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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64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64화

 

64화

 

 

 

 

 

 

 

북궁천은 회룡당 대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그의 가공할 무위를 알게 된 수뇌부에서 부상자들 돕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자신들과 함께 움직이자고 했지만 그가 거부했다.

 

당장은 수뇌부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회룡당 무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편했다.

 

천광호는 그 말을 듣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뛰어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니까.’

 

반면 수룡위사대원들의 보호를 받는 구양우경을 볼 때는 이맛살이 와락 구겨졌다.

 

그는 그리 중한 상처가 아닌데도 들것에 누워서 이동했다. 그 바람에 수룡위사대원 둘이 불필요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싸울 사람 하나가 아쉬운 상황인데 저게 무슨 짓이야?’

 

그때 뒤쪽에서 소성이 급박하게 울렸다.

 

삐익! 삐이이익!

 

뒤로 처져서 천사교의 추적을 감시하던 잠은각 무사 신호음이었다.

 

적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

 

 

 

소성이 울린 지 일각이 지날 무렵.

 

후미를 향해서 검은 물결이 밀려들었다.

 

유난히 창백한 달빛 아래 비친 그들의 모습은 마치 까마귀 떼가 들판을 덮고 몰려오는 것 같았다.

 

일반 무사 일부가 중상자들을 도우면서 계속 이동하고 나머지는 돌아서서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북궁천도 이정한 등을 중상자와 함께 먼저 보냈다.

 

그리고 천광호를 비롯한 회룡당 무사 삼십여 명과 함께 후미로 처져서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어둠을 짓누르며 달려오는 자들의 숫자가 족히 일천은 될 것 같다.

 

숫자에서 서너 배의 차이.

 

게다가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고, 연합 세력의 수뇌부에 뒤지지 않는 고수들이 적지 않다.

 

다행이라면 넓은 평원이어서 전과 달리 움직임이 자유롭다는 것. 실력 대 실력의 대결이라는 점이다.

 

스릉! 챙!

 

수백 자루의 도검이 달빛 아래 새파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어둠을 흔들며 메아리치는 위효릉의 목소리.

 

“우리가 저들을 막지 못하면 하남의 정의가 무너질지도 모르오!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해 주시오!”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 즈음, 천사교도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연합 세력 무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와아아아아!

 

“천사의 혼으로 위선을 무리를 베라!”

 

“지옥으로 보내 주마!”

 

 

 

연합 세력 무사들과 천사교도들은 상대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눈이 벌게졌다.

 

천사교도들은 하나가 죽으면 또 하나가 달려들고, 둘이 죽으면 또 하나가 달려들었다.

 

싸움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백여 구의 시신이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 들판을 뒤덮었다.

 

광기에 가까운 고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비명과 신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귀청을 찢을 것처럼 울리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기운이 폭발하는 소리.

 

바닥에는 팔다리가 잘려서 나뒹굴고, 토막 난 몸에서 솟구친 피 분수가 허공에 안개처럼 퍼졌다.

 

어둠의 장막도 시뻘건 핏물만 가려 줄 수 있을 뿐, 숨 쉴 때마다 밀려드는 피비린내와 지독한 악취까지는 막아 주지 못했다.

 

아비규환. 온몸이 절로 진저리 쳐지는 상황!

 

절대의 경지에 이른 고수들조차 적아를 구분하기 힘든 난전에서는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선우강와 천종규가 심장이 뚫리고, 팔다리가 잘리며 처참하게 죽어 갔다.

 

천광호가 그 모습을 보고 악을 썼다.

 

“형님!”

 

송찬과 백종오가 그를 도와서 천종규에게 접근했다.

 

“당주! 우리가 막을 동안 승룡당주님을 모시고 물러나십쇼!”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천사교의 공격을 오랫동안 막아 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십여 초가 지나기 전에 백종오가 먼저 가슴이 길게 베어진 채 쓰러지고, 다시 오 초가 지날 무렵 송천마저 쓰러졌다.

 

천광호는 그걸 보고 진짜 미친 호랑이가 되어서 광분했다.

 

“얼마든지 와! 개새끼들아!”

 

 

 

시간이 흐르자 연합 세력의 무사들 쓰러지는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한 사람이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 누구도 다른 사람을 도울 겨를이 없었다.

 

등조립과 백리진은 독안마종과 여립을 상대하느라 손발이 묶여 있었다.

