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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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16화
116화
북궁천은 차갑게 말하고 유원당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유 원주님도 아시면서 나를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지 않소?”
다 똑같아!
그런 불만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말투였다.
유원당은 그 말을 듣고도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는데, 북궁천은 그 모습이 더 얄미웠다.
‘능구렁이를 열두 마리는 잡아먹은 것 같군. 제기랄.’
* * *
적미진으로 돌아간 북궁천은 구양환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일단 놈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아기를 찾아봐야겠다. 아우들이 남양으로 갔으니 곧 소식이 있겠지.”
장추람 등은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일단은 아기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소군께서 다치면 안 되니 어쩔 수 없지요.”
냉호도 순순히 장추람의 의견에 동조했다.
“소군을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따르는 척하지요.”
그런데 철교신이 뜻밖의 말을 했다.
“주모도 소군이 무사해야 주군을 따라서 북천궁으로 가실 것 같은데요?”
평소 말도 없고, 기껏 입을 열어 봐야 엉뚱한 소리나 하던 그가 가장 핵심을 찌른 것이다.
북궁천은 그 말이 솔깃했다.
헌원려려는 북천궁을 싫어했다.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그녀가 다른 곳에서 살자고 하면 그럴 생각마저 있었다. 북천궁의 사대원로야 난리를 치겠지만.
그런데 천사교와 싸워 공을 세우고 아들을 구하면 헌원려려도 마음이 변해서 자신과 함께 북천궁으로 갈지 몰랐다.
“흐음, 려려와 함께 북천궁으로 간단 말이지?”
분노했던 장추람 등도 그 말만큼은 반가웠다.
가릉효는 북궁천이 북천궁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자신들 셋을 함께 보낸 것도 그 때문이다.
정 안 되면 셋이 합공해서라도 북궁천의 뜻을 꺾어야 했다.
이겨도 곤란하고, 져도 곤란하고.
그런데 북궁천과 헌원려려가 순순히 북천궁으로 간다면, 그거야말로 최상의 결과였다.
“하긴 우리 북천궁이 마궁이 아니라는 걸 알리는 기회일 수도 있겠군요.”
“주군과 소군이 함께 가시면 사대원로도 반가워할 겁니다.”
“그 노인네들, 주군께서 돌아오시면 가만 안 두겠다고 벼르고 있습죠. 하지만 소군과 함께 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겁니다. 하, 하, 하.”
결국 북궁천도 불만을 털어 내고 마음의 결정을 확실하게 내렸다.
“좋아, 그럼 일단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진아를 찾아보자.”
‘아기를 우리가 먼저 찾게 되면 구양환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겨 버리겠어!’
7장. 내가 누구냐
백리진이 이끄는 공격대가 상곡진에서 적을 몰아냈다는 연락이 온 것은 이튿날 사시 무렵이었다.
연합 세력의 피해는 삼십여 명. 적은 일백 이상이 죽었다고 했다.
대승이라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 정도면 깨끗한 승리였다.
적은 도주하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두 번 했는데, 세 번째에서는 결국 오십 리 가까이 후퇴해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유원당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각 세력의 수뇌부 중 일부는 미적지근한 그의 공격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유원당이야 그러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그는 그 일보다도 북궁천의 일에 더 신경이 쓰였다.
북궁천만 도와준다면 적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것이다.
아기가 잘못되어서 그가 분노하면 내부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상황이 될 것이고.
유시 초.
북궁천은 임표를 시켜서 공자묘의 향나무에 하얀 천을 매달게 했다.
두 시진이나 지났을까?
하얗던 천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노란색 천 안에는 몇 겹으로 접힌 서찰이 하나 들어 있었고, 향나무 밑에 제법 큰 보따리가 놓여 있었다.
노란색 천을 떼어 내 품속에 넣은 임표는 보따리를 들고 북궁천에게 돌아갔다.
“양평에 있는 적을 처리해 달라?”
