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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75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5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75화

 

75화

 

 

 

 

 

 

 

* * *

 

 

 

무림맹의 대표적인 젊은 고수 셋의 자존심을 새끼줄로 묶어서 옆구리에 찬 북궁천은 곧장 상남으로 갔다. 

 

유원당과 백검맹 무사들은 연합 세력이 빌린 객잔 세 곳 중 고풍객잔에 머물고 있었다. 

 

북궁천이 찾아갔을 때 유원당은 조관수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요.”

 

“나이 먹은 사람 만나는 게 재미없는 거겠지 뭐.”

 

뚱한 표정으로 대답한 유원당이 넌지시 물었다.

 

“그래, 종기를 치료하는 일은 잘돼 가고 있나?”

 

“슬슬 곪아 가고 있긴 한데, 엉뚱한 곳이 먼저 곪아 터질 것 같습니다.”

 

“엉뚱한 곳이 먼저 곪아 터진다? 흠, 혹시 그 일 때문에 온 것 아닌가?”

 

“원주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유원당이 콧소리를 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킁, 팔팔한 청년이 나처럼 나이 먹어 가는 사람을 만나러 올 때는 부려먹을 일이 있으니 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할 일이 있을 때가 좋은 것이지요. 일도 맡기지 않을 정도가 되면 갈 곳이 한 곳밖에 더 있겠습니까?”

 

유원당은 북궁천을 흘겨보더니 팔짱을 끼고 턱을 쳐들었다.

 

“험, 얼마 전만 해도 어수룩해 보여서 괜찮게 생각했는데, 갈수록 말만 느는군. 안 그렇습니까, 장로님?”

 

조관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빙그레 웃었다.

 

“허허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소. 누구도 일을 맡기지 않으면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말 아니겠소?”

 

“조 장로님까지 그렇게 말하시니 거절도 못 하겠군요. 어디 말해 보게. 무슨 일을 부려먹으려고 하는 건가?”

 

북궁천은 진기로 막을 형성해서 방 안의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막은 후 입을 열었다.

 

“오늘 해가 진 직후부터 한 곳을 감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시? 그건 나보다 조 장로님께 말해야 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조 장로님의 합석을 마다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관수는 북궁천의 청을 거절하기에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흐음, 이거 영락없이 그물에 걸린 셈이구먼. 내가 거절하면 가만 두지 않겠는데?”

 

북궁천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별말 다 한다는 투로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저는 당연히 허락하실 줄 알고 말씀드린 것인데, 거절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조관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야 유 원주의 마음을 이해하겠군. 자넨 정말 무서운 사람이야. 유 원주야 아직 팔팔하니까 부려먹을 만하지만 나처럼 다 늙어 가는 사람까지 가만 놔두지 않다니.”

 

유원당이 그 말에 불쑥 토를 달았다.

 

“조 장로님, 저도 삼 년만 더 지나면 쉰입니다.”

 

조관수가 어림없다는 표정으로 받아쳤다.

 

“우리 나이쯤 되면 삼 년의 세월이 삼십 년처럼 느껴지는 법이라네. 하루가 다르게 팔다리가 쑤시지. 유 원주도 곧 알게 될 거네.”

 

그런 조관수를 향해 북궁천이 말했다.

 

“산서에 다녀오실 정도의 기력이면 충분한 일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조관수는 입을 닫고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그물에서 벗어나기는 틀린 듯했다.

 

“허험, 말해 보게. 어딜 감시해야 하는 일인가?”

 

“감시해야 할 곳은 서쪽 대로 끝에 있는 당화점입니다. 그곳의 주인은 소동동이라는 여인인데, 누군가가 그녀를 노릴 겁니다. 하지만 그녀가 납치를 당해도 손을 써서는 안 됩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고, 저에게 바로 연락을 취한 후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추적하셔야 합니다.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이 따라붙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들을 발견해도 절대 싸워서는 안 됩니다. 만약 부딪칠 경우가 생기면 무조건 피하라고 하십시오. 단, 그녀가 위험해질 것 같다 싶은 경우는 예외입니다.”

 

유원당과 조관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 좀 더 자세히 말해 주면 안 되겠나?”

 

유원당이 북궁천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모든 걸 알면 두 분도 위험해질지 모릅니다.”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는 순간부터 위험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네만.”

 

북궁천은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긴 그럴지도 모른다. 또한 알고 하는 일과 모르고 하는 일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보다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하려면 사실을 말하는 게 나을지도…….

 

마음을 굳힌 그는 두 사람에게 먼저 약조를 받았다.

 

“좋습니다. 단,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마시고 두 분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유원당과 조관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겠네. 말해 보게.”

 

북궁천은 두 사람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점점 크게 벌렸다.

 

그리고 그가 말을 끝내자 깊은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맙소사,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죽일 놈이로군.”

 

“자칫하면 연합 세력이 분열될 수도 있으니 구양우경의 개인적인 일로 끝낼 생각입니다. 그 점 잊지 마시고 신중을 기해 주십시오.”

 

유원당이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알겠네. 자네 말도 일리가 있어. 한데 그 일이 사실로 드러나면 삼성궁이 뒤집어지겠군. 비룡가와 신도가 중 그 일을 아는 곳이 없진 않을 것이고,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혹시 그들도 이번 일에 움직이기로 했나?”

