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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36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36화

 

36화

 

 

 

 

 

 

 

예상했던 대로 회룡당 사람들은 같은 정보라 해도 좀 더 깊게 알고 있었다.

 

특히 조관과 같은 중간 간부는 비밀이라 할 수 있는 정보마저도 제법 많이 알았다.

 

그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구양우경에 대해 말했다.

 

“대공자의 연세는 스물여덟 살이네. 위에 누나가 하나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하나씩 있지. 그리고…….”

 

무공은 차대 삼성궁주로서 손색이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고 삼성궁의 젊은 고수들 중에서는 가장 강하다고 했다.

 

성격은 진중하다 못해 태산처럼 무거웠는데, 오죽하면 측근에 있는 사람들조차 말하는 것을 보기 힘들 정도라 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실제로 그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검신가의 일부뿐일 거라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거처는 삼성궁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설매원(雪梅園)이었다.

 

 

 

“듣자 하니 소궁주가 혼인을 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오?”

 

북궁천이 넌지시 묻자 조관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나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나?”

 

“이곳으로 배속되기 전 대기실에서 들었소.”

 

북궁천은 대충 둘러대고 조관의 대답을 기다렸다.

 

다행히 조관은 그의 뜻을 의심하지 않고 순순히 자신이 아는 바를 이야기했다.

 

“자네 말이 맞네. 사실 진즉 혼인을 했어야 하는데 소궁주께서 미뤘지. 혼인에 대해서 별 뜻이 없다면서 말이야. 그런데 포원산장의 아가씨를 보더니 마음이 바뀐 모양이더군. 듣기로는 얼굴도 아름답지만 마음씨가 더 곱다고 하더군.”

 

북궁천은 조관이 헌원려려를 칭찬하자 팔불출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구양우경이란 자가 보는 눈은 있군.’

 

그 때문에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불만이었지만.

 

“그녀를 직접 봤소?”

 

“아주 멀리서 한 번 봤네. 소궁주님과 함께 걸어가는데 정말 아름답더군. 그녀를 본 순간, 소궁주께서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지.”

 

헌원려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냉혈한 같던 조관의 눈빛이 흔들렸다.

 

북궁천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아릿했다.

 

그 마음을 뭐라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질투?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녀가 구양우경과 함께 걸어간다는 말을 들으니 이상할 정도로 열이 올랐다.

 

“그렇게 아름답다니 나도 한번 보고 싶군요.”

 

“보름 후에 혼인식을 올린다 하니 그때 볼 수 있을 거네.”

 

“어디에 있는데 보는 것조차 힘들단 말이오?”

 

“그녀는 설매원에 있네. 소궁주님과 함께.”

 

북궁천은 당장 설매원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주먹을 움켜쥐고 끓는 마음을 억눌렀다.

 

‘보름 후란 말이지?’

 

 

 

* *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지 이각이 지난 후부터 회룡당 옆의 넓은 공터, 일명 ‘회룡당 전용 연무장’에서 천광호의 포효 소리가 울렸다.

 

“수련을 게을리 하는 놈은 우리 회룡당에 필요 없다! 거기 뭐 해! 그렇게 해서 적진을 누빌 수 있겠나?”

 

공터에선 회룡당 대원 육십여 명이 각자가 지닌 무공을 펼치며 수련에 열중이었다.

 

천광호는 먹이를 앞에 둔 호랑이처럼 그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발길질로 엉덩이를 걷어차기도 하고, 때로는 자세를 교정해 준다며 옆구리를 주먹으로 후려치기도 했다.

 

그에게는 그때가 가장 즐거운 때였다.

 

당주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마음대로 팰 수가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을까.

 

어쩌면 그가 회룡당을 맡은 이유도, 수련을 다그치는 이유도 구타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일지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삼성궁에서 말썽과 게으름의 대명사였던 그가 아침부터 설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이각 정도 수련을 지켜보다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는 그가 오늘따라 제법 오래 연무장에 남았다.

 

그 바람에 수련하는 무사들은 그만큼 고될 수밖에 없었다.

