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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풍전설 234화

무료소설 천풍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32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천풍전설 234화

 

234화

 

 

 

 

 

 

처음에는 마도연합세력인 줄 알고 잔뜩 긴장했던 천룡회 무사들은, 나타난 사람들이 하남 삼파의 무사들임을 알고 반색했다.

 

아직 지원무사들을 만나지 못한 상황. 한 사람이 아쉬운 판에 백칠십여 명의 무사가 합류했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상을 제법 깊게 입은 탁능한은 그들의 뒤늦은 합류가 못마땅하기만 했다.

 

“왜 이렇게 늦은 거요?”

 

책임 추궁하듯 다그치는 그의 말에 곽인효가 대답했다.

 

“우리는 남쪽을 맡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나마 몰살당하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것만도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성주?”

 

탁능한도 그에 대해선 할 말이 없었다.

 

사실 하남 삼파의 전력으로 그곳을 빠져나온 것만 해도 천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온몸이 피로 뒤덮인 공손선우가 짜증내듯이 말했다.

 

“성주, 지금은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닙니다. 그래봐야 적만 좋은 일이지요. 그만 하시고, 지원무사들을 만날 때까지 움직이도록 합시다.”

 

탁능한은 공손선우가 자신을 탓하듯 말하자 인상을 쓰며 쏘아붙였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자네 말대로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서 나아진 게 뭔가? 차라리 둘로 나누어서 움직였으면 더 나았을 것이야.”

 

“지금 그걸 따지자는 말씀이십니까?”

 

“따지자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단 말이네. 좌우간 이제부터는 내가 지휘할 테니, 자네는 뒤로 물러서게나. 본래부터 내가 지휘하기로 되어 있던 것 아닌가?”

 

공손선우는 싸늘한 눈으로 탁능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탁능한의 말대로 총지휘자는 자신이 아니라 탁능한이었다.

 

“좋을 대로 하시죠.”

 

삼파 무사들 맨 뒤에 처져 있던 풍천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소를 지었다.

 

‘하는 꼴을 보니 오래 못 가겠군. 공손선우, 너무 짜증낼 것 없어. 곧 내가 저 위로 보내줄 테니까.’

 

 

 

천룡회 무사들은 적련방이 주인인 남촌의 회령장까지 후퇴했다.

 

회령장은 강호문파가 아니라 회남 남쪽의 광활한 농토를 관리하는 일반 장원이었는데, 수확기 때 수백 명의 농부를 고용하는 만큼 규모가 무척 컸다.

 

회령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한숨 돌린 탁능한과 공손선우는 정탐조를 보내 마도연합의 움직임을 감시하면서 전열을 정비했다.

 

 

 

4

 

 

 

공손무백은 철목보가 무너지고 일천오백 무사 중 오백여 명만이 살아남았다는 보고를 받고는 분노로 얼굴이 벌게졌다.

 

“이런 바보 같은……!”

 

교비은은 숨도 제대로 못 쉰 채 공손무백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나마 철목보에서는 대공자께서 지휘한 덕에 피해를 줄이지 않았나 사료 되옵니다, 주군.”

 

공손무백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들을 비호하기 위한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도 모른 척했다.

 

“탁능한과 선우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느냐?”

 

“남촌의 회령장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합니다.”

 

“놈들은 아직 철목보에 있느냐?”

 

“그런 것으로 압니다. 혁련후와 구인창 등이 모두 모여 있는 걸로 봐서 철목보에 본진을 차리려는 것 같습니다.”

 

“지금쯤 기고만장해 있겠군.”

 

“본 천의 정예가 모두 출동하면 그러한 날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놈들이 모두 모이면 총 인원이 어느 정도 될 거라고 보느냐?”

 

“대월산장에 있는 자들과 곽산에 있는 자들까지 합류하면 삼천 오백에서 사천 정도 됩니다. 그리고 혁련궁이 마지막 전력까지 투입한다고 가정하면, 총 오천 정도 될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법 많군. 하지만 머릿수는 중요하지 않아. 오합지졸들은 승부가 기울면 승자에게 달라붙게 되어 있으니까.”

