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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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03화
103화
“예? 운봉사에는 왜? 그곳에 환자가 있었습니까?”
“맞아. 아주 특이한 환자가 있었지.”
방곡추의 말에 중년인이 흥미가 인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환자인데 당 형이 특이하다고 하는지 모르겠구려.”
“두어 달가량 정신을 잃은 여인이었네. 알고 보니 뇌에서 흐르는 기혈이 막혔더군.”
“그래, 고쳤소?”
“다행히 정신을 차렸네. 그래서 돌아온 거지.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당장 해결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그냥 왔네.”
“허어, 이제 당 형의 의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군요. 뇌에 이상이 생긴 것을 고치다니.”
중년인과 장한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때 육대기가 말했다.
“솔직히 나도 감탄했소. 중원제일신의인 백미신의도 고치지 못한 것을 당 형이 고쳤지 뭐요?”
“그래요?”
하지만 방곡추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내가 다 고친 것은 아니네. 정작 가장 중요한 상황에서는 남의 힘이 필요했지.”
“에이, 그 정도면 당 형이 다 고친 거나 마찬가지죠, 뭐. 그 괴물 같은 인간이 뇌의 기혈을 뚫은 것이야 당 형이 아닌 누구라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세상에 그 인간 말고 누가 뇌의 기혈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닐 수 있겠습니까?”
장한과 중년인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허어! 누가 뇌의 기혈을 강제로 뚫었단 말입니까?”
“그 정도면 절대 경지에 이른 고수여야 하는데?”
“그게 누구냐 하면 말입니다…….”
육대기가 천하에서 가장 귀한 비밀을 말해 주겠다는 듯 머리를 내밀고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북천의 주인이지 뭐요. 환자는 그 인간의 부인이고.”
순간, 중년인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북천의 주인과 그 부인?”
장한은 눈이 동그래졌고.
“설마…… 북천마제 북궁천이란 말이오?”
육대기가 얼굴에 힘을 주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놀랐지?’ 꼭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중년인이 이상하리만치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도 운봉사에 있나?”
“아뇨. 아들을 찾는다고 다시 하남으로 갔습니다.”
2장. 꼬맹이가 무슨……
여량산(呂梁山)이 끝나는 최남단에는 담장 높이 이 장, 대지의 넓이 십만 평이 넘는 거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쪽에 나 있는 정문은 어지간한 도성 성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웅장했고, 그 성문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그곳이 바로 산서제일세 철군성이었다.
엽청문과 능소소를 앞세우고 공손설과 염구악이 다가가자 정문 위사들이 번개처럼 뛰어나와 시립했다.
공손설은 고개를 살짝 숙여 답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정문을 통과했다.
북궁천은 헌원려려를 태운 가마와 나란히 걸으며 느긋하게 철군성을 구경했다.
하지만 가마 뒤를 따라가는 장추람 등은 북궁천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중원은 북천궁을 친구로 여기지 않았다.
산서의 철군성은 중원과 더 가까웠다.
적이라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라고나 할까?
그런 철군성에 북천궁의 궁주가 들어간다. 게다가 북천궁의 기둥인 삼대의 대주까지.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북궁천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긴장은커녕 두리번거리며 철군성 내부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정문을 통과하자 마차 네 대가 한꺼번에 지나갈 수 있는 대로가 일자로 쭉 뻗어 있었다.
양옆으로는 이 층으로 된 건물이 줄지어 서 있고, 대로의 끝에는 삼천 평 넓이의 연무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거대한 삼 층 전각이 웅장하게 서 있었다.
북궁천은 공손설이 연무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미간을 좁히고 입을 열었다.
“꼬맹아. 일 크게 벌이지 말고, 려려 쉴 곳으로 안내해.”
“그러잖아도 그럴 생각이에요.”
고개를 돌린 공손설이 싱긋 웃으며 걱정 말라는 투로 말했다.
그러고는 방향을 자연스럽게 좌측으로 틀었다.
연무장을 돌아가는 길이 가장자리로 나 있어서 본래부터 그리 생각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본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쳇, 아버님께 바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북궁천은 공손설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그녀가 지금쯤 입을 삐죽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았냐?’
공손설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별원으로 북궁천 일행을 안내했다.
다름 아닌 그녀의 거처. 운화원(雲花園)이었다.
이제 막 봄꽃이 피기 시작한 운화원은 이름 그대로 꽃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직전이었다.
그녀가 북궁천 일행과 우르르 들어가자 안에서 시비들이 뛰어나왔다.
“아가씨!”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걱정되어서 죽을 뻔했습니다, 아가씨!”
공손설이 그녀들에게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방정 떨지 말고 빨리 매실(梅室)이나 치워.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까.”
“예에에에에!”
시비들은 다시 부리나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북궁천은 북풍사객이 가마를 내려놓자 헌원려려를 안아 들었다.
공손설이 말한 매실은 시비들이 치우지 않아도 깨끗했다.
안으로 들어간 북궁천은 헌원려려를 침상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침상 끄트머리에 앉아서 먼 길을 가는 남편처럼 나직이 말했다.
“편히 쉬고 있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혹시 저 꼬맹이가 서운하게 하면 나중에 말해. 내가 혼내 줄 테니까.”
“제 걱정은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북궁천은 히죽 웃으며 다시 한번 당부했다.
“약 제때 먹어. 내가 돌아왔을 때는 뛰어다닐 정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 잊지 말고.”
헌원려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천은 조금 더 있고 싶었지만,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어났다.
시비들이 잽싸게 방을 손보고 밖으로 나간 후였다.