서찰을 읽어본 북궁천은 이마를 찌푸렸다.
서찰에는 양평의 적에 대해서 간단한 정보만 적혀 있었다.
장소는 곡가장. 숫자 이백. 수장은 마종보의 삼살귀마.
그리고 그들을 처리한 뒤 양평진 근처 해원객잔에서 연락을 기다리라는 말이 끝에 적혀 있었다.
“우리 일행의 능력을 시험해 볼 생각이군요.”
장추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북궁천도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추람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 뜻대로 움직여 주자. 우리에 대해서 아주 확실하게 알려 줘야겠어.”
그 때 임표가 보따리를 풀었다.
보따리에는 옷이 들어 있었는데, 삼성궁 검신대의 복장이었다.
냉호가 제대로 구양환의 생각을 짚어 냈다.
“검신대 무사로 가장해서 싸워 달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주군.”
“여우 같은 작자군. 우리가 적을 물리치면 삼성궁의 전과로 돌리겠다는 것이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준 거니까 입지, 뭐.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편할지 모르니까.”
북궁천은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객잔을 나섰다.
옷을 갈아입어서 누가 봐도 삼성궁 사람들처럼 보였다.
긴장할 법한데도 누구 하나 긴장한 사람이 없었다.
적의 숫자가 이백이라 했다. 많다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북천에서 한창 싸울 때 넷이서 청랑단 삼백을 몰살시킨 적도 있었다.
그때보다 더 강해진 지금은 그보다 더한 적이라 해도 해볼 만했다.
* * *
천사교 무리는 양평의 지주인 곡가장에 운집해 있었다.
백 리를 달려온 북궁천 일행은 곡가장을 십 리 남겨 놓고 걸음을 멈췄다.
“천사교와 마종보 놈들이 반반 섞여 있다고 했지?”
“예, 주군. 마종보의 장로인 삼살귀마가 그들을 이끌고 있다 했습니다. 제가 가서 놈들을 살펴보고 올까요?”
장추람이 자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북궁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
그러고는 곡가장 쪽을 바라보며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려 줘야겠다. 이 북궁천을 잘못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천사교 놈들에게만 알려 주려는 것은 아니다. 정파 연합 세력, 특히 구양환에게 경고하려는 것이다.
엉뚱한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날이 새면 사냥을 시작한다. 그때까지 쉬도록.”
뿌연 새벽안개가 어스름을 밀어내며 밀려드는 시각.
북궁천은 가볍게 소주천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굳은 표정으로 하나둘 일어났다.
“정면으로 칠 겁니까?”
장추람이 물었다.
적에게 절대지경의 고수가 없다 해도 숫자가 이백이나 되었다.
그들과 정면으로 부딪치면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북궁천이 그런 무리수를 둘까 싶었다.
하지만 북궁천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내가 정면을 칠 거다. 추람과 냉호는 좌측을, 교신과 사객은 우측을 맡아라. 아침 식사는 싸움을 끝내고 먹는다.”
간단하게 명령을 내린 그는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장추람 등 북천궁 사람들은 오랜만에 다가온 혈전을 앞두고 투지가 끓어올랐다.
중원에서의 첫 싸움.
북천의 칼이 얼마나 사나운지 보여 주리라!
중원에 북풍의 매서움을 확실하게 알려 주리라!
쾅!
곡가장 정문이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그 사이로 북궁천이 들어섰다.
“웬 놈이냐?”
“어떤 미친놈이 새벽부터 난리 치는 거냐?”
장원 내부에서 경비를 서던 천사교와 마종보 무사들이 소리치며 정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곧 노성이 처절한 비명으로 바뀌며 경악한 외침이 새벽하늘을 뒤흔들었다.
“으아악!”
“크어억!”
“삼성궁 놈들이다! 적이 쳐들어왔다!”
“놈들을 막아라! 몇 놈 안 된다! 모두 달려들어!”
