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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28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28화

 

28화

 

 

 

 

 

 

 

옆에 있던 네 사람은 벌어지는 상황을 짐작하고 호기심이 동했다.

 

이정한 등은 황보청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궁금했고, 종리기진은 단화린이란 자가 새삼스럽게 보였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자가 제법이군.’

 

하지만 황보청은 종리기진의 마음과 달리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무려 칠성의 공력을 끌어 올렸는데도 술병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 답답한 것은 상대의 표정이 처음이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한술 더 떠 북궁천이 그의 기를 완전히 꺾어 버렸다.

 

“나는 당분간 술을 마시지 않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소. 스스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 어찌 남자라 할 수 있겠소? 그러니 이번은 황보 형이 양보해 주시오.”

 

맙소사! 내공 대결을 벌이는 와중에 태연히 말을 하다니!

 

자신은 입도 뻥긋 할 수 없거늘.

 

질린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는 황보청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젠장! 잘못 걸렸군.’

 

그때 북궁천이 술병에서 조금씩 내력을 거두었다.

 

황보청은 벌게진 얼굴로 그에 맞춰 공력을 회수했다. 그리고 공력이 거의 다 회수된 순간 술병을 놓고 술잔을 들었다.

 

“좋소, 좋아. 그럼 따라 보쇼! 벌주로 석 잔을 마시겠소!”

 

그는 북궁천이 따른 술을 굴뚝처럼 뻥 뚫린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다.

 

석 잔을 연거푸 마신 그는 북궁천을 빤히 바라보더니,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서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반쯤 숙였다.

 

“이 황보청이 우둔해서 단 형께 실례를 범했소이다! 용서해 주시오!”

 

종리기진이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형님?”

 

“아우, 우형은 오늘에서야 우형에게 부족한 것이 뭔지 확실히 깨달았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었던 거야. 태산을 앞에 두고도 몰라보는 멍청이였어.”

 

“대체 무슨 말씀을……?”

 

“남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나 자신이 대단한 줄 알았다네. 세상 보는 눈이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하하하, 정말 웃기는 일 아닌가?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놈이 세상을 다 아는 척하다니.”

 

“형님은 자신해도 될 만큼 뛰어나십니다.”

 

“아니, 아냐. 나는 그냥 남보다 주변 여건이 좋은 덕분에 그만큼 덕을 봐서 뛰어나게 보였던 것뿐이야. 아마 나에게 세가의 후광이 없었다면 아우의 반도 못 따라갔을 걸?”

 

“그건 억지십니다.”

 

“좌우간 나는 나에게 깨우침을 준 단 형을 형으로 모실까 하네.”

 

“예?”

 

종리기진은 어이가 없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본래 엉뚱한 면이 있는 황보청이었다. 가끔 제멋대로 일을 벌여 뒷수습을 하느라 진땀 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죽 말썽을 일으키면 도란공자(搗亂公子)라고 부르겠는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처음 만난 사람을 형으로 모시겠다는 말은 문제가 있었다.

 

그럼 자신도 형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 아닌가?

 

그로선 어떻게 해서라도 말려야 했다.

 

“형님, 술이 너무 과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을 형으로 모시겠다니요? 대체 뭘 보고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나 같은 사람 둘, 셋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는 분이네. 더구나 술꾼이 이처럼 좋은 술을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마다하는 것은 보통 결심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황보청은 황보세가의 셋째 공자라는 것을 떠나서 대단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사람들이 아직 진면목을 몰라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자신이 황보청을 형으로 모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단화린이란 자가 그런 황보청보다 몇 배나 뛰어나다니.

 

거기다 술꾼이 술을 마다한 게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 정도로는 이유가 빈약합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황보청은 결심을 꺾지 않았다.

 

“아우, 사람을 사귈 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네. 열 번, 백 번 만나도 사람 속이란 다 알 수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말이야, 때로는 눈빛 한 번, 말 한 마디면 족할 때가 있지. 지금 이때를 놓치면 나는 단형과 헤어진 순간부터 후회할지 모르네.”

