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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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61화
61화
5장. 재회
북궁천이 계곡 입구에 도착한 것은 화살비가 그친 직후였다.
바로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집채만 한 바위에 내려선 그는 계곡 안쪽의 광경을 보고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졌다.
땅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도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꽂혀 있었다.
얼마나 많은 암기를 뿌렸는지 바닥에 검은 콩과 가시 달린 열매를 뿌려 놓은 듯했다.
온몸에 대여섯 개의 화살이 박힌 채 비틀거리는 사람. 바닥을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사람…….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한순간에 수백 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상태.
승리를 확신하며 정신이 해이해져 있던 연합 세력으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황보청과 종리기진은?’
북궁천은 그 두 사람부터 찾아보았다.
다행히 그들은 부상을 당하지 않은 채 적과 싸우고 있었다.
죽기를 바랐던 구양우경도 아직 멀쩡했다.
‘저 자식은 명도 길군. 하늘은 뭐 하는 거야?’
북궁천은 그가 살아 있는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바위에서 날아내렸다.
연합 세력이 계곡에 갇혀서 협공을 당하는 형국. 일단은 빠져나올 구멍을 만들어 줘야 했다.
검을 빼 든 북궁천은 입구를 막고 있는 천사교도의 후미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가 다가가는 걸 보고도 천사교도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사람이 더 합세한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그가 이 장 거리까지 접근하자 두 사람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고 싶다면 죽여 주마!”
“낄낄낄, 젊은 놈이 겁이 없군.”
북궁천은 그에 대한 답례로 죽음을 선사했다.
번쩍!
단 일검으로 두 사람을 갈라 버린 그는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두 사람 사이를 지나서 천사교도의 후미를 쳤다.
상대의 등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앞에 있는 자들은 쓰러뜨려야 할 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묵혼이 허공을 가르며 번쩍일 때마다 천사교도 두세 명이 픽픽 꼬꾸라졌다.
천사교도들은 십여 명이 당한 후에야 그의 존재에 대해서 부담을 느꼈다.
“저놈을 찢어 죽여라!”
분노의 명령이 떨어지자, 천사교도 대여섯 명이 북궁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진을 멈춘 북궁천은 그 자리에 오연히 서서 달려드는 자들만 처리했다.
쩌저적!
묵뢰가 번뜩이고 대기가 쩍쩍 갈라질 때마다 천사교도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쾅!
일성 벽력과 함께 두 사람의 몸뚱이가 훌훌 날아갔다.
천사교도들은 앞서 달려든 자가 힘 한 번 못 써 보고 죽는 걸 보고도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불길을 향해 날아가서 온몸을 태우고 죽어 가는 불나방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몇 차례에 걸쳐서 이십여 명이 죽어 가자, 포위망 한쪽이 느슨해졌다.
연합 세력 무사들도 그걸 느꼈는지 느슨해진 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연합 세력의 수뇌부는 전력을 다해서 적의 공격을 막으며 부상자가 입구 쪽으로 이동할 때까지 시간을 벌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그들도 뒤로 조금씩 후퇴했다.
호연유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독 안에서 빠져나가겠다? 쉽지 않을 걸?”
순수한 무력만 따진다면 천사교도가 조금 밀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화살과 암기 공격으로 적의 삼분지 일이 타격을 받아서 이제는 전력이 역전되었다.
게다가 알량한 정의감에 불타는 저들은 부상자들을 방치하지 못할 것이니, 그 또한 저들에게는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승리뿐.
무려 칠백의 목숨을 개밥처럼 던져 주고 얻은 승리였다. 최대한 더 많은 적을 죽여서 원혼을 달래야 했다.
“힘을 내라, 천사를 따르는 이들이여! 적의 피로써 죽어 간 원혼을 달래라!”
호연유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계곡을 뒤흔들었다.
천사교도들도 마주 소리치며 광란했다.
우우우우우!
“천사의 세상를 위하여 놈들을 죽여라!”
“위선의 무리를 제거해 새 세상을 만들자!”
