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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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6화
6화
북궁천은 그를 향해 한 발 내딛으며 불쑥 상자를 내밀었다.
갑작스런 행동.
거기다 거리가 가까워 피할 틈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동고완은 북궁천을 너무 얕보았다.
퍽!
“켁!”
상자에 코를 얻어맞은 동고완은 고개를 기묘하게 젖히고 뒤로 벌러덩 뒤집어져서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코뼈가 완전히 함몰된 상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지 못했다.
“줘도 못 가져가는군.”
북궁천은 별일 아니라는 듯 중얼거리며 호숫가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기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관호명조차 이런 상황은 생각을 못 한 듯 대소를 터트렸다.
“우하하하하! 이거, 젊은 친구에게 한 방 맞았군!”
역수관은 그때까지도 동고완의 실력이 젊은 놈보다 모자라서 무너졌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동고완이 쓰러진 이상 혼자서 관호명을 상대할 수도 없는 일.
그는 동고완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서 북궁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단, 동고완처럼 무방비 상태가 아닌 칼을 앞세우고서.
도기를 한껏 피워 올린 채!
상자가 든 애송이의 팔을 자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 아닌가 말이다.
쉬쉬쉭!
이번에도 북궁천은 역수관의 칼을 막기 위해서 상자를 든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육대기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안 돼! 그러면 내단이 깨질지도 몰라!”
그 소리에 역수관은 눈빛을 번뜩였다.
조화문은 눈치를 보고, 관호명은 얼굴이 굳어졌다.
절박한 목소리!
상자에 진짜로 내단이 들어 있단 말인가?
조화문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역수관의 뒤를 따라서 몸을 날렸다.
역수관이 성공하면 그의 등을 칠 것이고, 실패하면 젊은 놈을 공격할 작정이었다.
성공 확률은 절반 정도.
상자를 취해서 숲 속으로 도주하면, 관호명이 제아무리 천하제일을 다투는 절대고수라 해도 쉽게 잡히지는 않을 것이다.
금황신군 관호명도 육대기에게서 시선을 떼고 역수관과 조화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따다당! 쩌정!
북궁천은 상자의 모서리로 교묘하게 역수관의 도신을 쳐 냈다.
도기가 넘실거리는 역수관의 도가 옆으로 틀어졌다.
그와 동시, 북궁천의 좌수가 역수관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경력을 동반한 채!
‘헉!’
기겁한 역수관은 몸을 빙글 돌리며 경력을 흐트러뜨리고 섬전처럼 칼을 휘둘렀다.
도기로 펼쳐진 도막에 북궁천의 좌수가 꽂혔다.
떠더덩!
온몸이 짜르르 울리는 충격!
“크으으윽.”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역수관은 뒤로 주르륵 물러났다.
북궁천도 미간을 좁혔다.
이전의 상태만 생각하고 맨손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역수관의 도기를 상대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무리였나 보다.
‘제길, 몸 상태가 생각보다 더 엉망인데?’
하긴 술로 지낸 세월이 얼마던가. 몸이 정상이면 그게 이상했다.
그때 조화문이 물러서는 역수관의 머리를 타넘으며 그를 공격했다.
쉬아아악!
섬전처럼 날아드는 시퍼런 검기!
조화문의 실력이 역수관에 비해 한 수 아래라 하나 섬전처럼 빠른 그의 검세는 절기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북궁천도 미미하나마 진기가 흔들린 상태. 기습의 시기도 워낙 절묘했다.
“어딜!”
한 소리 내지른 북궁천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삼권을 내질렀다.
물러선다는 것은 마제의 체면 문제.
더구나 상대는 실력이 한참 아래인 자 아닌가 말이다.
콰광!
조화문은 일권에 멈칫하고, 이권에 검이 옆으로 틀어졌다.
쾅!
그리고 세 번째 공격에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을 받고 뒤로 튕겨졌다.
“크억!”
북궁천은 조화문을 튕겨 내고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역시나 진기의 흐름이 예전 같지 않았다.
문제는 가장 강한 자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몸 상태가 정상이라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자가.
“정말 대단한 친구군!”
관호명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북궁천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육대기는 주저앉아 있었는데 그사이 혈도를 제압당한 듯했다.
북궁천은 처음으로 긴장감을 느꼈다.
상대는 금황신군이다. 중원에서 열 손가락에 든다는 절대고수 중 한 사람.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오랜만에 괜찮은 적수를 만났다며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몸은 엉망이고 진기마저 흔들린 상태. 공력마저 예전에 비해서 칠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는 암중에 진기를 안정시키며 오만한 눈빛으로 관호명을 바라보았다.
