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풍전설 2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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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천풍전설 242화
242화
-저 인간이라면 보나마나 더 힘든 일을 시킬 게 분명해.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초웅을 비롯한 서너 명은 무조건 풍천의 말에 따를 뿐이었고.
“자, 별 반대의사가 없는 것 같으니 가서 출발준비를 하도록 하십쇼. 한 시진 후에 출발할 테니까.”
풍천은 당연히 자신의 말을 따를 줄 알았다는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이제 공손무헌의 두 번째 청부도 반쯤은 성공한 셈이었다.
사흘 동안 밖에서 놀던, 마도연합 놈들과 싸우든 그거야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별동대는 어둠이 깔린 후에야 철목보를 나섰다.
그들은 동남쪽으로 크게 돌아서 육안을 우회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지만 천룡회와 마도연합의 눈을 피하기에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차피 바쁠 것도 없고.
그렇게 육안 남쪽 이십 리 지점의 계곡에서 걸음을 멈춘 별동대는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푹 쉬었다.
풍천이 철목보를 떠나올 때 초웅을 시켜서 주방을 털었기에 음식도 충분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풍천은 태양이 서산 쪽으로 기울 때쯤에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자,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일을 해보죠.”
바위에 누워 있던 사람, 비수로 나무를 깎아서 뭔가를 만들던 사람, 가부좌를 튼 채 운기에 열중하던 사람. 각양각색으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곳에서 단 하루를 벗어나 있었는데도 사람들의 표정은 훨씬 안정된 것처럼 보였다.
일행 중 기종탁을 비롯한 비검당 사조원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서 데려온 터라 한 시진 먼저 계곡을 떠난 상태였다.
계곡을 나온 별동대는 곧장 서쪽으로 향했다.
대월산장을 향해 십 리쯤 가자 신마성의 순찰무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풍천은 일단 적의 눈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몇 번 눈을 제거하다 보면 언젠가는 머리와 몸통이 튀어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철목보에 집중된 저들의 시선도 분산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별동대는 당당히 걸어서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순찰무사들에게 접근했다.
순찰무사들은 그들을 수상하게 여기고 먼저 달려와서 목에 힘을 주고 외쳤다.
“웬 놈들이냐? 우리는 신마성의 순찰무사들이다. 정체를 밝혀라!”
별동대는 대답 대신 무기를 빼들었다.
“네놈들이 감히 신마성에 대적하겠다는 거냐!”
순찰무사 하나가 악을 쓰듯이 외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순간, 별동대의 걸음이 빨라졌다.
7
석양이 지기 전.
남동쪽 외곽을 순찰하던 무사들이 적에게 당했다는 보고가 대월산장에 연이어 전해졌다.
천룡회와의 대회전을 목전에 둔 상황. 사우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 즉시 백여 명의 정예무사를 출동시켰다.
보고에 의하면 상대는 이십여 명이라 했다. 적들 중 주력고수들이 오지는 않았을 터. 다섯 배의 숫자라면 그자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풍천은 세 무리의 순찰무사들을 제거하고 뒤로 물러났다.
별동대의 목적은 적에게 큰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후방을 쳐서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시간은 아직 이틀이나 더 남아 있었다.
공연히 물불 안 가리고 싸우다가 마도연합의 집중공격을 받게 되면 자신들만 손해였다.
휴식을 취하던 계곡으로 물러선 풍천은 여유만만 한 표정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신마성 쪽에서도 뭔가 움직임이 있을 것이었다.
대월산장의 움직임을 감시하던 기종탁이 돌아온 것은 밤이 깊어가던 술시 무렵이었다.
“백 명 정도 나왔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조장.”
“어떤 자들인지 아쇼?”
“천혈궁의 무사들입니다. 그들을 이끄는 자가 커다란 도끼를 들고 있었는데, 소문대로라면 천혈단주인 거령마부 하위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위경이라면 천혈궁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그자는 초웅이 때려잡으면 딱 맞겠군.”
풍천은 하위경을 덩치가 조금 큰 날파리 취급하고는, 주위로 몰려든 별동대원들에게 마치 손님이라도 만날 것처럼 말했다.
