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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56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56화

 

56화

 

 

 

 

 

 

 

3장. 토사구팽

 

 

 

 

 

삼성궁이 광원산장을 차지한 지 닷새째 되던 날.

 

석양이 지기 직전에 천무회와 무림맹의 무사들이 도착했다.

 

천무회에서 이백, 무림맹에서 삼백. 모두 오백에 이르는 무사들이 합류하자 분위기가 한층 뜨거워졌다.

 

말이 오백이지, 그들 중에는 평생 가도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절대 고수도 있었고, 강호 제일의 가문임을 자랑하는 세가의 주인들도 있었다.

 

천사교가 아무리 지독하고 강하다 해도 당장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은 전력이었다.

 

 

 

그날 저녁.

 

위효릉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각 세력의 수뇌부를 불러 천사교를 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삼성궁에선 위효릉과 백리진, 등조립, 임강령, 선우강, 구양우경,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비룡가의 장로 천승문이.

 

천무회에선 관호명과 사공강후, 거기다 천무십절 중 세 사람이.

 

무림맹에선 남궁세가주 남궁원과 황보세가의 장로 황보궁, 소림오불 중의 공한대사, 무당 장로 청명도장, 화산의 원로 우명자가 회의에 참여했다.

 

총인원은 스물일곱 명. 그들 모두 각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심지어 당주급 간부조차 상당수가 배제되었다.

 

 

 

“……그러므로, 일단 철은보를 취하고 상주까지 올라가는 게 최우선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화산, 종남과 연계해서 놈들을 섬멸할 수 있을 겁니다.”

 

위효릉은 일각에 걸쳐서 자신의 기본 구상을 말하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묵묵히 듣고 있던 사람들 중 쉰 살가량의 중년인이 말했다.

 

“각주, 천사지존은 지금 어디에 있소?”

 

“아직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가주.”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원은 위효릉의 말을 듣고 미간을 좁혔다.

 

“적의 수장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쉬지 않고 상주까지 공격하겠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오?”

 

“저도 쉽지 않은 일인 줄은 압니다만,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붙이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급박하게 몰아붙여야할 이유가 있소?”

 

“섬서는 이미 놈들의 세력권에 들어가 있어서 숨 돌릴 틈을 주면 자칫 역습을 당할 공산이 큽니다.”

 

“흐으음.”

 

일리가 있다 생각한 듯 남궁원도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고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댔다.

 

그러자 천무회 쪽에서 한 사람이 나섰다.

 

“솔직하게 말해 봅시다, 각주. 그러한 공격이 현재 우리의 전력만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입을 연 자는 이제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각진 얼굴에 떡 벌어진 어깨.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강함이 느껴지는 청년.

 

그는 천무회주의 아들인 사공강후였다.

 

사실 그의 질문은 스스로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내의 누구도 그를 나약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바로 강호에서 가장 강한 청년 고수 다섯 사람 중 하나인 천무공자(天武公子)인 것이다.

 

사공강후가 질문을 던지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바라보자, 위효릉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사공 공자, 각 문파의 최고 정예 일천삼백이 모였소. 철은보에 있는 천사교도의 숫자가 일천이 넘어간다 하지만 어찌 우리와 비교될 수 있겠소?”

 

그의 말에 구양우경이 몇 마디 덧붙였다.

 

“사공 형, 이번에 단 세 사람이 상남에 가서 려매를 구했소. 천사교 놈들 수백 명과 맞서서 말이오. 천사교도의 숫자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오.”

 

사공강후가 신광을 번뜩이며 구양우경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러잖아도 좀 전에 그 이야기를 들었소. 심려가 컸을 텐데, 무사히 구출되었다니 참으로 다행이오.”

 

“고맙소.”

 

두 사람은 마주 포권을 취한 채 서로를 직시하며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일곱 자 간격을 두고 불꽃이 튀었다.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각 세력을 대표하는 두 청년 고수가 암중에 기 싸움을 벌이는 걸 보고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놔둘 수는 없는 일. 천무회 쪽에 앉아 있던 사람 중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이 입을 열어서 두 사람의 눈싸움을 중단시켰다.