“금황신군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긴 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만날 줄은 몰랐소.”
“나는 자네의 정체가 더 궁금하군. 이름이 뭔가?”
“알려 줄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아쉬워도 참으시오.”
“하긴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지. 자네, 그 물건을 나에게 넘겨줄 수 없나? 꼭 필요한 곳이 있어서 말이야.”
북궁천은 상자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이 속에 들은 것이 진짜라고 생각하시오?”
“진짜든 가짜든, 일단 확인을 해 봐야겠네.”
“나는 귀하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정 확인하고 싶다면 내가 상자를 열어 보겠소.”
확인하는 거야 누가 한들 무슨 상관일까.
그러나 상자 안의 물건이 진품일 경우 절대 내주려하지 않을 터. 관호명은 북궁천이 상자를 여는 걸 원치 않았다.
“아니네, 내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군.”
북궁천은 차가운 눈빛으로 관호명을 직시한 채 입술을 비틀었다.
“싫다? 훗,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어디 오늘 강호의 맛 좀 볼까?”
조소를 띤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상자를 앞으로 뻗으며 관호명을 자극했다.
“이 상자를 갖고 싶으면…… 나를 이겨 봐.”
관호명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원한다면!”
순간이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관호명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폭발하듯이 뿜어졌다.
“무기가 있으면 사용해도 좋다!”
북궁천이 손에 든 상자를 품에 집어넣고 맞받아쳤다.
“신경 쓰지 말고 공격이나 하시지!”
찰나였다.
관호명의 쌍장에서 회오리바람 같은 장력이 뿜어져 나왔다.
고오오오!
북궁천은 상대의 장력이 코앞까지 다가온 후에야 반격에 나섰다.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린 그는 북천의 절기 중 하나인 앙천회류장(仰天回流掌)을 펼쳤다.
콰르릉! 콰과광!
두 사람 사이에서 천둥벼락이 치고 기의 폭풍이 일었다.
관호명은 북궁천의 장력을 대하고 신광을 번뜩였다.
“좋구나! 어디 있는 재주를 모조리 꺼내 봐라!”
그는 흥이 돋은 듯 자신의 성명절기인 금라신공(金?神功)을 펼치며 북궁천을 몰아붙였다.
우우우웅!
일장을 떨칠 때마다 징의 떨림처럼 허공이 울렸다.
충돌의 여파가 회오리치며 일대를 휘감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콰아앙!
일성 굉음과 함께 두 사람이 뒤로 죽 밀려났다.
얼음판을 미끄러지듯 이 장이나 밀려난 북궁천은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진기가 요동치며 온몸이 짜릿짜릿했다.
등골을 타고 밀려드는 짜릿한 긴장감!
그는 그 점이 못마땅했다. 마제가 중원의 우내오군 따위를 처리 못해서 긴장하다니!
관호명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잘 봐줘야 이십 대 후반. 그런 나이에 자신과 비등한 실력을 지닌 자가 관외에 있다니.
대체 저 젊은 자가 누구기에?
두 사람이 멈칫거린 것은 순간뿐.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몸을 날리며 쌍장을 휘둘렀다.
고오오오오!
또 다시 가공할 기운이 둘 사이를 진공상태로 만들며 서로를 향해 밀려갔다.
한 사람은 북천의 주인.
한 사람은 우내오군 중 하나.
이제 두 사람은 상자 속의 내단보다도 자존심 때문에 물러설 수 없었다.
콰르르르릉!
뇌성벽력이 연속적으로 울렸다.
두 사람의 경력이 충돌할 때마다 먼지구름이 일며 일대가 안개라도 낀 것처럼 뿌옇게 변했다.
자존심이 걸린 오초의 공방.
결전이 벌어지는 중심은 십여 장이 폐허가 된 상태. 바위고 나무고 모조리 가루가 되어서 평지가 되어 버렸다.
중상을 입은 역수관과 조화문은 강기의 여파를 피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숲 속으로 도주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동고완은 기다시피 거리를 벌리고, 구자겸의 몸뚱이는 기의 폭풍에 휘말려서 이 장 밖으로 날아갔다.
콰과광!
다시 한번 대기가 터져 나가며 두 사람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삼 장을 날아가 내려선 북궁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 혈맥은 큰 이상이 없지만 세맥이 약화된 상태. 이전만 생각하고 펼친 연환 공격은 연결이 단절되며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북궁천은 짜증이 난 표정으로 관호명을 노려보았다.
‘제길, 이게 무슨 꼴이야?’
