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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39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2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39화

 

39화

 

 

 

 

 

 

 

“심장이 뚫려서 말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조관은 움찔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은각 좌우령주 중 좌령주인 천종원은 두종인의 시신을 본 터라 의심을 품지는 않았다.

 

두종진은 북궁천이 말한 대로 심장이 뚫려 있었다. 심장이 뚫린 자가 말해 봐야 몇 마디나 할 수 있겠는가? 

 

“아쉽군. 유일한 목격자였는데 말이야. 좌우간 수고했다. 그나마 이자라도 잡았으니 다행이야.”

 

북궁천은 두종진의 말이 떠올랐다.

 

역시 이들은 그 일 때문에 두종진을 잡으려 했던 것 같았다. 그렇다면 두종진이 말한 ‘그자들’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북궁천은 그에 대해서 일절 묻지 않았다.

 

더 깊이 알아서 좋을 게 없었다.

 

대신 그는 정체불명의 시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저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천종원은 시신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담담히 말했다.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북궁천은 그쯤에서 질문을 접었다.

 

“그럼 저희들은 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가 보도록 해라.”

 

 

 

장원을 나오자 조관이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왜 거짓말을 했나?”

 

“두종진의 말에서 정확한 것이 있었소? 그자들이 누군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략적인 것만 들었을 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차피 들었으되 듣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요. 그런데도 우리가 그 말을 했으면 그는 우리가 더 자세한 것을 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계속 추궁했을 거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못 들은 것으로 하는 게 낫소.”

 

조관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나도 궁금하오. 하지만 알려 하지는 마시오. 오래 살고 싶다면 오늘 일에 대해서 잊는 게 좋을 거요.”

 

조관은 가슴이 싸늘해졌다.

 

“알겠네.”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 내 손에 죽은 자의 정체나 한번 알아보시오. 그자의 동료들이 우리를 노릴지도 모르는데, 멋모르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을 수는 없지 않소?”

 

그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번 알아보지.”

 

 

 

 

 

 

 

6장. 동행

 

 

 

 

 

회룡당에 들어온 지 닷새가 지났다.

 

그사이 이정한을 비롯한 태극문 제자들과 이조량은 비무를 통해서 자신들에 대한 인식을 확실히 심어 주었다.

 

수련 중에 벌어진 십여 번의 비무에서 일반 무사들 누구도 그들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그런 실력으로도 다른 사람들보다 배는 더 열심히 수련을 하니, 회룡당의 기존 무사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이조량은 북궁천의 말을 들은 이후로 많은 변화를 보였다.

 

그는 자신을 과시하지도 않지만, 실력을 완전히 감추지도 않았다. 적당히 드러낸 그의 실력은 대주인 조관조차 어려워할 정도였다.

 

마음이 약한 것만 빼면 능히 일류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듯했다.

 

그 바람에 조관만 골치가 아팠다.

 

북궁천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정한을 비롯한 태극문 제자들이나 이조량은 회룡당의 일개 평무사로 지낼 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다섯이 회룡당에 들어와 일반 무사로 지내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조량, 자넨 왜 삼성궁에 들어왔나?”

 

조관이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이조량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천사교가 준동했다고 해서 정의를 위해 싸울 곳을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북궁천이 힐끔 이조량을 쳐다보았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 의협지사가 되겠다는 건가? 설마 이조량도 여자 때문에 그런 것은…….

 

그때 조관이 다시 물었다.

 

“무림맹이나 천무회, 백검맹도 있지 않은가?”

 

“무림맹은 저 같은 사람을 받아 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천무회는 너무 패도적이라 가기가 싫었고, 백검맹은 섬서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지 않았습니다.”

 

“무림맹에서 왜 안 받아 줄 거라고 생각한 거지?”

 

이조량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제 선친께서는 생전에 전응비검이라는 별호로 불리셨는데, 무림맹은 선친을 백도의 검객으로 인정하지 않았지요.”

 

조관은 전응비검이라는 별호를 아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럼 자네가 전응비검 이추관 대협의 아들이란 말인가?”

 

“예, 대주.”