 

“각주가 그런 구상을 했을 때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 두었을 것 같소만, 어디 어떤 계획이 있는지 말해 보시지요.”

 

그는 다름 아닌, 금황신군 관호명이었다.

 

“그렇습니다, 관 대협. 시영, 지도를 갖고 이쪽으로 나와라.”

 

위효릉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는 우측을 보며 말했다.

 

조용히 서 있던 장한이 두루마리를 들고 나와서 좌중을 향해 폈다.

 

두루마리에는 상남과 상주를 비롯해서 섬서 남동부의 지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자, 모두 이쪽을 봐 주시지요.”

 

 

 

* * *

 

 

 

천무회와 무림맹의 주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순식간에 광원산장을 불타오르게 했다.

 

경비 임무를 마치고 온 이조량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들뜬 표정으로 쏟아냈다.

 

“지금 엄청난 고수들이 왔습니다. 특히 천무회에서 오신 분 중에는 금황신군도 있다는군요.”

 

북궁천은 그 말을 듣고 이채를 번뜩였다.

 

‘금황신군 관호명이 왔단 말이지?’

 

태행산 북쪽의 이름 모를 산중에서 벌어진 싸움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 싸움으로 자신은 내상을 입었고, 결국 단무영이 어디론가 떠나 버렸지 않았는가 말이다.

 

정상적인 대결이었던 만큼 복수심이 불타오르진 않았다.

 

그러나 패배에 대한 빚은 반드시 받아 낼 작정이었다. 단무영을 위해서라도.

 

‘관호명, 그대는 천사교보다 나를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이조량은 북궁천의 마음도 모르고 부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천무공자는 저희와 비슷한 나이인데, 실력은 관 대협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북궁천도 천무공자 사공강후에 대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신룡공자 구양우경과 함께 하남 무림에서 쌍벽을 이룬다는 청년 고수.

 

무공만 따지면 구양우경보다 강할 거라 했다.

 

‘구양우경과 사공강후라…….’

 

그때 문득 멋진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구양우경으로선 치를 떨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번 기회에 누가 더 잘났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괜찮겠군.’

 

 

 

한편,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구양우경은 이를 악물었다.

 

‘사공강후, 네가 나보다 뛰어나다는 강호의 소문이 잘못 되었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려 주마!’

 

“공자, 무슨 일이 있었나요?”

 

헌원려려가 그의 표정을 보고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구양우경은 거짓말처럼 분노의 눈빛을 지우고 빙그레 웃었다.

 

“하하, 아무것도 아니오. 천무회에서 사공강후가 왔는데, 고집이 조금 센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을 뿐이오. 자, 우리 차나 마십시다.”

 

헌원려려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차를 따랐다.

 

구양우경은 차를 따르는 헌원려려의 목덜미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침을 삼켰다.

 

오늘 따라 유난히 피가 끓었다.

 

사공강후 때문인지, 아니면 등잔불에 비친 헌원려려의 목살이 유난히 하얗게 보여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참을 수가 없었다.

 

‘표 안 나게 하면…….’

 

 

 

* * *

 

 

 

밤이 깊어 가는 시각. 이정한이 북궁천 옆으로 다가와서 넌지시 말했다.

 

“대형, 황보 형과 종리 형도 무림맹 무사들과 함께 온 모양입니다.”

 

어느 정도 짐작했던 일이다.

 

그러잖아도 밖으로 나가지 못해 안달하던 황보청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아는 척하면 자신의 처지가 곤란해질 것 같아서 접근을 자제하고 있는 것일 뿐.

 

“혹시라도 보면 모른 척하라고 해.”

 

“굳이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관심 끌어서 좋을 것 없다. 소궁주가 그 사실을 알면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을 거다.”

 

이정한은 흠칫하며 순순히 그의 말을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수룡위사대에 대한 것은 어떻게 됐지?”

 

“현재 두 사람만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면 거의 답이 나온 거와 같다.

 

“그럼 그 일에서 손을 떼.”

 

“예? 조금만 더 살펴보면 한 사람을 더 추려 낼 수 있을지 모르는데, 그만둬요?”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야. 그 정도만 해도 아주 잘해줬어.”

