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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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4화
14화
그저 단순한 질문에 불과했다. 그런데 상우군 일행은 과민하게 반응했다.
위조현이 급히 몸을 세우더니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말인가?”
북궁천이 손을 들어 북쪽을 가리켰다.
“조금 전, 저쪽에서 불화살이 하나 솟구쳤소. 거리는 대충 오 리 정도 될 것 같소만.”
이번에는 상우군과 그의 일행들이 모두 일어나서 북궁천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게 사실인가?”
위조현이 다시 물었다. 북궁천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상우군이 굳은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불을 꺼라. 바로 출발할 것이니 짐을 챙기도록.”
백풍문 사람들은 급히 흙을 불에 끼얹고, 바닥에 깔았던 천을 거두었다.
태극문의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지만 뭔가 사정이 있음을 알고 그들을 따라서 움직였다.
북궁천은 천을 접어 봇짐 속에 넣으며 상우군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지 말해 주면 좋겠소. 그래야 일이 터지면 적절히 대처할 수 있지 않겠소?”
대충 불길을 정리한 이정한 등도 상우군을 바라보았다.
상우군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곧 냉정을 되찾고 입을 열었다.
“가면서 말해 주지. 지금은 이곳을 떠나는 게 급하니까.”
상우군이 입을 연 것은 계곡을 빠져나온 후였다.
“우리가 문주님의 명으로 태원에 가는 것은 용천보에 한 가지 물건을 전하기 위함이네.”
태원 제일, 산서오호(山西五虎) 중 하나인 용천보는 백풍문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백풍문주 고정명이 용천보주의 사위인 것이다.
“문주님께서 운강석굴에 가셨다가 기물을 하나 얻으셨는데, 귀도맹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것을 욕심내고 있는 상황이지. 문주님께선 그들의 의도가 수상하다며 그 물건을 용천보에 맡기기로 하셨네.”
언뜻 들으면 단순한 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상대가 귀도맹이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들 역시 산서오호 중 하나. 백풍문으로선 상대하기에 큰 부담이 되는 자들이었다.
“놈들이 문주님의 뜻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따라올 줄은 몰랐군.”
북궁천은 용천보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헌원려려가 마지막으로 머무른 곳. 그곳이 바로 용천보인 것이다.
“그 기물이 뭔지 알아도 되겠소?”
“자세한 것은 말해 줄 수 없네. 그 점은 자네들도 이해해 주게.”
그때였다.
삐이이익!
휘파람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북쪽에서 다시 불화살이 솟구쳤다.
모닥불을 피웠던 곳. 귀도맹의 추적자들이 그곳에 도착한 듯했다.
상우군은 입을 다물고 걸음을 더 빨리했다.
백풍문의 무사들과 태극문의 제자들도 굳은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 *
불이 꺼진 모닥불 주위로 흑의인 십여 명이 까마귀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 중 삼십 대의 장한 하나가 나무 꼬챙이로 흙을 뒤적이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직 속에 불씨가 남은 걸 보니 조금 전에 떠났습니다.”
“훗, 뛰어 봐야 벼룩이지.”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달빛으로 인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중년인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나무 꼬챙이를 들고 있던 자는 또 다른 모닥불 주위의 흔적을 돌아보고 눈빛을 싸늘하게 반짝였다.
“모닥불이 두 개. 상대는 모두 열 명 정도 됩니다. 객잔에서 만났다는 젊은 놈들이 동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중년인이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여섯이나 열이나, 길 가다 합류한 놈들이 별것 있겠나?”
“하긴…… 곧 애들이 모두 모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주?”
“모래를 씹으며 여기까지 쫓아왔는데 적혈대에게 공을 넘겨줄 순 없지. 조곡,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저들을 쫓는다.”
“알겠습니다.”
조곡이라 불린 장한은 나무 꼬챙이를 던지고 뒤쪽에 서 있는 자 중 한 사람에게 명을 내렸다.