 

관호명과 사공강후를 비롯한 천무회의 고수들과 남궁원, 공한 대사를 비롯한 무림맹의 장로들도 구사령 중 일부와 마도 고수의 합공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합 세력에 고수가 많다 해도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양패구상이 확실한 형세. 연합 세력의 수뇌부 누구도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더구나 방어선이 뚫려서 포위망에 갇히면 빠져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 그들은 하나둘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즈음, 북궁천은 이십여 명의 천사교도를 쓰러뜨린 후 호연유와 구사령 중 둘을 상대했다.

 

묵혼이 어둠을 가를 때마다 호연유와 흑사령, 귀사령은 힘을 합쳐서 북궁천의 공격을 막았다.

 

셋이 덤비고도 밀리자 호연유는 치를 떨었다.

 

‘대체 이놈이 누군데 이리도 강하단 말이냐!’

 

흑사령과 귀사령은 공포심마저 들었다. 그것은 죽음과는 또 다른 두려움이었다.

 

북궁천의 공격을 받아 낼 때마다 그 충격으로 온몸이 떨렸다.

 

그나마 합공을 해서 충격을 가라앉힐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몇 초 받아 내지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반면 북궁천은 짜증이 났다.

 

‘정말 여우 같은 놈이군.’

 

숫자가 적은 연합 세력으로선 고수 십여 명만 손발이 묶여도 치명적이다.

 

소존이란 자는 방어에 치중해서 고수들을 묶어 놓고 연합 세력 무사의 숫자를 최대한 줄일 생각 같다.

 

자존심 따위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고 오직 승리만을 목적으로 삼았다는 뜻. 물론 천사교도의 죽음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일이지만 저들의 입장에서는 그 이상 좋은 방법이 없었다.

 

‘결국 힘을 더 드러내야 한다는 건가?’

 

그래야 한다면 할 수 없지!

 

북궁천은 북천을 떠나온 이후 처음으로 북천궁 최강의 패왕공인 북천명왕공(北天明王功)을 끌어 올렸다.

 

과거 관호명과 싸울 때는 몸이 엉망이어서 펼쳐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펼쳐도 부담 가지 않을 정도로 공력이 회복되어 있었다.

 

문제는 북천명왕공에 특징이 있어서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달빛이 밝긴 해도 모두가 격전에 정신이 팔려 있는 상태. 하물며 북천도 아닌 이곳에서 북천명왕공을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결심을 굳힌 그는 북천명왕공을 묵혼에 주입했다.

 

고오오오!

 

그가 검을 들어 올리자, 어둠이 은은히 떨리며 그를 중심으로 회오리쳤다.

 

그리고 곧 주위의 기운이 이지러지는 공간 속으로 빨려들었다.

 

북궁천을 공격하려던 호연유는 흠칫하며 공격을 한 발 늦추고, 흑사령과 귀사령이 먼저 북궁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찰나!

 

어둠 속에서 검강이 폭발하듯이 터졌다.

 

콰아앙!

 

천지를 울리는 귀청이 터질 것 같은 굉음! 

 

흑사령과 귀사령이 바위에 부딪쳐 튕겨난 구슬처럼 날아갔다.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멈춘 호연유는 눈을 홉뜨고 이를 악물었다.

 

훌훌 날아간 흑사령이 몸을 구긴 채 나뒹군다. 허리와 목이 괴이하게 꺾인 걸 보니 회복 불능의 중상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비틀거리며 겨우 땅에 내려선 귀사령도 팔 하나가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고, 악다문 입에서 억눌린 신음만 흘러나온다.

 

“끄으으윽!”

 

갑자기 훅 밀려드는 피비린내. 귀사령의 팔이 가루가 되어서 허공중에 흩어진 것 같다.

 

‘마, 맙소사!’

 

호연유는 단 일검에 흑사령과 귀사령이 당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천하에 저토록 패도적인 무공이 있다니! 

 

그는 공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부릅뜬 눈으로 북궁천을 바라보기만 했다.

 

북궁천은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묵혼을 가로로 그었다.

 

북천명왕공이 실린 일자패천검이었다.

 

순간, 어둠이 가로로 길게 갈라지는가 싶더니 비틀거리던 귀사령의 머리가 환영을 보는 것처럼 옆으로 미끄러져 툭 떨어졌다.

