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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38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3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38화

 

38화

 

 

 

 

 

 

 

조관과 북궁천은 천유문을 만난 지 일각 만에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설매원의 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두 경비무사는 고개를 돌렸다.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덕분에 북궁천은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설매원 안쪽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굴려도 려려는 보이지 않았다.

 

 

 

한편, 조관과 북궁천이 나간 직후 사십 대로 보이는 중년인 하나가 천유문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는 천유문 앞까지 다가가서 못 미덥다는 투로 말했다.

 

“숙부, 저들을 믿어도 되겠습니까? 저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일이 커질지도 모르는데…….”

 

“상관없다. 어차피 저 두 사람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을 테니까.”

 

“그럼 일이 끝난 뒤에 제거를……?”

 

천유문은 고개를 옆으로 꼬고 중년인을 째려보았다.

 

“네 눈에는 내가 사람 죽이는 것을 닭 목 비틀듯이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보구나.”

 

“그런 뜻이 아니라…….”

 

“놈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저들은 사정을 알 수 없다. 어차피 그놈도 앞뒤 잘린 토막 정보만 알고 있을 테니까.”

 

“아, 예.”

 

“맘 같아서는 우리 애들을 쓰고 싶지만, 우리 애들은 최소한 앞이나 뒤 중 하나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에 저들을 부른 거야.”

 

“우리 애들 중에서도 모르는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쯔쯔쯔, 그 애들이 모른다 해도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알게 될 거다. 하지만 저애들은 우리 애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거의 없지.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뭐가 불안한지 토를 달았다.

 

“그런데 왜 하필 광호의 아이들을 시키시는 겁니까?”

 

“광호 그놈이 조금 삐딱하긴 해도 헛된 욕심을 부리는 놈은 아니거든. 그것만 해도 이유는 충분해.”

 

 

 

* * *

 

 

 

평산은 삼성궁에서 삼십 리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조관과 함께 삼성궁을 나선 북궁천은 그날 오후 신시 무렵 평산에 도착했다.

 

그들은 평산에 도착하자마자 ‘한초방(漢草房)’이라는 약초상을 찾아갔다. 그곳의 주인이 바로 천유문이 말한 두종진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먼저 한초방의 위치와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걸 먼저 조사했다.

 

한초방에는 모두 세 사람이 있었는데, 삽십 대 장한이 두종진이었고, 스물 전후의 두 청년은 일꾼인 듯했다.

 

북궁천과 조관은 퇴로까지 모두 확인한 후 길 건너편의 객잔에 들어가서 한초방을 감시했다.

 

몰래 생포하라 했으니 대낮에 잡을 수는 없는 일. 밤이 되면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시(酉時:오후5시~7시)가 지나갈 무렵, 두 사람이 막 움직이려 할 때였다.

 

“으악!”

 

한초방 쪽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북궁천과 조관은 객잔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한초방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건물 안쪽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북궁천은 촌음도 망설이지 않고 닫힌 문을 향해 우장을 휘둘렀다.

 

쾅!

 

두꺼운 나무문이 산산조각 나며 안쪽으로 떨어져 나갔다.

 

조관은 검을 빼들고 즉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북궁천도 그의 뒤를 바짝 따라가며 한초방 내부를 살펴보았다.

 

구석진 곳에 한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고,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쓰러져 있는 자는 일꾼 중 하나였는데, 이미 죽었는지 피만 쏟아져 나올 뿐 움직임이 없었다.

 

북궁천은 그의 시신을 지나쳐, 격전이 벌어지는 뒷마당으로 나갔다.

 

바로 그 순간, 뒷마당에서 싸우던 자들 중 하나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크으윽.”

 

물러서며 신음을 흘리는 그의 가슴에서 뿌연 핏줄기가 뿜어지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자신들의 목표물인 두종진이었다.

 

두종진의 가슴을 가른 자는 시커먼 복면을 쓰고 있었다. 그는 북궁천과 조관이 들어서자 땅을 박차고 어둠 속으로 솟구쳤다.

 

그때였다.

