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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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37화
137화
“미친놈이 눈까지 멀었나? 저기 있잖아?”
장추람이 복수하듯이 비아냥거리며 턱짓으로 아기를 가리켰다.
그러나 구양우경은 아기를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이 돼지 같은 놈아! 내가 보고 싶은 건 진아지, 저런 돼지 새끼가 아니란 말이다!”
“이 미친놈이……!”
장추람이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주먹을 쥐고 구양우경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수룡위사대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초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의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이상하단 말이오?”
“그게…… 진아라는 아기가 아닌 것 같아서…….”
순간이었다.
북궁천의 신형이 쭉 늘어나는가 싶더니 수룡위사대원 앞에 나타났다.
“헉!”
수룡위사대원이 대경해서 반사적으로 물러서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북궁천의 손에 목이 잡힌 후였다.
“다시 말해 봐라. 방금 뭐라고 했지?”
북궁천과 바로 앞에서 눈이 마주친 수룡위사대원은 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 그게…… 제가 본 아기는…… 저렇게 살색이 검지 않았…….”
그 와중에도 구양우경은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발악하고 있었다.
“진아를 데려와! 내가 속을 줄 알고? 빨리 진아를 데려오란 말이야!”
수룡위사대원을 노려보는 북궁천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정말 저 아기가 진아처럼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진아는 몸이 아파서 얼굴도 하얗고 인형처럼 예쁩니다.”
유모가 안고 있는 아기는 그의 말과 거리가 멀었다. 유모가 철교신을 닮았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추람, 유모와 아기를 보호해서 이리 데려와라.”
장추람이 굳은 얼굴로 유모와 아기를 북궁천에게 데려왔다.
구양우경은 바로 앞까지 아기가 왔는데도 쳐다보지 않고 진아를 데려오라며 소리만 질러 댔다.
북궁천은 유모가 바로 옆까지 다가오자 수룡위사대원에게 말했다.
“다시 잘 봐라. 진아와 정말 다르게 보이냐?”
아기를 가까이서 살펴본 수룡위사대원이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아닙니다. 며칠 사이 이렇게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북궁천은 맥이 쭉 빠졌다.
“이 아기가 진아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도 잠시, 북궁천의 몸에서 서리처럼 차가운 기운이 뿜어졌다.
“그럼, 그럼 우리 진아는 어디 있단 말이냐?”
* * *
호연유는 즐거워서 미칠 것 같았다.
상남까지 후퇴하면서 얼마나 이를 갈았는지 잇몸이 아플 지경이었다.
그런데 북궁천의 아기가 자신의 옆에 있는 걸 보니 그동안의 분노가 봄 햇살 아래 눈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다.
아기를 무사히 빼돌린 것은 마응초의 공이 컸다.
처음에는 구량이 아기를 데려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마응초는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 끝까지 아기를 내주지 않았다.
대신 등주에서 젖을 먹이기 위해 데려온 산부의 아기를 구량 일행에게 맡겨서 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마응초는 수백 리 길을 빙 돌아서 적의 눈을 피했다.
결국 구량 일행은 북궁천 일행에게 발각되었다.
어리석은 놈들은 그 아이가 진짜인 줄 알고 마응초를 더 이상 쫓지 않았다. 덕분에 마응초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더 걸린 대신 무사히 아기를 상남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물론 구량 등이 죽어 큰 손실을 입긴 했지만 아쉬움은 조금도 없었다.
그들의 목숨 따위는 아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와하하하하! 북궁천 그놈, 아기가 나에게 있는 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소존이 대소를 터트리자 사야승도 미소를 지었다.
서협에서 패배하고 서평까지 빼앗긴 후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소존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존의 성격을 아는 그로선 그동안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을 만큼 긴장된 나날이었다.
여차하면 팔다리 하나 자르라는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웃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안심해도 될 듯했다.
“놈에게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소존.”
“그렇게 하시오. 철저히, 아주 철저히 놈을 이용할 계획을 짜서 보고하도록 하고. 교주께서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 말이오.”
“예, 소존.”
“아기를 돌봐 줄 유모도 알아보시오.”
“알겠습니다.”
사야승은 몸을 일으켜 방을 나갔다.
호연유는 옆에 놓인 아기를 바라보았다.
하얀 피부, 커다란 눈망울. 정말 예쁜 아기였다.
아기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기이한 열기가 떠올랐다. 아기를 보니 헌원려려의 아름다움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아쉽군, 정말 아쉬워. 놓치지 않았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말이야.”
구양우경이 오죽하면 그녀에게 빠져서 몸서리처지는 쾌락조차 참았을까?
그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사이한 미소를 지었다.
때가 때인 만큼 자제했다.
아무리 천사지존이 부친이라 해도 지금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일탈을 하면 용서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아기를 보고 헌원려려를 상상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상남에도 괜찮은 계집들이 있을 텐데, 한번 찾아볼까?’
문득 구양우경이 계집 하나를 납치해서 즐기려 했다가 실패한 일이 떠올랐다.
그 일로 인해서 구양우경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지 않았던가?
‘어떤 계집이기에 구양우경이 그 상황에서도 즐기려고 했는지 모르겠군.’
은근히 궁금해졌다.
상남에 산다고 했으니 잡아 오라고 할까?
