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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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01화
101화
1장. 아들이라니!
헌원려려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북궁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
그러고 보니 정신을 잃기 전에도 그 이름을 말했던 것 같다.
진아가 누굴까? 누군데 헌원려려가 잊지 못하는 걸까?
“려려, 진아라고 했어? 그게 누구지?”
헌원려려의 바싹 마른 입술이 가늘게 떨리며 열렸다.
“진아…… 아들…….”
순간 북궁천의 표정이 괴이하게 이지러졌다. 워낙 충격이 커서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아들이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것 아닐까?
설마 헌원려려와 구양우경 사이에 아들이 생긴 것은 아니겠지?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북궁천의 헌원려려를 잡고 있는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들이라니? 려려에게 무슨 아들이 있다는 거지?”
제발 아니라고 해 줘!
‘아닐 거야! 절대 아닐 거야!’
하지만 헌원려려는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미안…… 해요. 진즉 말했어야 하는데…….”
북궁천은 이를 악물었다.
맙소사!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헌원려려에게 아들이라니!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북궁천의 손이 덜덜 떨렸다. 침착 하려고 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서, 설마 그 애가 그놈의……?”
“바보…… 같은 사람…….”
“그래, 나는 바보다. 그러니 솔직히 말해 줘, 려려. 절대 화 안 낼 테니까.”
헌원려려는 북궁천의 생각을 짐작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모두 내 잘못이야. 이분이 오해하는 것도 당연해.’
구양우경과 억지 혼약을 하긴 했지만 조건을 달았다. 혼인 전에는 절대 자신의 몸을 건드리지 않기로.
구양우경은 마지못해서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 후로 그는 몇 번이나 욕심을 품었지만 그녀는 약속을 내세우며 끝끝내 그를 거절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채.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아니라 말해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북궁천뿐만이 아니라 세상 누구라도 구양우경이 그녀를 품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평생 짊어져야 할 업보일지도…….
그녀는 눈물이 맺히려는 눈으로 북궁천을 보며 최대한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당신도 내 고집 알잖아요.”
“그, 그거야 잘 알지.”
북천마제조차 이기지 못한 고집이다. 북궁천이 아는 한 고집 하나는 헌원려려가 천하제일일 거다.
“삼성궁으로 갈 때 약속을 받았어요. 정식으로 혼인하기 전에는 절대 저를 건드리지 않기로.”
북궁천이 그 말을 듣고 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솔직히 가슴이 무척 쓰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그래? 그건 정말 잘했어! 하하하! 그 자식, 결국 헛물만 켰군.”
그렇게 좋아하던 북궁천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이 사라졌다.
“가만? 그, 그럼 그 아기는……?”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헌원려려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바람에 매달려 있는 눈물이 끝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진아는…… 당신 아들이에요.”
당신 아들!
북궁천은 그 말을 듣고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눈을 두어 번 깜박인 그는 풍 걸린 사람처럼 입술을 덜덜 떨며 겨우 물었다.
“그, 그럼…… 그때 그 일로…… 아들이 생겼단…… 말?”
헌원려려는 대답하기가 힘겨운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대신했다.
북궁천이 벌떡 일어났다.
“맙소사, 어떻게 그런 일이? 그럼 정말 내 아들이 있단 말이야? 맙소사, 말도 안 돼.”
그는 정신없이 좌우를 오가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그가 헌원려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말, 정말이지?”
헌원려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천은 다시 그녀 곁에 바짝 달라붙었다.
“내 아들이 있단 말이지? 정말 나와 려려 사이의 아들이란 말이지? 구양우경의 아들이 아니고? 정말이지?”
헌원려려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왜 진즉 그 말을 안 했지? 나 미치게 만들려고 그런 거야?”
“했으면…… 가만…… 있었겠어요?”
절대 그랬을 리가 없다. 아마 앞뒤 가리지 않고 헌원려려를 납치해서라도 뛰쳐나왔을 것이다.
막는 놈은 다 때려죽이고!
그리고 아들을 찾기 위해서 달려갔겠지!
그제야 북궁천은 헌원려려가 말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려려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아서 탈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옛날하고 많이 달라졌는데, 좀 믿어 보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지나간 일이 아니다.
“그 아이, 진아. 내 아들은 어디 있지?”
그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공손설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이라니요? 무슨 말이에요, 오빠?”
“어서 와라, 설아야. 려려가 이제 말도 한다. 하하하!”
공손설은 혼란스런 표정으로 헌원려려의 침상으로 다가왔다.
북궁천은 그제야 조금 전의 질문에 대답했다.
“려려하고 나 사이에 아들이 있다지 뭐냐.”
아들이든 딸이든 자식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공손설이 왜 그걸 모를까?
노력하면 두 사람 사이를 파고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더 높고 두꺼운 벽이 앞을 가로막은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가까스로 가라앉히고 먼저 헌원려려에게 축하 인사를 했다.
“정신이 드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언니.”
헌원려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였다.
공손설은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입술을 잘근 깨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오빠와 언니 사이에 아들이 있는 거예요?”
“응…….”
“어디 있어요?”
그 질문에 북궁천도 헌원려려를 바라보았다.
“맞아, 진아는 어디 있지? 포원산장?”
그런데 헌원려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디에?”
“삼성궁에…….”
북궁천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삼성궁에 있다고? 진아, 나와 려려의 아들이?”
