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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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46화
46화
“다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자네가…… 그를 죽였단 말인가?”
“방심한 사이 뒤통수를 갈겨서 땅에 묻어 줬죠. 아는 자입니까?”
임강령은 마소곡이 정말로 땅에 묻혀서 죽었을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오래전 내 친구를 죽인 자네.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는데, 어쨌든 죽었다니 잘됐군.”
그는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강호의 무사가 아니었다.
황궁제일 고수. 천하제일의 포두.
범죄자들은 그를 염왕처럼 무서워해서 즙포사신이 아닌 염포사신(閻捕使臣)이라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비록 강호인이 아니라 해도 그의 무공이 워낙 강하다 보니, 난다 긴다 하는 강호인들도 그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가 강호에 몸담게 된 것은 죽마고우의 죽음 때문이었다.
친구를 죽인 자는 강호에서 유명한 마두로, 그를 잡기 위해서는 더 이상 포두로 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잡으려 했던 놈이 남의 손에 죽다니.
임강령은 아쉬움과 시원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말하고는, 조금 전과는 또 다른 의미가 담긴 눈빛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마소곡은 고수라 불릴 만한 자지. 그런 자를 죽였다니, 소문보다 더 강한 것 같군. 그런데 왜 회룡당의 일반 무사로 있지?”
“높은 곳보다 낮은 곳이 더 편하더군요.”
헌원려려는 낮은 곳에 서서 의협을 행하는 대협이 되라고 했다.
뭐,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낮은 곳도 나름대로 장점이 많았다.
임강령은 속도 모르고 북궁천을 칭찬했다.
“요즘 청년 같지 않군. 오늘 아주 멋진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별말씀을. 그럼 더 할 이야기가 없다면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북궁천은 질문이 계속되기 전에 그쯤에서 포권을 취하며 작별을 고했다.
임강령과의 대화는 적지 않은 소득이었다. 후속대와 함께 온 다섯 고수 중 하나와 얼굴을 익혔으니 나머지 넷을 만나는 것도 보다 쉬워질 것이다.
백리진을 만나는 것도.
그런데 그때, 외마디 비명이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아악!”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온 곳은 별원 쪽이었다.
구양우경은 난데없는 비명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밖을 향해 물었다.
“어디서 난 소리냐?”
“건너편 아가씨 방 쪽에서 난 소리 같습니다.”
불길한 느낌이 든 구양우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향했다.
그가 방문을 열기도 전에 수룡위사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궁주, 아가씨 방에 아가씨의 시중을 들던 시비가 죽어 있다 합니다.”
덜컹.
방문을 연 구양우경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건너편 건물로 갔다.
은밀한 곳에 몸을 감추고 있던 수룡위사대원들마저 쏟아져 나와 그를 호위했다.
서문려려의 방은 한쪽 방문이 열려 있는 상태였다.
등잔불이 켜진 방 안쪽에서 자신이 보낸 시비가 얼굴을 감싼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침상이 있는 곳에선 수룡위사대원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세세히 살펴보는 중이었다.
창백해진 표정으로 이를 악문 구양우경은 두 눈에서 새파란 살기를 흘려 내며 나직이 명을 내렸다.
“비명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 올 거다. 입구를 통제해.”
수룡위사대원 셋이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구양우경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침상 쪽으로 향했다.
“호문, 려매는 어디 있지?”
시신을 살펴보고 있던 수룡위사대원 하나가 잔뜩 굳은 표정을 지은 채 몸을 일으켰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가 밖으로 나간 것을 봤느냐?”
“반 시진 안에는 나오신 적이 없습니다.”
그때 수룡위사대원 하나가 다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소궁주, 뒤쪽을 감시하던 십이호가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창문 밖에…….”
그의 손바닥에서 작은 옥구슬 두 개가 등잔 불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서문려려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의 옥구슬과 같은 것이었다.
십이수룡의 죽음.
서문려려의 행방불명.
창문 밖에 떨어져 있는 옥구슬 두 개.
구양우경의 두 눈에서 흐르던 살기가 광기처럼 일렁였다.
