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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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43화
243화
교비은은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준비를 갖추되 수하들에게는 회주님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말하지 마시오. 적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되니까.”
“알겠소이다, 군사.”
담청은 묵묵히 교비은의 말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언젠가부터 말을 아꼈다. 사람들은 그가 비원장을 공격하면서 부상당한 후 의기소침해진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그의 말이 부쩍 들어든 자세한 이유는 오직 그만이 알 뿐이었다.
회동을 마치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담청은 차를 마시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돌아가는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그는 일개 지부의 지부장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실소만 나올 뿐이었다.
‘담청, 이게 너의 한계라는 걸 왜 몰랐단 말이냐?’
어쩌면 자신의 한계라기보다 천외천이 너무 커서 이리 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래봐야 모두 핑계일 뿐.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그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일각, 깊게 가라앉아 있던 그의 눈빛이 서서히 빛을 발했다.
‘적련방은 나의 모든 것이오, 회주. 당신은 그 점을 너무 모르는 것 같소.’
그동안 비밀리에 모종의 일을 추진해왔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주먹을 움켜쥔 그는 적비당주 조궁과 반소규를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은밀한 지시를 내렸다.
제8장. 맙소사! 그놈이 나타났다!
1
후방 교란작전 사흘째.
풍천은 육안에서 동남쪽 십 리 지점에 있는 공자묘를 두 번째 임시 거점으로 삼았다. 지나갈 때 봐놓았던 곳으로 기종탁 등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그는 세 채의 건물로 된 공자묘 중 한 채를 은자 스무 냥을 주고 이틀간 빌렸다. 공자묘를 관리하는 서생은 은자에 눈이 멀어서 별동대에게 건물 한 채를 선뜻 내주었다.
설령 무사들끼리 싸우다가 부서진다 해도 나라에서 다시 고쳐줄 터, 걱정할 것 없다는 눈치였다.
대월산장을 감시하던 은초당이 달려온 것은 그날 오후였다.
“건곤신마 섭위릉을 위시해서 오십 명 정도가 나왔습니다, 조장. 하나하나가 모두 고수들이어서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려다가 하마터면 들킬 뻔했습니다.”
은초당의 말을 들은 풍천은 싸늘한 눈빛을 반짝였다.
‘좌궁화의 복수를 하겠다는 거겠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다. 초웅이 그들을 끌어낼 거라 생각했으니까.
걱정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게 걱정되었다면 초웅을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기형과 백 형은 어디 있죠?”
“놈들을 미행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흠칫한 풍천이 급히 물었다.
“지금도 말입니까?”
“예, 조장. 왜 그러십니까? 기 형님과 승문이 걱정되신다면 너무 걱정 마십시오. 거리를 충분히 두고 있으니까요.”
풍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월산장에서 진정한 고수들이 나온 것 같으면 무조건 멀리 물러나라고 했다. 그런데 계속 미행하고 있다지 않은가.
너무 임무에 충실해도 문제였다. 몇 번 일이 계획대로 되다보니 긴장감이 풀어진 것 같다.
‘제길, 그냥 물러나라니까.’
불안한 마음이 든 풍천은 옆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급변하자 편히 쉬고 있던 사람들이 허리를 세우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나?”
백리진학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적을 미행하고 있는 두 사람의 능력으로는 섭위릉의 눈을 피할 수 없거든요.”
“멀리 떨어져서 미행하고 있다니, 여차하면 도주할 수 있지 않겠나?”
“섭위릉만 있다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들 중에 염사진까지 있다면 절대 안전하지 않아요.”
“무영신마 말인가?”
“두 사람은 그가 따라오고 있는 것도 모를 겁니다.”
그때였다. 풍천이 벌떡 일어났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풍천을 따라서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 순간!
쾅!
뭔가가 문을 부수며 날아들었다.
풍천은 날아드는 것을 재빨리 잡아채고는 뒤로 미끄러지며 충격을 완화시켰다.
그가 잡아챈 것은 온몸이 피로 물든 백승문이었다.
백승문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팔다리가 부러진 듯 사지가 축 처져 있었다.
“죄, 죄송……, 조장…….”
백승문은 가까스로 입을 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적의 움직임에서 이상을 느낀 즉시 기종탁과 함께 뒤로 물러나서 그곳을 벗어났다.
그때 섬뜩한 느낌이 다가왔다. 흠칫한 그가 돌아서려는데 기종탁이 소리쳤다.
도망치라고. 두 다리가 떨어지도록 도망치라고!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서 도주했다. 뒤에서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데도 돌아보지 않았다. 보나마나 기종탁일 것이었다.
눈물이 자신도 모르게 흘렀다. 물러나자는 기종탁에게 미행하자고 꼬드긴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데 자신 대신 기종탁이 적에게 당한 것이다.
조장이라면 복수를 해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죽을힘을 다해서 달렸다. 그런데 약속 장소인 공자묘가 저만큼 보일 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아챘다.
“네놈의 동료가 저곳에 있느냐?”
급히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자는 아혈을 제압하고 다리를 부러뜨렸다. 뒤이어 두 팔이 차례차례 분질렀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니 느껴지지도 않았다. 목에서는 조장을 부르는 소리만 맴돌았다.
‘적입니다, 조장! 피하십시오!’
유령처럼 따라와서 자신의 팔다리를 부러뜨린 자는 자신을 들고 공자묘로 갔다. 그리고 조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건물에 자신을 던졌다.
“저 때문에……, 저 때문에…….”