“너는 이곳에서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모이면 뒤따라와라. 그리고 다른 사람은 즉시 놈들을 쫓는다. 출발해!”
* * *
백풍문 사람들과 태극문 제자들은 쉬지 않고 삼십 리를 이동했다.
선두에 서서 빠르게 걷던 상우군은 이정한 등이 뒤처지지 않고 따라오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별 볼 일 없는 삼류 문파의 제자로 알고 있었다. 팔 개월 전에 만났을 때도 그저 그런 무사들에 불과했다. 성실하고 생각이 바른 것 같아서 좋게 본 것일 뿐.
그런데 그때와 많이 달라진 듯 보였다.
‘저 정도 신법이면 생각보다 더 큰 도움이 되겠는 걸?’
한편, 북궁천은 맨 뒤에서 그들을 따라가며 뒤쪽의 상황에 감각을 집중했다.
추적해 오는 자들과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밤이어서 추적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것은 저들 중 추적의 전문가가 있다는 말이었다.
이제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 그 느낌이 어찌나 선명한지 거친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했다.
‘열댓 명쯤 되는군.’
그들의 뒤로도 적지 않은 인원이 따라오는 것 같은데, 특별하게 강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기준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였다.
백풍문의 무사들이나 태극문의 제자들에게는 위협이 되고도 남았다.
상우군도 적이 추적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바짝 긴장했다.
‘빌어먹을. 귀응(鬼鷹)이 나섰나?’
귀응 조곡은 귀도맹 추혈대의 부대주로 추적 전문가였다.
그가 나섰다면 밤이라 해도 저들을 따돌리기가 쉽지 않을 터, 뭔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런데 오 리쯤 더 달렸을 때, 도끼를 내리쳐 쪼개 놓은 것처럼 쩍 벌어진 협곡이 나왔다.
협곡은 폭이 사오 장 정도, 높이는 십여 장, 길이는 삼사십 장가량 되었다.
적은 수로 많은 적을 막기에 적당한 지형.
협곡의 중간쯤을 통과하던 상우군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위조현을 바라보았다.
“조현, 네가 두 사람을 데리고 태극문 사람들과 남아서 저들의 발걸음을 지체시켜라. 정면대결은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시간만 끈 후 바로 도망쳐. 정 안 되겠으면 흩어지도록 하고. 놈들의 목적은 나이니 너희들을 끝까지 쫓지는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당주.”
위조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늦췄다.
이정한 등도 상우군의 말을 들었기에 위조현의 움직임에 맞추어서 속도를 늦췄다.
그사이 상우군은 자신의 좌우 호위와 함께 앞으로 달려가며 남은 사람들과 거리를 벌였다.
위조현은 칼을 빼 들고 짧게 주의를 주었다.
“적당히 싸우다가 내가 소리치면 전력을 다해서 빠져나간다.”
이정한 등은 바짝 긴장한 채 검을 빼 들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 여차하면 이곳에서 뼈를 묻을지도 모른다.
‘제기랄, 하필 귀도맹의 일에 끼어들다니.’
이정한은 이를 악물고 사제들을 돌아다보았다.
“방어에 중점을 둬라. 부당주님의 명이 떨어지면 앞뒤 가리지 말고 바로 튀어. 알았지?”
동호량과 초강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도 모르게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담담한 표정. 귀도맹의 추적대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고요한 눈빛.
그를 보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되었다.
이정한도 숨을 깊게 들이쉬고 두 사제를 안심시켰다.
“우리도 전과 많이 달라졌잖아? 겁먹지 말고 싸워라. 알았지?”
“예, 사형.”
그들은 북궁천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어떻게 할까? 다 죽이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려려가 말한 대협이 되려면 살인을 너무 많이 해도 안 될 것이고…….’
게다가 너무 강한 무위를 드러내면 북천궁의 촉수에 걸릴지 모른다.
‘귀찮긴 해도 쫓아오지 못하게만 하면…….’
