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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27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4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27화

 

127화

 

 

 

 

 

 

 

가로막고 싶어서 막은 게 아니었다. 도망가려 했는데, 하필이면 재수 없게 흑의인의 앞을 막은 것이다.

 

쉬아아악!

 

흑의인은 달리던 그대로 칼을 휘둘러서 청년의 목을 쳐 버렸다.

 

그런데 살기를 느낀 말이 놀라서 앞다리를 높이 쳐들며 날뛰었다.

 

그 바람에 흑의인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몸을 틀어서 옆으로 내려섰다.

 

그사이, 강패를 태운 말은 이미 십여 장 밖을 달려가고 있었다. 평소엔 볼 수 없는 질풍 같은 속도였다.

 

흑의인이 말을 쫓아가기 위해 몸을 날렸을 때는 이미 이십 장으로 거리가 벌어진 상태.

 

때마침 언덕 위에 나타난 마응초가 두 사람을 불러들였다.

 

“갈 길이 멀다. 놔두고 돌아와라.”

 

 

 

* * *

 

 

 

어느새 하늘이 어두워졌다.

 

구름이 끼어서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밤.

 

남양을 출발해서 남서쪽으로 걸음을 바삐 옮기던 북궁천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또각, 또각, 또각.

 

말발굽 소리였다.

 

빠른 간격이 아닌 걸 보니 걷는 듯했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언덕 너머.

 

“제가 가 보겠습니다.”

 

장추람이 앞서 달려가 언덕 위로 올라갔다.

 

곧 고개를 돌린 그가 북궁천 쪽을 향해 말했다.

 

“주군, 말에 부상자가 타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언덕을 넘어서 사라졌다.

 

북궁천 일행도 걸음을 빨리해서 언덕을 넘어갔다.

 

말은 한 마리였다. 말 등에는 덩치가 큰 사람이 엎드리고 있었는데, 몸이 흔들거리는데도 용케 떨어지지는 않았다.

 

장추람이 말고삐를 잡고 옆에 서서 거한을 살펴보았다.

 

특별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드러날 정도로 얼굴이 창백했고, 입가에 피가 묻어 있었다.

 

심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괜찮아?”

 

정신을 잃기 직전 들려온 목소리에 강패는 안간힘을 다해서 고개를 들었다.

 

“누구……?”

 

그런데 그 바람에 중심을 잃고 말 반대편으로 스르르 떨어졌다.

 

장추람이 번개처럼 반대편으로 몸을 날려서 떨어지는 강패의 허리를 붙잡았다.

 

가까스로 땅에 처박히는 꼴을 면한 강패는 장추람이 바닥에 몸을 내려놓자 기침을 터트렸다.

 

“쿨룩, 쿨룩!”

 

그가 기침을 할 때마다 입술에서 피가 튀었다.

 

강력한 내기에 장부가 상하면서 위장에 피가 고인 것이다.

 

“우린 마차를 찾고 있는 사람이다. 혹시 이상한 마차를 본 적이 없나?”

 

장추람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강패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는 한이 사무친 눈빛으로 장추람을 노려보면서 온 힘을 다해서 입을 열었다.

 

“봤소. 그 마차를 몰던 놈들도.”

 

그 때 바로 옆까지 다가간 북궁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은 어디 있지? 자세히 말해 봐라.”

 

강패는 그렇게 무서운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심혼이 얼어붙는 느낌.

 

몸을 부르르 떤 그는 북궁천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기서 삼십 리 정도 떨어진 곳…….”

 

강패는 흑의인들을 만난 곳에 대해서 기억나는 대로 최대한 자세히 말하고 으드득 이를 갈았다.

 

“그곳에서 내 동생 넷이 놈들에게 처참하게 죽었소.”

 

“암경회의 사람인가?”

 

“당하 지부의 강패요.”

 

“그들의 뒤를 쫓다가 당한 건가?”

 

“그렇소.”

 

“네 동생들의 복수는 우리가 해 주마.”

 

강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흐흐흐, 고맙소. 꼭 그놈들을 죽여 주쇼. 이 강패는 손해 보고는 못 사는 놈이오. 놈들을 죽일 때 목을 뎅강 잘라 버리쇼.”

 

북궁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강패를 향해 우수를 뻗었다.

 

부드러운 기운이 강패의 몸을 휘감았다.

 

강패는 자신의 몸속으로 기이한 기운이 스며들자 눈을 크게 떴다.

 

북궁천은 그렇게 열을 셀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손을 거두었다.

 

“무리하지만 않으면 죽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거다.”

 

강패는 속이 조금 편해진 것처럼 느껴지자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힘들긴 해도 일어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금방 죽을 것 같던 자신의 몸이 손짓 한 번으로 회복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제야 상대가 천신 같은 능력을 지닌 고수라는 걸 안 그는 감격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강호의 고수들은 자신들을 벌레처럼 여긴다.

 

그런데 그 어떤 고수보다 더 대단한 능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청년은 그런 자들과 달랐다.

 

“정말 고맙습니다, 공자. 오늘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대는 임무에 충실했다. 나는 당연히 해 줘야 할 일을 한 것뿐이고.”

 

북궁천은 무심한 어조로 대꾸하고 몸을 돌렸다.

 

시간 차이는 한 시진 정도. 거리는 오십 리에서 백 리 사이. 방향으로 봐서는 예상대로 등주를 지나가려는 듯했다.

 

아직 먼 거리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가자, 추람.”

 

 

 

* * *

 

 

 

“다 왔군.”

 

마응초는 별 탈 없이 도착한 것에 안도하며 등주로 들어갔다.

