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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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42화
42화
숲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부상자와 시신을 챙겨서 급히 숲을 빠져나왔다.
격전지에선 회룡당 대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 처리했으면 출발해!”
천광호는 숲에서 나오자마자 소리쳤다.
구철산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회룡당 대원들은 각자가 맡은 시신과 무기 등을 챙겨서 어깨에 걸치고 부랴부랴 그곳을 출발했다.
그렇게 십 리쯤 달렸을 때였다.
휘리리리리!
새 울음소리가 급박하게 울리는가 싶더니, 뒤이어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쩌저정! 챙챙!
어둠을 뚫고 메아리치는 비명과 무기 부딪치는 소리.
상당히 먼 거리서 들려오는 소리다.
천광호는 상황을 짐작하고 이를 으드득 갈았다.
“앞질러 간 놈들이 승룡당과 부딪친 모양이군.”
송찬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주?”
천광호는 입술을 질겅 깨물었다.
승룡당은 비룡가의 사람들이다. 자신이 아무리 삼주신가의 행태에 불만이 있다 해도 같은 가문의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어떡하긴?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을 살려야지. 전부 메고 있는 걸 내려놔!”
대원들이 시신과 무기 등을 내려놓자 천광호가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승룡당 무사들이 흩어져 있으니 지금부터 각 대별로 움직여서 저들을 돕기로 하자.”
하지만 북궁천은 그의 생각에 반대했다.
“당주, 놈들은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을 거요. 그렇다면 우리보다 훨씬 인원이 많다고 봐야겠지요. 그런 상황에서 인원을 나누면 우리 측 피해만 커질 겁니다.”
“그럼 함께 움직이잔 말인가?”
“전체를 다 구하려다가는 자칫 모두가 당할 수 있으니 구할 수 있는 곳만 구합시다.”
냉정한 판단. 그러나 틀린 말이 아니었다.
천광호는 한쪽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지만, 고집을 피우지도 않았다.
“젠장! 좋아, 그렇게 하지.”
* * *
승룡당은 삼십 명씩 나누어서 세 갈래 길로 동진하며 도화당 무사들을 찾아보았다.
간간이 울리는 새 울음소리는 그들이 도화당 무사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신호였다.
적이 알아들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서평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도화당 무사들 중 몇 명이 신호를 알아듣고 그들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을 찾아온 것은 도화당 무사들만이 아니었다.
천사교도들도 그 소리를 듣고서 보다 쉽게 그들을 찾아냈다.
더구나 그들의 숫자는 근 백여 명이나 되었고, 각자의 무공도 승룡당 무사들에 비해서 뒤떨어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난전이 벌어지고, 여기저기서 피가 튀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놈들을 막으면서 숲 속으로 들어가라!”
승룡당주 천종규는 수하들에게 소리치며 적의 전진을 막았다.
천사교가 무서운 것은 인원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무공이 강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어 가면서도 웃고, 죽이면서도 웃었다.
광기에 물든 웃음!
천종규는 그들의 웃음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천사교도들의 사악함을 소문으로 듣긴 했지만,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는 화산과 종남이 왜 천사교에 밀려서 본산에 틀어박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들은 악마의 자식들, 수라귀야!’
그는 공력을 아끼지 않고 전력을 다해서 검을 휘둘렀다.
천사교도들의 목숨을 던진 공세에 수하들이 죽어 가고 있었다. 공력을 아껴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으아아아, 개자식들! 오늘의 이 일을 백배로 갚아 줄 것이다!”
천사교도들은 광란하는 그의 검세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하나가 덤벼서 안 되면 둘이, 둘이 안 되면 넷이…….
결국 천종규의 몸에도 상처가 늘어가고, 움직임은 점점 더 느려졌다.
‘이 천종규가 여기서 이렇게 죽는가?’
서걱.
잠깐 마음이 흔들린 사이, 칼 한 자루가 그의 허벅지를 훑고 지나갔다.
이를 악문 그는 섬전처럼 검을 뻗어서 자신의 허벅지를 가른 자의 목을 꿰뚫었다.
그때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의 압력을 동반한 음습한 장력이 밀려들었다.
검을 회수한 천종규는 찰나에 팔검을 휘둘러서 장력을 막아 냈다.
