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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88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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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마정록 88화

 

88화

 

 

 

 

 

 

 

천기룡은 상황을 모두 설명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천군호의 눈이 북궁천을 향했다.

 

“선우중이 음마라는 증거가 있는가?”

 

“있습니다. 다만 그에 대한 증거는 현재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증거를 가진 사람들이 도착할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증거를 가진 사람들이 누구냐?”

 

“그에 대해서도 그분들이 오시면 저절로 아시게 될 겁니다.”

 

냉정하게 말을 자른 북궁천은 별원 안에 모인 삼성궁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여기서 목소리 높여 봐야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사람들이 더 몰려오면 회룡당으로서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유원당, 천기룡과 함게 별원으로 들어가면서 천광호와 회룡당 무사들에게 별원의 외부를 지키게 했다.

 

덕분에 삼성궁 외의 사람들은 아직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들도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들었을 테니 어느 정도 상황은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목소리만 들은 것은 천양지차였다.

 

삼성궁의 세 가주는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세 사람이 다퉈 봐야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었다.

 

북궁천은 그들이 입을 다물자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 선우중을 철은보 뇌옥에 투옥시켜 놓고, 자세한 것은 그분들이 오신 다음에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북궁천은 선우중이 구양우경의 방으로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발 빠른 이조량을 미리 임강령에게 보내 놓은 상황이었다.

 

이조량은 전력을 다해서 영진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자정이 막 넘어갈 무렵, 임강령과 사공강후가 철은보에 도착했다.

 

철은보에 있던 사람들은 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두 번째 음마가 잡혔다고 했다.

 

충격적이게도 삼성궁 신도가 가주의 둘째 아들인 선우중이라고 한다. 잠을 자고 싶어도 결과가 궁금해서 잘 수가 없었다.

 

그들은 증거를 가진 사람들이 도착했다고 하자 스멀스멀 방에서 나왔다.

 

북궁천은 선우중을 철심전으로 옮겼다.

 

천광호가 어깨를 편 채 선두에 서고, 회룡당 무사들이 선우중을 멘 황보청을 둘러싼 채 철심전으로 향했다.

 

철심전에는 삼성궁의 세 가주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과 각 세력의 주요 인사 몇 명, 그리고 영진에서 돌아온 임강령과 사공강후가 모여 있었다.

 

황보청이 선우중을 바닥에 내려놓자 선우명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도망가지 못할 테니 그 아이의 혈도를 풀어 주게.”

 

북궁천이 지풍을 날려서 선우중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마혈은 풀어 주지 않았다.

 

“자결할지 모르니 마혈은 풀어 줄 수 없습니다. 이해하십시오.”

 

선우중은 말문이 트이자 절절하게 소리쳤다.

 

“아버님, 저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구양 형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약을 먹인 것뿐입니다! 정말입니다!”

 

유원당이 냉랭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앵속과 음약이 섞인 약을 말인가?”

 

“많은 양을 복용하면 위험해도 적은 양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혈류를 원활하게 해 주어서 구양 형처럼 정신에 이상이 생긴 분에게는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복용시킨 것뿐입니다!”

 

그럴듯한 변명이었다.

 

앵속과 음약을 지닌 것 자체도 잘못이긴 하지만, 최소한 음마라는 사실보다는 나았다.

 

선우명도 선우중의 편을 들어 주었다.

 

“이 아이가 이상한 약물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소. 하지만 복용시킨 목적이 소궁주를 살해하기 위함은 아닐 것이오. 오랫동안 형제처럼 지내 왔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가졌겠소?”

 

구양환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아들을 죽이려 한 점은 괘씸하지만, 선우중을 음마로 확정지으면 구양우경도 음마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우 가주의 말도 일리기 있어 보이네만.”

 

북궁천은 임강령을 바라보았다.

 

“서신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임강령이 착잡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두 장의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군웅들의 시선이 모두 서신에 집중되었다.

 

임강령이 먼저 반쪽이 탄 서신을 가리켰다.

 

“이것은 누군가가 소궁주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그 내용은…….”

 

군웅들은 서신의 글을 읽으며 임강령의 설명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눈빛이 싸늘해졌다.

 

구체적인 내용은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고심해서 생각할 것도 없이 서신의 주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유추가 가능했다. 소동동이라는 살아 있는 증거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구양환은 후회를 씹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빌어먹을. 군웅들이 떠난 직후에 놈을 처리했어야 했어.’

 

완벽을 기하려고 하루를 기다렸는데 그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저 어리석은 놈만 아니었어도……!’

 

그 때 설명을 마친 임강령이 두 번째 종이를 가리켰다. 종이는 한쪽 구석이 접혀 있었다.

 

“이것은 제가 필체 대조를 위해서 청년들에게 질문을 돌리고 받은 답지입니다.”

 

그의 시선이 선우명을 향했다.

 

“가주, 이 필체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시겠습니까?”

 

이를 악문 선우명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천군호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장의 필체가 똑같군.”

 

군웅들은 동의한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임강령이 종이의 접힌 부분을 펼쳤다.

 

그곳에는 선우중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선우명은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임강령은 자신이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주도권을 북궁천에게 넘겼다.

 

“이제 자네가 말해 보게.”

