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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87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87화

 

87화

 

 

 

 

 

 

 

하지만 그도 잠시, 웃음은 곧 겁에 질린 목소리로 변했다. 그리고 뒤이어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미쳤군.’

 

선우중은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본 다음, 창문에 구멍을 내고 안을 살펴보았다.

 

등잔불빛이 희미한 방 안에 구양우경이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웃고 울다 지쳤는지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그는 창문을 잡고 살짝 당겨 보았다.

 

안에서 고리를 안 채운 듯 창문이 순순히 들렸다.

 

‘다행이군.’

 

소리 나지 않게 반쯤 창문을 들어 올린 그는 빨려 들어가듯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 달라붙은 선우중은 조심스럽게 창문을 닫았다.

 

그 때 구양우경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킬킬킬, 왔구나. 나 좀 구해 줘라. 우리 놀러 가야지? 응? 크흑흑흑흑, 그런데 다리가 왜 안 움직이지? 그 자식, 그놈이 부쉈어. 으으으으, 요, 용서해 줘. 다시는 안 그럴 게. 흑흑흑, 그냥 장난으로 해 본 거야. 살려 줘.”

 

자신을 알아본 줄 알고 깜짝 놀랐던 선우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제대로 미쳤군.’

 

그는 걸음을 옮겨서 구양우경에게 다가갔다.

 

구양우경은 여전히 울면서 겁에 질린 표정으로 웅얼거리고 있었다.

 

침상 앞에 선 선우중은 구양우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우경 형,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구양우경은 눈을 두어 번 깜박이더니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화린,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안 할게. 흑흑흑, 그런데 서문려려는 어디 갔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선우중은 그래서 더 불안했다. 언제 저 입에서 자신에 대한 말이 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그는 더 망설이지 않고 품속에서 작은 옥병을 하나 꺼냈다.

 

“우경 형을 위해서 좋은 약을 가져왔습니다.”

 

순간, 구양우경이 눈을 부릅뜨고 악을 썼다.

 

“네가 그 계집을 뺏으려고? 안 돼, 그 계집은 내 거야. 누구도 못 뺏어 가!”

 

선우중은 다급히 그의 아혈을 점했다.

 

“쉿! 뺏어 가지 않을 테니 조용히 하십시오.”

 

그러고는 옥병의 마개를 열고 구양우경의 입에 가져다 댔다.

 

양쪽 어깨의 힘줄이 다 찢어졌기 때문인지 어깨를 들썩이긴 해도 손을 들어 막진 못했다.

 

선우중은 빙그레 웃으며 옥병을 기울였다.

 

“이걸 마시고 한숨 푹 자면 다 나아 있을 겁니다.”

 

옥병에서 하얀 액체가 흘러나와 구양우경의 입안으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 때였다.

 

쾅!

 

방문이 부서질 것처럼 세차게 열리더니 황보청과 종리기진이 들어왔다.

 

“멈춰!”

 

대경한 선우중은 홱 고개를 돌려 방문을 바라보고는 급히 옥병을 회수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고개를 돌린 사이, 구양우경이 갑자기 입을 벌리고 그의 손을 물었다.

 

선우중은 반사적으로 손을 뺐다.

 

그러나 손은 겨우 빼냈지만 옥병은 구양우경의 이에 걸려서 이불 위에 떨어졌다.

 

당황한 선우중이 옥병을 회수하기 위해 손을 뻗은 순간, 황보청과 종리기진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놓고 물러서!”

 

일갈을 내지른 황보청이 선우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보다 먼저 종리기진의 벼락같은 쾌검이 선우중의 턱으로 날아들었다.

 

등골이 오싹해진 선우중은 옥병을 잡지 못하고 급히 몸을 뒤로 젖혔다.

 

동시에 황보청의 공세가 그를 압박했다.

 

두 사람은 북궁천의 가르침을 받아서 전에 비해 월등히 강해진 상태였다.

 

구양우경이 온전하다 해도 두 사람을 이기려면 곤욕을 치러야 할 정도.

