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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24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7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24화

 

24화

 

 

 

 

 

 

 

“그래.”

 

북궁천은 더 물을 것 없다는 투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웅조와 옥검문 간부들이 개구리처럼 눈을 크게 뜨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기회만 생기면 끼어들어서 귀찮게 할 것 같았다. 그전에 떠나는 게 상책이었다.

 

공손설은 북궁천의 눈을 보고는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향을 바꿨다.

 

“그럼 일 마치고 나서 꼭 본성으로 찾아오셔야 되요?”

 

“알았다.”

 

“진정한 대협이 되려면 신의를 지키는 게 첫째라는 것, 알죠?”

 

여우 같은 꼬마!

 

“알았다니까! 그럼 우린 간다.”

 

북궁천은 다른 사람이 말을 붙이기 전에 재빨리 돌아섰다.

 

등경이라도 만나게 되면 귀찮은 일만 생길 터. 빨리 떠나는 게 상책이었다.

 

한편, 이웅조는 곤혹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단순한 호위인 줄 알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공손설이 오빠라고 부른다. 상대는 진짜 오빠라도 되는 것처럼 대하고.

 

그는 일단 공손설에게 물어보았다.

 

“설아야, 저 공자가 누군데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냐?”

 

“면산에서 저희를 구해 주신 분이에요.”

 

“그래? 그럼 이렇게 보낼 수 없지. 이보게.”

 

이웅조가 돌아선 북궁천을 불렀다.

 

북궁천은 못 들은 척 동호량과 초강을 바라보았다.

 

“그만 가세.”

 

“아니, 저 사람이?”

 

이웅조가 눈살을 찌푸리며 북궁천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공손설이 급히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놔두세요, 숙부.”

 

“그래도 어찌 조카의 은인을…….”

 

공손설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집이 꺾일 분이면 제가 벌써 붙잡았죠. 보내 드리세요, 숙부.”

 

이웅조는 눈을 깜박이며 북궁천과 공손설을 번갈아 보았다.

 

공손설은 단순히 막내딸이어서 공손무극의 사랑을 받는 게 아니다. 그 총명함과 뛰어난 판단력은 철군성의 군사인 소리음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녀가 그리 판단했다면 자신이 나선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

 

그런데 아쉬움이 고여 촉촉한 저 눈빛은 또 뭐란 말인가?

 

‘허어, 우리 조카님께서 혹시 저 청년을?’

 

이웅조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동호량은 행여나 또 무슨 사단이 벌어질까 봐 이정한을 재촉했다.

 

“사형, 그만 가죠.”

 

“응? 어, 가야지.”

 

이정한은 능소소를 바라보며 마지못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부디 빨리 쾌차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이 공자.”

 

천하의 백화선자가 이름도 없는 삼류 문파의 제자인 자신에게 ‘공자’라 칭한다.

 

“별말씀을…….”

 

얼굴이 벌게진 이정한은 능소소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그때 능소소가 이정한의 등에 대고 말했다.

 

“언제 철군성을 지나는 길이 있으면 들르세요. 그때 이번에 신세진 걸 갚을게요.”

 

이정한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뻥 폭발하는 줄 알았다.

 

환호가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은 그는 돌아서서 힘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능 소저!”

 

그 모습을 보고 북궁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정한이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지?”

 

그 이유를 정말 모른단 말인가?

 

동호량과 초강의 표정이 묘하게 비틀렸다.

 

‘어쩐지 공손 소저를 그렇게 대한다 했더니…….’

 

세상에서 불가능할 것이 없는 것 같은 대형도 남녀 간의 일은 삼류무사만 못한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 북궁천이 가깝게 느껴졌다.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손설은 북궁천이 멀어지는 걸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하루 머물고 가지. 쳇, 안 오기만 해 봐. 그럼 내가 찾아갈 테니까.’

 

 

 

* * *

 

 

 

가을이 깊은 날의 하늘은 청명하다 못해 차갑게 보일 정도였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바람도 제법 싸늘했다.