 

이정한은 북궁천의 칭찬에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알겠습니다, 대형. 그렇게 하죠.”

 

“그 두 사람이 누군지 말해 봐.”

 

이정한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숫자 두 개를 말했다.

 

“일호와 사호입니다.”

 

어차피 그들의 이름은 알지 못했다. 그저 인상착의만 알 뿐.

 

하지만 각자의 인상착의에 따라서 숫자로 표시해 놓은 터였다.

 

“일호와 사호란 말이지?”

 

북궁천은 그 중에서도 한 사람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 * *

 

 

 

장호문은 자신이 숨어 있는 지하 밀실로 은밀히 찾아온 장한을 보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하시더냐?”

 

“며칠만 더 참으라 하셨습니다.”

 

“하긴 철은보를 공격하게 되면 그놈들도 떠나겠지.”

 

“형님은 여기 남아서 아가씨를 보호해야 할 거요.”

 

“알았다. 소궁주께 걱정 말라고 말씀드려라.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아가씨께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테니까.”

 

“그대로 전하지요. 자, 그럼 저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장한은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과장된 몸짓을 하며 일어나자 등잔불이 춤을 췄다.

 

그때 그가 뭘 봤는지 한쪽 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는 십여 종류의 무기가 세워진 병기대가 있었다.

 

“저 무기들은 원래 이곳에 있던 겁니까?”

 

장호문이 벽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그래. 아마 전 주인이 이곳에서 무공을 수련했던 것 같다. 쓸 만한 무기는 없다만…….”

 

그때였다.

 

‘헛!’

 

섬뜩함을 느낀 장호문은 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찰나간의 차이로 한 줄기 뇌전이 몸을 관통했다.

 

‘흡!’

 

외마디 비명을 속으로 삼킨 장호문은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내려다봤다.

 

가슴을 뚫고 세 치가량 튀어나온 검첨에서 핏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몸을 트는 바람에 심장을 벗어나긴 했지만, 가슴이 관통당한 충격에 온몸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떨렸다.

 

“너…… 네가…….”

 

겨우 입을 여는 그의 등 뒤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명령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소, 소궁주…… 냐?”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네가…….”

 

“형님도 아시잖습니까. 거부하면 제가 죽는다는 걸.”

 

“크, 크크. 과, 과연…… 소궁주군. 내가…… 가장 믿는…… 너를…… 이용하다니…….”

 

“저를 너무 원망하진 마십시오. 형님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까요.”

 

“검을…… 검을 천천히…… 빼다오. 죽더라도…… 고통스럽게…… 죽고 싶진…….”

 

“알았습니다. 내 어찌 형님의 마지막 부탁도 못 들어드리겠습니까.”

 

등 뒤에 서 있던 장한은 착잡한 어조로 말하며 검을 천천히 잡아 뺐다.

 

검신의 길이가 한 자 조금 넘는 단검이었다.

 

행여나 의형인 장호문이 눈치챌까 봐, 검집도 없는 단검을 품속에 넣어서 들어온 터였다.

 

단검을 완전히 빼낸 그는 손을 늘어뜨린 채 장호문을 돌아 앞으로 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검첨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장호문의 몸은 더욱 거세게 떨렸다.

 

그렇게 장호문의 앞에 선 그는 미안한 마음에 소궁주가 장호문을 죽이려 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형님은 소궁주의 말에 토를 달지 말았어야…….”

 

그 순간!

 

덜덜 떨던 장호문의 옆구리에서 번개가 솟구쳤다.

 

정확히는 들어 올린 팔의 소매 속에서.

 

말을 하던 자는 섬광을 느낀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젖히며 단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가 몸을 반자도 젖히기 전에 섬광이 그의 턱을 꿰뚫었다.

 

콰직!

 

뼈가 꿰뚫리는 소리!

 

섬광이 턱을 뚫고 뒤통수로 삐져나왔다.

 

쨍그랑!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장한의 손에서 단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한은 꼬챙이 같은 검을 턱에 꽂은 채 장호문을 바라보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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