직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적련방의 적비당주 조궁입니다.”
적비당주라면 적련방의 정보를 총괄하는 자가 아닌가?
풍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조궁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저를 찾은 거죠?”
“천룡회가 철목보를 떠나서 대월산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풍천은 화들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응?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회주는 오늘까지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에 대해선 모르겠습니다만, 천룡회가 대월산장을 공격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쩌면 지금쯤 싸움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커다란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 풍천은 이를 악물었다.
공손무백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자신의 입으로 뱉은 말을 스스로 뒤집진 않았을 것이다.
‘교비은, 그 인간이 꼼수를 쓴 것 같군.’
그는 조궁을 직시한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걸 알려준 것이 천룡회의 뜻이요, 아니면 조 당주님 개인적으로 알려준 거요?”
조궁은 핵심을 뚫어보는 풍천에게 진심으로 감탄했다.
“확실히 이야기를 나눌만한 분이군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천룡회에선 풍 소협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는 걸 원치 않고 있습니다.”
“왜?”
“군사가 풍 소협과 신검문을 신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교비은, 그 족제비 같은 인간이……!”
마도연합의 고수 오십여 명이 대월산장에서 빠져나온 걸 알고 기회라 생각한 것 같다.
그럴지 몰라서 무조건 사흘 이상 기다려 달라 했거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 풍천은 조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런데 조 당주는 왜 그 사실을 나에게 알린 거요?”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천룡회에게서 적련방을 되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담 방주의 뜻이요?”
“그렇습니다. 방주님께서도 천룡회에 총단을 내준 걸 절실히 후회하고 계십니다.”
“나에게 그럴만한 힘이 있다고 보쇼?”
“며칠 전, 방주님의 특명을 받고 신검문으로 가서 태상문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분께서는 풍 소협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하시면서, 숨김없이 모든 걸 이야기하라 하시더군요.”
그래서 방주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을 보냈다. 어차피 다른 길이 없으니까.
풍천은 백무천이 자신을 소개했다고 하자, 조궁에 대한 의심을 털어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급한 와중에도 본업에 충실했다.
“태상문주님이 다른 말은 하지 않던가요?”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청부금이 비싸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말이죠.”
“예?”
“제 직업이 해결사라는 걸 몰랐어요? 그럼 이야기가 곤란한데…….”
“…….”
“뭐 어쩔 수 없죠. 지금이라도 알면 되니까. 좌우간, 총단을 찾는 일이라면 기본적으로 황금 천 냥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특수한 일이어서 실패해도 위약금을 물지 않을 겁니다. 담 방주께 그리 말씀드리쇼.”
적련방만 되찾을 수 있다면 황금 천 냥이 문제랴.
“알겠습니다. 그에 대해선 걱정 마십시오.”
풍천은 조궁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순순히 승낙하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으음, 너무 조금 불렀나?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거 아냐?’
삼천 냥쯤 부를걸. 아니 오천 냥쯤…….
하지만 이미 입 밖에 나온 말을 주워 담는 것은 고금제일의 해결사가 할 일이 아니었다.
“좋습니다. 그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천룡회가 철목보에서 언제 출발했습니까?”
“미시 정에 출발했습니다. 제가 풍 소협이 있다는 공자묘를 찾아갔을 때 대월산장과 삼십 리 떨어져 있었다고 했으니까, 지금쯤 대월산장의 십 리 이내로 들어섰을 겁니다.”
‘젠장! 시간이 너무 촉박하군.’
그때 조궁이 또 한 가지 정보를 건넸다.
“신마성이 비밀리에 화약과 쇠뇌를 군에서 빼돌렸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양은 많지 않습니다만, 적절히 사용한다면 천룡회에 상당한 피해를 줄 것입니다.”
5
마도연합은 또 다시 오백에 달하는 동료의 시신을 놔둔 채 대월산장 쪽으로 물러났다.
천룡회는 천동탄과 독암기에 삼백의 손실을 입고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와 살기가 충천한 상태에서 대월산장의 앞에 대열을 이루고 있는 마도연합 무사들을 향해 밀려갔다.
천룡회 무사들과 그들의 거리가 삼십 장으로 줄어들었을 때였다.
쉬쉬쉬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마도연합 무사들의 중간에서 쇠뇌가 발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