 

“그런데 왜 서기에게 말하지 않았나? 선친이 누구라는 걸 말했으면 서기가 적었을 것이고, 모집관들이 그걸 봤으면 좀 더 좋은 곳으로 배정했을 텐데.”

 

“선친의 이름을 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머뭇거리니까, 서기가 짜증을 내면서 밑에 뭐라고 적더군요.”

 

“서기가? 뭐라고 적었지?”

 

“회룡당 추천이라고…….”

 

순간, 한쪽에서 듣고만 있던 이정한과 동호량과 초강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도 그렇게 적던 것 같던데…….”

 

북궁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기의 감정을 제일 먼저 건드린 게 자신이란 걸 아는 것이다.

 

그는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오기 전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대주, 천사교를 치기 위해서 무사들을 파견할 거라는 말이 돌던데, 아는 거라도 있소?”

 

조관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나도 조금 전에 들었네. 곧 대대적인 파견이 있을 것 같더군.”

 

“그럼 우리도 가게 되오?”

 

“당연히 가게 되겠지. 싸움이 벌어지면 뒤처리하는 게 우리 임무 아닌가?”

 

“그럼 소궁주의 혼인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구려.”

 

“아무래도 혼인식은 치르고 나서 파견하겠지. 이미 많은 곳에 연락을 해서 취소하지도 못할 테니까 말이야.”

 

‘젠장,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코앞인데 지금 혼인식을 할 때야?’

 

북궁천은 천사교가 조금 더 빨리 하남 쪽으로 몰려오기를 바랐다.

 

‘굼벵이 같은 놈들. 어차피 공격할 거면 빨리 오지, 뭐 하느라 뜸을 들이는 거야?’

 

이제 열흘가량 남았다. 그 안에 큰일이 없는 한 혼인식은 예정대로 열릴 것이다.

 

‘별 수 없이 려려를 납치해서 도망쳐야 하나?’

 

갈등이 일었다. 그녀가 구양우경과 함께 잠자리에 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심장이 터질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당!

 

문이 거세게 열리더니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대주! 당주께서 급히 오시랍니다! 천사교 놈들이 동진하고 있어서 출동할지 모른다는 소식입니다!”

 

 

 

* * *

 

 

 

삼성궁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천성전에 수십 명의 최고위급 간부들이 두 줄로 앉아서 상석을 바라보았다.

 

“궁주, 천사교가 하남 쪽으로 오고 있다는 게 사실이오?”

 

앞쪽에 앉아 있던 삼성궁의 대장로 구양초관이 모든 사람을 대표하듯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상석에는 초로의 중년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그가 바로 삼성궁의 궁주, 구양환이었다.

 

“그렇습니다, 숙부.”

 

그는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간부들을 둘러보았다.

 

“화산과 종남을 공격한 후, 상주에 있던 놈들이 상남의 철은보를 접수하고는 그곳으로 집결하고 있다는 소식이오.”

 

“허어, 몇 놈이나 된답디까?”

 

“당시까지 확인된 숫자는 모두 칠팔백 정도고, 지속적으로 모여든다 했으니 적어도 일천은 넘을 거요. 아무래도 화산과 종남의 본산을 공격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우리 쪽으로 눈을 돌린 것 같소.”

 

간부들이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그놈들이 정말 쳐들어올 줄은 몰랐구려.”

 

“철은보가 힘 한번 못 써 보고 당하다니…….”

 

“허어, 소궁주의 혼인식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딱딱.

 

구양환이 손잡이를 두드려서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웅혼한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어찌 우경의 혼인이 문제겠소? 그 일은 차후로 미룰 것이니 놈들을 물리칠 방도를 짜 보도록 하시오.”

 

 

 

구양환의 결정은 북궁천의 귀에도 들어갔다.

 

북궁천은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하지만 설매원에 있는 한 사람은 간부회의의 결과를 듣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숙부님, 아버님께서 정말 혼인식을 미루겠다고 하셨단 말입니까?”

 

구양환의 셋째 동생인 구양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 판국에 잔치를 벌일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느냐?”

 

“손님도, 잔치도 필요 없이 조용히 치르면 될 것 아닙니까?”

 

“허어, 어찌 삼성궁 소궁주의 혼인식을 손님도 없이 치른단 말이냐?”