“형제들이 죽어 간 대지에 저놈들의 피를 뿌려라!”
광기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그러잖아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들은 광기를 일렁이며 상대의 도검을 향해 뛰어들었다.
먼저 뛰어든 자가 죽어 가며 상대의 손발을 늦추면 다음에 뛰어든 자가 살수를 펼쳤다.
광기 들린 공격!
당황한 연합 세력 무사들은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멈칫거리다가 고육지계에 휘말린 수십 명이 자신의 실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목숨을 잃거나 중상을 입었다.
개중에는 절정 고수가 십여 명이나 되었고, 무당의 청명 도장과 천무십절 중 하나인 노광수마저 당하고 말았다.
대부분 방심하거나 손에 인정을 남겨 두었다가 적에게 당한 것이다.
위효릉은 답답해진 마음에 악을 쓰듯 소리쳤다.
“열이든 백이든, 사정을 봐주지 말고 전력을 다해서 죽이시오!”
누구보다 그 말을 잘 지키는 사람이 구양우경이었다.
온몸이 피로 뒤덮인 그는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는 검을 내지르는 데 한 점 망설이지 않았다.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상대의 목을 벴다.
‘죽어라, 죽어! 이놈들!’
그에게서 뿜어지는 살기가 어찌나 강한지, 사람들 눈에는 그가 천사교도보다도 더 광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날뛰어도 광기에 찬 천사교도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은 그도 천사교도의 칼에 옆구리를 베이고 말았다.
섬뜩한 느낌, 짜릿한 통증!
“크윽!”
잇새로 신음을 흘린 그는 눈을 부릅뜨고 검을 내질렀다.
번개처럼 뻗어 간 검은 상대의 심장을 꿰뚫고 뒤로 삐져나왔다.
그는 검을 바로 빼지 않고 옆으로 잡아 빼며 가슴을 길게 갈랐다.
시뻘건 핏물이 쏟아졌다.
그의 눈빛도 붉게 달아올랐다.
입가에 걸린 묘한 웃음.
‘멋지군. 정말 멋져!’
피가 쏟아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묘한 쾌감에 온몸이 짜릿했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조차 쾌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를 보호해야 하는 수룡위사대원들로서는 간이 철렁한 순간이었다.
그들은 다섯이 죽고 넷밖에 남지 않지 않았지만 목숨을 던져서라도 구양우경을 지켜야 했다.
“소궁주! 뒤로 물러나십시오!”
구양우경도 더 이상의 부상은 원치 않았다.
그는 수룡위사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한지 움직일 때마다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들었다.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늦게 나선 수룡위사대원들에게 화를 전가시켰다.
‘멍청한 놈들! 나서려면 내가 다치기 전에 나서야지!’
그때였다.
근처에서 싸우던 천무회 무사 중 하나가 후퇴하기 위해서 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가 그와 스치듯 부딪쳤다.
평소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적이 아니라는 생각에,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바람에 미처 피하지 못했다.
설령 부딪쳤어도 다른 때였다면 웃으며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천무회 무사의 팔꿈치가 하필이면 부상을 입은 그의 옆구리를 찍었다.
‘크윽!’
머리끝이 쭈뼛 설 정도의 강렬한 통증!
‘이 빌어먹을 놈이 조심하지 않고!’
극한의 분노에 이성이 마비된 그는 마침 그자의 등이 코앞에 보이자 검을 반사적으로 내밀었다.
“죄송…… 헉!”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몸을 돌려 사과하려던 천무회 무사는 입을 쩍 벌렸다.
구양우경은 뻗어 나간 검기가 심장을 뚫었다는 느낌이 들자 재빨리 검을 거두었다.
그러고는, 눈빛을 파르르 떨며 쓰러지는 그의 몸을 붙잡아 안으며 소리쳤다.
“이보시오! 정신 차리시오!”
그는 그 와중에도 내가장력으로 천무회 무사의 심장을 으스러뜨렸다.
‘죽일 때는 확실히 죽여야 해.’
“이, 이……!”