풍천은, 당장 말을 하지 않으면 한이 맺힐 것처럼 안간힘을 다해서 입을 여는 백승문을 바닥에 눕혔다.
“조금만 견뎌요. 그래야 놈들이 죽는 걸 볼 수 있죠.”
그 말에 백승문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웃음이었다.
“부탁……. 기 형님이……, 놈들에게 죽었…….”
풍천은 백승문을 은초당에게 맡겨 놓고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칼날 같은 기운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밖으로 나간 풍천은 고개를 쳐들고 서쪽으로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하늘보다 더 시퍼런 빛이 번뜩였다.
“씨발, 대충 흔드는 것으로 끝내려 했는데, 죽고 싶다면 별수 없지. 원하는 대로 죽여주는 수밖에.”
바로 그때였다. 사방에서 수십 명이 날아들며 노성이 공자묘를 뒤흔들었다.
“이제 더 이상은 허튼 수작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 이놈들!”
별동대는 귀청이 먹먹한 노성에도 누구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안으로 날아든 자들은 대화를 나눌 것도 없다는 듯 곧장 별동대원들을 공격했다.
별동대원들은 일제히 무기를 빼들고 침착하게 적을 맞이했다.
제일 먼저 초웅의 도가 허공을 갈랐다.
쩌저저정!
가공할 패도에 세 자루의 장검이 튕겨 나가며 검을 든 자들조차 옆으로 밀렸다.
섭위릉은 초웅의 거대한 덩치를 보고 불길이 이는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 좌궁화를 죽였느냐!”
“싸우고 싶으면 잔소리 말고 덤벼요!”
“오냐, 이놈! 모두 저놈들을 죽여라!”
섭위릉은 수하들을 향해 소리치고 초웅을 향해 날아갔다.
동시에 별동대와 마도연합의 고수들이 뒤엉켰다.
섭위릉과 함께 온 자들은 마도연합에서도 날고 긴다는 고수들이었다.
신마성의 팔대신마 셋에 일반 장로가 일곱, 신마비원의 고수 다섯, 신마귀천단과 신마광령단의 최정예무사 열둘, 천혈궁의 고수 여덟. 거기에 북천맹과 서천무련 고수 열넷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별동대에 비해서 뒤지지 않는 무력인 것이다.
별동대원들은 상대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걸 알고 전력을 다해서 상대의 공세를 막았다.
바위도 가루로 만들어버릴 진기의 폭풍이 공자묘 앞의 넓은 정원을 휩쓸었다.
마도연합의 고수들은 개개인의 실력에서 자신들이 밀린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자신들의 약세를 인정하고 두세 명씩 짝을 지어서 합공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별동대원들이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백리진학과 공손이향, 은양, 쌍무혼, 공손승, 허무정, 냉양이 두세 명의 적을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 뒤로 처져서 상황을 지켜보던 풍천이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적의 전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후퇴명령을 내렸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켜본 바로는, 자신들이 무너뜨리지 못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결론이 내려지자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풍천이 적진으로 스며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유령처럼 움직이는 그의 손에서 묵뢰가 번쩍일 때마다 목숨이 하나둘 스러졌다.
“뭐, 뭐야? 으악!”
“조심해!”
“크억!”
“귀신같은 신법을 쓰는 놈이다! 감각으로 상대해!”
은양을 상대하던 염사진은 그 소리를 듣고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러잖아도 은양에게 밀리면서 허탈감을 느낀 그였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들리는 수하들의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떤 일이 떠올랐다.
전력을 다해서 은양을 떼어낸 그는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리고 홱, 고개를 돌려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순간,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저, 저놈은……! 맙소사! 저놈이 나타났구나!”
그는 악다구니를 쓰듯이 외쳤다.
“놈에게 가까이 붙지 말고 다섯 명이 합공해!”
하지만 그는 풍천을 걱정하기 전에 자신의 안전부터 돌봐야 했다. 은양은 그가 한눈을 팔면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번쩍!
은양의 검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력한 공세가 그를 뒤덮었다.
“크윽!”
결국 어깨의 살점을 내준 그는 정신없이 물러서며 섭위릉을 향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섭 형! 저길 보시오! 놈이오! 동암장에 나타났던 그놈!”
섭위릉은 초웅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오초 대결을 벌인 후에야 좌궁화가 왜 초웅에게 죽었는지 이해되었다.
패도의 무공을 익힌 자신조차 초웅의 패왕지력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거늘, 좌궁화로선 더욱더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세상에 너 같은 놈이 있을 줄이야! 오늘 죽이지 못하면 큰 우환이 될 놈이로구나!”
그는 전 공력을 끌어올려서 건곤마공을 펼쳤다. 하지만 십여 초가 지나도록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염사진의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는 불에 댄 듯 급히 뒤로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염사진이 말한 곳을 쳐다보았다.
한 사람이 유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게서 검은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북천맹과 서천무련의 고수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헉!”
천하의 건곤신마 섭위릉조차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정말 그놈이었다. 천혈쌍마를 죽이고 자신과 염사진, 좌궁화의 합공을 빠져나간 놈. 그러고도 천외천의 고수 십여 명을 단신으로 죽인 놈!
그가 정말 이곳에 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좌궁화에 대한 복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천룡회와의 대회전이다. 설령 오늘 이곳에서 이긴다 해도 살아남을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뒤로 주르륵 물러선 그는 악을 쓰듯이 외쳤다.
“후퇴해!”
바로 그때 공손이향이 염사진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