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35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35화
35화
이번 무사 모집에 들어온 신입 중 회룡당으로 배치된 자들은 다섯 명이었다.
모두 나이가 젊었다. 넷은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고, 곱상한 얼굴의 청년은 그보다 두어 살 어린 듯했다.
‘재수 더럽게 없는 놈들이군.’
저놈들은 회룡당이 어떤 곳인 줄 알고 왔을까?
‘알면 올 리가 없지.’
그래서 그는 더욱 즐거웠다. 곧 저 애송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사실 이름만 그럴 듯한 회룡당은 정예 조직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비룡가 가주의 친동생을 놀고먹게만 할 수도 없고 해서 오 년 전에 급조된 조직, 그게 회룡당이었다.
그들이 맡는 임무도 조금 특이했다.
‘네놈들은 삼성궁이 무슨 대단한 곳인 줄 알고 왔겠지? 웃기는 놈들. 아마 조금만 지나면 삼성궁에서 나는 시궁창 냄새에 구역질이 날 거다.’
천광호는 조소를 지으며 우측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얼굴에 기다란 칼자국이 사선으로 두 개나 나 있는 삼십 대 장한이 서 있었다.
“이봐, 조관. 이대 숫자가 제일 적지? 저 애들은 네가 챙겨라.”
“예, 당주. 감사합니다.”
조관이라 불린 장한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는, 마당에 서 있는 다섯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를 따라와라.”
회룡당은 삼대(三隊)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각 대는 이십 명에서 이십오 명의 무사가 배속되어 있었다.
조관은 그중 제 이대 대주였다.
북궁천은 일행과 함께 조관을 따라서 회룡당 이대 무사들의 방으로 갔다.
솔직히 그는 회룡당의 첫인상이 자신의 생각과 많이 다른 것을 보고는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십이당(十二堂)은 삼전(三殿) 이각(二閣)과 함께 삼성궁의 중추를 이루는 조직이라 들었다. 회룡당도 십이당 중 하나인 만큼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가 바라는 것과 많은 것에서 차이가 나는 듯했다.
‘하긴 정예 조직에 이제 갓 들어온 신입 무사를 배속시킨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실력이 눈에 띌 만큼 뛰어나다면 또 몰라도.
자신의 실력을 조금 더 드러내서 이보다 나은 곳으로 갈까?
문득 그런 마음이 들긴 했지만, 회룡당에 태극문 제자들과 함께 들어온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잠시만 더 상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조관을 필두로 북궁천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쉬고 있던 십여 명의 무사가 일제히 시선을 집중했다.
“대주, 신입입니까?”
“그래.”
조관은 대원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고는, 몸을 돌리고 북궁천 등을 둘러보았다.
“회룡당이 어떤 곳인 줄 알고 온 사람?”
북궁천과 이정한 등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온 이조량이란 자가 아는 게 있는지 머뭇거리며 말했다.
“대충은 들었습니다. 불미스런 일이 벌어지면 회룡당이 후속 조치를 맡아서 처리한다고…….”
“어디서 듣긴 들었나 보군. 그럼 그 후속 조치란 게 뭔 줄 아나?”
“주 임무가 싸움이 끝난 곳에 들어가서 사상자와 무기 등을 챙겨 오는 일이라 알고 있습니다.”
“다른 일에 대해서도 아나?”
“다른 건 잘…….”
조관은 입술 끝을 비틀어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은 아는군. 하지만 우리 삼성궁에 대규모 싸움을 거는 자들이 거의 없다 보니 그러한 일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할 수 있지. 그럼 어떤 일을 주로 할까?”
중간에서 질문을 하듯 말을 끊은 그는 다섯 사람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좌우로 오갔다.
한참이 지나도 다섯 사람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높은 사람들이 시키는 잔일도 해야 하고, 때로는 그 양반들이 배설해 놓은 오물을 치워야 할 때도 있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저…… 저희들이 직접 싸움을 하진 않습니까?”