“일단 여기서 밤을 보내고, 그들은 내일 만나보죠.”
시간은 아직 이틀이나 남아 있었다.
다음 날.
하위경은 날이 밝자마자 수색을 강화했다.
그런데 수색을 시작한 지 한 시진이 지나서 사시가 막 지나갈 무렵이었다. 육안의 남쪽 야산을 수색하고 있는데, 저만치 숲 속에서 몇 놈이 나오는 게 보였다.
그는 급히 수하들을 멈추게 하고 전방을 노려보았다.
숲에서 나온 놈들 중 하나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안녕하쇼!”
하위경은 손까지 들어 올리며 인사하는 풍천을 보고 잔뜩 인상을 썼다.
왠지 더러운 느낌이 들면서 뒤통수가 간질거렸다.
“너는 누군데, 나를 아는 척하는 것이냐?”
풍천은 사실대로 말했다. 이런 자리에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곧 죽을지 모르는데 진실은 알고 죽어야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순찰무사를 죽인 사람들을 찾고 있지 않수?”
“그렇다. 한데 네놈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우리가 죽였거든요.”
“뭐야?”
그런데 왜 그렇게 당당해?
하위경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풍천을 노려보았다. 꼭 놀림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죽일 놈! 그게 사실이렷다!”
“내가 당신에게 뭐 하러 거짓말합니까? 걱정 마쇼, 사실이니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잡아서 사지 두어 개 부러뜨려놓고 물어보면 될 일. 하위경은 즉시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서 저놈을 잡아와라!”
뒤쪽에 서 있던 무사 다섯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때였다.
쿵!
바윗덩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고, 귀청이 먹먹할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산을 뒤흔들었다.
“잠깐!”
하위경은 두 눈을 치켜뜨고 전면을 응시했다. 숲 한쪽에 있는 거대한 바위 위에서 한 사람이 뛰어내렸는데, 자신보다 족히 두 배는 됨직한 거인이었다.
초웅은 대도를 뽑아들고 하위경을 보며 씩 웃었다.
“조막만한 도끼를 들고 있는 걸 보니 당신이 거령마부인가 보군. 형이 나더러 당신을 때려잡으라고 했어. 어디 덤벼 봐!”
하위경은 그 말을 이해하는데 잠깐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다 이해하고 나자 머릿속이 하얗게 빌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오냐, 이 곰 같은 놈! 내가 네놈의 머리통을 도끼로 쪼개주마!”
쓱, 도끼를 빼든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명령을 내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모두 죽여라!”
풍천은 그의 빠른 행동력이 마음에 들었다.
“거 화끈한 양반이군. 일찍 끝내면 우리도 나쁠 게 없지. 시작들 하쇼!”
순간, 좌우 숲 속에서 별동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무기를 뽑아들고 천혈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텅!
하위경의 도끼가 허공으로 솟구친 것은, 그가 초웅과 맞붙은 지 오 초 만이었다.
워낙 강력한 충격에 두 손의 감각이 사라진 하위경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쳤다.
직후 썩은 호박처럼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초웅의 대도가 옆면으로 후려쳤다.
목을 자르는 게 더 편한데, 형이 때려잡으라고 해서 도면으로 후려친 것이다.
빡!
커다란 하위경의 머리가 납작하게 뭉개지면서 반쪽으로 쪼그라들었다.
눈알이 반쯤 튀어나온 하위경은 지렛대 빠진 지게처럼 스르르 옆으로 무너졌다.
초웅이 하위경을 날파리 잡듯이 무너뜨린 동안 천혈단의 숫자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공포에 질린 천혈단은 하위경마저 죽어버리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풍천은 도주하는 자들을 쫓지 않고 냉소를 지은 채 바라보기만 했다.
천룡회에서도 곧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게 될 것이다. 강함을 모두 드러내 봐야 공손무백과 교비은의 경계심만 키워줄 뿐.
‘그들은 그저 우리가 계획대로 일을 잘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면 돼.’