 

‘헉!’

 

호연유는 섬뜩함을 느낀 순간 반사적으로 이 장을 물러나서 검세의 동선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찰나였다.

 

등골이 오싹해지는가 싶더니 가슴이 시원해졌다. 가슴 옷자락이 길게 갈라진 것이다.

 

그때 위효릉이 악을 쓰며 외쳤다.

 

“모두 뒤로 물러나면서 적을 상대하시오!”

 

북궁천은 호연유를 지그시 바라보며 몸을 뒤로 뺐다.

 

북천명왕공을 펼치느라 일순간 공력이 허해진 상태. 무리해서 적진으로 뛰어들 이유는 없었다.

 

‘한 번만 더 펼칠 수 있었어도 저놈까지 죽였을 텐데. 운 좋은 줄 알아라, 여우 새끼!’

 

 

 

연합 세력의 수뇌부 십여 명과 북궁천이 후미를 막으며 후퇴했다.

 

독안마종과 여립이 이끄는 천사교도들은 죽음을 도외시한 채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연합 세력 무사 중 남은 자는 백칠팔십 명. 반면 천사교도는 아직 육칠백 명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처절하고 참혹한 도주가 십 리를 계속되는 와중에 천사교도는 이백여 명이 더 차디찬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이 추적을 멈췄을 때, 남아 있는 연합 세력 무사들은 백여 명에 불과했다.

 

 

 

후퇴하던 연합 세력 무사들은 상남을 삼십 리 남겨 놓은 지점에서 부상자들과 만났다.

 

그들은 돌아온 사람이 삼분지 일밖에 안 되는 걸 알고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나마 돌아온 사람들도 대부분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심지어 절대지경의 고수도 예외가 아니었다.

 

백리진은 내상을 입은 상태였고, 임강령은 가슴과 다리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관호명과 사공강후 역시 자잘한 외상과 내상을 입었고, 남궁원은 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원래부터 혈의를 입고 있었던 것처럼 옷이 피범벅된 위효릉이 창백한 표정으로 명을 내렸다.

 

“철은보로 갑시다.”

 

이전에 비해서 자신감이 현저하게 떨어진 목소리였다.

 

 

 

* * *

 

 

 

철은보에 도착한 연합 세력은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서평과 각 세력으로 전령을 보냈다.

 

현재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서평까지 후퇴하는 게 나을지 몰랐다. 그러나 상남을 고스란히 넘겨주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날 오후, 각 세력의 수뇌부는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이 안정되자 그 일로 격론을 벌였다.

 

그리고 결국 천사교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라도 철은보에 남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외라면 부상을 핑계로 돌아갈 줄 알았던 구양우경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가 그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사공강후 때문이었다.

 

그러잖아도 부상당한 채 돌아가면 사공강후에게 영원히 패배감을 느낄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그런데 사공강후가 그를 찾아와서 말했다.

 

“구양 형, 몸도 안 좋은데 궁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소? 아무래도 천사교와의 험악한 싸움은 구양 형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소만.”

 

그 말이 마치 비웃는 것처럼 들렸다.

 

너처럼 약한 자가 험난한 싸움터에서 어떻게 견디겠냐는 말처럼 느껴졌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되받아쳐 줬다.

 

“내 걱정은 마시오, 며칠이면 다 나을 테니까. 그런데 사공 형이야말로 마음이 약해서 문제요. 놈들은 봐주면서 싸울 자들이 아닌데, 손속에 너무 인정이 넘치더구려. 하하하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문려려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서 그동안 아껴 두었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천무회의 소회주인 사공강후가 남아 있는 이상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더구나 자신이 빠지면 단화린이 대신 사공강후와 함께 평가될 것인데, 두 눈 뜨고 그 꼴을 어찌 본단 말인가!

 

그리고 또 다른 이유라면,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쟁터에서는 사람을 어떻게 죽이든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몰래 숨어서 죽일 필요도 없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마음껏 누구를 죽인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솜털이 곤두서는 전율!

 

 

 

* * *

 

 

 

철은보로 돌아온 그날 밤.

 

천광호는 어디서 술을 구했는지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셨다.

 

그리고 미친 호랑이가 술 취한 호랑이가 되어서 북궁천에게 속을 다 털어놓았다.

 

“이봐, 단화린. 내가 왜 미친놈처럼 지낸 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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