이조량이 머뭇거리다 물었다.
조관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런 일을 하다 보면 싸워야 할 때가 있지. 그것도 악조건에서. 그래서 우리 회룡당의 무사들은 남들이 알아 줄 정도로 수련량이 많다. 기강이 엄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왜? 겁이 나나?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싶어?”
“아니, 그건 아닙니다만…….”
“아니라니 다행이군. 우리 회룡당은 나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또 모르지, 공을 세우고 인정을 받는다면.”
조관은 놀리듯이 이조량을 몰아붙이고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단화린이라 했지?”
“그렇소.”
그렇소?
조관은 기분이 상한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후부터 왠지 모르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심하게 다그치지도 못했다.
그때, 한쪽에 앉아서 구경하던 자들 중 얼굴이 길쭉한 장한이 일어섰다.
“젊은 친구의 태도가 영 아니군. 상관에게 그따위 말투를 쓰면 되나?”
그러자 또 다른 자가 몸을 일으키며 두 손을 맞잡고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꺾었다.
“일단 예절 교육부터 시켜야 할 것 같군. 대주, 저희에게 맡기고 좀 쉬시죠.”
두 사람은 서로 눈짓을 하더니 북궁천을 향해 다가갔다.
이조량이 앞으로 나서며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그만하시죠. 앞으로 함께 지내야 할 사람들끼리 싸워서야 되겠…….”
퍽!
말을 끝맺기도 전에 얼굴이 길쭉한 장한의 주먹이 이조량의 가슴을 두들겼다.
악심을 품고 친 주먹은 아니어서 이조량은 세 걸음을 물러선 뒤 몸을 세웠다.
“너는 비켜!”
장한은 짜증내듯이 이조량을 향해 말하고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이정한 등은 일절 나서지 않았는데, 그들은 호랑이에게 토끼들이 덤벼드는 것 같아서 오히려 두 장한이 불쌍하기만 했다.
그런데 또 이조량이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굳이 이럴 필요는…….”
“이 자식이!”
이번에는 나중에 일어선 자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손을 뻗었다.
펑!
쫙 펼친 손바닥이 이조량의 어깨를 때렸다.
이조량은 너덧 걸음을 물러난 뒤 벽에 등을 부딪치고서야 멈춰 섰다.
북궁천은 자신을 대신해서 두 번이나 맞은 이조량을 돌아다보았다.
자신이 나섰다면 그가 맞는 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서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본 이조량은 때린 자보다 약하지 않았다.
“왜 피하지 않았지?”
그가 의아한 어조로 묻자, 이조량은 붉어진 얼굴로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조용히 해결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때였다.
“어디 피하고 싶으면 네가 피해 봐라!”
얼굴이 길쭉한 자가 소리치며 주먹을 날렸다.
북궁천은 몸을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왼손을 뻗어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휭!
또 다른 자가 북궁천의 옆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북궁천은 보지도 않고, 파리를 잡듯이 그자의 손을 낚아채서 가볍게 비틀었다.
“으윽!”
손이 뒤로 꺾인 그자의 입에서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뒤이어 얼굴이 길쭉한 자가 재차 공격하려다가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북궁천이 손에 잡힌 팔목을 부러뜨릴 것처럼 꺾어 버린 것이다.
단숨에 두 사람을 제압한 북궁천은 조관을 보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소만.”
그사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머지 무사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 손을 놓아라!”
“건방진 놈이 들어오자마자 말썽을 피우는군.”
그들은 북궁천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며 포위하듯 에워쌌다.
북궁천은 그들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여전히 조관만 바라보았다.
“후회할 텐데?”
조관의 두 줄기 상흔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평소였다면 단숨에 달려들어서 팔 하나 정도는 부러뜨려 놨을 것이다. 그 정도는 당주도 껄껄 웃으면서 이해해 줄 것이고.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빛이 마주치자 심장이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들의 손을 놓아주게.”
