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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79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79화

 

79화

 

 

 

 

 

 

 

그때는 정말 일이 터진다.

 

북궁천이 마제의 본성을 드러낼 테니까.

 

어차피 구양우경이 저렇게 되었으니 순리대로 풀어 나가는 게 나았다.

 

“구양 궁주께서 오시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말해 보겠어요. 전쟁터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하면 무작정 붙잡아 둘 수도 없을 거예요.”

 

북궁천은 그 방법도 괜찮게 느껴졌다.

 

그녀가 이곳까지 온 것은 구양우경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구양우경이 사악한 음마로 밝혀진 데다 불구가 되었으니, 그녀로선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좋다. 그럼 구양환의 반응을 봐서 결정하도록 하자.”

 

북궁천은 일단 헌원려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녀를 이길 수도 없지만.

 

그리고 그쯤에서 구양우경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라도 구양우경이 수상한 행동을 한 적이 있으면 말해 봐라.”

 

직접적으로는 물을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분노가 폭발해 버릴지 몰랐다.

 

헌원려려도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지 않았다.

 

구양우경의 다리를 부수고 팔의 근맥을 찢어 버린 것이 남들 눈에는 과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북궁천이 많이 참은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겪은 일을 알게 되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대신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옷 보따리 속에서 작게 접힌 종이를 들고 왔다.

 

한쪽에 임강령과 유원당이 앉아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북궁천이 그들 앞에서 비밀이나 다름없는 말을 한다는 것은 그들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인즉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북궁천은 그녀가 내민 종이를 받아 들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종이는 불에 타다 만 서신이었다. 크기로 봐선 본래의 서신 중 절반쯤 남은 듯했다.

 

“한 달 보름 전에 몰래 빼돌려 놓은 거예요. 아마 그 사람은 모두 타서 재가 된 줄 알고 있을 거예요.”

 

북궁천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펴 보았다.

 

비록 반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곳에 적힌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그곳으로 오십시오. 제대로 된 계집을 골라 놓았습니다. 지난번에는 너무 일찍 끝나서 싱거웠는데, 이번에는 좀 오래갈 겁니다. 무공을 익힌 계집이니까. 호 형도 온다고 했으니 꼭 참석해서 마음껏 즐겨 봅시다. 형님이 이번에도 빠지면 회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북궁천은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서신을 읽고 고개를 들었다.

 

“서신을 보낸 자가 누군지 알아?”

 

“그건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것은 삼성궁 내부에서 전해진 것 같다는 거예요. 장호문이 그 서신을 가져왔는데, 그는 그날 삼성궁을 나서지 않았거든요.”

 

북궁천은 서신을 임강령에게 건넸다.

 

“이 글씨체의 주인을 알아봐 주십시오. 구양우경을 자연스럽게 형님이라 부르는 걸로 봐서 가까운 사이인 사람을 찾아보시는 게 빠를 것 같군요.”

 

임강령은 서신을 읽어 보고 눈을 치켜떴다.

 

만약 이 서신의 주인이 구양우경이라는 걸 증명만 하면 검신가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정말 오체분시를 해서 죽일 놈들이로군.”

 

유원당은 이를 갈며 분노했다. 딸 가진 부모들은 모두 그와 같은 마음일 것이었다.

 

 

 

* * *

 

 

 

“멍청한 놈, 잠시를 못 참고 끝내 일을 저질렀군.”

 

호연유는 구양우경에 대한 보고를 받고 짜증이 치밀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으려고 수년 동안 공들였거늘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자신이 이를 갈며 저주하고 있는 자의 명성만 높여 주고 말았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일이 아직 마무리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차하면 다른 회원들까지 밝혀질지 모르는 일. 그들마저 잡히면 손안에 든 승부패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 셈이 될 것이다.

 

교주 앞에서 낯을 들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야 당연한 일이고.

 

“혈사령.”

 

“예, 소존.”

 

“호교이령에게 연락해서 놈의 정체를 구양가의 수뇌부에 알려 주라고 전하시오.”

 

“그가 정말 북천마제의 수하인지 아직 확실하지는…….”

 

무심코 토를 달던 혈사령은 호연유의 눈빛이 서릿발처럼 차가워지자 흠칫하며 재빨리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소존.”

 

“구양가에 알려 주면 알아서 확인하겠지. 맞든 틀리든 우리에게 손해 될 것은 없으니 시키는 대로 하시오.”

 

“예, 소존.”

 

 

 

* * *

 

 

 

구양우경의 사건이 벌어진 지 나흘째 되던 날.

 

마침내 삼성궁의 궁주인 구양환과 비룡가 가주 천군호, 신도가 가주 선우명이 오십여 명의 일행과 함께 철은보에 도착했다.

 

일행 중에는 삼성궁의 주요 인사들뿐만 아니라 서문각과 같은 휘하 세력의 수장들도 있었다.

 

구양환은 철은보에 도착하자마자 구양우경을 찾아갔다.

 

그는 팔다리가 엉망이 되고 눈동자마저 풀어진 아들을 보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전해진 소식이 사실이라면 화를 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화를 내기는커녕 머리 숙여 백배사죄해야 할 판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속이 새카맣게 탔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이놈!’

 

이를 악문 구양환은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구양우경에게서 시선을 뗐다.

