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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76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76화

 

76화

 

 

 

 

 

 

 

1장. 사냥할 땐 확실히

 

 

 

 

 

포대를 어깨에 짊어진 인영 하나가 소리 없이 당화점을 빠져나왔다.

 

그림자 속에 숨어서 좌우를 둘러본 그는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빠르게 이동했다.

 

밤이 늦은 시각. 날씨마저 추워서 강아지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철저히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상남을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이각 후.

 

운평이 구양우경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소궁주, 그 계집을 외곽에 있는 관운묘로 옮겨 놓았습니다.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곳이어서, 어떤 소리가 나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을 것입니다.”

 

운평의 보고를 들은 구양우경은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에서 시작된 전율이 온몸으로 퍼졌다. 손끝이 저릿하고 혀끝이 바짝 말랐다.

 

이게 얼마 만에 즐기는 쾌락인가.

 

더구나 명화회 회원들과 함께 즐기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기회였다.

 

‘후후후후, 그 친구들이 알면 무척 부러워하겠군.’

 

음악한 웃음을 입가에 매단 그는 장포를 걸쳤다.

 

그가 자신의 가슴속에 그런 악마적인 마성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오 년 전이었다.

 

오 년 전, 장안에 여행을 갔던 그는 신도가 가주의 둘째 아들인 선우중의 소개로 술자리에서 호유라는 자를 만났다.

 

그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은밀한 쾌락에 대한 이야기가 슬쩍 튀어나왔다.

 

그는 정파인이라면 당연히 혐오스럽게 생각해야 할 그 이야기를 듣고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것도 단순히 쾌감만 느낀 것이 아니라 그동안 쉽게 달아오르지 않던 정욕이 끓어올랐다.

 

자존심 상해서 남들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는 사실 여자의 벗은 몸을 보고도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가 혼인을 서두르지 않은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여자를 찾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그날 밤 그들과 함께 기루로 술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난생처음 여자를 안았다. 두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실행에 옮기겠다는 듯 아주 지독하게 학대하면서.

 

그는 그날 세상에 그토록 미칠 것 같은 쾌락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를 상대했던 기녀는 반쯤 죽은 채 실려 나가야 했지만.

 

대신 그는 거액을 안겨 주어서 기루의 주인은 물론 기녀조차 입을 닫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가끔 시간을 내서 선우중과 함께 악마적인 쾌락을 즐겼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점점 쾌락의 강도가 높아지고 빈도가 잦아졌다.

 

그러다 결국은 여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자, 책임감을 공유하기 위해서 명화회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그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서문려려를 만난 후였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야 그는 혼인을 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그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여인보다도 아름다웠다. 자신이 탐했던 여인들의 모든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악마적인 쾌락의 유혹은 그의 의지로 떨치기에는 너무 강했다.

 

특히 서문려려와 비슷한 여인이 보이면 참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번에 출전한 것도 그러한 감정을 참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런데 서문려려가 자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자 마음이 흔들렸다.

 

한 번만 더 즐기고 그만해야지!

 

그렇게 생각한 그는 장호문을 보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여인을 구하려 했다.

 

장호문은 명화회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다섯 사람 중 하나로 그가 가장 믿는 부하였기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멍청한 장호문이 회룡당 대주의 의심을 사면서 일이 엉뚱하게 흐르고 만 것이다.

 

그는 그 이후 남들의 눈을 의식해서 욕망을 억눌렀다.

 

그러던 차에 소동동이 나타났다.

 

그는 쌓이고 쌓였던 욕망이 분출구를 찾아 솟구치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장포를 걸치고 면사로 얼굴까지 가린 그가 붉어진 눈으로 운평을 보며 물었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겠지?”

 

운평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소궁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했습니다.”

 

“좋아, 가자.”

 

구양우경은 곧 다가올 쾌락에 침을 삼키며 운평과 함께 거처를 나섰다.

 

 

 

잠은각 이조장 모우태는 멀리 떨어진 어둠 속에서 경비를 서는 척하며 구양우경의 거처를 주시했다.

 

자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장포를 걸치고 얼굴까지 가린 자가 수룡위사대 무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구양우경이군.’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시각에 수룡위사대원을 거느리고 움직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는 두 사람이 별원을 나서자 즉시 천종원에게 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천종원은 자신의 직속 수하 둘만 거느리고 거처를 나섰다.

 

 

 

구양우경의 움직임은 북궁천에게도 보고되었다.

 

“대형, 그가 나왔습니다.”

 

북궁천은 종리기진의 말에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백검맹으로부터 소동동이 납치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지 한 시진. 마침내 구양우경이 거처를 나섰다.

 

‘드디어 시작이군.’

 

냉소를 지은 그는 종리기진을 바라보았다.

 

“가서 사공강후에게 알려 주게.”

 

“예, 대형.”

 

 

 

* * *

 

 

 

호연유는 혈사령이 올린 보고서를 꼼꼼히 훑어보았다.

 

특별히 눈에 띄는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두 눈에서 모호한 빛이 떠올랐다.

 

‘산서 북쪽의 사투리를 쓴단 말이지?’

 

산서 북쪽에서 온 자라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도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왜 그런 자가 말단 무사로 삼성궁에 있단 말인가?

