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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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5화
5화
이 년간 술에 찌들었다 하나 자신은 북천의 주인, 마제가 아닌가!
그는 팔짱을 끼고서 오만한 표정으로 턱을 쳐들었다.
그때였다. 검을 든 자가 입을 열었다.
“육대기, 좋은 말로 할 때 물건을 내놓아라. 순순히 물건을 내놓는다면 그냥 보내 주겠다.”
청의인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연산의 조화문이 개소리를 지껄일 때가 있다니. 강호의 친구들이 알면 배꼽 잡고 웃겠군.”
“쓸 데 없는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에게 넘기지 그러나?”
“뭘 넘겨?”
“설마 네가 영물의 내단을 얻었다는 걸 우리만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영물? 내단? 네가 봤어? 별 미친놈을 다 봤군.”
육대기는 일단 오리발부터 내밀었다.
“엊그제는 어떤 놈이 헛소리를 질러 대서 나를 힘들게 하더니, 오늘은 또 별 미친놈이 다 개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찰나였다.
“이놈!”
칼을 든 자가 땅을 박차고 육대기를 공격했다.
연산쌍객(連山雙客) 중 둘째인 칠절도객(七絶刀客) 구자겸.
그의 참월도(斬月刀)는 하북의 팽가조차 어려워한다는 절기였다.
육대기는 참월도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구자겸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신법을 펼쳤다.
촤아아악.
도세가 훑고 지나간 호숫가의 땅바닥이 이 장 길이로 깊게 갈라졌다.
육대기가 참월도의 도세에서 몸을 빼내자, 이번에는 조화문이 섬전처럼 검을 내질렀다.
쐐액!
육대기는 봉처럼 생긴 괴상하게 생긴 쇠막대를 휘두르며 정신없이 몸을 날렸다.
‘빌어먹을 새끼들!’
신법이라면 나름대로 한가락 한다는 그였다.
그러나 적들은 하북에서 내로라하는 절정고수인 연산쌍객. 하나도 어려운 판에 둘을 상대해야 했다.
따당! 쩡!
쇠막대로 검과 도를 막고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몸을 틀며 움직여 보았다. 그럼에도 삼초가 지나기 전에 그의 옷이 두어 군데 갈라졌다.
이대로 십초만 더 흐르면 옷이 아니라 살과 뼈가 갈라질 상황. 육대기는 두 사람의 공격을 피하는 와중에도 눈알을 굴렸다.
‘뭔가 수를 내야…….’
그때 숲 가장자리에 서 있는 청년이 보였다.
키가 크고 어깨도 넓어서 겉모습은 뭔가 있는 놈 같았다. 다만 머리가 부스스하고 눈이 휑한데다가 무기도 없는 게 마음에 걸렸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나 할까?
‘그럼 어때?’
번개처럼 머리를 굴린 그는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그러고는 개살구를 향해 힘껏 던지며 소리쳤다.
“야! 갖고 튀어!”
북궁천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상자를 보며 이마를 좁혔다.
‘나한테 한 말 같은데…….’
상자가 자신을 향해 정확히 날아오고,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왜 저자는 자신에게 상자를 던지는 걸까?
더구나 갖고 튀라니?
‘나를 아는 사람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자신을 안다면 감히 ‘야!’ ‘튀어!’라고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쨌든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물건을 쳐다만 볼 순 없는 일. 그는 손을 뻗어서 상자를 받았다.
그 순간, 그와 십오륙 장 떨어진 숲 속에서 두 사람이 날아왔다.
북궁천의 좌우에 내려선 그들은 번뜩이는 눈으로 상자를 쳐다보며 오만한 어조로 말했다.
“그걸 나에게 넘겨라.”
“살고 싶으면 이리 줘라, 꼬마야.”
북궁천은 두 사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예순 전후로 보이는 노인들. 북천궁에서도 이들 정도의 강자는 스무 명 안팎일만큼 강한 기운을 지닌 자들이었다.
“둘 중 어느 분을 줘야 하오?”
좌측의 백의노인이 먼저 웃는 표정으로 손을 뻗었다.
“나에게 주면 된다.”
그러자 우측의 청의노인이 냉랭히 말했다.
“그에게 주면 너는 내 손에 죽는다.”
북궁천은 상자를 가슴 높이로 쳐든 채 담담히 말했다.
“아무래도 두 분이 먼저 협상을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겠소?”
