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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34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8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34화

 

34화

 

 

 

 

 

 

 

* * *

 

 

 

북궁천은 곧장 왕두평을 찾아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왕두평이 공수를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의자에 앉은 북궁천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찾았소?”

 

왕두평도 침착하게 그가 입을 열 때를 기다린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행히 공자의 명을 어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온 터였다. 그럼에도 막상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공력이 높고 낮은 것과 아무런 상관없는 본능의 감정이었다.

 

북궁천은 바로 묻지 않고 일단 왕두평의 공을 치하했다.

 

“수고했소.”

 

“별말씀을. 최대한 빨리 찾고자 했는데 성을 바꾼 바람에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공자.”

 

북궁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왕두평을 바라보았다.

 

“성을 바꿨다고? 그럼 그녀가 헌원려려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단 말이오?”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문 장주가 양녀로 받아들여서 지금은 그녀를 서문려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 하지만 북궁천은 그녀의 성이 바뀐 것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가 말한 ‘서문 장주’라는 말이 마음에 더 걸렸다.

 

“서문 장주라면…… 그럼 그녀가 포원산장에 있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공자.”

 

문득 등봉에서 봤던 마차가 떠올랐다.

 

‘혹시 그 마차에 려려가……?’

 

확실치는 않았다. 그러나 운명처럼 자신의 눈을 붙들던 그때를 떠올리니 꼭 그 안에 그녀가 타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그때 확인을 해 봤어야 했는데.’

 

마음이 더 초조해진 그는 왕두평에게 물었다.

 

“여기서 포원산장까지 얼마나 되오?”

 

“포원산장에 가시려고 하는 겁니까?”

 

“그렇소.”

 

“죄송하지만 그녀는 지금 그곳에 없습니다, 공자.”

 

“포원산장에 없다고?”

 

“예, 공자. 그녀는 사흘 전에 삼성궁으로 갔습니다.”

 

북궁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겨우 찾았다 싶었는데 다른 곳에 가 있다니.

 

“지금 삼성궁이라 했소? 그녀가 왜 그곳에 갔단 말이오?”

 

“섬서의 천사교 준동으로 인해 삼성궁의 예하 세력 수장들이 모두 모이는데, 서문 장주가 혼인 문제 때문에 데려갔다고 합니다.”

 

순간, 북궁천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찡하니 울렸다.

 

“혼인?”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를 향해 왕두평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부터 그런 이야기가 오갔나 봅니다. 그러다 이번에 천사교가 준동하자 서둘러서 매듭을 지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렇게 된 건가? 자신이 조금 늦은 건가?

 

삼성궁으로 간지 사흘이 지났다고 했다. 그들이 서두르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쯤은 어떤 결론이 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그녀는 어떤 마음일까?

 

자신의 청을 거절할 정도로 고집이 센 그녀라 해도 삼성궁이라면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삼성궁은 무림맹이 유명무실해진 현 강호에서 천무회와 함께 중원 정파의 기둥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닌가.

 

마도로 치부되는 북천궁과는 확연히 다른 곳.

 

북궁천은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아냐! 아무리 급해도 혼인을 하려면 한두 달의 시간은 걸린다.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야.’

 

그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기회만 있어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절대로!

 

“상대는…… 누구요?”

 

무겁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건물 전체가 내려앉는 느낌이다.

 

왕두평은 심혼이 짓눌리는 기분을 느끼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삼성궁의 소궁주인…… 신룡공자 구양우경입니다.”

 

 

 

* * *

 

 

 

선유원으로 돌아간 북궁천은 이정한 등과 황보천, 종리기진을 불러 모았다.

 

“그녀가 삼성궁에 있다는군. 나는 그곳으로 갈 것이니, 정한 아우는 두 아우를 데리고 태극당으로 돌아가게.”

 

그러나 이정한은 아직 태원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위험할지 모르네. 자칫하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고.”

 

“강호에서 살다 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저희 같은 무사들 아니겠습니까? 걱정 마십쇼. 이 기회에 저희도 삼성궁 구경 좀 해봅시다, 대형.”

 

북궁천은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을 차례대로 주시했다.