악다구니가 곡가장에 울려 퍼지면서 방에 있던 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묵혼을 빼 든 북궁천은 손속에 인정을 남겨 두지 않았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서너 명이 한꺼번에 쓰러지고, 일장을 내칠 때마다 두어 명이 날아갔다.
좌우를 공격하는 장추람 등도 누가 많이 적을 쓰러뜨리는지 내기라도 하듯 인정사정 두지 않고 무기를 휘둘렀다.
북궁천을 따라서 북천을 휘젓고 다녔던 그들이었다.
북천에 공포를 심어 준 자들.
그들의 공격은 청랑처럼 날카로웠고 살기가 충천했다.
그러나 천사교 교도들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북궁천 일행으로선 잘된 일이었다. 그들을 일일이 쫓아다니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하지만 마종보 무사들은 천사교 교도와 달랐다.
그들은 순식간에 수십 명이 쓰러지자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 때 안쪽에서 세 사람이 달려 나왔다.
오십 대로 보이는 중노인 셋. 마종보의 장로인 삼살귀마였다.
“이 죽일 놈들이 감히!”
“이놈! 목을 내밀어라! 네놈의 머리를 잘라서 구양환에게 보내 주마!”
그들은 오연히 서 있는 북궁천을 향해 몸을 날리며 노성을 내질렀다.
진아로 인해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북궁천이었다.
그는 날아드는 삼살귀마를 향해 몸을 날리며 묵혼을 휘둘렀다.
가공할 위세의 검강이 삼살귀마를 뒤덮었다.
쾅!
단발의 굉음이 터져 나오더니 삼살귀마 중 이마 부력산이 튕겨 날아갔다.
북궁천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마 고두천을 향해 건곤패력장을 펼쳤다.
고두천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숨이 턱 막힌 그는 전력을 다해서 쌍장을 휘둘렀다.
콰르릉!
“크억!”
눈앞이 노래진 고두천은 비명을 내지르며 정신없이 물러섰다.
그사이 북궁천의 묵혼이 허공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떨어졌다.
쩡!
삼마 진패는 사력을 다해서 북궁천의 검세를 막아 냈다.
하지만 묵혼은 진패의 칼과 몸을 연이어 갈라 버렸다.
“크악!”
가슴에서 허리까지 쩍 갈라진 진패는 처절한 비명을 토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감숙의 살귀인 삼살귀마가 단숨에 꺼꾸러지자, 마종보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서 도주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저놈들은 사람도 아니야!”
“모두 도망쳐라!”
* * *
북궁천 일행이 양평 곡가장을 공격하던 그 시각.
상곡진에 있던 연합 세력 무사들이 오십 리가량 떨어져 있는 천사교 무리를 공격했다.
천사교 무리는 계획했던 대로 연합 세력의 공격에 적당히 대응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지원해 주기로 한 곡가장이 피로 물들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바람에 삼십 리를 물러나면서 백 명 이상이 죽음을 당하는 손실을 입었다.
뒤늦게 서야 지원이 끊겼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정신없이 도주했다.
백리진도 이번에는 추격을 멈추지 않았다.
“놈들을 쫓으시오!”
연합 세력 무사들은 그동안의 인내에 대한 보상을 받기라도 하겠다는 듯 전력을 다해서 천사교 무리를 뒤쫓았다.
상곡진과 곡가장의 상황은 곧바로 유원당에게 전해졌다.
“놈들을 상곡진 일대에서 완전히 몰아냈다고 합니다. 이제는 진원보 앞까지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단화린이 그들 일행만 데리고 곡가장을 정면으로 공격했다고 합니다. 정말 어이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천종원은 보고를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북궁천의 정체를 아는 유원당은 그다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놀라기는커녕 표정에 약간이나마 여유가 떠올랐다.
“이제야 빛이 보이는군.”
“놈들의 반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러겠지. 그 전에 최대한 많은 타격을 줘야 하니 즉시 간부 회의를 소집하시오.”
일이 그렇게 진행될 거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유원당은 머뭇거리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