“그래서…… 데리러 가려고…… 했던 거예요.”
북궁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 삼성궁으로 달려가기라도 할 것처럼.
하지만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지, 려려가 낫는 걸 보고 가야겠어.”
그런데 헌원려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가요. 가서…… 데려와요. 궁주님이 허락했으니…….”
“일단 려려가 회복하는 거 보고.”
“난 이제 괜찮아요. 빨리 가서…… 진아를…….”
북궁천은 헌원려려의 계속된 재촉에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인들 왜 가고 싶지 않을까? 자신과 헌원려려의 아들이 수천 리 밖에 있거늘!
그러나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린 헌원려려를 두고 가려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가도 괜찮겠어? 갑자기 악화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그 때 공손설이 말했다.
“일단 방 의원님께 물어봐요.”
곧 방곡추가 들어왔다. 헌원려려의 상태를 자세히 살펴본 그는 간단하게 그녀의 상태를 설명했다.
“내일부터 조금씩 걸어 다녀도 될 것 같군.”
근육과 관절은 북궁천이 매일 풀어 줘서 굳어 있는 곳이 없었다. 그저 힘이 없을 뿐.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어 준 약만 꾸준히 먹으면 괜찮아질 거네.”
해서 그렇게만 말했다.
방곡추의 말에 안도한 북궁천은 헌원려려의 손을 잡았다.
“그럼 가서 진아를 데려오마. 그때까지 건강을 완전히 되찾아야 한다.”
헌원려려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웃음 대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아이 몸이 좀 안 좋아요. 그러니 조심해서 데려와요.”
움찔한 북궁천이 눈을 크게 뜨고 헌원려려를 바라보았다.
“몸이 안 좋다고?”
“태어났을 때부터 선천적으로 맥이 약해요. 그래서…….”
헌원려려는 착잡한 표정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진아의 어디가 안 좋은지, 자신이 왜 구양우경과 혼인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제야 사정을 안 북궁천은 그녀가 더 안쓰럽게 느껴지는 한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나 때문에 려려만 고생했군. 정말 미안하다.”
“아니에요. 미안한 건 저예요. 그냥 검원장에서 아이를 낳았어야 하는데…….”
“려려는 미안해할 것 없다. 다 나 때문이니까. 그러니 마음 편히 먹고 몸부터 나아.”
“고마워요.”
“고맙긴, 내가 고맙지.”
그 때 헌원려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방곡추가 말했다.
“아무래도 절맥증인 것 같군.”
북궁천이 다급히 물었다.
“절맥증?”
“맥이 약해서 기가 잘 통하지 않는 병이지.”
“고칠 수 있겠소?”
“봐야 알지.”
북궁천은 방곡추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싶었다.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 아이에게도 칼을 들이대는 것 아닐까? 구멍을 뚫겠다고 송곳이라도? 기다란 침을 푹 찔렀다가 잘못되면 어쩌지?
하지만 헌원려려를 고친 사람이 아닌가?
설마 아기에게까지 그러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그는 방곡추를 직시한 채 말했다.
“내가 데려오겠소. 데려오면 방 의원이 좀 봐주쇼.”
“보기 전에는 고친다는 장담을 할 수 없어. 그래도 일단 데려와 봐. 최소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으니까.”
“고맙소.”
북궁천은 방곡추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공손설을 바라보았다.
“잘 지켜. 만약 갔다 와서 아픈 곳 있으면 알아서 해.”
공손설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북궁천을 흘겨보았다.
왜 안 가냐며 타박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집 지키는 강아지 취급한다.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고,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차라리 저희 집으로 옮기는 게 어때요? 여기에 있으면 위험할지도 모르잖아요. 오빠가 아기를 찾아서 데려올 때 저희 집에 들러서 데려가시면 될 것 같은데.”
북궁천은 단칼에 잘라서 거절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곽전유가 공손설을 납치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적이 있지 않던가?
천사교가 자신을 추적해 올지도 모르는 일. 자신이 삼성궁에 다녀올 동안 철군성에 머문다면 헌원려려의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왠지 음흉한(?) 냄새가 풍겨서 그렇지.
‘저것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공손설은 북궁천의 마음이 흔들렸다는 것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몇 마디 덧붙였다.
“저도 너무 오래 나와 있어서 집에 가 봐야 돼요. 오빠도 언니가 안전하게 있어야 마음이 놓일 거 아니에요? 철군성에 가면 뛰어난 의원이 있으니 언니 치료도 할 수 있고요.”
그녀가 가면 염구악과 엽청문, 능소소가 따라간다.
태극문 제자들을 남겨 놓는다 해도 그들만으로는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말이야…….”
그가 미적거리자 공손설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지어 버렸다.
“그럼 그렇게 해요. 나가서 준비하라고 할게요. 운봉사에 가마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나 알아봐야겠어요.”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휙 나가 버렸다.
북궁천은 공손설이 나간 방문을 잠시 째려보고는 헌원려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어?”
헌원려려는 공손설의 속셈을 알면서도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분에게는 나처럼 고집만 센 여자보다 설아처럼 명랑한 여자가 나아.’
“그럼 준비하고 오마.”
북궁천은 헌원려려의 손을 한 번 쥐고는 밖으로 나갔다.
방문이 완전히 닫히고도 셋을 셀 시간이 흐를 즈음, 방곡추가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목소리로 뜻 모를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