“어떤 놈이 감히……! 호문, 놈을 쫓아라! 네 목숨을 걸고 잡아!”
북궁천은 임강령과 함께 별원으로 달려갔다.
비명을 듣고 모여든 듯 경비무사들과 근처에 기거하던 몇 사람이 별원 입구에서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안쪽에서 급박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걸 보니, 짐작대로 비명은 별원 안에서 들려온 것인 듯했다.
두 사람이 그들을 제치고 월동문을 통과하자, 수룡위사대원 셋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시오.”
임강령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는 임강령이라 하네. 조금 전 비명이 들렸는데, 무슨 일인가?”
임강령이라는 이름에 수룡위사대원들의 표정이 흔들렸다.
“고검 대협께서 오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아직 확실한 상황이 밝혀지지 않아서 사람들의 입출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소궁주를 만나 봐야겠군.”
임강령은 어깨를 펴고 걸음을 옮겼다.
수룡위사대원들은 그의 앞을 막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대협…….”
“내가 누구란 걸 모르는 것이냐?”
임강령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약간의 노기가 섞인 음성.
수룡위사대원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희가 어찌 대협을 모르겠습니까.”
“그럼 비켜서라.”
수룡위사대원 중 가운데 서 있던 자가 좌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머지 두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섰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때 안쪽에서 살기 가득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놈을 쫓아라! 목숨을 걸고 잡아!”
구양우경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데 냉정하고 침착한 구양우경이 저리 분노하는 것일까?
‘설마 려려에게 무슨 일이라도?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북궁천은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임강령과 함께 수룡위사대원을 따라서 마당을 가로질렀다.
구양우경의 거처 건너편 건물의 방문 앞에 수룡위사대원 둘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을 안내한 수룡위사대원은 그들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방 안을 향해 말했다.
“소궁주, 고검 임 대협께서 오셨습니다.”
곧 방 안에서 구양우경이 나왔다.
평소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고 서리가 내린 것처럼 싸늘한 표정이었다.
“오셨습니까, 임 대협.”
그는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고 북궁천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네도 왔군.”
북궁천이 헌원려려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전에 임강령이 먼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비명을 듣고 달려왔네. 대체 무슨 일인가?”
“어떤 놈이 안으로 들어와서 시비를 죽였습니다.”
“시비를?”
“예, 려매의 시중을 들던 아이지요. 비명은 제 명을 받고 이 방에 들렀던 아이가 시비의 시신을 발견하고 지른 것이었습니다.”
“저런, 서문 소저가 많이 놀랐겠군.”
“아무래도 그랬겠지요.”
대답하는 구양우경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극한의 분노가 섞인 목소리였다.
북궁천은 구양우경의 그 말을 듣고 심장이 멈춰 버릴 듯했다.
그는 ‘그랬겠지요.’라고 했다.
그녀가 이곳에 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할 리가 없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가 더 참지 못하고 구양우경에게 물었다.
“소궁주, 서문 소저가 이곳에 없소?”
“내가 보낸 시비가 방문을 열었을 때는 려매를 시중들던 시비의 시신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내가 시비를 보내지 않았으면 모를 뻔했지.”
“그럼…… 서문 소저는?”
“시비를 죽인 놈이 납치한 것 같다. 감히, 감히 내 것을 훔쳐 가다니. 찢어죽일 놈……!”
이를 으드득 가는 구양우경의 두 눈에서 강렬한 살기가 번들거렸다.
‘려려가 납치되었다고?’
북궁천은 구양우경의 말에서 기괴한 감정을 읽었지만, 심장에 송곳이 박힌 것 같은 충격을 받아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정말로 납치되었단 말이오?”
“지금 수룡위사대가 놈의 흔적을 쫓고 있다.”
그때 임강령이 나섰다.
“납치된 지 얼마나 된 것 같은가?”
“일각에서 이각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려매가 내 방에서 나간 시간이 이각 조금 넘으니까요.”
“놈이 어느 쪽으로 빠져나간 줄 아나?”
“창문을 통해 뒤로 빠져나가서 담장을 넘어 도주한 것 같습니다.”