 

“아무리 그래도 저는 형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가끔 말썽을 피우긴 해도 허언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우가 잘 알잖은가?”

 

사실이 그렇다.

 

그래도 종리기진은 황보청의 결정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습니다. 어디 진짜 그렇게 대단한 분인지, 제가 직접 시험해 보지요.”

 

낮은 목소리로 냉랭히 말한 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북궁천을 직시한 채 말했다.

 

“자신이 있다면 나와 한번 붙어 봅시다.”

 

갑자기 분위기가 냉각되며 찬바람이 불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

 

이정한과 동호량과 초강은 얼굴이 굳어지긴 했지만 그리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당사자인 북궁천도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일인 양 엽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에 기분이 상한 종리기진이 눈을 치켜뜨고 검을 불끈 움켜쥐었다.

 

“지금 나를 무시하겠다는 거요?”

 

그제야 북궁천의 눈이 그를 향했다.

 

“정주 사람들은 성격도 이상하군.”

 

“뭐요?”

 

“내가 당신 기분을 상하게 했소?”

 

아니다. 짜증나게 한 사람은 그가 아니라 황보청이다.

 

하지만 종리기진은 이대로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칼을 뺐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좋소. 그럼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서 한번 겨뤄봅시다. 설마 비무 신청을 거절하지는 않겠지요?”

 

북궁천은 종리기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눈빛이 차갑게 느껴지긴 하나 악의적인 마음은 엿보이지 않았다.

 

‘황보청은 꼭 장추람을 보는 것 같고, 이 친구는 냉호를 닮았군.’

 

마제의 양팔, 장추람과 냉호는 성격이 극과 극을 달린다. 겉모습과 말투로 봐서는 영락없었다.

 

지금쯤 두 사람은 북천궁을 뛰쳐나와 자신을 찾고 있던가, 아니면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북천궁의 동요를 막으며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주군이 자신들을 떼어 놓고 도망갔다면서.

 

‘나중에 그들을 달래려면 애 좀 먹겠군.’

 

북궁천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면서 냉호를 닮은 종리기진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북천에서 비무 신청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대를 모욕하는 일이다. 이곳이라 해서 다를 바 없을 듯했다.

 

“비무를 원한다면 받아 주겠소.”

 

그런데 황보청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직접 겨루는 것보다 자신의 재주를 펼쳐 보이는 것은 어떻겠소?”

 

소란을 피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북궁천은 황보청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종리기진을 바라보았다.

 

종리기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가끔 황보청과 함께 이런저런 재주를 펼쳐 보곤 했다.

 

재미로 하는 놀이이긴 했지만, 그로 인해서 초식의 새로운 변화를 깨달은 적도 있으니 마냥 놀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내가 먼저 해 보겠소.”

 

시원스럽게 대답한 종리기진은 그와 황보청이 앉아 있던 탁자 쪽으로 갔다.

 

그는 탁자 위에 있는 빈 술병 하나를 잡아서 허공으로 던졌다.

 

술병이 떨어지는 순간!

 

섬광이 허공을 열십자로 갈랐다.

 

태극문 제자들은 모두 종리기진을 응시하며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허공에 던져졌던 술병은 그가 가슴 높이로 뻗은 검 위에 얹어져 있었다.

 

겉모습은 종전과 다르지 않았다.

 

종리기진은 별일 없었다는 듯 술병이 얹어진 검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 검만 옆으로 빼냈다.

 

“이제 당신 차례요.”

 

돌아선 종리기진이 북궁천을 보며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 탁자 위에 있던 술병이 스르르 무너지며 여덟 조각으로 갈라졌다.

 

단지 열십자로 번뜩이는 섬광만 보였는데, 언제 여덟 조각으로 갈라졌단 말인가.

