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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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14화
114화
뛰듯이 암평도국으로 건너간 그는 임찬화가 네 명의 청년을 안채의 방으로 안내해 놓은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큰일 날 뻔했군.’
숨을 고르고 방 안으로 들어간 그는 이조량 등을 보는 순간 범상치 않은 고수임을 눈치챘다.
‘미친놈들이 죽으려고 환장했군. 저런 고수들에게 대들다니. 아무래도 교육을 다시 시켜야겠어.’
그나마 싸움이 벌어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 그는 이조량 등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내가 왕두평이오. 단 공자님의 심부름을 오셨다고?”
이조량이 마주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예, 회주. 대형께서 회주께 부탁 하나 할 것이 있다며 보내셨습니다.”
“부탁? 하하하, 어디 말씀해 보시오. 무슨 일인데 이 왕 모를 찾으셨는지 궁금하구려.”
잠시 후.
이조량의 이야기를 다 들은 왕두평은 탁자 위에 펼쳐진 초상을 내려다보았다.
“이자를 찾아야 한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합니다.”
왕두평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찬화, 가서 화공 강 씨를 데려와라.”
“예, 회주.”
임찬화가 밖으로 나가자 왕두평이 앞으로 할 일을 설명해 주었다.
“일단 이 초상을 이십여 장 더 그릴 거요. 그리고 본 회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준 후 수색을 시작할 거요. 수색 범위가 넓긴 하지만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외다.”
이조량과 태극문 제자들은 마음이 놓였다.
암평도국을 찾아오면서 왕두평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연 그가 자신들의 말을 순순히 들어줄까?
그런 생각에 조금은 걱정되었다.
그런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을 보니 공연한 걱정을 했나 보다.
“고맙습니다, 회주. 회주께서 그자를 찾아낸다면 대형께서도 그에 대한 보답을 하실 겁니다.”
“하하하, 보답은 무슨! 이 왕두평은 단 공자의 명이라면 어떤 일이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소. 뵙거든 그렇게 말씀드려 주시오.”
* * *
북궁천은 해시 초가 되자 공자묘로 갔다.
구양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북궁천 일행이 공자묘로 들어가자 사용화와 검신대가 살기 띤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날 저녁 동료들을 죽인 자들이 눈앞에 있는 것이다.
장추람과 냉호는 그들의 살기 어린 눈빛을 보고 한마디씩 던졌다.
“이제 좀 남자새끼들답군. 진작 그랬어야지.”
“안에서 대화할 동안 우리끼리 한판 붙어 볼까?”
철교신과 북풍사객은 팔짱을 낀 채 싸늘한 눈빛으로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고.
북궁천은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있던 구양환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금 늦었군.”
“살다 보면 조금 늦을 때도 있는 거 아닌가?”
구양환은 분노를 꾹 참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늦은 거에 대해선 더 따지지 않으마. 그래, 생각해 봤나?”
“생각해 봤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기를 먼저 봐야겠어.”
“아기를 보여 주면 네가 어떻게든 구하려고 할 텐데, 내가 미쳤다고 보여 준단 말이냐?”
“설마 아기를 잃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구양환이 피식 웃으며 담담히 말했다.
“비록 삼성궁이 이 모양이 되긴 했지만, 아기 하나 지키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믿지 못하겠다면 더 이야기 나눌 것도 없군.”
구양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은 아쉬울 것 없다는 표정.
하지만 북궁천은 그가 속마음까지 태연하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당신이 아기를 인질로 삼는 걸 보니 나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
“무슨 말이냐?”
“당신 부인과 딸이 삼성궁에 있더군. 그녀들을 납치해서 아들과 바꾸면 어떨까 생각 중이야.”
발끈한 구양환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남자가 되어서 그따위 비열한 생각을 하다니. 역시 마도 놈들은 어쩔 수 없군.”
“와하하하, 구양환,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군. 나야 원래 마제이니 그럴 수 있다지만, 당신은 뭐지? 아기를 인질로 삼은 주제에 누굴 비열하다고 하는 거냐?”
“흥, 나는 아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데리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기의 병이 많아 나아졌지. 솔직히 너는 고마워서라도 내 요구를 들어줘야 할 처지다. 본 궁의 약재가 아니었으면 네 아기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네놈이 하려는 짓과는 기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니라.”
북궁천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구양환이 진심으로 아기를 위했다면 어찌 인질로 삼아서 조건을 건단 말인가?
“내가 모르는 줄 아느냐? 려려에게 들으니, 구양우경이 병을 고친다며 아기를 억지로 데려갔다더군. 지금 그 일 가지고 생색을 내려나 본데, 사실 그가 데려가지 않았다 해도 아기의 병은 어차피 나았을 거다. 내가 백의곡으로 데려가서 치료했을 테니까. 그러니 헛소리하지 말고 아기를 내놓아라. 그럼 나도 그대의 제안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지.”
“네가 뭐라 해도 내 마음은 어제와 똑같다. 내 요구를 다섯 가지만 들어주면 아기를 내주마.”
북궁천과 구양환의 자존심이 칼만 대면 끊어질 실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전각 안에 들어왔던 파리가 질려서 도망칠 정도였다.
북궁천은 북천명왕공으로 가슴을 식히고 냉랭히 입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참는 것도 당신이 아기의 병을 고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아기를 순순히 내놓는다면, 나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구양환.”