하지만 상자를 노리는 자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구자겸이 육대기를 조화문에게 맡겨 좋고 북궁천이 있는 곳으로 날아들며 소리쳤다.
“어림없는 소리! 그것은 우리 연산쌍객의 것이니 늙은이들은 물러나라!”
백의노인의 고개가 그를 향해 돌아갔다.
“저게 왜 너희들 것이지? 육대기가 주인 아니냐? 그리고 육대기는 저 꼬마에게 줬고.”
“흥! 그것도 결국 우리들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두 늙은이는 내 칼이 춤추기 전에 썩 물러가라!”
“그놈,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백의노인은 웃음을 지으며 청의노인을 바라보았다.
“일단 거치적거리는 것들부터 치우고 보는 게 어떻겠나?”
“네가 치워라.”
백의노인은 두말하지 않고 구자겸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노부가 누군지 아느냐?”
공력을 끌어 올리고 백의노인을 노려보던 구자겸은 흠칫하며 칼을 들어 올렸다.
“오늘 처음 보는 늙은이를 내가 어찌 안단 말이냐?”
“노부를 모르다니. 죽어도 싼 놈이군.”
백의노인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때 육대기와 싸우고 있던 조화문이 소리쳤다.
“아우, 물러서라! 그자는 소소신마(素笑神魔)다!”
백의노인은 하얗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맞아, 남들이 노부를 그렇게 부르지.”
대경한 구자겸은 칼을 휘두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소소신마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도영 사이로 파고든 소소신마는 좌수로 칼을 쳐내고, 우수를 갈고리처럼 구부려서 구자겸의 가슴을 찍었다.
구자겸은 반사적으로 좌수를 들어서 소소신마의 공격을 막았다.
와직!
좌수의 뼈가 으스러지고, 거대한 충격이 가슴을 강타했다.
“크어억!”
구자겸은 신음을 토해 내며 뒤로 날아갔다.
“아우!”
조화문은 육대기를 놔둔 채 소소신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구자겸을 처리한 소소신마는 뒤로 물러나며 청의노인에게 말했다.
“저놈은 네가 처리해.”
순간, 청의노인이 조화문을 향해 몸을 날리며 허리춤의 칼을 잡았다.
번쩍!
한 줄기 번개가 석양을 가르며 조화문을 덮쳤다.
쩡!
중동이 잘린 검날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조화문의 몸도 한쪽으로 튕겨졌다.
겨우 중심을 잡고 몸을 세운 조화문은 이를 악물고 청의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단 일도를 상대해 보고 청의노인의 정체를 파악했다.
“구중마도(九重魔刀) 역수관?”
청의노인은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서 육대기에게 말했다.
“우리가 누군지 알았으면, 물건을 확인할 때까지 도망칠 생각 마라. 도망치면 네놈의 팔다리를 모조리 잘라서 늑대 밥으로 만들 테니까.”
말 몇 마디로 육대기를 석상으로 만든 그는 북궁천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것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 옳을 지 판단이 섰을 것이다. 상자를 이리 던져라.”
북궁천은 여전히 상자를 가슴 높이로 든 채 육대기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육대기는 이를 악물고 눈알을 굴렸다.
소소신마 동고완.
구중마도 역수관.
하북과 산서에서 가장 무서운 이름, 북성팔마(北星八魔) 중 둘이 첩첩산중(疊疊山中)에 나타났다.
화령금각사가 아무리 천고의 영물이라지만, 설마 저들까지 나타날 줄이야.
그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있는데, 북궁천이 그에게 물었다.
“이 상자의 물건이 정말 이 사람들이 노리는 것인가?”
의아할 정도로 태연한 태도, 오만함마저 느껴지는 말투임에도 누구 하나 그 점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간이 탱탱 부은 놈이군.’ 그렇게 생각할 뿐.
육대기는 북궁천의 질문을 받고 눈알을 굴렸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그에 대해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무, 물론이다. 그 안에 분명 화령금각사의 내단이 들어 있다.”
“그런데 왜 이걸 나에게 준 거지?”
“그, 그야 나는 이들을 막을 수 없으니…….”
“그렇다고 나에게 줄 것까진 없잖아? 그냥 내주면 될 텐데 말이야. 혹시 가짜 아닌가?”
소소신마 동고완이 북궁천의 말뜻을 눈치채고 육대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애송이의 말도 일리가 있군.”
역수관은 좀 더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옷을 모두 벗고 뒤로 물러서라, 육대기.”