 

과연 자신이 유원당을 잘못 보진 않았다.

 

자신의 말만 듣고도 삼성궁의 권력 향방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단숨에 꿰뚫어 본다. 자신이 그들을 알 거라는 것까지도.

 

북궁천은 어차피 말한 것,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비룡가가 먼저 알아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이번 일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왜 그 일에 나선 건가? 단순히 구양우경이 악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가슴이 쿡 찔린 북궁천은 유원당의 맑고 깊은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협의지심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그를 제거해야만 할 이유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지요.”

 

유원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알겠군. 자네가 왜 만 리 길을 마다않고 여기까지 왔는지.”

 

너무 머리가 잘 돌아가도 탈이다.

 

자신의 정체는 물론 목적까지 모두 알아챈 것 같다.

 

“제가 조용히 돌아가는 걸 원하시면 좀 도와주십시오.”

 

유원당은 짐짓 두려워하는 척 어깨를 흠칫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지금까지 들은 협박 중 가장 무서운 협박이군. 걱정 말게. 나도 오래 살고 싶으니까.”

 

조관수는 그런 두 사람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뭔가가 있긴 한데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었다.

 

“나도 좀 알면 안 되나?”

 

유원당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것이 장수에 도움이 되실 겁니다.”

 

조관수는 고개를 모로 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곧 의문을 털어 냈다.

 

때로는 지나친 관심이 해가 될 때가 있는 법.

 

알려 주지 않으려는 걸 굳이 억지로 파헤치려 할 필요는 없었다. 유원당 말대로 비밀은 적당한 선까지만 알아야 장수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대신 그는 화제를 돌렸다.

 

“자네의 말은 잘 알아들었네. 최대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그 일에 투입하지. 그건 그렇고, 자네와 만났을 때 공격했던 자들을 궁금해한 적이 있지?”

 

분명 그랬었다. 그리고 이제는 북궁천도 그들이 누군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천사교 놈들 아니었습니까?”

 

“맞네. 바로 그놈들이었네.”

 

“그들이 왜 백진까지 가서 조 장로님 일행을 공격한 것입니까?”

 

북궁천이 정말로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조관수도 이제는 숨기지 않았다.

 

“우리가 철군성에 다녀온 이유를 알기 때문이네.”

 

철군성이라는 말에 북궁천의 눈빛이 반짝였다.

 

문득 그동안 잊고 있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 꼬마 계집애는 잘 있는지 모르겠군. 제법 귀여웠는데…….’

 

그가 공손설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조관수가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는 천사교를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네. 뭐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네만.”

 

알긴 했어도 준동을 하지 않아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삼성궁, 천무회, 무림맹 모두가 마찬가지였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놈들을 과소평가했다네. 그 바람에 일이 이렇게 커진 걸지도 모르지. 좌우간 놈들의 힘이 예상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것을 알고는 맹주께서 나를 철군성에 보내셨네.”

 

철군성주와 백검맹주는 오래전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하기에 천사교의 준동을 계기로 암암리에 혈맹을 맺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곳까지 달려와서 내가 지닌 비밀문서를 뺏으려고 했던 것이네.”

 

전말을 들은 북궁천은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때 조관수가 말했다.

 

“아마 그들도 곧 이곳으로 오지 않을까 싶네.”

 

북궁천의 눈이 커졌다.

 

“철군성 무사들이 온단 말입니까?”

 

“놈들이 공손 성주가 제일 아끼는 딸을 노렸다고 하네. 그 바람에 분노가 머리 꼭대기까지 솟구친 성주께서 고르고 고른 정예 고수를 보낼 거라 하더군.”

 

그제야 북궁천은 누가, 왜 공손설을 노렸는지 알 수 있었다.

 

‘철군성까지 오면 밀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 * *

 

 

 

“이게 다 그분 덕분이야.”

 

소동동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밤늦도록 당과를 만드는 일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앞으로도 요즘만 같았으면 원이 없을 텐데…….

 

그녀는 오랫동안 잊었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외상을 모두 갚을 수 있는 돈을 벌었다.

 

내일부터 버는 돈은 순수한 이익이 될 터. 철은보의 무사님들이 이삼 일만 더 팔아 줘도 가게를 새롭게 단장하고,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맛보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게가 안정되면 착한 사람을 만나서 예쁜 아이도 나을 생각이었다.

 

‘그분처럼 마음씨 좋은 사람을 만나야지.’

 

그녀는 자신에게 축복처럼 찾아온 키 큰 무사를 떠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그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있지 않은가?

 

‘내일은 그분을 찾아봐야겠어.’

 

고맙다는 인사도 하고 특별히 만든 과자도 전해 주고 싶었다.

 

소동동은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이 만든 과자를 바구니에 곱게 담았다.

 

그때 문설주에 매달린 등잔불이 갑자기 꺼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녀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등잔불을 바라보았다.

 

순간 뒷목이 묵직해지는가 싶더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응? 왜 이러지?’

 

그 생각을 끝으로 의식을 잃은 그녀는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간 그림자 하나가 그녀 뒤에 나타나더니 쓰러지는 그녀의 머리 위로 포대를 뒤집어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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