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학사 1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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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당학사 181화
“괜찮습니다. 그리고 스승님도 남의 등에 업혀 가는 것은 싫어하시니 제가 부축해 이동을 하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죽대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낫겠구나.”
호현이 죽대 선생의 어깨를 부축하는 것을 보며 제갈현이 자신의 옷깃을 내밀었다.
“그럼 제 옷깃을 잡고 가시지요.”
“알겠습니다.”
호현이 옷깃을 잡자 제갈현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8-10장 죽대 선생, 제갈균을 제자로 삼다
호현과 죽대 선생은 은은하게 묵향이 흘러나오는 한 내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제갈현과 한 중년의 백의인이 찻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 중년의 백의인이 바로 중원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의 주인인 천기수사 제갈혼이었다.
호현이 제갈세가에 왔다는 것에 감정이 격앙이 되어 있는 제갈현과 달리 제갈혼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긴 제갈 노사께서 피살이 되었으니 얼굴이 밝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겠지.’
제갈혼의 얼굴을 보며 호현이 입을 열었다.
“제갈현진 노사의 일……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포권을 하며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호현을 보며 제갈혼이 한숨을 쉬었다.
“휴! 현진이는 나에게 반쪽과 같았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호현의 말에 제갈혼이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하다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이다.
그러다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만지고 있는 죽대 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귀한 손님을 모시고 제가 안 좋은 모습만 보였습니다.”
“아니네. 혈육을 잃는 슬픔은 생살이 찢겨지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잔인하지.”
중원 오대세가 중 하나인 제갈세가의 가주가 상대이기는 했지만 죽대 선생은 하대를 하는데 전혀 망설이거나 어색해하지 않았다.
황상에게도 해야 할 말을 망설이지 않고 하던 죽대 선생이니 일반 가문의 가주 정도에게 존대를 할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죽대 선생의 하대를 제갈혼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제갈현진이 간혹 보내던 편지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갈현진의 장례는 잘 치렀는가?”
죽대 선생의 물음에 제갈혼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현진의 장례는 그를 죽인 자의 목과 함께 치러질 것입니다.”
“그럼 그때까지 장례를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죽대 선생의 말에 제갈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제갈혼을 보며 죽대 선생이 입을 열었다.
“자네 혈육의 일이니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 어려우나…… 죽은 자는 복수보다는 편안한 안식을 원할 것이네.”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문의 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다 시신이 부패하기라도 하면 어찌 하려고 그러나?”
“봄이 되기 전에 제사상에 목을 올릴 것입니다.”
제갈혼의 단호한 말에 죽대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원한이 크다고 해도 망자의 안식은 어찌 하려고…….’
속으로 중얼거린 죽대 선생이 입을 열었다.
“나와 현아는 제갈현진의 묘에 참배를 하러 왔네.”
“장례를 치르지 않아 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갈현진에게 향이라도 한 대 피우게 해 줄 수 없겠나?”
죽대 선생의 말은 제갈현진의 시신을 보겠다는 말이니 제갈혼은 고민이 되었다.
사랑하는 동생의 주검을 외인에게 보이기가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제갈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현진이 호현 학사와 죽대 선생을 좋아했다고 하니…… 이들이 향을 피운다면 현진이도 좋아할 것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제갈혼이 몸을 일으켰다.
“따르시지요.”
제갈혼의 말에 죽대 선생과 호현이 몸을 일으켰다.
제갈혼의 안내를 받으며 걸음을 옮기는 호현과 죽대 선생의 눈에는 예의 안대가 둘러져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의문이 든 제갈혼이 제갈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 두 사람이 왜 눈에 저런 것을 두르고 있는 것이냐?
제갈혼의 전음에 제갈현이 호현이 팔진도를 파해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말에 제갈혼이 놀란 눈으로 호현을 바라보았다.
‘팔진도를 한 번 보고 파해를 했다고?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그 말이 사실이더냐?
-사실입니다. 그래서 눈을 가린 것입니다. 혹시라도 가문 내 있는 기관들과 진을 호현 학사가 모두 알면 큰일이니 말입니다.
-잘하였구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는 사이 그들은 제갈세가의 중심이라고 할 내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원은 제갈세가의 직계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이곳만은 진법이나 기관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에 제갈혼이 죽대 선생과 호현의 안대를 친히 벗겨냈다.
“불편을 끼쳐드렸습니다.”
“아니네. 이곳의 법도가 그렇다면 손이 당연히 그 법도를 따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법도라는 말에 제갈혼이 헛기침을 했다.
“험!”
눈을 가리는 것을 법도라고 한다면 제갈세가의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상황을 돌리기 위해 제갈혼이 급히 걸음을 옮겼다.
“현진의 시신은 그가 살던 집에 있습니다.”
“집에 말인가?”
“장례를 치르기 전 자신이 살던 집에 있는 것이 현진도 속이 편할 것 같아 그리 하였습니다. 세상 어디가 집보다 더 편하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구려.”
제갈혼이 내원 중 한 전각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청풍각>
청풍각이라는 이름이 적힌 전각 안으로 들어간 호현은 진한 향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층 대청의 중심에 관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앞에 한 소년이 굳은 듯 시립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아이가 제갈 노사의 아이인가 보구나.’
호현이 아이를 보고 있을 때, 아이가 제갈혼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제갈혼이 안쓰러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별일 없었느냐?”
“예.”