 

더구나 탁자에 내려놓을 때까지 일절 미동도 없었으니 공력의 섬세한 조절은 누구라도 감탄할 만했다.

 

“아우의 검은 전보다 더 빨라졌군.”

 

황보청도 감탄한 표정으로 칭찬을 늘어놓았다.

 

북궁천 역시 종리기진의 쾌검과 섬세한 공력 조절을 보고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이제 자신의 차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리기진이 서 있던 곳으로 갔다.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그가 검을 빼서 천천히 일자로 그었다.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허공을 그은 그가 검을 집어넣고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아닌가.

 

대결을 포기한 걸까?

 

그런데 그때, 황보청이 북궁천이 서 있던 곳에서 이 장가량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그가 바닥을 바라보더니 종리기진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우가 진 것 같군.”

 

종리기진은 훌쩍 몸을 날려서 황보청의 옆에 내려섰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살아서 여기까지 날아온 것 같네.”

 

황보청이 그에게 말했다.

 

바닥에는 작은 파리 한 마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몸뚱이가 가로로 갈라져 있었다.

 

파리는 자신의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날갯짓을 하며 그곳까지 날아온 듯했다.

 

분명 천천히 그었는데 어떻게 날아가는 파리를 정확하게 잘라낼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날개는 아무 이상이 없고, 몸이 두 쪽 난 파리가 살아서 이 장이나 날아가다니!

 

말로만 들었던 활검(活劍)의 경지란 말인가?

 

“형님 말씀대로…… 제가 졌습니다.”

 

종리기진은 순순히 패배를 시인했다.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파리를 저런 식으로 벨 수 없었다.

 

황보청이 종리기진의 어깨를 툭 치고는 몸을 돌렸다.

 

 

 

“정말 내 아우가 되고 싶소?”

 

“그렇습니다.”

 

북궁천은 황보청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는 성격이다. 중원에서 유명한 세가의 아들이라면 목에 힘을 줄 법도 한데 전혀 그런 표를 내지 않는다.

 

‘중원 중심에 동생 하나쯤 두는 것도 괜찮겠지.’

 

북궁천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황보청의 청을 받아들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세.”

 

황보청이 활짝 웃으며 공수의 예를 취했다.

 

“감사합니다, 대형!”

 

“이제 그쯤하고 않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하대. 그럼에도 누구 하나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천성이 대형 체질인가?

 

이정한 등은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황보청이 종리기진에게 말했다.

 

“뭐 해? 대형께 정식으로 인사드리지 않고.”

 

종리기진도 두 손을 맞잡았다.

 

아직 못마땅한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의형으로 모시고 있는 황보청이 대형으로 모신 이상 그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기까지 졌고.

 

“종리기진이 대형께 인사드립니다.”

 

파리 한 마리 잡아서 동생을 둘이나 둔 북궁천은 다시 술병을 잡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동생이 둘이나 생겼군. 하나만 말하지. 호형호제는 자네들과 나 사이의 일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게.”

 

가문과 세력, 주위 다른 사람들과는 연관 짓지 말라는 말.

 

황보청으로서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정한도 차라리 그게 편했다. 그는 황보청의 형 노릇할 자신이 없었다.

 

‘근데 대형은 수련할 때 파리를 잡으면서 했나? 초강에게 한 수 보여 줄 때도 파리를 잡더니…….’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사이 객잔의 난장판이 다 정리되었다.

 

쓰러져 있던 자들은 뒷마당에 대충 끌어다 놓았고, 부서진 탁자도 모두 치워졌다.

 

곧 점소이가 요리를 들고 왔다.

 

북궁천이 이정한에게 거취 문제를 꺼낸 것은 식사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나는 남양으로 갈 생각이네. 자네들은 어떻게 할 건가?”

 

문제는 남양이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정한도 그걸 알기에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선택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돌아가기에는 아직 시간도 여유가 있었고, 더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대형을 따라가겠습니다.”

 

“힘든 길이 될지도 모르네.”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보청이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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