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94화
무료소설 무당학사: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94화
“이 말은 부모님이 너희들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게 하라는 말이다.”
“왜 그런 것입니까?”
유명의 물음에 호현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호현이 생각하는 효에 대한 가장 근접한 답인 것이니, 유명뿐만 아니라 모두가 들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란 존재는 모두 아이들에 대해 늘 걱정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밖에 나가면 어디에서 노는지 걱정을 하고, 끼니때가 지나면 밥은 먹었는지 걱정을 하고, 혹시 다쳤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을 한단다. 그러니 밖에 나갈 때에는 어디에 간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효의 시작이고, 밖에 있다 들어오면 내 몸에 별일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 또한 효의 시작인 것이다.”
자신의 말에 생각에 잠긴 듯한 아이들을 보며 호현이 말을 이었다.
“유명이 한 말인 아버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효의 가장 근본적인 답이 되는 것이다. 너희들이 다치지 않고 잘 자라 훗날 좋은 사람이 된다면 너희 아버지인 대별…….”
대별대두라고 말을 하려던 호현이 헛기침과 함께 말을 바꾸었다.
“흠! 장주께서 걱정을 하지 않게 되니, 그야말로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효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럼 저희가 밥 잘 먹고 잘 살면 그게 효인가요?”
한 아이의 물음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너희들이 삼시 세끼 잘 먹고, 아프지 않고 잘 지낸다면 그야말로 그게 효인 것이다. 그럼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겠느냐?”
호현의 말에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하겠는데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아니, 답은 생각이 나지만 그게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호현이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고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해? 밥이나 잘 먹으면 되는 것이지. 밥 먹게 준비하거라.”
호현이 고개를 돌리니 고노가 양손에 밥이 든 함과 밥그릇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호현이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들이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는 공부하던 곳에 밥을 먹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펼쳐 놓은 거적에 밥함과 그릇들을 내려놓은 고노가 호현을 바라보았다.
“장주를 좋아하지 않을 텐데도 잘 가르치는군. 그 사이 마음이라도 바뀐 건가?”
고노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장주는 포악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왜 장주의 요구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인가?”
“장주가 포악하기 때문에라도 아이들을 더 잘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장주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군.”
고노의 물음에 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서는 장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엌에서 그릇에 반찬을 들고 나오던 진파파가 그 모습을 보고는 급히 다가왔다.
“호현 학사, 또 밥을 먹지 않으려는 겐가?”
진파파의 말에 호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젓고는 그대로 장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진파파에게 고노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식사나…….”
“사람이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는데 어쩜 당신은 말을 그렇게 해요!”
버럭 고함을 내지르는 진파파의 모습에 고노가 황급히 말했다.
“내가 생각을 잘못 했소. 가서 호 학사에게 밥 먹으라고 말을…….”
“됐어요!”
진파파의 고함에 고노가 움찔한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그런 고노를 보던 진파파가 거적에 음식들을 올려놓고는 부엌에서 작은 그릇을 들고는 장원 밖으로 나갔다.
제9-5장 대별산에 들어온 성녀
호현은 연못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의덕장의 음식들이 대별대두가 산적질을 해서 모은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호현은 늘 이렇게 연못물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하루 두 끼를 물만 먹으니 배가 고프기는 했지만, 저녁에는 봉우리를 내려가 산짐승을 잡아먹어 그나마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호현이 물을 먹고 있을 때 진파파가 그 옆에 다가왔다.
“한참 먹으면서 커야 할 나이에 물로 배를 채우면 어찌 하는가?”
진파파의 목소리에 호현이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들고 있는 그릇에 놓인 주먹밥이 눈에 들어왔다.
꼬르륵!
배에서 나는 소리에 얼굴이 붉게 변한 호현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자네 배에서 나는 소리는 괜찮지 않다고 하는데?”
진파파의 말에 호현이 다시 연못에 머리를 담그고는 물을 마셨다.
의덕장 옆에 있는 이 연못은 무척 신기해서 언제나 깨끗한 물이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호현이 이 안에서 몸을 씻어도 마찬가지였는데, 호현 때문에 더러워진 물도 잠시 후면 다시 깨끗한 물로 바뀌는 것이었다.
시원한 물을 연신 들이켠 호현이 몸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옆에 서 있던 진파파가 안쓰러운 눈으로 호현을 바라보았다.
“물로 배를 채우면 몸 상하네. 좀 드시게.”
진파파의 말에 호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호현의 모습에 진파파가 한숨을 쉬었다.
“장주께서 가져온 식량이라서 그런가?”
호현이 말을 하지 않자 언제 왔는지 고노의 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먹기 싫다는 녀석, 신경…….”
찌릿!
말을 하던 고노는 진파파의 날카로운 시선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험험! 아이들 밥 먹는 것도 챙겨줘야 하지 않소.”
아이들 핑계를 대는 고노의 말에 그를 노려보던 진파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먹밥을 그에게 내밀었다.
- 당신이 책임지고 호 학사한테 밥을 먹여요.
진파파의 전음에 고노가 눈가를 찡그렸다.
- 내가?
- 그럼, 내가 할까요?
찌릿! 찌릿!
날카로운 진파파의 눈빛에 고노가 주먹밥을 받아들었다.
- 확인할 거예요.
진파파의 당부에 깃든 은근한 협박을 들으며 고노가 호현을 바라보았다.
‘대충 먹으면 될 것을…… 귀찮은 녀석.’
진파파가 장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잠시 기다린 고노가 주먹밥을 던졌다.
