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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32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32화

 

32화

 

 

 

 

 

 

 

“이름은 헌원려려. 나이는 스물다섯. 약 일 년 육 개월 전 여주에서 노산 쪽으로 갔다고 하오. 그리고 육 개월 전에는 뛰어난 호위무사를 거느린 채 가마를 타고 남양을 지나가기도 했고.”

 

“그게 전부요?”

 

“아주 아름다운 여자요. 세상 그 어떤 여자보다도.”

 

왕두평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눈에 콩깍지가 끼면 어떤 여자든 다 그렇게 보이는 법이지.’

 

아마 수하였다면 대놓게 말하며 한 대 쥐어박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먹을 드는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찾아야 하는 거요?”

 

“최대한 빨리. 부하들이 제법 많고, 이런저런 소문에 밝을 것 같은데…….”

 

“그 여자를 찾아주는 대가는?”

 

“언제든, 당신을 한 번은 살려 주지.”

 

누가 들어도 어이없는 조건이었다. 광오하다 못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

 

오죽하면 황보청이 힐끔거리며 입맛을 다실까.

 

하지만 왕두평은 그 말을 비웃지 못했다.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않았지만.

 

“그보다 다른 일을 하나 처리해 주시오.”

 

“다른 일?”

 

“한 사람을 처리해 주시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동원해서, 최대한 빨리 공자의 말을 이행하겠소.”

 

“누군지 말해 보시오. 들어 보고 결정하겠소.”

 

악인이 아니라면 죽일 수 없으니까.

 

왕두평은 숨을 들이쉬고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혈귀수(血鬼手) 나홍백이오.”

 

북궁천은 황보청을 바라보았다.

 

“아우, 나홍백이란 자의 평은 어떤가?”

 

황보청이 조금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야 백번 죽어도 싼 작자죠. 너무 강해서 죽이기 힘들다는 게 문제지.”

 

“그래? 그럼 죽여도 상관없겠군. 그런데 그가 너무 멀리 있다면 부탁을 들어 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예? 대형, 정말 그를 상대하실 생각이십니까?”

 

황보청은 화들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홍백은 마도의 절정고수다. 단순한 절정고수가 아니라, 마도 서열 오십 위권에 들 정도의 초절정 경지의 고수.

 

말이 오십 위권이지, 그 정도면 정파의 대문파 장문인에 필적하는 고수다.

 

그도 북궁천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그를 죽이기는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북궁천이야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았지만.

 

‘죽어도 싸다는 말을 들을 정도면 얼마나 악독한 자인지 알만하군.’

 

그런 자는 대충 처리하는 것보다 죽이는 게 나았다.

 

대협이 되려면 그런 악독한 자들을 용서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한 사람을 죽여서 만인이 편해진다면 죽여야겠지. 그런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군.”

 

그때 왕두평이 북궁천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그자는 지금 이곳 남양에 있으니까.”

 

 

 

 

 

 

 

3장. 흔적. 그리고……

 

 

 

 

 

암평도국을 나선 북궁천은 황보청, 종리기진과 함께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혈귀수 나홍백은 남양성 북로의 환락가를 지배하고 있는 환락방에 기거하고 있다고 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 은밀히 누군가를 찾아가기에는 적당한 때였다.

 

‘그래도 흑도 무리 치곤 정이 있는 자군.’

 

왕두평에게는 나홍백을 죽일 만한 확실한 이유가 존재했다.

 

그는 십여 년 전부터 어둠의 거리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거두어 키운다고 했다.

 

그런데 사흘 전, 나홍백이 그의 아이들 중 어린 계집아이 둘을 간살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안 그는 나홍백을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가 지닌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북궁천은 그 말을 듣고 더욱 더 나홍백을 향한 살심이 솟구쳤다.

 

나홍백은 오십이 넘은 중늙은이였다. 그런 놈이 아홉 살 먹은 어린 여자아이를 간살하다니!

 

열두 토막 나서 죽어도 싼 놈이었다.

 

 

 

잠시 후.

 

북궁천은 길게 뻗은 담장을 마주했다.

 

“여긴가?”

 

황보청이 주위를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에 환락방의 주 사업장인 환희루가 붙어 있는 걸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서 놈을 찾아보겠습니다.”

