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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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6화
26화
1장. 사람을 잘못 보면 인생 종치는 수가 있다
이정한은 동호량과 초강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들이 뒷걸음질 치며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동안 북궁천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모두 아홉. 그들에게서 기괴한 기운이 느껴졌다.
탁하면서도 끈적거리는 기운, 정상적인 무공을 익힌 자라면 결코 지닐 수 없는 기운이.
북궁천은 그 기운의 정체를 알기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지독한 마기군.’
공손설을 공격했던 자들과 비슷한 마기다.
그렇다면 공손설을 공격한 자들도 천사교의 무리란 말인가?
‘그런데 어떤 마공을 익혀서 저렇게 지독한 마기가 흐르는 거지?’
어쨌든 마기를 지닌 자들이라면 부담 될 것이 없다.
마공을 익히면 속성으로 강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마기를 지닌 마인이 되어서 일반 사람과는 다른 극악한 심성이 만들어진다.
극악한 짓을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때로는 그러한 짓을 즐긴다.
세상에 존재해 봐야 해악만 끼치는 자들.
죽어도 싼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단호하게 손을 써도 려려가 뭐라고 안 할 거야.’
뭐라고 하기는커녕 의협을 행했다며 칭찬할지도 모른다.
상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마인들 아닌가 말이다.
북궁천은 적을 맞이하면서 오랜만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우리에게 볼 일이라도 있나?”
그가 혼자 나서자, 중년인은 가소롭기만 했다.
“애송이, 살고 싶으면 조관수를 내놓아라.”
“싫은데?”
“거부하면 그 동굴이 네놈의 무덤이 될 거다.”
“누구의 무덤이 될지, 두고 보면 알겠지.”
북궁천은 턱을 쳐들고 엄지손가락으로 검을 밀어 올렸다. 마음이 가벼우니 말도 가볍게 나왔다.
“천사교 사람들인가?”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중년인의 붉은 눈빛이 파문을 일으켰다.
“흐흐흐, 곧 죽을 놈이 별걸 다 궁금해하는군. 정 알고 싶으면 지옥에 가서 물어봐라.”
눈빛의 변화만으로도 이미 답은 나왔다.
북궁천은 씩 웃으며 중년인을 자극했다.
“말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갈 길 바쁘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덤벼 봐라.”
조롱보다 더 기분 나쁜 완벽한 무시.
중년인의 가느다란 눈썹이 실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렇게 빨리 죽고 싶다면 소원을 들어주지. 놈의 목을 쳐라!”
명령이 떨어진 순간, 중년인의 좌우에 있던 자들이 땅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북궁천은 그들의 공세가 코앞까지 닥친 후에야 검을 뺐다.
찰나, 좌우를 향해 빗살처럼 뻗어 나가는 묵빛 번개!
“크억!”
“헉!”
시커먼 섬전이 그늘진 숲 속을 가를 때마다 억눌린 신음이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막을 새도 없고, 피할 새도 없었다.
마제의 성명절기 중 하나, 북성팔검(北星八劍)의 뇌전 수십 줄기가 일순간에 네 명을 고혼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대경해서 물러서려는 자들마저 뒤덮었다.
서걱! 쉬이익! 쩌적!
허공이 찢겨지고, 골육이 갈라지고, 마지막은 폭음이 장식했다.
쾅!
북궁천은 훌훌 날아가는 자를 따라 몸을 날리며 중년인을 공격했다.
면산에서 만났던 자들보다 약했다. 눈앞의 중년인도 곽전유만 못해 보였다.
자비가 없는 그의 검은 관외의 고수들도 치를 떠는 패도지검.
굳이 북천의 절대검공인 삼대패천검공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중년인은 한순간에 수하들이 모조리 죽자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서 검을 뽑아 들었다.
“이놈!”
악을 쓰며 달려든 그는 북궁천의 검세를 향해 정면으로 검을 뻗었다.
북궁천은 북성팔검 중 북성일기세(北星一氣勢)로 중년인의 공세를 차단하고, 파혼성광(破魂星光)으로 검을 날려 버렸다.
쩡!
귀청을 먹먹케 하는 날카로운 소리!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검날이 빙글빙글 돌며 하늘로 솟구쳤다.
동시에 북두패왕권이 중년인의 가슴에 틀어 박혔다.
쾅!
“크억!”