 

하물며 선우중의 실력으로는 두 사람의 협공을 막아 내기에 역부족이었다.

 

황보청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그가 창문 쪽으로 물러난 순간, 종리기진의 섬전 같은 일검이 선우중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선우중은 눈앞에서 시퍼런 검기가 번쩍이자 안색이 창백해졌다.

 

“움직이지 마!”

 

종리기진이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대고 싸늘히 소리쳤다.

 

눈을 부릅뜬 선우중은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왜, 왜 이러는 거요?”

 

황보청이 이불 위의 옥병을 회수하고 선우중을 노려보았다.

 

“몰라서 묻나? 이건 뭐지?”

 

“그, 그건 약이오. 구양 형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온 것이오.”

 

“흥, 약인지 독인지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그런데 왜 창문으로 몰래 들어와서 먹인 거지?”

 

선우중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조금씩 안정되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누가 몰래 들어왔단 말이오? 경비무사들이 보지 못했을 뿐, 나는 방문을 통해서 들어 왔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봉사인 줄 아나 보군.”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소. 그런데 당신들이 왜 나를 핍박하는 거요? 내가 신도가의 아들이란 걸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이 검을 치우시오.”

 

선우중은 천천히 손을 들어서 종리기진의 검을 밀치려 했다.

 

“움직이면 후회할 거다.”

 

냉랭히 말한 종리기진이 그의 목에 바짝 닿은 검을 밀었다.

 

예리한 검첨이 살을 파고들자 선우중의 몸이 굳었다.

 

“형님, 그냥 죽여 놓고 조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구양우경처럼 병신으로 만들고 보죠.”

 

“저항하면 그렇게 해.”

 

종리기진과 황보청의 말에 선우중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때 황보청이 그에게 다가가더니 마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선우중은 몸을 틀어서 황보청의 공세를 피했다.

 

“흥, 어딜!”

 

종리기진의 검이 그림자처럼 따라가며 그의 어깨를 훑었다.

 

선우중은 부상을 무릅쓰고 바닥을 밀면서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찢겨져 나간 어깨의 옷자락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팔이 떨어져 나간 듯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방문이 지옥에서 빠져나가는 관문이라도 되는 듯 전력을 다해서 몸을 날렸다.

 

황보청은 그걸 보면서도 서두르기는커녕 조소를 지었다.

 

“고생문을 찾아가는군.”

 

선우중이 막 방문을 통과할 때였다.

 

쾅!

 

“크억!”

 

일성 굉음과 함께 선우중의 몸이 안쪽으로 날아들며 나뒹굴었다.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피를 한 움큼 토하며 다시 꼬꾸라졌다.

 

그 때 북궁천이 유원당과 천기룡을 대동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선우중은 덜덜 떨면서 고개를 쳐들었다.

 

가운데 선 키가 큰 자는 전날 얼핏 본 단화린이라는 자였다. 구양우경을 불구로 만들었다는 자.

 

그리고 그의 우측에는 유원당이, 좌측에는 비룡가의 천기룡이 서 있었다.

 

그는 천기룡을 보며 안간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기, 기룡 형님. 대, 대체 무슨 일입니까?”

 

북궁천은 지풍을 쏘아서 선우중의 마혈과 아혈을 제압했다.

 

“왜 이러는지 곧 알게 될 거야. 네놈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줄 테니까.”

 

싸늘하게 말한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 원주님, 구양우경의 상태를 좀 봐 주시지요.”

 

유원당이 구양우경에게 다가가 입 안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불을 찢어서 그의 입 안을 닦아 냈다.

 

이불에 묻은 이물질에 코를 들이댄 그가 옥병을 들고 있는 황보청에게 물었다.

 

“얼마나 복용했지?”

 

황보청이 옥병을 흔들어 보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반 이상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서 많이 마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바로 잡지 않고 뭐했어?”

 

유원당이 다그치자, 황보청은 머쓱한 표정으로 모든 죄를 선우중에게 떠넘겼다.