 

종리기진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고 담장을 향해 접근했다.

 

북궁천이 손을 저었다.

 

“아아, 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이 그냥 들어가세.”

 

그러고는 훌쩍 몸을 날려서 삼 장이나 떨어져 있는 담장을 날아 넘었다.

 

황보청과 종리기진도 다급히 그의 뒤를 따라서 담장을 넘어 갔다.

 

 

 

북궁천은 마치 자신의 집에 들어온 것처럼 뒷짐을 지고 마당을 가로질렀다.

 

뒤따라가는 황보청과 종리기진은 그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간이 큰 건지, 아니면 그 정도 자신이 있다는 건지.

 

환락방이 비록 흑도 문파이긴 하나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더구나 나홍백이 있다면 또 다른 마도의 고수가 있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북궁천은 한술 더 떠서 장원을 오가는 자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봐. 나홍백이 어디에 머물고 있지?”

 

상대는 별 미친놈 다 봤다는 듯 북궁천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혈귀수 나홍백은 방주조차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하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방주가 그에게 매달 황금 스무 냥을 용돈으로 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파랗게 젊은 놈이 그런 나홍백을 옆집 친구 찾듯 부르다니.

 

하지만 그는 너무나 태연한 북궁천의 질문에 막상 욕을 퍼붓지 못했다.

 

욕을 퍼붓기는커녕, 바라보는 눈빛에서 자신 같은 사람은 흉내도 낼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오자 오히려 말을 조심하며 물었다.

 

“뉘신데 그분을 찾는 거요?”

 

“그거야 알 것 없고. 어디 있냐니까?”

 

“저쪽 백낙원(伯樂園)에 계시긴 한데…… 어디 계신 분이오?”

 

“곧 알게 될 거야.”

 

북궁천은 담담히 말하고 몸을 돌려서 그자가 말한 곳으로 향했다.

 

황보청과 종리기진은 그저 뒤만 따라갔다.

 

“누구지?”

 

뒤에서 들리는 의아해하는 목소리에 목이 근질거렸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어둠이 깔릴 때가 흑도의 무리들에게는 가장 바쁜 시간. 환락가는 더욱 더 그러했다.

 

그로 인해서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그나마 두 사람에게는 다행이었다.

 

 

 

북궁천이 첫 번째 제지를 당한 곳은 백낙원이라는 별원의 입구에서였다.

 

그가 월동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장한 하나가 거들먹거리며 차갑게 물었다.

 

“당신은 누군데 백낙원에 들어가려고 하는 거요?”

 

고개를 돌린 북궁천은 그를 바라보며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나? 나홍백의 목을 따러 온 사람.”

 

“뭐, 뭐라고?”

 

다가오던 자가 눈을 크게 뜨며 말을 더듬었다.

 

“자네들이 처리해.”

 

북궁천은 그를 황보청과 종리기진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장한은 눈을 부라렸다.

 

“뭐 이런 새끼들이 다 있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순간, 종리기진의 등에서 한 줄기 검광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장한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보청은 스르르 무너지는 장한을 재빨리 잡아서 담장에 기대어 앉혀놓았다.

 

고개를 쳐든 그의 이마에는 두 치 길이의 혈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너는 여기서 별이나 세고 있어.”

 

황보청은 초점이 사라진 장한의 뺨을 톡톡 때려 주고 급히 북궁천을 따라갔다.

 

 

 

백낙원으로 들어가 별원의 중심에 다다를 즈음, 경비무사로 보이는 장한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밖에서 들린 소리를 들었는지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넌 뭐야?”

 

“이곳에 나홍백이라는 자가 있다던데, 맞는지 모르겠군.”

 

너무나 담담한 말투에 장한들이 멈칫거렸다. 그들이라 해서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에 계시긴 한데…… 뉘슈?”

 

북궁천은 나홍백이 있다는 말에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찾아왔군.”

 

“누구냐고 묻잖소?”

 

장한들 중 하나가 고개를 모로 꼬며 다시 물었다.

 

그때 황보청과 종리기진이 바짝 다가왔다.

 

“우리 대형.”

 

황보청은 짧게 대답해 주고 성큼, 좌측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동시에 종리기진도 우측을 향해 죽 나아갔다.