이번에는 구양환의 마음이 흔들렸다.
북궁천이 순순히 약속을 지켜 준다면, 자신 역시 아기를 인질로 삼았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으니 최상의 선택이었다.
문제는, 상대가 북천의 마제라는 점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악한 마도 놈들의 수괴.
“네가 먼저 나로 하여금 너를 믿게 만들어라. 그러면 생각해 보지.”
상황이 조금 진전된 것 같다.
북궁천은 내심 다행으로 생각하면서도 목소리는 전보다 배 이상 싸늘하게 내뱉었다.
“어떻게 그대를 믿게 하란 말이냐?”
“다섯 가지 요구 중 세 가지를 먼저 처리해라. 그럼 아기를 건네주지.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 요구는 그 후에 들어주는 거다. 어떠냐?”
요구 조건의 숫자는 같지만 그래도 전보다 훨씬 나아진 셈이다.
그래도 북궁천은 구양환의 조건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둘, 나중에 셋이라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구양환은 잔뜩 이마를 찡그리고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
“결정은 내일 내리겠어.”
구양환이 발끈해서 으르렁거렸다.
“지금 나를 놀리겠다는 거냐? 여기서 결정해라!”
“내일. 나도 생각 좀 해 봐야 하니까.”
북궁천은 짧게 대답하고 몸을 돌렸다.
구양환은 죽일 듯이 북궁천의 등을 노려보았다.
‘건방진 놈! 네놈이 아무리 그래도 내 손을 벗어나진 못할 거다.’
그 때였다.
북궁천이 전각의 문을 열기 전에 한마디 더 했다.
“만약 아기에게 이상이 있으면, 내가 왜 마제라 불리는지 알게 될 거야.”
구양한은 가소롭다는 듯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그 일은 걱정 마라. 만약 내 요구를 받아들일 것이면 내일 해가 질 때까지 마당의 향나무에 하얀 천을 매달아라.”
* * *
북궁천은 다시 객잔으로 돌아갔다.
하루의 시간을 더 벌었다.
그 안에 아기를 찾아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시간을 번 만큼은 이익이었다.
그런데 그가 객잔의 방으로 들어가자 뜻밖의 사람이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다름 아닌 고검 임강령이었다.
“어? 임 대협, 언제 오셨습니까?”
“주인도 없는데 내 마음대로 들어와서 미안하군.”
“돌아올 거라고 말해 놓지 않았으니 어차피 제 방이라고 할 수도 없지요.”
“자네가 다시 올 줄은 생각도 못 했군.”
임강령의 말에 북궁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오지 않을 수가 없었죠.”
“유 군사에게 들었네. 어떻게 된 건가?”
북궁천은 그제야 임강령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이 나타났다는 것을 유원당이 알고 임강령을 보낸 듯했다.
“그게 좀 묘한 일이 생겼습니다.”
북궁천은 임강령에게 진아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구양환은 자신과의 계약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임강령만 입을 열지 않으면 그가 어떻게 알 것인가?
설령 알게 된다 해도 아기에게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임강령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헌원 소저에게 아기가 있었다니. 군사에게 듣긴 했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군.”
“저도 참 멍청했습니다. 려려가 구양우경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곁에 머무르려고 할 때 좀 더 깊이 캐 봤어야 하는데.”
“그런데 구양 궁주가 아기를 볼모로 조건을 달다니, 마음이 어지간히 급했군.”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아기를 이용한 행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으으음, 원래 그 정도로 편협한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가 그리되었는지…… 허어, 그거 참…….”
임강령이 착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북궁천은 그런 임강령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임 대협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뭐든 좋으니 말씀해 보시지요.”
임강령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구양 궁주가 아기를 순순히 내준다면 도와줄 의향은 있는가?”
“합당한 정도라면 못 할 것도 없지요. 단, 진아를 먼저 내놓아야 합니다.”
“그 문제는 구양 궁주도 쉽게 굽히지 않으려 할 거네. 그는 자네를 두렵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진아를 건네받았다고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꿀 제가 아닙니다. 그 점은 확실하게 약속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순순히 아기를 내놓는다면 구양 궁주에게 그 일을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을 겁니다.”
“나도 그 일이 잘 해결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네. 자네 마음이 그렇다면 내가 한번 말해 보겠네.”
“고맙습니다.”
“총군사를 만나 보는 게 어떻겠나? 자네가 조건을 들어줄 경우, 구양 궁주의 개별적인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군사의 계획 안에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구양환보다는 유원당을 상대하는 게 백번 나았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죠.”
“그럼 유 군사에게 그리 말하겠네.”
대략적으로 이야기를 정리한 북궁천은 임강령에게 이전의 일을 물어보았다.
“그건 그렇고, 천사교의 간자를 찾아내는 일은 소득이 있습니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조금 소홀했네. 하지만 의문이 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계속 주시했지.”
“연합 세력이 저들에게 계속 밀린 것이 그들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그 말에 임강령이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워낙 교활해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 상황이 되도록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있어.”
“그들은 아마 최후의 순간이 될 때까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겁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네. 그러니 더 빨리 잡아내야 할 텐데 말이야.”
“임 대협이 의심하고 있는 자는 누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