사색이 된 육대기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저, 정말입니다. 내단은 분명 그 상자 안에…….”
그때였다.
“나도 네 말을 믿을 수 없다!”
웅혼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허공을 걷듯이 날아왔다.
쉰 살가량에 당당한 몸집을 지닌 그는 육대기로부터 이 장 떨어진 곳에 내려서서 손을 뻗었다.
“이리 와라!”
일성을 내지른 그는 뻗은 손을 당겼다.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지만, 육대기도 명색이 강호의 고수다.
그런데 상대의 손이 당겨지자, 육대기의 몸이 휘청거리며 끌려갔다.
가공할 허공섭물!
기겁한 육대기는 딸려 가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놈! 어디서 헛수작을 부리는 거냐!”
“손을 거둬라!”
생각지도 못한 상황.
동고완과 역수관은 노성을 내지르고는, 북궁천을 놔둔 채 신형을 날렸다.
북궁천 정도는 도망가도 언제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상자를 가짜라 생각했는지 알 순 없지만.
그러나 북궁천은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처음에는 엉뚱하게 휘말려서 조금 짜증이 났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이 무척 재미있었다.
‘전설에서나 나오는 영물의 내단이 나타났단 말이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그는 이채 띤 눈으로 새로 나타난 자를 지그시 응시했다.
쉰 전후로 보이는 황의중년인이 바로 조금 전에 느꼈던 가공할 기운의 주인이었다.
천하의 북천마제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호승심을 느낄 만큼 강한 자.
‘누군지 몰라도 정말 대단한 자군.’
그가 바라보는 사이, 동고완과 역수관이 황의중년인을 덮쳤다.
황의중년인은 육대기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어서 두 사람을 향해 휘둘렀다.
콰아아아아!
석양빛 때문인지 은은하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장력이 파도처럼 밀려갔다.
쩌정! 콰르릉!
가공할 기운의 충돌 여파에 대지가 들썩거렸다.
호수의 물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출렁거렸다.
비틀거리며 물러선 동고완과 역수관은 경악한 표정으로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정신없이 뒤로 물러선 육대기가 눈을 부릅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 설마…… 금황신군(金皇神君)…… 관호명?”
중년인은 대소를 터트리며 동고완을 향해 쌍장을 휘둘렀다.
“으하하하! 소소신마 동고완! 자신이 있으면 내 장력을 받아 봐라!”
동고완은 상대의 정체를 알고 대경했다.
오행신군(五行神君)이라 불리는 우내오군(宇內五君) 중 한 사람이 이곳에 나타날 줄이야!
그러나 일장 대결로 자존심이 상한 그는 전력을 다해서 그에 맞섰다.
“오냐, 이놈!”
콰아아앙!
두 사람의 장력이 정면으로 부딪치며 산천을 떨쳐 울렸다.
머리가 풀어헤쳐진 동고완은 허우적거리며 뒤로 물러나서 허리를 구부렸다.
우웩!
한 움큼의 피를 토해 낸 그는 아연한 눈으로 관호명을 올려다봤다.
“이, 이런 빌어먹을 일이…….”
그 순간, 역수관이 관호명을 공격했다.
석양빛에 물든 대기가 그의 칼질에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떠더덩!
연이어서 굉음이 울리고, 관호명을 덮치던 역수관이 뒤로 튕겨졌다.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세운 그는 한광을 번뜩이며 관호명을 노려보았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더 강하구나, 관호명!”
관호명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자신의 처지를 알았으면 그만 물러들 가시지. 다 늙어서 산속 짐승들의 밥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역수관은 새파랗게 독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관호명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단 한 수의 대결만으로도 자신이 관호명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동가와 힘을 합치면 저놈을 이길 수 있을까?’
평소 교활하게 잔머리나 굴리는 동고완이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방법이 합공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었다.
“동가야…….”
그가 부름과 동시에 동고완이 뒤로 몸을 날렸다.
역수관과 힘을 합쳐도 관호명을 이기기 힘들 듯했다. 그렇다면 육대기는 관호명의 손에 넘어간 거나 다름없다.
육대기를 넘겨줄 수밖에 없다면 상자라도 취하는 수밖에.
진품은 아닐지 몰라도, 육대기의 품에서 나왔다면 평범한 물건 또한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고.
“이리 내놓아라, 꼬마야!”
북궁천을 윽박지른 그는 손을 쫙 뻗어서 상자를 잡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