 

“저 역시 일이천 정도 모자라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본 천의 무사 일천 명만 나서도 저들을 상대할 수 있는 충분한 전력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럴 경우 천외천 역시 엄청난 피해를 각오해야 했다.

 

공손무백과 교비은이 강호의 힘을 끌어들인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천외천의 피해를 줄이려면 화살받이가 필요한 것이다.

 

“천의맹 쪽은 어떻게 되었느냐?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비밀 세력이 있었다던데, 처리되었느냐?”

 

예상했던 질문이 던져지자 교비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게……, 놈들이 예상보다 강해서 제거하기가 쉽지 않나 봅니다. 놈들을 제거하기는커녕 거꾸로 본천에서 심어놓은 사람들이 상당수 당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공손무백의 두 눈에서 한광이 일렁였다.

 

“공지, 그 늙은 땡초가 끝내 우리와 담을 쌓겠다는 건가? 흥, 두고 봐라. 신마성 놈들을 무너뜨리고 나면, 본천 형제들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철저히 받아내고 말 것이니라.”

 

공손무백은 싸늘한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신마성 놈들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원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

 

흠칫한 교비은은 고개를 쳐들었다.

 

“주군…….”

 

“어차피 놈들을 꺾지 못하면 안휘조차 지배할 수 없거늘. 본좌는 기껏 안휘를 갖기 위해서 아버님과 등을 돌리고 불귀곡을 나온 게 아니다.”

 

“어찌 속하가 주군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비은, 일단 회령장으로 지원무사를 더 보내라. 그리고 각지에 흩어져 있는 모든 형제들을 모아라.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놈들의 피로 안휘 땅을 적셔서 본 천의 위대함을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교비은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본래의 계획과는 많은 차이가 났다.

 

하지만 공손무백의 말을 듣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세상을 혼란케 하는 자는 누구든 제거한다!

 

-천외천의 앞을 가로막는 자는 그 누구든 용서치 않는다!

 

-천외천은[의] 하늘 밖의 하늘. 천외천의 법이 천하의 모든 법 위에 있다!

 

지난 수백 년간 천외천은 그러한 기본 위에서 움직였다. 그로 인해서 혈운이 강호를 뒤덮어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천외천이 무너뜨린 문파 중에는 정파로 분류된 곳들도 있었다. 그러나 천외천은 자신들의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천외천의 결정은 곧 하늘의 결정이니까!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세상에 둥지를 틀기 위해서 나름 명분을 찾으며 정파처럼 움직였다.

 

당연히 움직임이 한 박자 늦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그동안 천외천에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했다. 어쩌면 일이 생각했던 대로 안 풀린 것도 그 때문일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천외천의 행동방식대로 움직인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었다.

 

천하에 혈우가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뿐!

 

‘진즉 그렇게 했어야 했어! 천의맹 따위가 없어도 충분했거늘!’

 

이를 악문 교비은은 떨리는 손을 바닥에 짚고 엎드리며 복명했다.

 

“즉시 모든 형제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5

 

 

 

장강을 마주한 아수비 일행은 세상에 이토록 넓은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 강을 건너야 한다는 사실에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바라만 볼 수도 없는 일. 머리를 맞대고 강을 건널 방법을 생각해본 아수비 일행은 밤을 이용해서 강을 건너기로 했다. 그리고 뱃삯을 치르기 위해서 노루 두 마리를 잡아가지고 산을 내려갔다.

 

어촌으로 가자 나룻배가 몇 척 보였다.

 

저 배로 강을 건널 수 있을까?

 

조금은 걱정될 정도로 작은 배였지만, 그들의 처지에는 차라리 그런 배가 나을지 몰랐다. 큰 배를 타면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길지 모르는 것이다.

 

그들이 배가 있는 강가로 다가가자, 마침 그물을 들고 걸어가는 사공이 보였다.

 

아극타가 나서서 그 사공과 흥정을 했다.

 

사공은 강을 건네주는 대가로 노루 두 마리를 주겠다는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노루 두 마리를 팔면 네 식구가 한 달 동안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돈을 떠나서 세 사람의 행색이 이상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사공은 곧 그들의 요구에 응하기로 했다. 아수비의 등에 업힌 가죽 주머니에서 아기가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게 보인 것이다.