 

전날 퍼먹은 술 때문에 고단한 그가 늦게까지 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신입으로 들어온 다섯 사람을 확실하게 교육시키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문제는 다섯 사람 모두 자세가 완벽해서 손질할 곳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키가 큰 놈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놈들도 자세만큼은 완벽했다. 게다가 제일 어린 곱상한 놈도 의외로 기본이 튼튼해서 꼬투리를 잡을 만한 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죄 없는 기존 무사들만 그에게 두들겨 맞았다.

 

몇 년이나 자신 밑에서 수련한 놈들이 새로 들어온 놈들보다 못하다니!

 

마치 자신의 가르침이 엉터리여서 그런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좌우로 오가면서 가자미눈을 뜨고 신입들의 동작을 끊임없이 살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잘 걸렸다, 이놈!’

 

“너! 지금 장난하는 거냐?”

 

성큼성큼 걸어간 그는 허리에 두 손을 얹고 북궁천 앞에 섰다.

 

회룡당 무사들은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특히 조관과 이대의 대원들은 흥미진진한 광경에 눈을 반짝거렸다.

 

과연 어떻게 될까? 저 단화린이란 자가 당주에게도 대들까?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북궁천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제가 왜 당주와 장난을 한단 말이오?”

 

“뭐? 야, 임마! 날파리도 못 쫓을 그런 주먹질을 하면서 지금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씨부렁거려?”

 

“제 주먹질이 날파리를 쫓을 수 있을지 못 쫓을지 당주가 어떻게 안단 말이오?”

 

“이 자식이 그래도!”

 

“욕은 빼고 말하지요. 당주에게 욕먹을 행동은 하지 않았으니까.”

 

북궁천은 걷기 시작한 후부터 마제가 될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또래와 어울리지도 않았고, 그에게 함부로 말하는 이도 없었다.

 

더구나 궁주가 된 후로 간부들은 모두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욕을 할 기회조차 없었다.

 

당연히 욕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을 수밖에.

 

그래서 남이 자신에게 욕하는 것도 듣기가 싫었다.

 

하지만 천광호는 어릴 때부터 욕을 입에 달고 산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정도 욕은 욕도 아니었다. 그저 하고자하는 말을 좀 더 확실히 전달하기 위한 양념일 뿐.

 

그는 자신보다 한 뼘 가까이 큰 북궁천을 빤히 올려다봤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잘 안 나왔다.

 

“너 지금…… 나한테 대들겠다는 거냐?”

 

“당주는 욕하지 말란 말이 대들겠다는 말로 들리시오?”

 

눈을 치켜뜬 천광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좋다, 좋아. 네가 내 조건을 받아들이면 욕을 그만두마.”

 

“무슨 조건이오?”

 

“좀 전에 나에게 네 실력을 어떻게 아냐고 그랬지? 그럼 자신이 있다는 말인데, 어디 나하고 한번 붙어 보자. 십초만 서서 버티면 욕을 하지 않으마.”

 

“그런 조건이라면 나도 좋소.”

 

천광호는 씩 웃으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다들 옆으로 비켜!”

 

그가 외치기도 전에 이미 회룡대 무사들은 날벼락을 피해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미친 호랑이에게 겁 없이 대들다니. 저놈도 안됐군.’

 

‘저런 건방진 놈은 혼이 좀 나 봐야 돼.’

 

그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상황을 주시했다.

 

태연한 것은 이정한 일행뿐.

 

‘대형에게 나홍백이 죽었다는 걸 알면 당주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 이야기를 해줄까?

 

그럼 재미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그들이 동상이몽을 꾸고 있을 때, 천광호가 오른손을 앞으로 뻗더니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어디 마음껏 덤벼 봐라!”

 

북궁천은 마다하지 않고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여섯 자 앞까지 다가간 후 천천히 주먹을 뻗었다.

 

날파리도 쫓을 수 없을 거라 했던 그 권법, 북두패왕권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천광호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상대의 주먹을 걷어내고 가슴을 후려친 다음, 뒤로 물러서는 그를 따라가 가볍게 발길질을 하면 끝날 것 같았다.