뒤로 날아간 중년인의 몸뚱이가 아름드리 고목에 처박혔다.
북궁천은 검을 거두고, 아름드리 고목 아래 널브러져서 피를 쏟아내고 있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죽어서 나무의 거름이 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야. 그 정도면 마인치고 괜찮은 죽음이군.”
무심한 어조로 조금 전 중년인이 한 말을 되받아친 그는 몸을 돌렸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정한 등도 놀라긴 했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담담했다.
어디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반면, 등에 업힌 조관수와 포양은 반쯤 넋이 빠진 표정이었다.
자신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자들이 몇 수 버텨 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그것도 단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드러냈나?’
조관수는 강호 경험이 많은 자여서 자칫하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거늘.
하지만 지옥으로 달려가는 자들을 붙잡고 다시 싸울 수는 없는 일.
“여기까지 추적해 오느라 지쳤는지 힘을 쓰지 못하는군요. 이제 그만 가지요.”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한 그는 조관수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보고 몸을 돌렸다.
* * *
정주에 도착한 북궁천 일행은 동호량의 등에 업힌 조관수의 설명을 들으며 대로를 따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은가장(銀家莊)이라는 현판이 내걸린 커다란 장원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들이 정문에서 삼 장 떨어진 곳에 도착하자 조관수가 말했다.
“나를 내려 주게.”
동호량은 그를 조심스럽게 내려 줬다.
정문 앞에 서 있던 위사 둘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본 장에 볼일이 있어서 온 거요?”
동호량의 등에서 내린 조관수가 허리를 펴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장주에게 백검맹의 조관수라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전해 주게나.”
조관수의 이름을 아는지 정문 위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쑥덕이더니, 둘 중 하나는 급히 장원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하나는 조관수를 향해 공손히 말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조 대협.”
조관수가 북궁천 일행을 돌아다보았다.
“들어가세.”
북궁천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바쁜 일이 있어서 그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그냥 보낸단 말인가?”
“마음만으로도 됐습니다. 그럼 이만.”
북궁천은 말이 길어지기 전에 포권을 취했다.
조관수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마주 포권을 취했다.
“허어, 바쁘시다니 어쩔 수 없군. 나중에 백검맹에 올 일이 있거든 꼭 찾아오시게나. 오랜만에 진정한 협사를 만나서 정말 반가웠네.”
“하, 하. 별말씀을.”
북궁천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럴 때 려려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아?
조관수와 헤어진 북궁천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화루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대화루는 정주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주루여서 아는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정작 찾아가려는 곳은 대화루가 아닌, 대화루 옆 골목에 있는 작은 주루였다. 대화루는 단지 찾기가 쉬워서 지표로 삼은 곳일 뿐.
북궁천은 일행과 함께 대화루 옆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저만치 골목 안쪽에 무환루라고 쓰인 허름한 깃발이 보였다.
그곳이 바로 장 의원이 말해 준 연락처였는데, 그곳의 주인도 장 의원처럼 정보를 사고파는 사람이라 했다.
이정한 등과 함께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간 북궁천은 일단 탁자를 하나 차지하고 자리에 앉았다.
게으름이 온몸에 덕지덕지 묻은 점소이가 귀찮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다가왔다.
“뭘 드시겠습니까요?”
“주인장 좀 만났으면 싶은데.”
“주인아저씨는 무슨 일로……?”
“태원의 장 의원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면 알 거야.”
점소이는 북궁천의 말을 듣고 주방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잠깐만 기다려 보십쇼.”
주방에서 나온 자는 점소이보다 배는 더 게으를 것 같았다. 옷도 더 지저분하고.
그런 자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든다 생각하니 이곳에서 식사하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장 의원이 보내서 오셨다고 했수?”
게다가 목소리도 성질 급한 사람은 짜증이 날 정도로 느렸다.
“그렇소. 장 의원이 부탁한 것이 있을 텐데,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고 왔소.”
주인은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주위를 살펴보더니 슬쩍 고갯짓을 했다.
“용건 있는 분만 따라 오쇼.”
북궁천은 이정한 등에게 술이나 한잔하며 기다리라 하고 주루 주인을 따라갔다.
주루 주인은 주루 뒤쪽에 있는 방으로 북궁천을 데려갔다.
“그리 앉으쇼.”
북궁천이 의자에 앉자, 차 한 잔을 따라 준 그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북궁천의 기색을 슬쩍 살펴본 후 입을 열었다.