‘미리 잡아다 놓고 북천마제를 종처럼 부리면서 즐기는 것도 괜찮겠어.’
그 전에 두어 가지 일을 먼저 처리해야겠지만.
마음을 정한 그는 밖을 향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서 혈사령을 들어오라 해라!”
계집은 계집이고,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상주에 전하고 싶었다. 아버지도 소식을 들으면 자신을 달리 보게 될 테니까.
* * *
북궁천은 침상 위의 아기를 바라보며 석상처럼 굳은 채 움직일 줄 몰랐다.
뒤에 서 있는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 이조량과 태극문 제자들은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궁천은 그들에 대해서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는 구양우경과 수룡위사대원의 말을 믿었다.
구양우경은 제정신이 아니니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아기가 진아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집착에 빠진 미친놈은 헛소리를 하긴 해도 거짓말을 하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수룡위사대원의 눈빛도 거짓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앞에 있는 아기가 진아가 아닐 때였다.
이 아기가 정말 진아가 아니라면, 진아는 천사교 놈들이 빼돌렸다는 뜻.
지금쯤 놈들의 손에 들어갔을 게 분명했다.
미칠 것 같은 심정.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북궁천은 허공을 한참 동안 노려보더니 달라붙은 입을 열었다.
“천사교 놈들의 목적이 뭐라고 보느냐?”
북궁천이 침묵을 갑작스럽게 깨며 질문을 던지자 모두가 숨을 멈췄다.
“대형께 복수하겠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동호량이 먼저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러나 냉호가 느릿하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보다는 구양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죠.”
모두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러지 않기를 바라기에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런데 장추람이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군, 정말 놈들이 아기를 인질로 우리에게 정파연합을 공격하라는 요구를 할까요? 우리 손에 죽은 천사교도만 해도 이백 명이 넘는데 말입니다.”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소존이란 놈은. 자신의 계획을 위해서 교도 일천을 미끼로 내놓은 놈이 무슨 짓을 못 하겠느냐?”
사람들은 가슴이 묵직해져서 입이 닫혔다.
그 와중에 북궁천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철저히 이용해 먹으려고 하겠지.”
“죽일 놈의 새끼. 그때 머리를 부숴 버렸어야 하는데…….”
장추람이 이를 갈며 욕을 퍼부었다.
당시 북궁천도 솔직히 소존이 그렇게 빨리 도망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그 바람에 그를 놓치고 말았다.
“주군, 놈이 정말로 그런 요구를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가 놈의 요구를 들어줘서 전쟁이 천사교의 승리로 끝난다면 아기를 돌려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대형…….”
초강이 뭐라고 입을 열려다 얼버무렸다.
당사자인 북궁천에게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아기가 중요했다. 정파가 이기든 마도가 이기든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당사자가 아닌 초강으로서는 북궁천에게 마도를 위해 싸울 수 없지 않느냐는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북궁천도 초강의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소존이 요구한다면 그가 갈 수 있는 길은 정해져 있었다.
“초강,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초강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때 북궁천이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초강과 호량은 정한이를 데리고 철군성으로 가라.”
부상으로 인해 얼굴이 창백한 이정한은 물론이고 동호량과 초강의 눈이 커졌다.
“예?”
“대형…….”
북궁천은 그들이 가지 않으려 할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들의 마음을 받아 줄 여유가 없었다.
“하라는 대로 해라. 가서 려려를 지켜. 진아에 대한 것은 아직 말하지 말고. 그리고 조량은 아기를 취향루에 데려다 주고 부모를 찾아보라고 해라.”
“예, 대형.”
이조량은 순순히 대답했다.
거부한다고 해서 생각이 바뀔 북궁천이 아니다. 아기를 데려다 준 다음에는 뜻대로 해도 될 터. 어떻게 할 것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북궁천은 고개를 돌려서 장추람 등 북천궁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희더러 돌아가라는 말씀은 마십시오, 주군.”
아직 말도 하지 않았는데 북궁천의 뜻을 지레짐작한 장추람이 단호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의 목소리는 물론 표정에도 절대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려 있었다.
“누가 돌아가랬어?”
“예? 그럼……?”
“너희는 나와 함께 진아를 찾으러 간다. 단단히 각오해, 죽을지도 모르니까.”
말을 이어가는 북궁천의 눈에 서리가 내렸다.
장추람 등도 세상을 얼려 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죽는 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걱정 마십쇼.”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명령이군요.”
“아기나 이용하려는 더러운 놈들의 목을 모조리 따 버립시다, 주군!”
* * *
상주 외곽 금천장(金天莊)의 대전각인 금화전(金華殿)의 화려한 방 안.
넓은 방 안에 세 사람만이 앉아 있는데도 꽉 찬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다.
“바보 같은 놈! 그따위 정파 놈들에게 밀리다니. 내가 유아를 너무 믿었나?”
호연도광이 짜증 난 표정으로 말하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가 고개를 저을 때마다 황금빛 도관에 매달린 수정 구슬이 흔들리며 사이한 빛을 뿌렸다.
겨우 승기를 잡아 간다 했는데 또 밀리고 있다. 혈문과 마종보의 고수들까지 붙여 줬거늘.
아무리 자식이라지만 더 이상 감쌀 수만은 없었다.
그 때 호연도광의 좌측에 앉아 있던 노인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교주, 소존을 불러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