 

북궁천이 무심한 표정으로 군웅들을 둘러보며 결론을 내렸다.

 

“보시는 대로 선우중이 쓴 답지와 구양우경이 의문의 인물에게 받은 서신의 필체가 똑같습니다. 그리고 선우중은 군웅들이 출동해서 철은보가 한산해진 사이, 구양우경을 몰래 찾아가 수상한 약을 복용시켰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아, 아닙니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궁주님! 저는 구양 형님께 서신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구양 형님을 죽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선우중이 악을 쓰며 부인했다.

 

구양우경과 그는 주고받은 서신을 반드시 태우거나 가루로 만들어서 없애거늘, 어떻게 서신이 남아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진위 여부를 떠나서, 사실을 인정하면 그 순간 끝장이다.

 

설령 그보다 더한 증거가 있어도 부인해야만 했다.

 

북궁천은 탁자 위의 서신을 들어서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잘 봐. 네가 직접 쓴 거니까. 구양우경이 전부 없앤 줄 알았겠지?”

 

선우중은 자신이 쓴 서찰이 정말로 남아 있다는 걸 알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난 아니야.”

 

그러나 그의 눈빛은 이미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구양환은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군웅들을 향해 포권을 취한 그는 그르렁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먼저 여러분께 들 낯이 없소. 우경이가 중아와 한패로 놀아났다는 말을 믿고 싶지 않지만, 드러난 정황이 확실하니 더 이상 감싸지 않겠소. 모두 자식을 잘못 교육시킨 부모의 죄외다. 하나 이에 대한 책임론은 천사교와의 싸움이 끝난 후로 미루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오.”

 

무림맹의 장로인 종남파의 송양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궁주의 말뜻을 어찌 모르겠소. 빈도 역시 그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오. 지금 일을 크게 만들어 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소?”

 

다른 사람들도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선우중마저 음마로 밝혀지면서 막다른 골목까지 밀린 삼성궁이다. 여기서 더 건드려 봐야 반목만 살 뿐이었다.

 

천사교와의 싸움을 앞둔 상황에서 그 일은 정파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침묵이 이어질 무렵, 사공강후가 입을 열어 구양환을 몰아붙였다.

 

“당장은 천사교를 무찌르는 일이 급해서 미루긴 하나, 두 사람에 대한 처리는 나중에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도 삼성궁 자체가 아닌 강호의 이름으로 처리되어야 합니다. 궁주께서 그에 대한 확고한 대답만 해 주신다면, 오늘 일은 천사교와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 묻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구양환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강호의 이름으로 처리한다는 말은 무림공적이 된다는 뜻.

 

삼성궁, 특히 검신가에는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우경이와 선우중이 천벌을 받을 짓을 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네. 그러나 소동동이라는 여자아이 외에는 딱히 강호에서 두 사람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네. 그 여자아이와는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룬 상태고. 그런데도 강호의 이름으로 처벌을 한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사공강후도 그 말에는 바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삼성궁의 시비 외에 다른 피해자가 있다 해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소동동을 제외하면 삼성궁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때 유원당이 물었다.

 

“만약 삼성궁의 사람 외에 다른 피해자가 있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없기를 바라지만, 있다 해도 구양환이 대답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두 사람을 강호의 법도에 맡기겠소.”

 

유원당은 당연히 그런 답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사공강후에게 물었다.

 

“그 정도면 되겠는가, 사공 공자?”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더 이상 따지지 않고 궁주님의 말씀대로 처리를 뒤로 미루겠습니다.”

 

“그럼 그 일은 그 정도로 정리하고, 이제 선우중의 입을 여는 일만 남았군요.”

 

유원당은 상황을 일사천리로 정리한 후 가장 중요한 문제를 꺼냈다.

 

선우중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지옥과 천당이 오갈 터. 어느 정도 풀어졌던 구양환과 선우명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그 때 천종원이 나섰다.

 

“선우중에 대한 심문은 저희 잠은각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천무회나 무림맹, 백검맹이 심문하겠다고 하면 겨우 잡아 놓은 불길이 다시 커진다.

 

단화린이 군웅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나서면 최악이고.

 

구양환과 선우명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천종원의 청을 승낙했다.

 

“좋네, 심문은 잠은각이 맡게.”

 

“그게 좋겠군.”

 

유원당도 한 가지 조건을 걸고 잠은각의 심문을 받아들였다.

 

“심문을 할 때 몇 사람이 참관할 수 있다면 저 역시 찬성입니다.”

 

북궁천은 그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선우중을 심문할 생각이 없었다.

 

선우중을 잡아 구양우경에게 다른 죄가 있다는 것을 밝힌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은 끝났다.

 

구양환이 헌원려려를 붙잡아 둔 이유는 구양우경 때문. 그런데 구양우경이 선우중과 함께 음악한 짓을 했다는 게 드러났으니 이제는 더 붙잡아 둘 명분이 없게 되었지 않은가 말이다.

 

그녀가 떠난다 해도 붙잡지 못할 터. 나머지 일은 삶아 먹든 볶아 먹든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는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천종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제 비룡가가 저에게 약속을 지킬 차례군요.

 

천종원은 자연스런 동작으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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