 

너무나 예쁜 아기였다. 저런 아이를 업은 사람들이 설마 나쁜 짓을 할까 싶었다.

 

 

 

사공은 노루를 집에 가져다 놓고 그들을 건네주었다.

 

배는 물의 흐름을 따라가며 사선으로 장강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안경에서 오 리 정도 못 미친 강가에 정박했다.

 

강을 건넌 아수비 등은 인적이 없는 산자락에서 낡은 사당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당 안에는 사람이 오간 흔적만 있을 뿐 기거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희들은 이곳에서 쉬고 있어라. 나 혼자 저 곳에 갔다 오마.”

 

아극타의 말에 아수비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게 사람들이 사는 곳은 호랑이가 사는 산속보다 더 두려운 곳이었다.

 

“조심하세요, 숙부.”

 

“너무 걱정하지 마라. 청광석을 파는 대로 돌아올 테니까.”

 

아극타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벽라동에서 가지고 나온 십여 개의 청광석 중 하나를 팔 생각이었다.

 

풍천이 산다는 곳까지는 수 천리. 그곳까지 가려면 무엇보다 경비가 절실했다.

 

 

 

잠시 후. 아극타는 모자에 달린 가죽을 반쯤 내리고 안경으로 들어갔다.

 

간혹 보이는 밝은 불빛에 눈이 부셨다. 하지만 벽라동을 나온 후 적응을 해서인지 불빛 정도는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후우, 정말 사람이 많군.’

 

작은 마을만 본 그의 눈에는 안경이 세상의 그 어떤 도읍보다도 크게 느껴졌다.

 

더구나 휘황찬란한 불빛이 반짝이는 홍등가는 자신이 딴 세상에 온 기분이 들 정도였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아극타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건을 파는 곳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상인처럼 보이는 중년인은 그에게 점포 하나를 손으로 가리켜주었다.

 

“뭘 팔려고 그러는지 몰라도, 저기 만호점이라는 곳에 한 번 가보쇼.”

 

그러고는 도망치듯이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아극타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년인이 가리킨 점포로 들어갔다.

 

점포주인은 초로의 오십 대 중년인이었다. 가느다란 눈에 염소수염을 매단 그는 아극타의 괴이한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옆구리에 투박한 칼이 매달린 걸 보니 사냥꾼 아니면 강호의 낭인처럼 보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걸 좀 팔려고 왔습니다.”

 

아극타는 호두알 크기의 청광석 하나를 꺼내서 점포주인에게 내밀었다. 점포주인은 은은한 빛을 발하는 청광석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어디서……, 난 거요?”

 

아극타는 미리 준비한 말을 꺼냈다.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보관해 왔던 겁니다. 얼마나 주실 수 있습니까?”

 

초로인은 침을 꿀꺽 삼키고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자 이십 냥 드리겠소이다.”

 

아극타는 묵묵히 점포주인을 바라보고는 청광석을 집어 들었다. 점포주인은 아극타의 단호한 행동을 보고 재빨리 자신의 말을 바꾸었다.

 

“크기가 제법 크니 오십 냥까지는 생각해 드리겠소.”

 

세상 사람들 중에는 순진한 사람을 등쳐먹는 사기꾼이 많다고 했다. 거래를 할 때는 항상 세 번 이상 생각하라고 했다.

 

벽라족의 조상들이 혹시라도 세상에 나갈 후예를 위해 한 충고로, 모두 오래된 책에 나와 있는 말이었다.

 

아극타는 충실히 그 충고에 따라서 청광석을 품에 넣으며 말했다.

 

“거래를 할 마음이 없으신가 보군요.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백 냥, 백 냥 드리겠소!”

 

벌써 다섯 배가 뛰었다. 역시나 조상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앞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맨 먼저 사람을 믿지 않는 것부터 배워야겠군.’

 

문득 아극타는 ‘풍천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청광석은 벽라동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특이한 돌이었다. 세상에 이러한 돌이 있을지 없을지 몰라도, 풍천이 떠나기 전 몇 개 챙기는 것을 보면 매우 귀한 물건임에는 분명한 것 같았다.

 

아극타는 이판사판이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오백 냥 주시오. 그 이하는 팔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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