 

두 사람도 같은 마음인 듯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진 사부께서는 태극문을 건립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네. 아우들이 돌아가지 못하면 내가 너무 미안해져.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죽으면 안 되네. 그 약속만 하면 데려가지.”

 

처음에는 불허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말미에 허락한다는 말이 떨어지자 세 사람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약속하겠습니다, 대형. 악착같이 살아남겠습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 태극문을 저희 손으로 건립할 겁니다!”

 

북궁천은 그쯤에서 황보청과 종리기진을 바라보았다.

 

“황보 아우와 종리 아우는 돌아가게.”

 

“저희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천사교의 준동 때문에 삼성궁이 예하 세력을 불러 모았다면 황보세가도 움직일 거네. 그러니 자네는 나와 함께 삼성궁으로 가는 것보다 세가로 돌아가는 게 나아.”

 

황보청도 모르지 않기에 마음이 착잡했다.

 

종남파와 화산파는 물론이고 섬서의 정파들이 천사교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이 속속 전해지고 있었다.

 

그동안 깊은 잠에 빠져있던 무림맹도 이십 년 만에 다시 깨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 더 이상은 밖으로 싸돌아다닐 때가 아니었다.

 

“그럼 삼성궁의 일이 끝나면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확실한 것을 말하기는 그렇군. 다만, 자네들이 내 아우라는 것은 잊지 않을 것이네.”

 

황보청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피식 웃었다.

 

“혹시라도 제가 필요하면 바로 사람을 보내십쇼.”

 

“그렇게 하지.”

 

상황을 정리한 북궁천은 유원당을 만나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 일각 정도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이정한 등과 함께 선유원을 나섰다.

 

 

 

 

 

 

 

4장. 삼성궁 회룡당

 

 

 

 

 

동장군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인가?

 

냉기를 품은 바람이 앞섬을 파고들 때마다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 정도다.

 

하지만 남양을 떠난 북궁천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가만히 쉬고 있으면 끓어오르는 가슴의 열기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왕두평이 붙여 준 길 안내인을 따라 삼성궁으로 향한 그는 끓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이틀 후. 언덕 위에 올라선 그는 걸음을 멈추고 이백 장 앞에 펼쳐진 거대한 장원을 바라보았다.

 

삼성궁(三星宮)!

 

그랬다. 앞에 보이는 성처럼 거대한 장원이 바로 헌원려려가 있다는 삼성궁이었다.

 

높이 일 장이 넘는 담장의 둘레가 십 리도 더 된다 했던가?

 

북천궁에 비해서 조금도 뒤지지 않는 거대한 규모.

 

그래서 그는 심적인 불안감이 더 커졌다.

 

구양우경은 저 거대한 삼성궁의 다음 대 주인이 될 사람이다.

 

게다가 삼성궁은 분열된 무림맹을 대신해서 당금 정파의 기둥으로 우뚝 선 곳이 아닌가 말이다.

 

최소한 구양우경은, 헌원려려가 원하는 ‘대협’에 자신보다 훨씬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이다.

 

‘혼인이 치러질 때까지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포기하지 마라, 북궁천!’

 

더구나 아직 헌원려려의 확실한 마음도 모르는 상태가 아닌가.

 

그녀가 자의로 구양우경과 혼인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타의로 이루어지는 일인지, 최소한 그녀의 마음이라도 알아야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형?”

 

초강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삼성궁은 무림맹이 유명무실해진 후 천무회, 백검맹과 함께 하남을 삼분하고 있는 대세력이다.

 

무작정 들어가서 헌원려려를 빼내는 것은 북궁천이 제아무리 고수라 해도 힘든 일이었다.

 

북궁천도 힘으로 어찌할 생각은 없었다.

 

설령 그리해서 빼낸다 해도 헌원려려의 반발만 살 뿐. 그거야말로 최악의 선택이었다.

 

“정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보니 무사를 모집하는가 보군. 한번 가 보세.”

 

북궁천은 왕두평이 딸려 보낸 사람을 그곳에서 돌려보내고는 삼성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정한 등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삼성궁의 정문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천사교의 준동에 삼성궁이 무사를 모집한다고 하자, 이 기회에 삼성궁 무사가 되기 위해 모여든 자들이었다.

 

북궁천은 이정한 등과 함께 늘어선 줄의 꼬리에 따라붙었다.