 

구양우경의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얘졌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토록 기다리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거늘, 엉뚱한 일로 인해서 미뤄지다니.

 

“본 궁의 무사들은 언제 출동하게 됩니까?”

 

“내일 선발대 오백 명이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아마 모레까지는 계획된 인원 모두가 출동하겠지.”

 

그 말에 구양우경의 붉은 입술이 살짝 비틀렸다. 조소인지 각오를 다지는 것인지 모를 괴이한 표정이었다.

 

“저도 이번 싸움에 나서겠습니다.”

 

구양영은 구양우경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소 외부에 나서기 싫어하는 조카가 전장에 나서겠다니. 뜻밖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나설 생각이냐?

 

“놈들을 하루라도 빨리 물리치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양영은 그의 참전을 내심 반겼다.

 

구양우경은 삼성궁 전체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고수다.

 

아마 구양우경이 세상에 나가면 강호가 경이의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그러면 삼성궁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고, 구양우경이 차대 궁주가 되어도 누구 하나 의문을 품지 않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어느 모로 보나 그의 출전이 삼성궁의 입장에선 나쁠 게 없는 것이다.

 

“네 뜻이 그렇다면 형님께 말씀드려 보마.”

 

그때 구양우경이 넌지시 한 가지 요구를 덧붙였다.

 

“출전할 때 려매도 데려갈 것이니 그리 말씀드리십시오.”

 

 

 

* * *

 

 

 

“놈들에게 상남의 철은보가 무너져서 내일 오전에 출전한다고 한다. 모두 무기를 점검하고 각자의 소지품을 잘 챙겨 놓도록.”

 

회룡당주와 만나고 온 조관의 말에 북궁천은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하늘도 두 사람의 혼인식을 반대하는 모양이군. 면산에서 부처님께 빌은 효과가 이제야 나타나는 건가?’

 

그래도 겉으로는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느 정도 인원이 가는 것이오?”

 

“선발대로 오백 정도가 간다고 하는군. 그리고 뒤이어서 오백이 더 갈 것 같네. 좌우간 이번 일로 소궁주의 혼인식은 싸움이 끝날 때까지 미뤄질 것 같아.”

 

당연히 그래야지!

 

전쟁이 터진 판에 혼인식을 올리는 게 말이 되나?

 

“소궁주도 재수가 없군.”

 

북궁천은 안됐다는 듯 말하면서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천사교는 사악한 마도로 낙인 찍혔으니, 놈들을 물리치고 공을 세우면 려려도 나를 대협으로 인정하지 않을까? 그럼 그때 가서 정정당당하게 그녀를 데리고 떠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러한 것도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을 때 이야기였다.

 

‘상황을 봐서 그녀를 한번 만나 봐야겠어.’

 

그동안은 그녀가 싫어할까 봐 두려워서, 그녀에게 해가 될까 봐 미안해서 망설였다.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았고.

 

싸움이 벌어지면 기회가 생길 터, 더 늦기 전에 그녀의 뜻을 확실히 알아놓아야 했다.

 

그래야 여차하면…….

 

‘려려를 그놈에게 넘겨줄 순 없지!’

 

 

 

그런데 아침이 되자 뜻밖의 소식이 전해져서 북궁천의 가슴을 들뜨게 했다.

 

신룡공자 구양우경이 검신가를 대표하는 검신령주로서 선발대와 함께 출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더해 혼인할 여인도 함께 데려간단다. 헌원려려를 말이다.

 

몇몇 사람이 반대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후방에서 상황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다! 모두 각오 단단히 하도록!”

 

천광호의 목소리가 회룡당의 앞마당에 울려 퍼지는 데도 북궁천의 마음은 온통 헌원려려에게 가 있었다.

 

헌원려려가 위험할지 모른다는 점이 걱정되긴 했다. 그래도 둘을 이곳에 놔두고 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구양우경도 려려가 위험해지도록 놔두진 않겠지?’

 

정 위험해지면 자신이 데리고 북천까지 튀면 되니 나쁠 것은 없었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더 바랐다.

 

그때 한바탕 연설을 끝낸 천광호가 회룡당 무사들을 쓱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모두 살아서 이 자리로 돌아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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