“소궁주는 즉시 사람을 보내서 이 사실을 위 군사께 알리게. 나는 먼저 범인을 추적해 보겠네.”
임강령은 구양우경에게 말하고 북궁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도 함께 갈 건가?”
당연한 일!
북궁천은 대답하는 시간도 아까워 몸부터 돌렸다.
“가시죠.”
그런데 뒤늦게 별원으로 들어선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도 함께 가겠네, 임 아우.”
고검 임강령을 아우라 부르며 다가오는 자. 그는 검왕 백리진이었다.
9장. 설원의 추적
수룡위사대 삼조장인 장호문은 수하 다섯을 이끌고 납치범의 뒤를 추적했다.
납치범이 뒷담을 넘어 도주했다는 것만 알 뿐 언제,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 막상 추적을 시작하면서도 막막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명령이 떨어진 이상 어떻게든 납치범의 꼬리를 잡아야 했다.
서문려려를 납치할 만한 곳은 천사교뿐. 더구나 납치범이 넘어간 담장은 서쪽으로 향해 있었다.
의심스런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지만 일단은 서쪽을 뒤져 보는 게 우선.
담장을 넘은 그는 서쪽으로 달렸다.
그런데 진원보의 담장에서 백여 장가량 멀어졌을 때였다. 수하 하나가 급히 걸음을 멈추더니 땅에서 뭔가를 주워들었다.
“조장, 이것 좀 보십시오.”
장호문은 수하의 손가락 사이에 낀 것을 주시하고 눈빛을 번뜩였다.
“아가씨의 목걸이에 있는 구슬과 같은 것이군.”
같은 구슬이 거처의 뒤쪽에서도 하나 발견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서문려려가 고의로 떨어뜨렸든 우연히 떨어진 것이든, 자신들이 방향은 옳게 잡았다는 뜻.
장호문은 길이 보인 듯하자 하얗게 웃었다.
“좋아, 달리면서 땅을 샅샅이 살펴봐라. 그리고 구슬을 발견한 곳에 추적대들이 따라올 수 있게 표식을 남겨 놔라. 가자!”
한발 늦게 진원보를 나선 임강령 등은 범인의 도주로로 예상되는 길을 따라 추적에 나섰다.
임강령이 백리진과 북궁천을 이끌었다. 그는 범인의 도주로를 알고 있는 것처럼 빠르게 나아갔다.
눈은 내린 둥 만 둥 하다가 멈춘 상태. 그나마도 땅을 살짝 덮었던 눈은 모두 녹아서 발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범인은 삼성궁 무사들이 경비를 선 동선에서 벗어난 길을 따라 움직였을 터. 그는 범인의 마음이 되어 움직였다.
오랜 세월 포두로 지내며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그였다. 범인의 마음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누군가가 남긴 화살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에 그어져 있었다.
“먼저 추적을 시작한 수룡위사대가 남긴 것 같군.”
백리진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임강령도, 북궁천도 같은 생각이었다.
“화살표를 따라가지요.”
임강령의 걸음이 오 리를 지나자 점점 느려졌다.
그가 제아무리 범인의 마음을 잘 안다 해도 정확한 길을 유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룡위사대가 남긴 표식도 점점 거리가 벌어져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의 경험과 감각이 가리키는 곳과 표식의 방향이 일치하고 있었다.
임강령은 좀 더 확실하게 표식을 남기고 수룡위사대의 뒤를 쫓아갔다.
한편, 백리진은 임강령이 잘 아는 것처럼 대하는 북궁천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수룡위사대가 남긴 표식을 찾기 위해 땅을 살펴보던 그는 북궁천이 바로 옆까지 오자 불쑥 질문을 던졌다.
“자네, 아우를 잘 아는가?”
북궁천은 마음이 초조해서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입을 닫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초조한 마음이 진정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오늘 처음 뵈었습니다.”
“그래? 의외군. 아우는 사람 사귀는 재주가 별로 없는 사람이어서 강호의 젊은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야.”
그에 대한 답은 앞서 가던 임강령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