 

“저놈이 설마 바로 손쓸 줄 알았어야죠. 혹시라도 괜찮은 정보가 있을까 싶어서 귀를 기울였는데, 구양우경의 목소리가 갑자기 안 들리지 뭡니까. 그래서 곧바로 쳐들어왔는데도 조금 늦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 황보청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라 해도 선우중과 구양우경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싶어 했을 테니까.

 

북궁천은 황보청과 종리기진을 탓하지 않고 유원당에게 물었다.

 

“독입니까?”

 

“독은 아니네. 하지만 독만큼이나 나쁜 것이지. 아니, 어쩌면 독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겠군.”

 

유원당은 황보청에게서 옥병을 받아 들고는 선우중을 노려보며 마저 말했다.

 

“모든 성분을 알 순 없지만, 앵속과 음약이 섞인 것은 분명하네. 이걸 반만 복용했어도 죽은 줄 모르게 죽었을 거야.”

 

북궁천은 고개를 돌려 천기룡을 바라보았다.

 

“음마에 대한 말을 들어 봤을 거요. 선우중이 그중 하나요. 천 형은 이곳에서 본 것을 사실대로만 이야기해 주면 되오. 할 수 있겠소?”

 

천기룡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소. 저런 놈들과 호형호제하며 살아왔다니. 사람을 못 알아본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소.”

 

“좋소. 황보 아우, 놈을 끌고 나가자.”

 

황보청이 덜덜 떨고 있는 선우중을 들어서 어깨에 걸치고 방을 나섰다.

 

아혈이 막힌 구양우경은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몽롱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간 북궁천 등이 마당에 내려서자마자 이십여 명이 별원으로 들이닥쳤다.

 

“멈춰라!”

 

북궁천 등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들어선 자들을 바라보았다.

 

삼성궁 검신가의 사람들이었다. 구양우경이 있는 별원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식을 듣고 쫓아온 듯했다.

 

먼저 검신가의 장로인 구양은이 앞으로 나서며 눈을 부라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구양우경을 살해하려고 방에 침입한 음마를 붙잡았습니다.”

 

북궁천의 냉랭한 말에 구양은이 눈을 홉떴다.

 

“뭐라고?”

 

그 때 구양환이 별원으로 들어서며 소리쳐 물었다.

 

“그게 사실이냐?”

 

북궁천의 눈이 그를 향했다.

 

“증인과 증거가 완벽합니다.”

 

구양환의 눈이 황보청의 어깨로 향했다.

 

“저놈이 음마더냐?”

 

“그렇습니다.”

 

“음마가 왜 우경이를 죽이려 했단 말이냐?”

 

“자신의 정체를 밝힐까 봐 불안했나 봅니다. 둘은 가까운 사이니까요.”

 

“가까운 사이? 음마가 누군데?”

 

그에 대한 답은 천기룡이 했다.

 

“선우중입니다, 궁주님.”

 

얼마나 놀랐는지 구양환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그,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럼 중아가 우경이를 죽이려 했단 말이냐?”

 

“자세한 사실은 단 형이 밝힌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만 선우중이 구양 형의 방에 몰래 침입한 것과 구양 형에게 수상한 약을 먹이려 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수상한 약을 먹이려 했다고?”

 

“유 원주님 말씀으로는 음약과 앵속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약재가 섞여 있어서, 과다복용하면 잠자듯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천기룡의 설명이 끝나달 즈음, 대여섯 명이 더 별원으로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버럭 소리치며 천기룡의 말에 반박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중아가 무엇이 아쉬워서 소궁주를 죽이려 한단 말이냐!”

 

신도가의 가주인 선우명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온 사람 중에는 천군호도 있었다.

 

“어허! 가주, 그럼 우리 기룡이가 거짓말을 했단 말이오?”

 

“기룡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게 아니외다. 중아가 소궁주를 죽이려고 했을 리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에 대해선 조사해 보면 알 일. 기룡아, 확실하게 말하도록 해라. 네가 무엇을 봤느냐?”

 

“제가 들어가기에 앞서 황보 형과 종리 형이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들어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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