겨우 입을 연 그는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자신의 말투가 변했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북궁천은 그가 말하자마자 손을 놓아주며 가볍게 밀었다.
우당탕탕.
두 사람이 튕겨지듯이 뒤로 구르며 그의 몸에서 떨어진 순간, 에워싸고 있던 자들 중 두 사람이 동시에 그를 공격했다.
북궁천은 한 발을 내딛으며 그들의 공격 사이로 스며들었다.
너무 가까워서 피할 틈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공격은 그들 스스로가 억지로 손을 튼 것처럼 북궁천의 몸을 피해갔다.
앞뒤로 두 사람의 공격을 흘린 북궁천은 앞에 있는 자의 팔을 잡아서 조관에게 던지고, 빙글 몸을 돌리면서 뒤에 있는 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끅!”
가히 전광석화(電光石火)였다.
북궁천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싶은 순간에 모든 상황이 끝나 버린 것이다.
말릴 틈도 없이 사람이 날아들자, 조관은 급히 손을 뻗어서 날아드는 자를 붙잡았다.
그때였다.
“후회할 거라고 했지.”
목을 쥔 자를 응시하며 나직이 말하는 북궁천의 소리가 방 안을 짓눌렀다.
조관은 갈고리 같은 북궁천의 손가락이 수하의 목을 파고들자 다급히 말렸다.
“그만하면 알아들었을 테니 손을 멈추게.”
북궁천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이번 일로 시비를 걸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놓겠소.”
조관은 미간을 씰룩거리며 어렵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지.”
북궁천은 두 번 묻지 않고 목을 쥔 자를 밀쳤다.
그러고는 조관이나 이대의 무사들이 아닌 이조량을 보며 말했다.
“힘이란 써야 할 때와 아껴야 할 때가 있는 법. 조금 전 그대의 선택은 옳지 않았다. 나섰으면 책임을 져야 하고, 확실하게 책임을 지지 못할 거면 나서지 않는 게 낫다.”
“…….”
“생각해 봐라. 만약 나에게 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아마 그대로 인해서 나는 더 험한 일을 당했을 것이다.”
이조량은 얼굴이 벌게진 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북궁천의 시선이 이번에는 조관에게로 향했다.
“동료가 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말하시오. 얼굴 붉혀 가면서까지 이곳에 남고 싶진 않으니까.”
조관은 콧등을 두어 번 씰룩거렸다.
자신조차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바로 코앞인데도!
자신이 저자를 이길 수 있을까?
눈빛이 마주치면서 몸이 굳었을 때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더구나 자신은 수하 둘을 저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 없지 않은가.
격이 다른 고수.
그게 짧은 순간 북궁천에 대한 조관의 평가였다.
그런 한편으로는, 저런 자가 왜 평무사로 회룡당에 들어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목적을 알아보는 것은 차후의 일. 그는 한숨을 쉬며 북궁천의 청을 받아들였다.
“후우, 이번 일은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게 좋겠군. 당주가 알면 우리 모두가 괴로워질 테니까.”
“좋소. 그럼 나도 이쯤에서 끝내겠소.”
북궁천은 조관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고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무사들을 둘러보았다.
“나도 건들지만 않으면 조용한 사람이오. 함께 지낼 동안은 웃으면서 보냅시다.”
이대의 무사들은 머쓱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북궁천에게 혼이 난 자들 중 둘과 다른 자들 중 서너 명은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역력했다.
북궁천은 보고도 못 본 척했다.
말단 무사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도 좋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선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조관의 설명을 들은 후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이들을 단숨에 제압해서 충격을 준 것도 그 때문이고.
‘회룡당이 높은 사람들의 구린 구석을 처리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 오히려 이곳에 있는 것이 접근하기가 더 쉬울지도…….’
* * *
그날 밤.
북궁천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회룡당 무사들에게 대공자 구양우경에 대해서 물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