 

그래도 단풍으로 물든 산과 파란 하늘이 조화를 이루어서 여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곡옥(曲沃)까지 마차를 타고 간 북궁천 일행은 다음 날 그곳에서 마차를 팔고, 왕옥산 자락을 휘돌아 황하로 내려갔다.

 

 

 

하루를 꼬박 이동해서 황하 가의 북수진(北水鎭)에 도착한 북궁천은 도도히 흐르는 황하를 보며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서쪽에서 비가 많이 왔는지 황하는 평소보다 더 넓고 혼탁했다.

 

‘려려, 이토록 넓은 강이 그동안 너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구나.’

 

끝도 없이 넓은 황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물결을 따라 출렁였다.

 

그녀의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이유가 모두 황하 때문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또한 그런 이유로 가슴이 부풀었다.

 

황하만 건너가면 당장 그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때 강가의 선창으로 배를 알아보러 갔던 동호량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대형, 반 시진 정도 지나면 아래쪽으로 가는 배가 온답니다!”

 

‘들었지? 조금만 기다려라, 려려. 이 북궁천이 황하를 건너간다.’

 

 

 

배는 예상했던 것보다 일각 정도 빨리 왔다. 아무래도 물이 불어나며 물살이 세져서 일찍 도착한 듯했다.

 

북수진은 산서와 하남을 잊는 주요 길목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배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리자 꿀을 본 벌 떼처럼 몰려갔다.

 

주루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북궁천 일행도 선창가로 나갔다.

 

선상에서 텁석부리 선원 하나가 두 손을 모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 배는 백진(白鎭)까지 가는 동안 서지 않으니 중간에 내릴 사람은 다른 배를 타쇼!”

 

백진은 낙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백 리 뱃길을 쉬지 않고 간다는 뜻.

 

배를 타려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투덜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남은 사람이 사오십 명은 되어 보였다.

 

“이각 뒤에 출발할 거요! 선비는 일인당 백진까지 열 푼, 정주까지 서른 푼, 개봉까지 마흔 푼이오. 미리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타면서 내쇼!”

 

선원은 미리 주의를 주고 선교를 선창에 걸쳤다. 그리고 다른 선원 몇과 함께 내리더니 주루로 갔다.

 

그 후 또 다른 선원이 배위에 나타났다. 좀 전의 텁석부리 장한보다 몇 배는 더 험상궂게 생긴 자였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새겨들으쇼! 첫째, 함부로 아무 곳에나 갈기지 말 것. 둘째, 큰 것 쌀 때는 엉덩이를 확실하게 배 밖으로 내놓고 쌀 것. 떨어질까 봐 겁나면 다른 사람보고 잡아 달라고 하쇼! 셋째, 돈 없으면 선교에 올라오지 말 것. 물건으로 대신할 사람은 나중에 타도록 하쇼! 알아들었으면 올라오쇼!”

 

 

 

배는 상선이었는데, 아래쪽에는 짐을 싣고 사람들은 위쪽에 태웠다.

 

선비(船費)를 받은 선원은 하선하는 곳에 따라서 각기 다른 색이 칠해진 나무패를 하나씩 줬는데, 잃어버리면 돈을 다시 내야 한다고 했다.

 

북궁천 일행은 느지막이 배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백진까지만 선비를 줬다.

 

목적지는 정주지만 사흘 동안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지루할 것 같았다.

 

배 위는 겉보기보다 넓어서 오십 명이 넘게 탔는데도 번잡하지 않았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찬 바람을 피해 선실로 들어가서 밖은 절반 정도가 빈 상태였다.

 

북궁천은 이정한 등과 함께 뱃전에 서서 황하를 구경했다.

 

선원들이 돌아온 것은 이각이 훌쩍 넘은 뒤였다. 일찍 도착한 만큼 여유를 부리는 듯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험상궂은 선원이 선교를 당겼다.

 

그때 죽립을 쓴 무사 넷이 배를 향해 달려오며 소리쳤다.

 

“어디까지 가는 배인가?”

 

선교를 반쯤 당긴 선원이 대답했다.

 

“백진, 정주를 거쳐서 개봉까지 가는 배요.”

 

“잘됐군.”