 

가슴이 미어지는 한편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 자식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돌이키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군사, 더 밝혀진 것은 없는가?”

 

그가 타들어 가는 가슴을 누르고 위효릉에게 물었다.

 

위효릉은 침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특별한 것은 아직 없습니다.”

 

“각 문파의 대표들을 회의장에 모으도록 하게나.”

 

“예, 궁주.”

 

 

 

철심전에 모인 군웅들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닫고서 삼성궁 수뇌부가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늘만 떨어져도 천둥소리가 날 것 같은 침묵.

 

구양환이 먼저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입이 열 개인들 어찌 변명할 말이 있겠습니까? 여러 군웅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참담한 심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젖은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군웅들의 표정도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고개를 든 구양환이 말을 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이번 일을 제 아들에게 국한시켜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금 저희 앞에는 사악무도한 천사교가 버티고 있습니다. 행여나 이번 일로 우리의 단결이 무너진다면, 저 사악한 자들에게만 유리한 일이 될 것입니다.”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개중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구양환의 말에 찬성했다. 그리고 일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피해를 본 여인에게는 최대한 배상을 할 것이며, 천무회에도 적절한 보상을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 아들이 다른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아직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조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절절한 구양환의 목소리는 군웅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터라 북궁천도 바라보기만 했다.

 

그로서는 헌원려려를 데리고 떠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당사자인 구양우경은 무공을 잃은 앉은뱅이가 된 데다 정신까지 이상해진 상태였다.

 

처절한 죽음 이상의 벌을 받고 있는 셈.

 

명화회와 연관된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도 되었다.

 

그런데 구양환이 북궁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단화린, 아주 확실하게 손을 썼더군.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너무 심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북궁천은 고개를 돌려서 유원당을 바라보았다.

 

“유 원주님, 저희가 조금만 늦게 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유원당이 말하는 것조차 더럽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

 

“쇠 비늘 달린 채찍에 맞아서 그 여자아이의 온몸이 비늘 자국으로 찢어졌든가, 가시 달린 몽둥이가 그 여자아이의 몸속을 후비고 있었겠지.”

 

북궁천의 눈이 다시 구양환을 향했다.

 

“들으셨다시피 그 당시는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차하면 그 여인도 참혹하게 죽을 판이었지요. 게다가 구양 공자는 남들이 인정하는 고수가 아닙니까? 제가 조금만 시간을 줬다면, 구양 공자가 그 여인의 입을 막기 위해 손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궁주께서는 그래도 제가 손을 과하게 썼다고 생각하십니까?”

 

구양환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구양우경이 다른 일과도 연관되었다는 것을 은연중 암시하는 말투였다.

 

혹 떼려다 혹 붙인 셈.

 

‘건방진 놈! 그깟 계집아이 때문에 내 아들을 병신으로 만들어?’

 

분노가 불길처럼 타올랐다.

 

하지만 그는 노련한 강호의 거물답게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줄은 미처 몰랐군. 어쨌든 자네도 모든 일이 다 밝혀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북궁천은 구양환의 분노가 담긴 눈길을 피하지 않고 담담히 대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대신 사실이 밝혀지면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만큼 더욱 철저하게 밟아 줄 작정이었다.

 

그런 놈들은 그렇게 당해도 쌌다.

 

구양우경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만약 이번 일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헌원려려도 그렇게 당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말이다.

 

‘그게 싫으면 순순히 인정하고 려려를 빨리 돌려보내라, 구양환.’

 

 

 

* * *

 

 

 

쾅!

 

단단한 원목 탁자를 손으로 내리친 구양환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탁자에 두 치 깊이로 파인 손자국이 분노의 크기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죽일 놈! 내 아들을 앉은뱅이에다 정신병자로 만들어 놓고도 잘했다고 말대꾸를 하다니!’

 

검신가의 장로들은 침중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구양환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구양환의 숙부가 되는 구양종이 그를 다독였다.

 

“그만 진정하게, 궁주.”

 

구양환은 이를 악문 채 몸을 돌렸다.

 

“더는 안 됩니다. 여기서 그쳐야 합니다. 그 아이가 또 다른 일을 저질렀다는 게 밝혀지면 더 버틸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알고 있네.”

 

여자를 겁탈하려다 실패한 것과 천무회 무사 하나를 죽인 것은 어떻게든 무마시킬 수 있었다.

 

피가 난무하는 전쟁을 치르다 보면 제정신이 아닐 때가 있으니까.

 

더구나 여자는 큰 피해도 입지 않았고, 죽은 천무회 무사도 중급 간부에 불과했다.

 

양쪽에 상당한 배상을 해 준다면 저들도 계속 몰아붙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일이 터진다면, 삼성궁의 명예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비룡가와 신도가는 삼성궁의 명예가 실추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검신가에 물을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삼성궁을 지배해 온 검신가의 최대 위기.

 

어떻게든 넘기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구양환은 비장한 표정으로 장로와 간부들에게 말했다.

 

“다른 세력의 군웅들, 특히 무림맹 사람들을 최대한 회유하시오. 우경이의 성격이 그렇게 악하지 않으며, 처음으로 대규모 혈전에 참여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심마에 들었다는 점을 강조하시오. 그리고 우경이의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는 조사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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