떠더덩!
굉음이 터져 나오면서 천종규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크으윽.”
“킬킬킬, 제법이군.”
장력을 날린 자는 괴이한 웃음을 흘리면서 천종규의 앞에 내려섰다.
천종규는 내려선 자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자신이 부상을 입었다지만 단 일장에 형편없이 밀리다니.
‘대체 누가……?’
상대를 확인한 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보이는 안색, 역 팔자로 치켜 올라간 쭉 찢어진 눈.
그가 아는 자였다.
“당신은…… 음혼장(陰魂掌) 마소곡?”
나이가 예순 전후로 보이는 노인은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킬킬킬, 십 년이 넘었는데 잊지 않았구나.”
“뒈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살아 있었군.”
“세상에는 아직 즐길 것이 많은데 벌써 죽을 순 없지.”
마소곡은 입술을 비틀며 씩 웃고는, 천종규를 향해 다가가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천사지존을 모시고 익힌 무공이니라. 네가 처음으로 구경하는 것이니 영광으로 알아라.”
잔뜩 긴장한 천종규가 검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림과 동시, 마소곡이 몸을 날리며 두 손을 뻗었다.
순간 악마의 발톱 같은 시커먼 손가락이 어둠을 찢으며 그를 향해 떨어졌다.
천종규는 검에 혼신의 공력을 쏟아 부어서 마소곡의 조공(爪功)에 대응했다.
가가가각!
시커먼 손가락이 검기로 펼쳐진 검막을 연속으로 두들겼다.
연속된 충격에 천종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순간!
방어막을 뚫은 시커먼 손바닥이 천종규의 가슴을 내리쳤다.
천종규는 급히 검을 틀며 마소곡의 팔을 자르려 했다. 그러나 찰나간의 차이로 마소곡의 손이 그의 가슴을 정통으로 후려쳤다.
“크억!”
단말마와 함께 천종규의 몸이 이 장이나 날아갔다.
마소곡은 낄낄거리며 천종규를 따라 몸을 날렸다.
“낄낄낄, 네놈의 간을 뽑아서 술에 담가 먹어야겠다! 넌 아마 모를 걸? 사람 간의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말이야.”
그때 그의 머리 위에서 분노에 찬 욕설이 터져 나왔다.
“미친 늙은이!”
깜짝 놀란 마소곡은 다급히 몸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었다.
“어떤 쳐 죽일 놈이……?”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한 사람이 어둠 속을 걸어오고 있었다.
땅 위에서 걷는 게 아니었다. 허공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신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 줄 알기에 잠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걸어오는 놈은 새파랗게 젊은 놈이거늘, 입을 열면서 저토록 자연스럽게 허공답보를 펼치다니!
하지만 그의 놀라움이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후웅!
북궁천이 북두패왕권을 펼친 순간, 공간이 이지러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어둠이 뒤틀렸다.
“사람 간이 맛있다고?”
노성이 울림과 동시, 머리통만 한 커다란 주먹 하나가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고오오오!
눈을 홉뜬 그는 늘어뜨린 손을 들어 올려 허공을 그었다.
쩌저적!
수백 장 두께의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마소곡의 표정도 쩍쩍 금이 갔다.
쿵, 쿵, 쿵.
그는 다섯 치 깊이의 발자국을 찍으며 물러서서, 격렬한 파랑이 이는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네놈은 누구……?”
북궁천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또 다시 북두패왕권을 펼쳤다.
“알 것 없어!”
어둠을 뒤흔드는 일성과 함께 마소곡의 가슴에 커다란 주먹의 그림자가 내리꽂혔다.
후아앙!
마소곡은 황급히 두 손을 휘둘렀지만, 북궁천이 작심하고 펼친 북두패왕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쾅!
“크억!”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마소곡의 몸뚱이가 뒤로 날아갔다.
북궁천은 땅에 내려서지도 않은 채 그를 따라 성큼성큼 허공을 걸어가며 두 주먹을 교차시켰다.
콰아아아아!
좀 전보다 더 커다란 주먹 두 개가 하늘을 가르며 뇌전처럼 떨어지자, 마소곡의 얼굴이 어둠보다 더 시커멓게 변색되었다.
“아, 안……!”