천무회 무사는 입을 두어 번 달싹거리다가 눈을 부릅뜬 채 고개를 떨어뜨렸다.
보일 듯 말 듯 비릿한 조소를 지은 구양우경은 천무회 무사의 심장을 눌렀던 손을 떼고 몸을 내려놓았다.
때마침 선우강이 물러서며 그에게 소리쳤다.
“소궁주! 죽은 사람까지 챙길 수는 없으니 어서 물러나시게!”
구양우경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죽었다 해서 이대로 저놈들 손에 맡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네!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구양우경은 착잡한 표정으로 말하며 빠르게 물러났다.
그때 입구 쪽에서 환호에 가까운 외침이 울렸다.
“구멍이 뚫렸다! 빠져나가라!”
관호명, 좌궁생과 함께 천사교의 구사령을 상대하고 있던 사공강후는 입구가 뚫렸다는 소리를 들리자 즉시 천무회 무사들을 후퇴시켰다.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후퇴하시오!”
관호명은 사공강후가 바로 움직이지 않고 후미에 남으려고 하자 물러설 것을 종용했다.
“소회주가 먼저 가게! 어서!”
“제 걱정 마십시오, 숙부! 저는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좌 장로께서는 어서 무사들을 이끌고 뒤로 빠지십시오!”
관호명도 사공강후의 고집을 알기에 더 이상 종용하지 않았다. 대신 사공강후와 나란히 서서 좌궁생과 천무회 무사들에게 지시했다.
“어서 가시게! 모두 좌 장로를 따라서 물러서라!”
* * *
한쪽은 필사적으로 탈출하고, 한쪽은 목숨을 던져서라도 상대를 죽이려 한다.
처절함이 극에 달한 대격전!
북궁천조차 싸움이 길어지면서 오래전에 식어 버린 피가 끓어올랐다.
이건 단순한 세력 싸움이 아니다. 전쟁이다.
정과 마의 한판 승부!
그리고 그 전쟁의 중앙에 자신이 서 있다.
북천을 휘젓던 패왕, 북천마제가!
‘정말 오랜만의 기분이군.’
광활한 북천의 대지를 질타하며 상대를 무너뜨리고 정복했던 그였다.
그가 가는 곳마다 혈풍이 불었고, 혈해가 넘실댔다.
수만 명이 오체복지하며 그에게 굴복했다.
불과 몇 년 전에 말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정복하기 위함이 아닌 뭔가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헌원려려가 바라던 대협의 길과는 다를지라도, 힘없는 자를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닐지라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검을 쓰는 것도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저 자식만 죽었으면 금상첨화인데…….’
삼성궁 간부들에게 둘러싸여서 입구를 빠져나오는 구양우경이 보였다.
온몸이 피로 물든 모습. 옆구리를 부여잡은 걸 보니 상처가 제법 큰 것 같았다.
북궁천은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지만.
‘확, 심장이나 뚫려 버리지.’
남이 알면 속 좁은 놈이라는 욕을 할지 모르지만, 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진심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냉랭한 목소리가 계곡을 울렸다.
“감히 내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다니! 백번 죽어 마땅한 놈이로구나!”
동시에 밀려드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
북궁천은 고개를 들어 기운이 밀려드는 곳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허공을 걷듯이 날아오고 있었다.
하얀 얼굴, 머리에는 은빛의 휘황한 도관을 쓰고 있었는데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이었다.
북궁천은 날아오는 그를 향해 몸을 날리며 묵혼을 내리그었다.
‘오냐, 이놈! 구양우경 대신 네놈의 머리를 쪼개 주마!’
쩍!
묵광이 천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호연유는 단순한 검세에서 가공할 거력이 느껴지자, 전 공력을 끌어 올려서 새하얀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콰르르르릉!
벽력음과 함께 대기가 터져 나가고, 서로를 향해 마주쳐 가던 두 사람의 몸이 뒤로 훌훌 날아갔다.
삼 장여를 날아가 땅에 내려선 북궁천은 호연유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