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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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18화
118화
그게 바로 장판도의 싸움이었다.
장추람 등은 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두 번 다시 그런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묘했다.
그 일이 벌어진 지 벌써 삼 년.
어두운 밤. 만 리 떨어진 타향에서 그때를 떠올리자 피가 끓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싸움꾼들이었다.
“그때는 정말 대단했죠. 몸에 상처가 스물세 곳이나 있다는 것을 싸움이 끝나고도 한참 후에 알았을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장추람이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스물세 곳의 상처 중 세 개는 뼈가 보일 정도였다. 그 사실을 알고 뒤늦게 비명을 삼켜야 했다.
냉호와 철교신도 장추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옥에서 살아 나온 거 같았죠.”
“주군을 원망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심지어 북궁천도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대부분이 적의 피였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이번 일도 크게 어려울 것 없어.”
북궁천은 나직이 말하고 모닥불을 뒤적였다.
불티가 불길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정파 놈들이 곡하에 도착했습니다, 소존.”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고 오는군. 하긴 자존심 때문에라도 더 참기가 힘들었겠지.”
호연유가 붉은 입술을 비틀며 조소를 지었다.
동마신 여립이 냉랭히 말했다.
“양평과 상곡진의 일로 사기가 한껏 올랐을 거네.”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정면 대결은 벅찰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건가?”
“너무 걱정 마십시오. 예상했던 일이니까요.”
호연유는 대충 대답하고 사야승에게 물었다.
“놈들이 언제 공격할 거라 보시오?”
“내일은 오지 않겠습니까?”
“손님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해 놓도록 하시오.”
“예, 소존. 그리고 호교육령이 아기가 있는 곳에 대해서 정보를 보냈습니다.”
호연유는 물론 함께 있던 여립과 독안마종도 눈빛을 빛냈다.
“그래요?”
“구양환이 정확한 장소를 끝내 감추긴 했습니다만, 그의 말을 분석해 보니 대충 어딘지 감이 잡힙니다. 사밀영 이 개 조를 보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사밀영(死密影)은 혈교령인 혈뇌 사야승이 직접 움직이는 천사교의 집행사자들이다.
개개인이 절정에 근접한 실력을 지닌 일류고수들로, 사교령인 사뇌 숙야돈의 귀밀영(鬼密影)과 쌍벽을 이루는 천사교의 비밀 조직이었다.
그럼에도 호연유는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들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더 보내고 싶어도 놈들의 움직임이 수상해서…….”
호연유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몇 사람 더 빼낸다 한들 전력에서 크게 차이 날 것도 없을 듯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몇 사람 더 보내시오. 최근에 들어온 자들 중 부리기 쉽지 않은 자들이 있다 들었소만. 그런 자들은 안에서 말썽을 부리게 놔두는 것보다 밖으로 돌리는 것이 낫소.”
“그것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소존.”
“대신 서평에 즉시 연락해서 그곳의 인원 반을 이곳으로 보내라 하시오.”
“천귀군주가 허락하겠습니까?”
서평의 천사교도를 지휘하고 있는 자는 천사교의 삼군 중 하나인 천귀군의 주인 구황이다.
그는 오직 지존의 명령만 따르는 자. 소존이나 혈뇌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자였다.
“흥, 내가 요청한 인원을 다 보내지는 않아도 흉내는 낼 거요. 그 정도면 아기를 찾아내기 위해서 보낸 자들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겠지.”
그제야 호연유의 뜻을 짐작한 사야승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과연 소존이십니다.”
호연유는 사야승의 칭찬에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아기를 찾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소?”
“이삼 일이면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운이 좋으면 더 빨라질지도 모르지요.”
확신에 찬 사야승의 말을 듣고 호연유가 사이한 미소를 지었다.
아기를 차지했을 때의 일을 떠올리니 가슴 짜릿한 흥분에 심장이 뛰었다.
“이삼 일이라…… 그 날이 기대되는군.”
* * *
새벽안개가 자욱한 인시 말.
곡하에 진을 친 연합 세력은 수뇌부들이 모여서 마지막 작전을 논의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구양환이 먼저 유원당에게 물었다.
유원당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대답했다.
“가지를 먼저 치고 적의 주력을 상대할 생각입니다. 곡가장처럼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면 더 좋을 텐데, 그 일은 두고 봐야 알겠지요.”
구양환은 그 말을 듣고 유원당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단화린에 대해서 알고 하는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화린에게 자신과의 약속에 대해서만 함구하라고 하긴 했지만 접촉까지 막진 않았다.
어차피 그들을 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터. 모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더구나 잠은각 좌령주 천종원이 유원당의 귀와 눈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암암리에 유원당과 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자신과의 약속에 대해서 말했을지 모른다.
그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에게 책임을 물어 몇 가지 일을 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흥, 언제까지 숨기는가 보자.’
그 때 관호명이 구양환에게 물었다.
“듣기로는 곡가장을 삼성궁의 고수들이 공격했다고 하던데, 어떤 사람들이오, 궁주?”
무림맹과 철군성, 백검맹 사람들도 궁금한지 구양환을 바라보았다.
구양환은 그들의 시선을 즐기면서 짐짓 난색을 표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소. 워낙 중요한 비밀이인지라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좀 그렇구려. 궁금하겠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그자들이 이번에도 공을 세워 준다면 총군사 말대로 일이 수월해질 텐데…….”