마소곡이 절망에 찬 외침을 다 토해내기도 전에 주먹이 그를 짓눌렀다.
콰광! 퍽!
쇠북 치는 소리와 함께 땅에서 먼지구름이 확 피어나고, 만근의 압력에 짓눌린 마소곡의 몸뚱이가 땅 속으로 석 자나 파묻혔다.
북궁천은 그가 파묻힌 곳 옆에 내려서서 발을 가볍게 굴렀다.
“그만 지옥으로 가라.”
와르르, 양쪽의 흙벽이 무너지면서 마소곡의 몸을 덮어 버렸다.
그때 천사교도들이 그를 향해 접근했다.
그들은 마소곡의 죽음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소문대로 지독한 자들이군. 천 당주, 내가 이자들을 막을 동안 이곳을 벗어나시오. 어서!”
눈살을 찌푸린 북궁천은 천종규를 향해 소리쳤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천종규는 마소곡을 찾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소곡은 어디로 갔지? 저자는 누구지?
그는 마도의 절정고수가 일권을 얻어맞고서 땅에 묻혔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북궁천의 목소리가 귀청을 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숲 속으로 몸을 날렸다. 지금은 궁금증을 푸는 것보다 적에게서 벗어나는 게 먼저였다.
천종규가 숲 속으로 뛰어든 직후, 천사교도들이 북궁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천종규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여덟 명이 팔방에서 한꺼번에 덤볐다.
“천사지존을 거역하는 놈은 지옥의 유황불에 빠지리라!”
“놈은 하나다! 모두 달려들어서 놈의 심장을 뽑아내라! 저놈의 몸을 태우고, 피를 마시며 하늘에 제를 지낼 것이다!”
“천사지존의 뜻에 따라!”
우우우우!
광기에 찬 외침!
북궁천은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고.
만약 그자가 자신에게 그 말을 한다면 대답해 줄 말이 있었다.
세상에는 죽어 없어지는 것이 나은 자들도 있는 법이라고 말이다!
“너희들은, 죽어, 마땅하다!”
순간, 그의 허리춤에서 묵빛 섬전이 솟구치며 어둠을 그물처럼 갈랐다.
쉬아아악!
쩌저저정!
단 일검에 천사교도 셋의 몸뚱이가 괴이하게 꺾어졌다.
겨우 버텨 낸 다른 자들도 거센 충격파를 견디지 못한 채 정신없이 물러났다.
북궁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묵혼을 휘둘렀다.
어둠의 장막이 쩍쩍 갈라질 때마다 천사교도들의 몸뚱이도 갈라졌다.
“끄어억!”
“끄으으으으.”
은은한 공포가 서린 신음소리.
어둠 속에서 자욱하게 피어나는 피안개!
묵혼이 움직일 때마다 쉬지 않고 혈화가 피어났다.
그렇게 일곱 명이 쓰러지자, 쓰러진 자의 자리를 다른 자들이 메웠다.
북궁천은 그들의 포위망이 여전함에도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았다.
산중대호는 이리가 제아무리 많아도 위엄을 잃지 않는 법. 더구나 눈앞의 천사교도들 정도는 그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북궁천의 검에서 검기의 폭풍이 회오리칠 때였다. 우측의 숲 속에서 천광호가 회룡당 무사들과 함께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들 중 상당수가 승룡당 무사라는 걸 알고 이를 갈며 소리쳤다.
“모두 저놈들을 쳐라!”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은 소문으로만 들은 천사교도들과의 대결에 가슴이 떨렸다.
우리가 저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여기서 죽는 게 아닐까?
하지만 북궁천에게 혹독한 수련을 받아온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을 되찾고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했다.
사실 그동안, 기껏해야 태극문의 무공을 조금 수정하고, 약점을 보완한 것 정도가 다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회룡당 무사들과 비무하며 어느 정도 늘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실력이 이 정도였나?’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자신감이 생긴 그들은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천사교도들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지나친 자신감은 때로 독이 되기도 하는 법.
자신감이 넘쳐서 둘을 상대하던 이정한은 사오초 만에 위기에 몰리자 당황으로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지금은 밤이어서 감각에 의존하는 싸움을 하는 중이고, 적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들이라는 걸 간과한 것이다.
“사형! 뒤를 조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