 

이판사판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어? 이 새끼들이……!”

 

퍼벅! 쉬이익!

 

찰나간에 코앞까지 다가간 황보청과 종리기진은 망설이지 않고 손을 썼다.

 

하나는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저녁 식사를 모조리 자신의 사타구니에 쏟아냈고, 하나는 일 장을 날아가서 재수 없게 머리로 정원석을 들이받았다.

 

그리고 종리기진의 검과 마주한 자들은 유성을 본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칼을 반쯤 뽑은 채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북궁천은 그 사이를 지나서 전각으로 다가갔다.

 

덜컹!

 

전각의 문이 부서질 듯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웬 놈들이 소란을 피우는 거냐?”

 

뾰족한 목소리와 함께 앞가슴을 다 드러낸 자가 밖으로 나왔다.

 

위로 치켜 올라간 눈꼬리, 얇은 입술, 몇 가닥인지 셀 수 있을 것 같은 염소수염. 나이는 오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중늙은이였다.

 

왕두평에게 들었던 인상착의와 똑같은 자.

 

‘이자가 나홍백인가 보군.’

 

그의 뒤쪽으로 보이는 방 안의 광경은 가관이었다.

 

침상에 걸터앉아 있는 여인은 주요 부분만 겨우 가린 정도였고, 한 여인은 거의 벌거벗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무슨 짓을 했는지 두 여인 모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북궁천은 나홍백을 무심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당신이 나홍백인가?”

 

“죽일 놈이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는 거냐!”

 

나홍백은 노성을 내지르며 훌쩍 몸을 날려서 북궁천을 덮쳤다.

 

동시에 갈고리처럼 구부린 손가락에서 사악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북궁천은 마주 걸음을 내딛으며 두 주먹을 교대로 내뻗었다.

 

후우웅!

 

권풍이 허공을 일그러뜨리며 나홍백의 사악한 기운을 향해 정면으로 부딪쳐갔다.

 

쿠구궁!

 

둔중한 소리와 함께 나홍백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땅에 내려선 그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눈을 역팔자로 치켜떴다.

 

“오냐, 이놈! 내 네놈의 간을 빼서 씹어 먹고야 말겠다!”

 

“확실히 죽어도 될 만한 늙은이군. 부담 없이 죽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담담한 북궁천의 말에 나홍백은 노화가 솟구쳤다.

 

“이노오오옴!”

 

노성이 환락방을 뒤흔들고, 그의 주위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콰아아아아!

 

사위로 퍼져 나가는 음습한 기운.

 

등골이 오싹해진 황보청과 종리기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들도 마도에서 오십 위 안에 드는 고수의 무공을 대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그 위세가 훨씬 더 강력했다.

 

자신들이 직접 상대한다면 저자를 이길 수 있을까?

 

황보청은 이를 악다물었다.

 

‘둘이 합공하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긴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죽이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고.

 

“조심하십시오, 대형!”

 

황보청이 북궁천을 향해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

 

나홍백이 갈고리처럼 손가락을 구부린 두 손을 앞으로 세우고 북궁천을 덮쳤다.

 

차갑고도 음습한 먹빛 기운이 손가락 끝에서 뭉게구름처럼 피어났다.

 

“크하하하! 죽어라!”

 

북궁천은 날아드는 나홍백을 향해 한 발을 내딛으며 두 주먹을 교차시켰다.

 

찰나였다. 머리통보다 훨씬 큰 거대한 주먹그림자가 폭사하듯 뻗어 나갔다.

 

나홍백의 사악한 기운이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콰아앙!

 

귀청을 먹먹케 하는 굉음이 어둠을 뒤흔들었다.

 

나홍백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가 전각의 벽에 처박혔다.

 

반면 북궁천은 그 자리에서 발목까지 땅에 박혔는데, 천천히 발을 뺀 그는 뻣뻣이 선 채로 나홍백을 향해 미끄러지듯이 죽 나아갔다.

 

“어린아이들을 처참하게 죽였다고 들었다. 나홍백, 너는 그 애들보다 더 처참하게 죽어야 돼.”

 

나직이 울리는 무심한 목소리.

 

벽을 잡고 겨우 몸을 일으킨 나홍백은 혼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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