“지시를 내려놓은 게 있으니 기대해 보시구려.”
구양환은 그렇게만 말하고 화제를 돌렸다.
“군사, 적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일일이 가지를 치는 것보다 곧장 주력을 치는 게 낫지 않겠나?”
“그것도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정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정리해야 할 일?”
“예, 궁주.”
유원당은 담담히 말하고 시선을 돌려 임강령을 바라보았다.
임강령은 구양영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임 대협.”
그가 임강령을 부름과 동시에 임강령이 우수를 뻗어 구양영의 마혈을 찍어 버렸다.
“헉!”
구양영이 몸을 틀려고 했을 때는 이미 마혈 두 군데가 더 찍혀서 온몸이 저릿해지며 손발이 굳어 버렸다.
느닷없는 상황에 장내의 모두가 놀라서 임강령을 바라보았다.
“무슨 짓인가!”
구양환이 임강령을 향해 호통을 쳤다.
선우명과 천군호도 놀라서 벌떡 벌떡 일어났다.
“임 대협, 그게 무슨 짓이오?”
유원당이 임강령을 대신해서 해명했다.
“임 대협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구양환이 홱 고개를 돌려서 유원당을 노려보았다.
“할 일? 그게 무슨 말인가? 명확히 해명하지 않으면 나도 참지 않을 거네!”
“제가 조금 전에 정리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것은 이 안에 있는 적의 눈과 귀를 차단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구양환이 그 말뜻을 왜 모를까?
눈매를 파르르 떤 그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다그쳤다.
“뭐라고? 그럼 내 아우가 적의 간세라도 된단 말인가?”
“저 역시 아니었으면 했습니다만, 아쉽게도 사실로 판명되었습니다.”
구양환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유원당의 말투로 봐서 확신을 하고 있는 듯했다.
임강령이 손을 썼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다는 말.
“임 아우, 군사의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궁주. 사실 그에 대한 것은 제가 먼저 총군사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저번 겨울부터 우리 쪽 주요 인사 중에 천사교의 간세가 끼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암암리에 조사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확실한 증거를 잡게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그 당사자가 궁주의 아우인 것은 유감스럽니다만.”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아냐, 그럴 리가 없네! 자네들이 뭘 잘못 알았을 거야. 영 아우, 말해 봐라. 저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지?”
구양영이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형님! 저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나를 풀어 줘라! 이게 무슨 짓이냐!”
구양환이 장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들었소? 영 아우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하지 않소?”
그 때 임강령이 고개를 돌려서 밖을 향해 말했다.
“그를 끌고 들어오게.”
곧 황보청과 종리기진이 삼십 대 초반의 장한을 끌고 들어왔다.
그를 본 구양영이 이를 악물었다.
장한은 구양영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자였다.
또한 천사교와의 연결을 책임진 자이기도 했다.
“저자는 구양영의 최측근으로 어젯밤에 진원보를 다녀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갔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만, 적어도 좋은 일로 가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양환도 한두 번 본 적이 있는 자였다.
하지만 그는 순순히 수긍하지 않았다.
“그가 천사교의 주구라 해서 영 아우까지 간세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설령 그가 영 아우를 천사교의 간세라고 말했다 해도 영 아우를 해치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의 말도 옳았다.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장내의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개중에는 무림맹의 장로들도 두어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때 임강령이 냉소를 지으며 구양영에게 말했다.
“인근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천사지존을 향해 심한 욕 다섯 가지만 해 보시오. 진심을 담아서.”
구양영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내, 내가 천사지존을 욕하는 것하고 간세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천사교에선 천사지존을 욕하면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참형이오. 그게 진심이 아니라 해도, 필요에 의해서라 해도. 그러니 당신이 심한 욕 다섯 가지를 한다면 반쯤은 믿어 줄 수도 있소.”
“욕하는 거야 어려울 것 없소. 하지만 이렇게 강요당한 상태에서 욕하고 싶진 않소.”
“천사지존은 욕을 먹어도 싼 자요. 그런데 강요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일단 나를 풀어 주시오. 그럼 다섯 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라도 욕을 하겠소.”
임강령이 냉소를 지었다.
“너는 할 수가 없을 거다. 또 다른 간세가 들으면 죽은 목숨이 될 테니까. 그것도 그토록 악랄하다는 천사교의 참형에 의해서 처절한 고통을 받으며 죽겠지.”
“영아야! 어서 욕을 해라! 그따위 놈들, 무서울 게 뭐 있단 말이냐?”
구양환이 구양영을 재촉했다.
하지만 구양영은 쉽게 욕을 하지 못했다.
“형님, 저는 제 의지로 욕을 할 겁니다. 이렇게 오해받으면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냥 해!”
“자존심 상하며 사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영아야!”
보다 못해 소림의 공원대사가 불호를 외며 나섰다.
“아미타불. 임 시주, 욕을 하고 안 하고만으로는 구양 시주를 간세라 볼 수 없소이다. 다른 증거는 없소?”
“있습니다.”
임강령은 단호한 어조로 말하고는 구양영의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곧 그의 손에 작게 접힌 서찰이 딸려 나왔다.
“없애고 싶은데 사람들이 주위에 몰려와 있어서 없애지도 못했지? 아마 너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왜 갑자기 몰려왔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