“사흘 전에 연락을 받고 그동안 수집한 모든 정보들을 뒤져 보았소. 당신은 잘 모를 거요. 그 많은 정보를 뒤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래서, 찾았소?”
“수레로 하나 가득한 문서를 모조리 뒤져 보기 위해서 세 사람이 사흘 동안 달라붙었소.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말이오.”
주루 주인은 계속 엉뚱한 소리만 했다.
북궁천은 주인의 뜻을 짐작하면서도 모른 척했다.
“쉬운 일이면 내가 왜 돈을 주면서 부탁했겠소?”
그러자 주루 주인이 더 참지 못하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래도 솔직히 말해서, 이십 냥은 너무 적소.”
장의원이 이십 냥을 먹고, 이 자에게 이십 냥을 주었나 보다.
하긴 그 정도 이익은 봐야 장사를 할 수 있겠지.
북궁천도 그 정도는 이해했다.
문제는 주루 주인이었다. 그가 주루 주인의 살로 뒤덮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 세 사람에게 이십 냥을 전부 줬소?”
“에, 그건 아니지만…….”
“많이 주었다 해도 열 냥을 줬겠지. 그리고 당신이 열 냥을 먹었을 거고.”
정곡이 찔린 주루 주인은 우물쭈물하며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그건 그런데…… 좌우간 우리가 고생한 걸로 따지면 은자 삼십 냥은 더 받아야 하오. 그렇다고 삼십 냥을 다 받을 순 없고, 정 그녀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십 냥을 더 내쇼.”
“줄 수 없다면?”
“우리도 정보를 내줄 수 없소.”
“그래도 내가 끝까지 알아내겠다고 한다면?”
주루 주인은 굵고 짧은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럼 안 좋은 꼴을 당할 거요.”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뒷문이 덜컥 열리고, 덩치 큰 장한 셋이 들어왔다.
커다란 칼과 낫을 들고서.
소매를 걷어 올린 그들의 팔에는 지렁이 기어간 자국이 세기 힘들 정도로 얽혀 있었다.
게다가 쭉 찢어진 눈과 두어 개씩 빠진 누런 이, 얼굴을 가로지른 굵직한 흉터 등은 보는 이를 주눅 들게 하고도 남았다.
흑도 건달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 자들.
주루 주인은 그들이 뒤에 늘어서자, 턱을 치켜들고 거만하게 말했다.
“힘없으면 이 장사도 할 수가 없지. 잘못하면 몇 푼 벌려다가 인생 종치는 수가 있거든.”
북궁천은 태연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담담히 말했다.
“사람을 잘못 봐도 인생 종치는 수가 있지.”
“맞아, 맞아. 그래서 우리도 거래를 하기 전에 상대를 자세히 알아보지.”
“장 의원이 우리에 대해서 말해 줬나 보군. 뭐라고 했지?”
“태극문의 제자들이라고 하더군. 친구의 제자들이니까 너무 심하게는 하지 말라고.”
‘그래도 양심은 있군.’
“본래는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이번 일은 이십 냥만 받고 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사실 백 냥은 받아야 하는데, 그래도 장 의원의 친구 제자들이라니까 이십 냥만 더 받으려고 하는 거야.”
주루 주인은 자신이 큰 인심을 쓰고 있다는 투로 말하고는 북궁천을 압박했다.
“지금 결정해. 이십 냥을 더 주고 일을 맡기든지, 아니면 그냥 손 털고 가든지. 나중에 다시 맡기려면 그때는 백 냥을 다 줘야 할 거야.”
북궁천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빙그레 웃었다.
“좋아, 반드시 이십 냥을 더 받아야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주루 주인도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잘 생각…….”
그 순간, 북궁천이 우수를 쑥 내미는가 싶더니, 호방도의 돼지처럼 두툼한 목을 쇠갈고리 같은 손가락으로 움켜쥐었다.
어찌나 빠른지 호방도가 스스로 목을 들이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켁!”
호방도의 목에 손가락 두 마디를 깊게 박은 북궁천이 고저 없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결정해. 목뼈가 부러져서 죽을 건지, 아니면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털어놓을 것인지. 나중에는 말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을 거야.”
그때였다. 낫을 들고 있던 자가 앞으로 달려들며 북궁천의 팔을 내리쳤다.
“손을 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