바로 뒤에는 공손설만 서 있었는데, 행여나 수상한 짓을 하는지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삐죽 내민 채 쳐다보고 있었다.
몸을 돌린 북궁천이 그런 공손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잘 보고 있어. 더 아프거나 하면 혼날 줄 알아.”
그러고는 공손설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방을 나섰다. 오래 있으면 떠나기가 더 싫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밖으로 나왔을 때 공손설이 말했다.
“저도 함께 갈래요. 이곳은 안전하니까 제가 없어도 되잖아요.”
당연하게도 북궁천은 그녀의 청을 단칼에 거부했다.
“안 돼.”
“안 데려가면 몰래 따라갈 거예요.”
“너 정말…….”
공손설을 향해 눈을 치켜뜬 북궁천은 그녀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자 설득의 방향을 틀었다.
“염 노사. 저 애 좀 말려 주십쇼.”
염구악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난 설아를 이길 자신이 없네.”
염구악마저 그렇게 나오자, 북궁천은 눈에 힘을 주고 공손설을 노려보았다.
“네가 뭐라고 해도 이번에는 안 돼. 절대 안 돼!”
“그럼 약속 하나만 해 줘요.”
“뭔데?”
“다녀오시면 북천궁 갈 때 저도 데려가서 구경시켜 줘요.”
“북천궁 구경? 북천궁이 여기서 얼마나 먼데.”
“아무리 멀다 해도 만 리를 넘진 않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언니는 마차를 타고 가야 되니 저도 함께 타면 되죠, 뭐. 그리고 누가 혼자 간대요? 호위무사를 데려갈 거니까 걱정 말아요.”
그 정도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 같다.
“정말 그거면 돼?”
“오빠가 기를 쓰고 안 된다는데 어떻게 해요? 그럼 삼성궁에는 못 따라가는 거죠.”
‘어? 왜 저렇게 쉽게 굽히지?’
북궁천은 왠지 못 미더웠다. 그래서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좋아, 그럼 몰래 따라오는 것도 안 되는 거다? 만약 따라오면 북천궁 구경시켜 준다는 약속도 없는 일이 되는 거다? 신의를 어기는 사람은 내가 어떻게 생각한다는 거 알지?”
“알았어요.”
그제야 안심한 북궁천은 몸을 돌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들 그런 눈으로 봐? 내가 애하고 싸우니까 이상해? 자네들이 몰라서 그렇지, 저 꼬맹이가 얼마나 끈질긴 줄 알아? 아마 내가 다그치지 않았으면 끝까지 따라왔을걸?”
“누가 뭐라고 했습니까?”
장추람이 한숨을 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으이그, 자기가 넘어간 줄도 모르고…….’
남자가 여자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는 게 무슨 의미인 줄 알기나 하나?
여자가 남자의 집까지 따라가겠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그것도 수천 리나 떨어진 곳에 말이다.
자신이 코 꿰인 줄도 모르고…….
물론 북궁천은 그때까지도 몰랐다.
“말썽꾸러기를 떼어 냈으니 그만 출발하세. 그런데 정한이는 어디 갔지?”
동호량이 전각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사형! 대형께서 출발하신답니다!”
곧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으로 이정한과 능소소가 건물 뒤에서 나왔다.
북궁천이 그걸 보고 중얼거렸다.
“여기서 이야기하면 누가 뭐라고 하나? 왜 거기까지 가서 이야기를 나눠?”
동호량과 초강이 그런 북궁천을 힐끔거렸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이제 좀 나아졌나 했더니…….’
남녀가 구석진 곳을 찾아들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천하의 거의 모든 남녀들이 아는 그 이유를 대형만 모르는 듯했다.
여전히 남녀에 대해서 초보인 북궁천은 보다 편한 마음으로 출발을 알렸다.
“이제 가자고.”
그 때였다.
몇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운화원에 들어섰다.
그중 마흔 전후로 보이는 중년인이 반가움과 안도의 표정으로 공손설을 불렀다.
“설아야!”
“오빠!”
선이 굵은 얼굴에 떡 벌어진 어깨. 위맹한 겉모습을 지닌 중년인은 공손설의 큰오빠인 공손후였다.
강호에서는 그를 사자신검(獅子神劍)이라 불렀는데, 실력이 철혈검군 공손무극의 젊을 때에 비해서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절대고수였다.
“어떻게 된 거냐?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너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너무 걱정 마세요.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너 때문에 간이 조마조마해서 안 되겠다. 정말 시집이라도 보내든가 해야지 원.”
어정쩡한 상태로 서 있던 북궁천이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꼬맹이가 무슨 시집을 가?”
작게 중얼거린 소리였다.
그러나 운화원 안에 있는 사람 중 그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몇 사람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몇 사람은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몇 사람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공손후는 고개를 돌려서 북궁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북궁천 일행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뒤늦게 느끼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아야, 저 사람들은 누구냐?”
공손설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빠, 인사하세요. 이쪽은 제 큰오빠예요.”
그 말에 공손후가 먼저 반응을 보였다.
“오빠라고?”
“예, 큰오빠.”
“그럼 혹시 저번에 너를 구해 줬다던 그 사람? 하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는 그 신비공자 단화린?”
“맞아요. 바로 그분이에요.”
공손후는 그제야 밝은 웃음을 지으며 북궁천을 향해 두 손을 맞잡았다.
“하하하하, 설아의 큰오빠 되는 공손후라 하오. 면산의 일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소. 설아를 구해 주어서 정말 고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