 

서문려려를 구할 때 드러냈다는 극한의 분노도 왠지 이상했다. 수하들의 설명대로라면, 단순히 의협심 때문에 분노했다고 보기에는 지나쳤다.

 

아름다운 그녀를 보고 반했던 걸까?

 

하지만 그가 삼성궁에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기껏해야 두어 번 얼굴을 봤을 터. 그것도 말은 제대로 붙여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아는 구양우경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리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테니까.

 

‘구양우경은 자신의 소유물에 남이 손대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놈이야. 다른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서문려려를 방에 처박아 둘 놈이지. 더구나 그토록 뛰어난 놈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어.’

 

그 때, 문득 서문려려가 본래 서문각의 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의 본명은 헌원려려. 고향이 장성 근처라 했었다.

 

그렇다면 대충 감이 잡힌다.

 

‘놈은 서문려려를 전부터 알고 있던 놈이야. 아마 삼성궁에 들어간 이유가 그 계집 때문일지도…….’

 

새파랗게 눈빛을 빛낸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는 혈사령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교도 중 산서 북쪽의 무사들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소?”

 

혈사령이 재빨리 머리를 굴리더니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있습니다, 소존. 도귀가 본 교에 들어오기 전 대동과 오대산 근처에서 활동했다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그를 데려오시오.”

 

 

 

잠시 후. 혈사령이 삼십 대 후반의 중년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가 바로 한때 대동사마(大同四魔) 중 하나였던 음사도귀(陰邪刀鬼) 마태였다.

 

호연유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산서 이북에서 나와 대등한 실력을 지닌 청년 고수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라.”

 

“젊은 나이에 소존과 비슷한 실력을 지닌 자가 천하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제가 아는 한, 산서 북쪽에는 소존의 손가락 하나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없다고? 정말이냐?”

 

마태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존. 산서 중부나 남부 쪽이라면 두어 명 있긴 합니다만…….”

 

호연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도 마태가 누굴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화린은 그들이 아니었다.

 

“정말 단 한 사람도 없단 말이지? 이상하군. 그가 산서 북쪽의 사투리를 심하게 쓸 정도면 그곳에 오래 살았다는 소린데 말이야.”

 

그 때 마태가 멈칫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산서를 벗어나 장성 이북까지 따지면 몇 사람 더 있습니다만…….”

 

“그래? 그런데 왜 없다고 한 것이냐?”

 

“모두 다섯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중원에 나타날 가능성이 전혀 없어서…….”

 

“가능성이 있든 없든 말해 봐라. 그게 누구냐?”

 

마태가 머뭇거리며 이름을 나열했다.

 

“첫 번째는 대막의 떠오르는 별, 대막일성(大漠一星) 금완각입니다. 두 번째는 북천마궁 최강의 무력단체인 흑룡대 대주 흑룡일기(黑龍一騎) 장추람이고, 세 번째는 한룡대주 냉호, 네 번째는 비룡대주 철교신,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그가 머뭇거리자 호연유가 눈을 치켜뜨고 재촉했다.

 

“다섯 번째는?”

 

마태는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질리는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나이 스물다섯에 북천을 평정한 패왕, 북천마제 북궁천입니다.”

 

 

 

 

 

* * *

 

 

 

철은보를 빠져나온 북궁천은 상남으로 달려가서 조관수와 유원당을 만났다.

 

그가 방으로 들어가자 유원당이 말했다.

 

“그 아이를 납치한 놈들이 서북쪽에 있는 관운묘로 들어갔네. 그 이후로 그 아이가 나오지 않았으니 아직도 관운묘 안에 있을 거네.”

 

“아직 감시하고 있습니까?”

 

“감시조를 이끌던 추혼검단(追魂劍團) 단주 예극생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철수하라고 했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음마(淫魔)를 사냥하러 가지요.”

 

 

 

상남을 관통한 동서 대로의 서쪽 끝을 벗어나 서북쪽으로 오 리 정도 가면, 아름드리 향나무와 느티나무로 둘러싸인 관운묘가 나왔다.

 

자정이 다 된 시각. 두 채의 사당이 담장으로 둘러진 관운묘는 인기척 하나 없이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바짝 말라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낙엽들이 뒹구는 그곳은 밤에 사람들이 돌아다닐 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러한데도 구양우경은 그곳까지 가는 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고 사위를 경계했다.

 

다행히 관운묘에 도착할 때까지 수상한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도한 그는 월동문을 지나서 관운묘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그가 사당으로 접근하자 사당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수룡위사대원 하나가 나오더니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살짝 고개를 끄덕여 준 구양우경은 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운평과 안에서 나온 수룡위사대원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너희들은 밖을 철저히 지켜라.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예, 소궁주. 안으로 들어가시면 우측에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이실 겁니다.”

 

운평이 내부를 설명하고 돌아섰다. 구양우경과 관련된 일은 많이 알수록 좋을 게 없었다.

 

구양우경은 눈치 빠른 운평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입술을 비틀며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 사당 안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던 등잔불이 바람에 출렁거리며 음산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간 그는 고개를 돌려 우측을 바라보았다.

 

운평의 말대로 시커먼 구멍이 아가리를 벌린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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