탓!
호현이 무의식적으로 주먹밥을 잡자 고노가 말했다.
“먹어.”
“괜찮습니다.”
그릇 위에 호현이 주먹밥을 놓으려 하자 고노가 미간을 찡그렸다.
“왜 안 먹느냐?”
“괜찮습니다.”
호현의 말에 고노가 그릇에 놓인 주먹밥을 들어서는 입에 가져갔다.
“우걱! 우걱!”
단숨에 주먹밥을 먹어 치운 고노가 호현을 바라보았다.
“우리 의덕장의 음식들이 장주께서 산적질로 장만한 것이라 불의하다고 먹지 않는 모양인데…… 흥! 웃기는군. 쌀이 그냥 쌀이지, 불의한 쌀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제 생각일 뿐입니다.”
“흥! 그따위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불의한 쌀을 먹는 장원의 아이들도 모두 불의한 자들이겠구나.”
“그건…….”
말을 하지 못하는 호현을 보며 고노가 말했다.
“쌀은 그냥 쌀일 뿐이다. 다만 그 쌀을 먹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가 다를 뿐. 먹든지 아니면 버리든지 네 마음대로 하거라.”
말과 함께 고노가 접시를 호현 쪽으로 던졌다.
파앗!
고노의 심정을 대변하듯 접시는 암기처럼 빠르고 매섭게 호현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에 호현이 좌수로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접시를 누르는 시늉을 하였다.
우우우웅!
그러자 날아가던 접시가 빠르게 속도가 줄더니 부드럽게 호현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고노가 고개를 젓고는 장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노가 장원으로 향하자 호현이 손에 들린 접시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주먹만 한 밥이 세 덩이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고노가 먹고 지금은 두 덩이가 남아 있었다.
가만히 그것을 보던 호현이 접시를 내려놓고는 그 앞에 정좌했다.
고노의 말에서 무언가 생각할 화두를 얻은 것이다.
‘쌀은 그냥 쌀일 뿐이다라…….’
고노의 말을 떠올리던 호현이 한숨을 내쉬며 주먹밥을 입에 집어넣었다.
“쌀은 쌀일 뿐이지. 우걱! 우걱!”
작게 중얼거린 호현이 주먹밥을 천천히 씹으며 먹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하나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호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쩐지 대별대두와 타협을 하는 듯한 생각이 든 것이다.
*
*
*
호현은 그날 저녁, 늦게 돌아온 대별대두와 대면을 하고 있었다.
“왜?”
귀찮다는 듯 바라보는 대별대두를 바라보며 호현이 입을 열었다.
“제가 제안했던 이야기,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호현의 말에 대별대두가 고개를 저었다.
“귀찮다고 말을 했을 텐데? 그 말을 벌써 잊을 정도로 머리가 굳은 것이냐?”
“장주께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가 모든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그 말도 전에 했던 거 아닌가?”
“그럼 정말 사람들을 때리는 것이 좋아서 제가 한 제안을 거절하시겠다는 것입니까?”
“그래.”
정말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대별대두를 멍하니 보던 호현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렇게 사람을 때리는 것이 좋으시다면 왜 이곳에 계십니까? 차라리 무관 시험을 치르고 군에 입관하시지요. 그리하면…….”
격앙된 어조로 대별대두에게 말을 하던 호현은 자신이 한 말이 그야말로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대별대두와 같은 고수가 군에 입관한다면 그야말로 나라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
호현은 어릴 적 죽대선생의 시동(侍童)으로 한림원에 있을 때, 황궁 시위와 무관들의 훈련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무관들의 무위는 어린 호현의 눈에는 용맹하고 힘이 넘쳐 보였지만, 지금 대별대두와 비교를 한다면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입관하시지요.”
호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대별대두와 같은 고수가 무관 시험에 떨어질 일은 만무하니, 시험을 보기만 한다면 입관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현의 말에 대별대두가 피식 웃었다.
“너 정말 웃기는 놈이구나.”
“그게 무슨……?”
“후후, 세상에 그 누가 대별대왕인 나에게 입관을 하라고 하겠느냐?”
입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담긴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이 그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말했다.
“예부터 입관을 통한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충효의 근본입니다. 또한 황상과 천하만민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입관은 남아라면 마땅히 지향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천하만민까지 거론하는 호현의 말에 대별대두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좋은 일이면 네가 입관을 하거라. 너 정도면 어디 가도 대장군 소리를 못 듣겠느냐?”
“저는 학사입니다.”
“후후, 학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 정도 무공을 가진 사람이 학사라면 천하제일 방파는 유림이겠군.”
비아냥거림을 섞은 대별대두의 말에 호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은 왜 이리 뒤틀려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의덕장에서 지내는 동안 호현은 대별대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진파파의 말에 의하면 대별대두는 산적질을 상대를 보며 가려 한다고 했다.
상행이나 표행 등 돈이 있는 자들에게만 산적질을 하고, 돈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불쌍해 보이는 사람이 대별산을 넘을 때에는 직접 산을 넘는 것을 도와주고, 돈이 될 만한 약초나 짐승을 잡아 준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대별대두가 산적질을 하는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대별대두는 그야말로 선악이 공존하는 인물이었다.
사람을 두들겨 패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대별대두…… 알아 갈수록 더 이상한 사람이구나.’
대별대두를 보며 중얼거린 호현은 자신의 힘으로는 그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는 몸을 일으켰다.
*
*
*
호현은 진파파와 고노의 방에서 그들과 만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