그때 단무영의 전음이 고막을 울렸다.
<주군, 제가 돕겠습니다.>
<마제의 싸움이야! 나서지 마!>
북궁천은 단무영의 도움을 거절하고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단무영이 아무리 그의 비밀 호법이라 해도 일대일 대결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마제의 자존심상 허락할 수 없었다.
한편, 그와 비슷한 거리를 물러선 관호명도 정상은 아니었다.
풀어헤쳐진 머리, 창백해진 안색.
관외(關外)에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던 그였다.
분노와 호승심이 뒤범벅된 그는 금라신공을 십성까지 끌어 올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사자 갈기처럼 뻗었다.
장포가 바람도 없는데 찢어질 듯이 펄럭였다.
“이번으로 끝내자!”
일갈을 내지른 그는 쌍장을 머리 높이로 들어 올린 채 신형을 날렸다.
고오오오오!
은은한 금빛이 흐르는 장력이 안개처럼 퍼진 먼지구름을 뚫고 북궁천을 덮쳤다.
북궁천도 공력을 쌍장에 집중시키고 호기롭게 소리쳤다.
“얼마든지 덤벼 봐!”
두 다리를 아름드리 철주처럼 땅에 박고 선 그는 관호명의 장력에 정면으로 맞섰다.
대기를 뒤트는 가공할 기운이 금빛 장력을 휘감았다.
일 장의 간격을 두고 두 줄기 공세가 부딪친 순간!
콰과광!
두 사람을 중심으로 일대의 땅이 원을 그리며 터져 나갔다.
십 장이나 떨어진 호수에선 파도가 출렁거렸다.
북궁천은 두 발이 땅에 박혀 키가 한 자 정도 작아졌다.
반면 삼 장을 날아간 관호명은 단단하게 굳은 땅에 일곱 치 깊이의 발자국 세 개를 남기고 물러선 뒤 멈춰 섰다.
투두두둑.
허공으로 튀어 오른 돌과 흙들이 땅에 떨어졌다. 먼지구름이 바람에 실려 숲 쪽으로 밀려갔다.
“과연 천하는 넓구나. 관외에 너와 같은 젊은 고수가 있었다니…….”
얼굴이 창백해진 관호명이 진심어린 감탄을 내뱉었다.
그러나 북궁천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엉망인 몸으로 십성 공력을 끌어 올렸더니 진기가 역류하고 있었다. 숨을 한 번 쉴 시간도 아껴서 역류하는 진기를 바로잡아야 했다.
바로 그때, 안개처럼 뿌연 흑영 한 줄기가 육대기 쪽으로 날아갔다.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흑영의 움직임을 감지한 관호명이 노성을 내지르고 땅을 박찼다.
뿌연 흑영의 정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시커먼 흑포복면인이었다.
육대기의 등 뒤로 내려선 그는 육대기의 어깨와 목 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관호명이 점혈한 마혈은 거골과 천주혈. 흑포인은 육대기의 마혈을 해혈해 주고 다시 허공으로 솟구쳤다.
관호명은 노성을 내지르며 흑포복면인을 향해 쌍장을 휘둘렀다.
“어림없다, 이놈!”
퇴로를 차단당한 흑포복면인은 검을 빼 들고 관호명의 공세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쩌저저적! 콰과과광!
섬전이 번뜩이며 금빛 광채가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용권풍에 휘말린 것처럼 먼지구름이 하늘 높이 솟구치고, 그 여파에 바위조차 가루가 되었다.
찰나지간에 벌어진 삼초의 대결!
그 격돌이 어찌나 강력한지 관호명조차 견디지 못하고 뒤로 일곱 자나 미끄러지듯이 밀려났다.
반면 흑포복면인은 뒤로 훌훌 날아가서 북궁천 앞에 내려섰다.
관호명은 상대가 북궁천의 일행임을 알고 바짝 긴장했다.
겉으로 표가 나지 않을 뿐 내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게다가 상대는 평상시라 해도 십여 초를 상대해야 꺾을 수 있는 고수.
그는 주먹을 말아 쥐며 한 줌 아껴 놓았던 공력까지 모조리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전음 한 줄기가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우리와 싸우든 육대기를 잡든, 둘 중 하나를 택하시오.>
멈칫한 관호명은 튕기듯이 뒤로 몸을 날렸다.
혈도가 풀린 육대기가 도망치고 있었다.
어차피 젊은 놈과 흑포인을 혼자 상대하기는 무리인 상황. 육대기라도 잡아야 했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면 더 좋은 일이고.
“육대기! 죽기 싫으면 멈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