 

뒷마당으로 뛰어든 북궁천이 땅에 떨어져 있는 칼의 손잡이를 살짝 발로 밟고, 사선으로 머리를 쳐든 칼의 손잡이 끝을 발로 찼다.

 

쒜에에엑!

 

석자 길이의 칼이 어둠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번개처럼 날아갔다.

 

복면인은 황급히 몸을 틀며 검을 휘둘렀다.

 

쩡!

 

어둠을 뒤흔드는 맑은 쇳소리.

 

방어를 하느라 진기가 흐트러진 복면인이 땅으로 내려섰다.

 

동시에 조관이 검을 앞세우고 그를 향해 날아갔다.

 

쩌저저정!

 

귀청을 찢는 병장기 격돌음과 함께 두 사람의 검이 불꽃을 튀기며 맞부딪쳤다.

 

복면인의 무공은 의외라 할 정도로 강했다.

 

사오초가 지나기도 전에 조관은 온몸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뒤로 밀려났다.

 

복면인은 물러서는 조관을 쫓지 않고 다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가공할 압력과 냉랭한 일갈이 그의 머리 위를 짓눌렀다.

 

“너는 갈 수 없다!”

 

기겁한 복면인은 찰나간에 검을 일곱 번 휘둘러서 검막을 펼쳤다.

 

찰나였다. 달빛을 가르고 떨어진 북궁천의 검이 그가 펼친 검막을 정면으로 내리쳤다.

 

쾅!

 

복면인은 허공 이 장 높이에서 유성처럼 내려 꽂혔다.

 

퍽!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땅바닥에 처박힌 그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덜덜 떨려서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크으으윽!”

 

그사이 땅에 내려선 북궁천은 성큼성큼 복면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좌장을 흔들었다.

 

퍼벅!

 

허공을 격하고 일장을 두들겨 맞은 복면인은 세 바퀴를 구른 후 두 손을 땅을 짚고 겨우 머리만 쳐들었다.

 

“으으으으, 대, 대체 너는 누구……?”

 

북궁천은 손가락을 튕겨 그의 마혈을 제압했다.

 

“잠깐 기다려라. 먼저 볼일이 있으니까. 허튼 수작 부리면 팔다리를 부러뜨릴 것이니 얌전히 기다리도록.”

 

고저 없이 나직한 어조로 경고를 준 그는 두종진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조관은 두어 번의 심호흡으로 흔들린 진기를 안정시키고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단화린이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신을 일거에 패퇴시킨 자를 단숨에 쓰러뜨릴 줄이야!

 

더구나 일련의 과정에서 보여 준 그의 행동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당주가 어째 단화린에게 저자세를 보인다 했더니…….’

 

그날 그 싸움에서 뭔가 자신들이 모르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단화린의 진정한 정체는 뭘까? 왜 저런 실력으로 회룡당에 들어온 걸까? 무슨 목적이 있기에.

 

그는 온갖 궁금함을 가득 품은 눈으로 북궁천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북궁천은 두종진의 가슴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들겼다.

 

웩, 웨엑!

 

피를 두어 사발 토해 낸 두종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북궁천은 두종진의 맥을 짚어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조 대주, 주맥이 끊겨서 오래 못 갈 것 같소.”

 

조관도 급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자네 생각을 말해 보게.”

 

“각주가 이자를 잡으려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오. 내 생각에는 이자가 알고 있는 어떤 정보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면 그것만 알아내면 될 것 같소.”

 

“심장이 뚫린 것 같은데, 알아낼 수 있겠나?”

 

“몇 마디 정도는 들을 수 있을 거요. 시간이 없으니 대주가 결정을 내리시오.”

 

“알았네. 그럼 자네가 알아서 하게.”

 

북궁천은 조관이 말하자마자 두종진의 심장을 한 손으로 눌렀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재빨리 혈도 세 곳을 짚었다.

 

두종진이 부들부들 떨더니 눈을 홉뜨고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끄으으으.”

 

북궁천은 그런 두종진을 냉엄한 목소리로 압박했다.

 

“두종진, 저자가 너를 죽이러 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슴 속에 쌓인 게 있으면 말하라. 그럼 편히 죽게 해 주마.”