북궁천이 그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위조현이 나직이 소리쳤다.
“놈들이 온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자들은 모두 열다섯이었다.
그중 선두는 귀응 조곡. 그리고 추혈대의 정예 무사들과 추혈대주 노종문이 그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좁은 협곡을 막고 서 있는 일곱 사람을 보고 속도를 늦추었다.
위조현은 그들의 정체를 확실히 알아보고 잇새로 씹어뱉듯이 말했다.
“노 대주! 뭐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요?”
노종문은 조곡의 앞으로 나서며 조소를 지었다.
“고 문주가 순순히 맹주님의 뜻을 받들었다면 쫓아올 이유가 없었겠지. 그런데 상우군은 안 보이는군. 먼저 도망쳤나?”
일단 말을 붙여서 상대의 발걸음을 붙잡는 것은 성공했다. 이제 얼마나 시간을 끄느냐 하는 것이 관건일 뿐.
“당주께선 백 리쯤 가셨을 거요. 그러니 추적을 포기하고 돌아가시오.”
그런데 조곡이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이 조곡을 바보 취급하는군.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보려는 모양인데, 헛수고하지 마라, 위조현.”
위조현은 칼을 움켜쥐고 눈을 부라렸다.
“정말 본 문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요?”
“훗, 못 할 것도 없지. 백풍문 따위가 감히 본 맹의 적수가 될 거라고 보느냐?”
“그러면 귀도맹도 좋을 게 없을 텐데? 설마 본 문과 용천보의 사이를 모르진 않겠지요?”
위조현이 용천보까지 들먹이며 협박조로 말하자, 노종문은 입술을 비틀며 냉랭히 명을 내렸다.
“말이 많군. 놈들의 목을 떼어 내라! 목이 떨어져도 떠들 수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순간, 귀도맹의 무사들이 몸을 날렸다.
위조현은 칼을 휘둘러서 그들의 접근을 막으며 소리쳤다.
“우리를 죽이기 전에는 갈 수 없다!”
도영당의 두 무사와 이정한 등도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서 상대의 접근을 막았다.
차차창! 채챙! 따다당!
병장기가 부딪치며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협곡을 울렸다.
달빛이 밝다 하나 시야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 수만 삐끗해도 목이 달아날 상황.
아니나 다를까, 양쪽의 무사들이 뒤엉키자마자 비명과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억!”
“이 개자식들이!”
“크으으윽.”
북궁천은 검을 쓰면서도 굳이 베거나 찌르지 않았다.
검면으로 쳐서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주먹으로 진기를 격탕시켰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할 새도 없이 세 사람을 쓰러뜨린 그는 다시 두 사람의 앞을 막았다.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편해졌다.
바짝 긴장해 있던 위조현도 안도하는 표정으로 적을 상대했다.
예상외로 태극문의 제자들이 잘 싸워 주고 있었다.
특히 단화린이라고 했던 자는 가볍게 대응하는 것 같은데도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세 명을 쓰러뜨리고 또 다른 상대를 막고 있었다.
잘하면 자신들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러나 노종문과 조곡이 아직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고, 어둠 저편에서 또 다른 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물러나면서 놈들을 막아라! 뚫리면 안 된다!”
한소리 내지른 그는 방어에 치중하면서 노종문과 조곡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한편, 노종문과 조곡은 짜증이 났다.
저따위 놈들에게 막혀서 꼼짝을 못 하다니!
키 큰 놈의 손짓에 힘도 못 써 보고 팩팩 쓰러지는 저놈들은 또 뭐란 말인가!
참지 못한 노종문이 먼저 노성을 내지르며 신형을 날렸다.
“쥐새끼 같은 놈들이 꽤나 끈질기구나!”
조곡도 한 발 차이로 몸을 날리며 독사 같은 눈빛을 번뜩였다.
단숨에 사 장을 날아간 그들은 태극문의 제자들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