 

‘쓰러진 놈의 배 위에 발을 얹고 점잖게 타이르면 애들이 나를 우러러 보겠지?’

 

생각만 해도 멋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상대의 주먹이 너무 느려서 걷어낸다는 게 어정쩡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공격해 들어가자니 느릿하던 주먹이 빨라지면 자신의 약점만 고스란히 드러낼 꼴이 될 터. 자칫하면 역습을 당할지도 몰랐다.

 

‘아, 그 자식! 굼벵이를 삶아먹고 컸나…….’

 

그가 망설이는 사이 북궁천의 주먹이 그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순간, 천광호는 숨이 턱 막히고, 고막이 먹먹했다.

 

‘뭐, 뭐야?’

 

보이는 건 온통 주먹뿐이었다.

 

거기다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의 압력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대경한 그는 급히 손을 휘둘러서 북궁천의 주먹을 쳐 냈다.

 

우우웅!

 

순간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공명음이 일었다.

 

북궁천은 주먹을 틀어서 충돌로 인해 벌어진 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또 다시 해일 같은 경력이 천광호를 향해 밀려갔다.

 

천광호는 정신없이 두 손을 휘둘렀다.

 

몇 걸음 물러서서 차분하게 대적해도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수하들의 눈에는 자신이 밀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 아닌가 말이다.

 

‘오냐, 이놈! 어디 한번 해보자!’

 

공력을 칠성까지 끌어 올린 그는 세 가지 장법과 두 가지 권법, 거기다 조법까지 하나 섞어서 북궁천을 박살내려 했다.

 

“와라차차차차!”

 

입으로도 한 수 거들었다.

 

그러나 어떤 공격도 굼벵이처럼 느린 북궁천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방어를 뚫기는커녕 오히려 상대가 역습할 때마다 화들짝 놀라서 식은땀이 다 날 지경이었다.

 

‘아, 씨발! 뭐 이따위 권법이 다 있어?’

 

그는 속이 탔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화려한 초식으로 정신없이 북궁천을 몰아붙이는 천광호가 대단하게 보였다.

 

“이야, 우리 당주님 대단한데?”

 

“굉장하군! 장법과 권법, 조법을 완전히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야.”

 

“그걸 막아 내는 저 친구도 제법인데?”

 

“운이 좋군,”

 

천광호는 그러한 말이 귀에 들어올 때마다 가슴에서 더 불이 났다.

 

확실하게 꺼꾸러뜨려야 체면이 설 텐데!

 

빌어먹을!

 

그때 북궁천이 두 주먹을 엇갈려 쳐 냈다.

 

후우우웅. 퍼버벅!

 

대기가 공명하는 소리와 함께 둔탁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그 직후, 그토록 물러서기 싫어했던 천광호가 두 걸음을 물러섰다.

 

북궁천도 뒤로 네 걸음을 물러선 뒤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십초가 넘은 것 같소만.”

 

막 눈을 치켜뜨고 다시 달려들려던 천광호가 멈칫했다.

 

‘지미, 벌써 십초가 넘었나?’

 

그도 모르지 않았다. 워낙 열이 받아 있어서 십초 대결을 깜박했을 뿐.

 

게다가 겉으로 보면 자신이 유리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가 잘 알았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좀팽이를 아주 싫어하는 천광호는 결과에 대해서 미련을 두지 않았다.

 

“제길! 좋다, 솔직히 내가…….”

 

그런데 북궁천이 그의 말을 잘라먹었다. 나름대로 공손하게 포권을 취하면서.

 

“제가 졌습니다.”

 

순간적으로 천광호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아직도 부족하십니까?”

 

“아, 지미, 그게 아니라니까!”

 

“계속하시겠다면 마다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이번엔 백초로 하죠.”

 

“뭐? 백초?”

 

천광호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십초 대결을 벌이면서도 식은땀이 났다. 그런데 백초 대결을 하자고?

 

‘아, 그 자식. 성질 더럽네. 누구 말려 죽일 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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