 

두종진은 홉뜬 눈을 틀어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나, 나는…… 그자들이 설마……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

 

“무슨 말이냐? 누가 무슨 짓을 저질렀단 거지?”

 

“그들…… 정체는 자세히 모르…… 젊은 자들…… 재미로 사람을…… 여자를…… 제정신이 아니었…… 비명을…… 피를…… 즐기는 것처럼…… 악마 같은…….”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하지만 고요한 밤이어서 아주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조관은 그의 말을 들으며 등골이 오싹했다. 

 

북궁천조차 피가 싸늘히 식는 기분에 표정이 굳어졌다.

 

두종진은 몸을 더욱 거세게 떨더니 다시 피를 토했다. 그러고는 두어 번 숨을 껄떡거리더니, 눈을 홉뜬 채 머리를 떨궜다.

 

북궁천은 그의 몸을 놓고 일어서서, 쓰러져 있는 복면인에게 다가갔다.

 

“귀가 있으니 들었겠지?”

 

그는 냉랭히 말하며 복면을 벗겼다.

 

달빛 아래 비친 복면인의 얼굴은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의외로 청수한 인상이었다.

 

“그대 때문에 우리의 임무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만한 대가는 해야겠지? 자, 이제 그대가 아는 걸 말해 봐라. 두종진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거지? 왜 두종진을 죽이려 한 거지?”

 

북궁천이 나직이 윽박지르자 장한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너는 내 입에서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을 거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되는가 싶더니 입에서 피를 뿜으며 엎어졌다.

 

조관이 급히 허리를 숙이고 그의 맥을 잡더니 고개를 저었다.

 

“잠력을 격발시켜서 스스로 맥을 끊은 것 같네.”

 

북궁천은 장한의 결단력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자들인데 이리 독하단 말인가? 누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단 말인가?

 

“이자가 누군지 알겠소?”

 

어둠이 깔린 밤이지만 달빛이 밝아서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장한은 조관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였다.

 

“처음 보는 자네.”

 

“삼성궁에서 조 대주가 못 알아볼 만한 자가 얼마나 되오?”

 

“본 궁의 무사는 이천이나 되네. 한 번도 못 본 자가 수백 명은 될 거네.”

 

“그중에서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를 꼽으라면?”

 

조관은 북궁천의 뜻을 알고 이마를 찌푸리더니 조금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 칠팔십 명은 될 거네.”

 

“그렇게 많소? 간부들은 거의 다 알 거 아니오?”

 

“간부들이야 거의 다 알지. 문제는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이네. 그들은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자들인지 알 수가 없네.”

 

“그럼 이자가 그런 자들 중 한 명일 수도 있겠구려.”

 

“그럴지도…… 그런데 자네는 이자를 본 궁의 사람이라고 단정하는 것 같군.”

 

“아닐 수도 있을 거요. 하지만 우리는 잠은각의 명령을 받고 두종진을 잡으러 왔소. 그런데 때맞춰서 두종진을 죽이려는 자가 나타났소. 조 대주는 그런 일이 우연하게 벌어질 확률이 어느 정도나 된다고 보시오?”

 

조관은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북궁천은 조관을 더 몰아붙이지 않고 움직임이 멈춘 장한을 내려다보았다.

 

“두종진과 이자의 시신을 함께 가져가야겠소.”

 

“시신을?”

 

“때로는 죽은 자가 말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 * *

 

 

 

두종인을 데려가기로 한 장소는 삼성궁에서 십 리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장원이라기도 뭐할 정도로 작은 장원이었다.

 

그곳은 잠은각이 비밀스런 일을 진행할 때 사용하는 외부의 안가(安家)였다.

 

북궁천과 조관이 정체불명인의 시신을 갖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잠은각에서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두종진이 이자에게 죽었다고?”

 

두 사람 중 사십 대의 중년인이 물었다.

 

조관은 그를 아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령주.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그만…… 죄송합니다.”

 

“됐다. 그 일은 우리도 몰랐던 일이니까. 그런데 그가 남긴 말은 없나?”

 

질문을 던지고 쳐다보는 눈길이 스산하다.

 

“그게…….”

 

조관이 대답하기 전, 북궁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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