“제수씨는?”
제갈혼의 물음에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제갈혼이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누워 계시느냐?”
“그러합니다.”
그 말에 한숨을 쉰 제갈혼이 죽대 선생과 호현을 가리켰다.
“이분들은 방헌학관에서 온 죽대 박현 노사와 그 제자인 호현 학사이다. 네 아버지와는 긴한 관계를 가지셨던 분이시다.”
제갈혼의 말에 순간 아이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분들이 방헌현의 방헌학관 분들이십니까?”
아이의 말에 제갈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아이가 죽대 선생과 호현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제갈혼이 급히 말했다.
“네 아버지의 지인들에게 이 무슨 무례더냐!”
제갈혼의 고성에 아이가 죽대 선생과 호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세가 사람들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아이가 죽대 선생을 노려보았다.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한 노사가 자신을 노리는 무인들을 도발해 결국 그를 지키기 위해 아버님께서 죽임을 당했다 들었습니다.”
“흐음!”
아이의 말에 죽대 선생이 침음성을 토했다. 아이의 말대로 제갈현진의 죽음에는 그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그런 죽대 선생을 보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제가 나이가 어려 견문이 좁기는 하지만…… 이 어르신께서 제 아버님이 지키고자 했던 그분이 맞는 듯합니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당돌한 아이의 말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호현이 앞으로 나섰다.
“이놈! 윗어른에게 말버릇이 어찌 그 모양이더냐! 네가 제갈 노사의 얼굴에 먹…….”
“그만!”
죽대 선생의 일갈에 호현이 급히 입을 다물었다. 죽대 선생의 목소리에 담긴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은 것이다.
호현이 공손이 고개를 숙이자 죽대 선생이 제갈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갈 가주께서는 이만 가보시게.”
“하지만…….”
“괜찮으니 그만 가보시게. 내 이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러니.”
죽대 선생의 말에 잠시 그를 보던 제갈혼이 입을 열었다.
“현이를 밖에 둘 것이니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말하십시오.”
제갈혼과 제갈현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며 죽대 선생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죽대 선생의 물음에 아이가 그를 노려보며 자신의 이름을 한자씩 내뱉었다.
“제갈균입니다.”
“제갈균이라…… 균아, 나를 원망하느냐?”
“물론입니다. 저는 당신을 원망합니다.”
제갈균의 말에 죽대 선생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원망이 되겠지.”
“원망이 되겠지가 아니라 원망을 하고 당신을 증오하는 것입니다. 당신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아이답지 않게 단호한 제갈균의 모습을 보며 죽대 선생이 관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를 가시는 것입니까!”
그 모습에 제갈균이 일갈을 지르며 죽대 선생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밉겠지만 그래도 제갈 공에게 향은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
앞을 막는 제갈균을 손으로 밀어낸 죽대 선생이 제갈현진의 관 앞에 무릎을 꿇었다.
“헉! 스승님!”
“향을 가져오거라.”
나직한 죽대 선생의 말에 호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관이 있고 주위에 향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근처에 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 생각대로 관 앞에 있는 작은 제단 위에 향이 있었다. 향 세 개를 집은 호현이 제단에 켜진 촛불에 불을 붙이고는 죽대 선생에게 내밀었다.
향을 든 죽대 선생이 눈을 감은 채 제갈현진의 명복을 빌었다.
‘제갈 공…… 미안하네. 나 때문에 아까운 자네가 희생이 되다니…… 죽을 것이라면 다 늙은 내가 죽었어야 했던 것을…….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지내시게.’
제갈현진의 신위를 바라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진 죽대 선생이 절을 했다.
그러고는 죽대 선생이 호현을 바라보았다.
“너도 제갈 공에게 향을 올리거라.”
“알겠습니다.”
촛불에 향을 피운 호현이 제갈현진의 신위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의 명복을 빌었다.
‘제갈 노사……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지내십시오.’
제갈현진의 명복을 빌고 있자니 예전 무당파에서 그와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에게 들었던 위정자의 길들도 함께 말이다.
두 사람이 제갈현진의 신위에 절을 하는 것을 보던 제갈균이 입을 열었다.
“이만 일어나십시오.”
제갈균의 말에 죽대 선생과 호현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제갈균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의 상이 끝이 나면 제가 방헌학관으로 찾아가려 했습니다.”
제갈균의 말에 호현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학관으로 말인가?”
“그렇습니다.”
말과 함께 제갈균이 죽대 선생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제 아버님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 과연 그만한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 제 눈으로 보려 했습니다.”
제갈균의 말에 호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네가 우리 스승님을 시험하려 했다는 말이냐?”
“시험이 아니라 제 눈으로 확인하려 한 것입니다.”
“이놈! 아무리 제갈 노사의 아이라 하나 너무 방자하구나! 네가 하는 행동이 제갈 노사의 고명에 먹칠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저는 제 아버지가 필요할 뿐! 그깟 고명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 하십시오!”
제갈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덜컥!
“균이 이놈! 가문의 손님들에게 이 무슨 방자한 행동이더냐!”
문이 열리며 들어온 사람은 바로 제갈현이었다. 밖에 서 있던 제갈현은 안에서 들리는 제갈균의 고성에 놀라 급히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제갈현의 고성에 제갈균이 그를 바라보았다.
“큰 형님과 가문에 이들이 어떠한 손님인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있어 이들은 제 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을 가진 사람들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