 

동호량이 북궁천의 생각을 눈치 채고 넌지시 물었다.

 

“모집 무사로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네.”

 

자신의 실력을 일부만 드러내도 간부로 중용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면 안에서 움직이는 게 그만큼 힘들어질 터. 일반무사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헌원려려를 찾아보는 게 나을 듯했다.

 

정문을 통과하자 의자에 앉아서 신상명세를 적고 있는 서기가 보였다.

 

북궁천의 차례가 되자 서기가 물었다.

 

“이름은?”

 

“단화린.”

 

“나이는?”

 

“스물일곱.”

 

“사문은?”

 

“북두문.”

 

붓을 든 서기는 딱딱 끊어서 대답하는 북궁천을 째려보았다.

 

‘이 자식이, 내가 붓 들고 있다고 우습게 보는 거야, 뭐야? 젊은 놈이 왜 이렇게 혀가 짧아? 지가 무슨 대단한 놈이라도 되는 줄 아나?’

 

하지만 그는 북궁천의 키가 자신보다 훨씬 크고 몸이 단단해 보여서 꾹 참았다.

 

대신 북궁천을 힘은 많이 드는 반면 출세와는 거리가 먼 곳을 골라서 배정하기로 했다.

 

그가 비록 서기지만 한두 사람 정도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배정할 수 있었다.

 

‘건방진 놈, 어디 광호(狂虎) 밑에서 고생 좀 해 봐라.’

 

입술을 묘하게 비튼 그는 북궁천의 특징에 대해서 간단하게 몇 줄 적은 다음, 마지막 줄에 몇 글자를 더했다.

 

 

 

회룡당(回龍堂) 추천(推薦)!

 

 

 

그리고 북궁천을 보낸 후 이정한에게 물었다.

 

“이름.”

 

“이정한.”

 

“나이는?”

 

“스물일곱.”

 

“사문……은?”

 

“태극문.”

 

서기의 붓끝이 잘게 떨렸다.

 

‘이 자식들이! 오냐, 이놈들! 어디 쌍쌍이 가서 고생해 봐라!’

 

하지만 이정한의 뒤에는 아직도 동호량과 초강이 남아 있었다.

 

 

 

결국 서류 끝에 ‘회룡당 추천’이라는 글자가 더해진 네 사람은 몇 가지 자격시험을 통과한 후, 이십 대 초반의 청년 하나와 함께 회룡대에 배속되었다.

 

당연히 서기가 강력하게 추천한 덕분이었다.

 

 

 

* * *

 

 

 

백 년 전, 강호를 뒤흔들던 절대고수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었다.

 

등천검신(登天劍神) 구양명, 

 

부운비룡(浮雲飛龍) 천옥기, 

 

경천신도(驚天神刀) 선우결.

 

그들은 의형제를 맺은 후 신룡문이라는 문파를 건립했다.

 

그리고 타 문파들을 흡수합병하거나 형제의 예로 받아들여서 그 규모를 키우고, 문파 명을 삼성궁으로 바꾸었다.

 

검신가(劍神家), 

 

비룡가(飛龍家), 

 

신도가(神刀家).

 

삼성궁은 세 의형제의 별호를 딴 세 가문, 일명 삼주신가(三柱神家)가 떠받치고 있었다.

 

각 가문의 힘은 강호의 대문파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은 삼성궁 산하의 조직을 철저히 분배해서 한 가문에 힘이 집중되지 않도록 했다.

 

세상을 호령하는 위치에서 백 년의 세월이 지났거늘, 세 가문의 마음이 처음과 같다는 것을 누가 보장할 수 있단 말인가.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은 그들이라 해서 예외가 아닐 터, 한 가문에 힘이 집중되면 나머지 두 가문은 결국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룡당이 비룡가에 속해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분배로 인해 결정된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삼성궁의 많은 사람들이 꺼려하는 미친 호랑이 천광호가 새롭게 만들어진 회룡당을 맡은 이유도, 순전히 그가 비룡가 가주의 친동생이기 때문이었다.

 

 

 

“그럭저럭 뼈대는 튼튼하게 생겼군.”

 

천광호는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는, 삐딱하게 모로 비튼 머리를 왼손으로 받치고, 집무실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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