 

무사들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훌쩍 몸을 날리더니 단숨에 삼 장을 날아서 배 위로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선원의 험상궂던 얼굴이 순한 양처럼 변했다.

 

힘이 잔뜩 들어갔던 어깨와 가슴도 바람 빠진 돼지방광처럼 쪼그라들고, 목소리 역시 주루의 점소이만큼이나 상냥해졌다.

 

“무사님들은 어디까지 가실 생각이십니까요? 백진까지는 열 푼이고, 정주까진 서른 푼, 개봉까진 사십 푼입죠.”

 

“정주까지 간다.”

 

무사들 중 삼십 대 중반의 장한이 대답하고는 예리한 눈빛으로 선상을 둘러보았다.

 

그는 선수에 있는 북궁천 일행을 발견하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하지만 별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 * *

 

 

 

배에서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낭만적이지 못했다. 빠른 유속 때문에 유난히 배가 더 흔들려서 오시가 넘어가자 아침에 먹은 것을 다시 확인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때쯤에는 북궁천도 황하를 처음 봤을 때와 달리 표정이 차분해진 상태였다. 두어 시진 동안 누런 강물만 봤더니 격정이 많이 가라앉은 것이다.

 

‘백진에서 내리기로 하길 잘했군.’

 

그렇게 미시가 넘어갈 무렵, 갑자기 구름이 끼더니 신시가 되자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뱃머리 쪽에 있던 북궁천 일행은 차양이 쳐진 선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들이 다가가자 죽립인들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북궁천 일행은 죽립인들과 일 장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잘됐다는 듯 그들 중 쉰 살 전후로 보이는 중년인이 질문을 던졌다.

 

“자네들은 산서 사람인가?”

 

이정한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느 문파의 제자들인가?”

 

“태극문의 제자들입니다.”

 

“태극문? 처음 들어 보는 문파군.”

 

중년인은 이마를 좁히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삼십 대로 보이는 장한은 입술을 비틀며 노골적인 비웃음을 지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삼류 문파인 모양입니다.”

 

사실이 그랬다. 하지만 남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속이 부글거리고 입맛이 썼다.

 

이정한이 그를 노려보며 조금은 퉁명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는 분은 어느 문파에 계시는 분입니까?”

 

중년인은 장한을 책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는 이정한을 향해 말했다.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군. 말해 줄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 이해해 주게.”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북궁천이 이정한 등에게 말했다.

 

“속상해할 것 없네. 지금 삼류 문파라 해서 항상 삼류 문파여야만 하는 법은 없으니까.”

 

이정한과 동호량은 상기된 얼굴로 답했다.

 

“알겠습니다, 대형.”

 

“꼭 그렇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초강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숙였다.

 

중년인은 그제야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자네도 태극문의 제잔가?”

 

북궁천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선실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자신을 감추려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소.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시오.”

 

이정한 등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웃음을 지으며 그를 따라서 선실 벽에 기댔다.

 

삼십 대 장한이 당장 일어설 것처럼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눈을 부라렸다.

 

“뭐 이런…….”

 

하지만 중년인이 손을 들어 제지하자, 그는 입술을 씰룩이며 자세를 풀었다.

 

이정한 등은 아쉬워서 탄식이 나올 지경이었다.

 

조금만 더 과격하게 나왔으면 대형이 저자를 황하에 처박았을지도 모르는데……. 

 

 

 

배가 백진에 도착한 것은, 석양이 지기까지 한 시진 정도 남았을 때였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자 북궁천은 일행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뒤에서 죽립인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침내 헌원려려가 있는 황하 이남을 밟았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것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어디 가서 배부터 채우세.”

 

백진은 낙양성이 가까워서 그런지 부둣가가 제법 번잡했다. 오가는 사람도 많았고, 객잔과 주루도 부둣가에 늘어서 있었다.

 

북궁천 일행은 그중 객잔을 하나 골라서 안으로 들어가 식사를 주문했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 것은 그들이 식사를 거의 다 마쳐 갈 때였다.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창가에 앉아 있던 동호량이 창밖을 향해 고개를 내밀더니 북궁천에게 말했다.

 

“대형, 그자들이 싸우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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