8
사우는 하위경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미간을 좁혔다.
옆에서 다른 간부들이 당장 그놈들을 잡아 죽여야 한다고 설치는데도 입을 닫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군사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다 혁련후가 질문을 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놈들이 우리를 흔들기 위해서 잔머리를 굴리는 것 같소, 대공자.”
“하 단주를 죽인 자가 칠 척 거한이라면 좌 부주를 죽인 자가 아닌가 합니다만.”
“보고대로라면 그자가 맞는 것 같소. 그리고 천중수 백리진학과 그의 일행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오.”
“그렇다면 저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을 죽인다면 본 성 무사들의 사기가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대공자의 말씀도 옳긴 합니다만, 위험부담이 너무 크오.”
그때 오물거리며 뭔가를 먹고 있던 혁련궁이 말했다.
“인원을 오십 명 안팎으로 꾸려봐라. 소수가 움직이면 공손무백도 쉽게 공격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게야.”
사우는 더 이상 거부하지 못하고 대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이틀 안에 잡지 못하면 철수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해. 그 안에 잡지 못하면 어차피 틀렸다고 봐야 하니까.”
사우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섭위릉을 바라보았다.
“대장로께서 지휘해주시지요.”
섭위릉도 좌궁화를 죽인 놈을 자신의 손으로 잡길 원했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좌궁화가 당했단 말인가.
사우가 그의 마음을 알고 지휘를 맡기자 섭위릉은 형형한 안광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내가 놈을 잡지.”
상황은 철목보에도 전해졌다. 교비은은 즉각 그 소식을 공손무백에게 보고했다.
“별동대가 순찰무사들에 이어서, 거령마부 하위경을 비롯해 천혈단 무사 오십여 명을 제거했다고 하옵니다.”
“제 역할은 하고 있군. 그래, 놈들의 반응은?”
“아직 들어온 소식은 없습니다만, 최고의 정예가 움직일 거라 예상되옵니다.”
“소수의 고수를 움직일 거란 말이지?”
“다수가 움직이면 저희가 공격할지 모르니 다른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냥 소 닭 보듯 할 가능성은 없느냐? 혁련궁, 그 늙은이라면 그 정도에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데.”
“별동대에 좌궁화를 죽인 초웅이 있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하긴 그럴지도 모르겠군.”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들이 소수 정예를 출동시키면, 내일 오후쯤 대월산장을 공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너무 빠르지 않을까? 풍천이 최소한 사흘은 기다려 달라 하지 않았느냐?”
내일이 사흘째 되는 날이다. 내일 공격하면 풍천이 부탁했던 기간보다 하루가 빠른 것이다.
하지만 교비은 그렇기 때문에 공격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별동대의 역할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들로 인해서 적의 고수 중 사오십 명이 대월산장을 빠져나간다면 저희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지요.”
공손무백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셨다.
차의 향기가 콧속을 스며드는데도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빠르게 굴렀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교비은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공격에 대한 명령은 내일 점심을 먹고 난 후에 내리도록 할 것이다. 본 천의 간부와 각 세력의 수장들에게는 네가 내일 아침에 전하라. 단 본좌의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수하들에게 공격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해라.”
풍천과의 약속보다는 대의가 먼저다. 제왕이 될 자는 사소한 부탁에 얽매이면 안 된다. 그것이 공손무백의 생각이었다.
교비은은 자신의 뜻이 받아들여지자 그동안 찜찜했던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다음 날 아침.
교비은은 식사가 끝나자마자 천외천의 최고위 간부 오인과 탁능한, 담청을 은밀히 불렀다.
천외천의 간부 중에선 도룡단주 사공화와 묵천단주 용사정, 은천단주 공손문, 비응대주 조수천, 수경대주 막규가 왔고, 각 세력의 수장 중에선 천붕성주 탁능한과 적련방주 담청만 참석했다.
하남 삼파의 대표는 부르지 않았다. 행여나 풍천의 귀에 자신의 계획이 들어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교비은의 설명을 들은 탁능한은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듯 상기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도 놈들, 마침내 네놈들의 마지막이 다가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