 

해시를 지나 자시가 다 된 시각.

 

등주의 밤거리는 음산한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마응초는 좌우를 살피며 동서를 가로지른 대로로 진입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간혹 보이긴 했지만 평범한 양민들이었다.

 

잠시 후. 그는 작은 장원의 낡은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대문에는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천복(天福)’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곳이 바로 천하에 산재한 천사교의 지부 중 등주 지부였다.

 

탕탕탕.

 

수하 하나가 문을 두드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뉘시오?”

 

“천귀산에서 온 마씨요.”

 

곧 문이 열리고 빼빼마른 장한이 얼굴을 드러냈다.

 

마응초는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왔는가?”

 

“예, 안에 계십니다. 따라오시지요.”

 

혈뇌는 구양환이 아기를 빼돌려 놓았을지 모르는 장소로 두 군데를 예상했다.

 

한 곳은 헌원려려의 고모부인 서문각의 포원산장. 다른 한 곳은 구양환의 친구가 지주(知州)인 등주 현청.

 

그는 마응초가 이끄는 삼조를 포원산장으로 보내고, 기학태가 이끄는 오조는 등주로 보냈다.

 

그리고 삼조가 아기를 찾으면 등주로 가서 합류하고, 기학태가 아기를 찾으면 곧장 서협으로 복귀하라고 했다.

 

그런데 마응초가 임무에 성공해서 등주로 온 것이다.

 

 

 

마응초는 수하들과 함께 장한의 안내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십여 명이 있었는데, 삼십 대 후반의 중년인이 그를 반겼다. 사밀영 오조장인 기학태였다.

 

“아기는 찾았나?”

 

마응초는 자신이 매고 있는 보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에 있네. 그런데 죽이라도 끓여야 할 것 같군.”

 

“죽?”

 

“아기가 하루 종일 굶었네. 이상이라도 생기면 문책이 뒤따를 거야.”

 

“알았네.”

 

기학태는 마응초를 안내해 온 장한에게 죽을 준비하라 이르고는 한쪽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분들은 소존께서 아기의 안전한 호송을 위해 보낸 분들이시네.”

 

 

 

* * *

 

 

 

별빛 하나 보이지 않던 하늘에서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등주에 들어선 후라 다행이었다.

 

북궁천은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길을 따라 등주 깊숙이 들어갔다.

 

자정이 다 된 시각. 대부분의 객잔은 문을 닫았고, 취객들의 고집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하는 주루 몇 곳에서만 횡설수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임강령은 왕두평이 말한 취향루를 아는 듯 머뭇거리지 않고 앞장서서 걸었다.

 

반 각가량 빠르게 걸은 그는 커다란 기루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삼 층으로 된 기루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대낮처럼 밝았다.

 

늦은 시간인데도 주루 안에서 여인의 교소와 왁자지껄한 취객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기루가 문을 닫기 전에 마지막 불길을 활활 태우는 듯했다.

 

취객들은 아름다운 기녀들을 어떻게든 안아 보기 위해서. 기녀들은 취객의 주머니를 최대한 털어 내기 위해서.

 

임강령은 입구 위에 매달린 ‘취향루’라는 현판을 슬쩍 쳐다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북궁천 일행도 그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염소수염을 매단 중년인이 빠르게 다가오며 난색을 표했다.

 

“아이고, 무사님. 이제는 너무 늦어서 손님을 받을 수 없습니다요. 내일 오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임강령은 간결하게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

 

“우리는 술을 마시러 온 게 아니다. 주인은 어디에 있지?”

 

“루주님은 왜 찾으시는 겁니까요?”

 

“남양의 왕두평이 보내서 왔다. 주인에게 안내해.”

 

염소수염 중년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양 왕 회주님께서 보내셨다고요?”

 

“잔소리 말고 빨리 안내해. 한시가 급하니까.”

 

염소수염 중년인은 난감한 표정을 드러내며 말을 더듬었다.

 

“그게 저…… 루주님께선 지금 이 층에서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계신 중이라…….”

 

“왕두평보다 중요한 손님인가?”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니라…… 하, 이거 참.”

 

염소수염 중년인은 말을 더듬으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북궁천은 말 한마디 건네는 시간도 아까웠다.

 

“우리가 찾아보지.”

 

그가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고 몸을 돌리자,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임강령이 그 모습을 보고는 염소수염 중년인을 다그쳤다.

 

“주루가 망하는 꼴 보기 싫으면 어서 안내해.”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손님들이 화를 낼지 몰라서 말입죠.”

 

염소수염 중년인은 눈알을 굴리며 망설였다.

 

왕두평이 보낸 사람들이라면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루주를 찾아온 손님 또한 왕두평에게 뒤떨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어떤 면으로는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두평이 직접 왔다면 몰라도 심부름을 온 자들 때문에 그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때 북궁천이 슬쩍 고개만 돌리고 물었다.

 

“어느 방이지?”

 

“이 층 끝 방에…….”

 

염소수염 중년인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그사이 장추람을 비롯한 세 사람이 이 층 계단을 올라갔다.

 

이 층은 긴 회랑을 중심으로 양쪽에 열두 개의 방이 늘어서 있었다.

 

그런데 그중 끝에 있는 방 앞에 무사 셋이 서 있었다. 서 있는 자세로 봐서 방 안에 있는 누군가의 호위무사인 듯했다.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이 그들에게 다가가자, 무사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가?”

 

“취향루의 주인을 찾고 있는데, 그 안에 있나 보군.”

 

“왜 루주를 찾는 거지?”

 

“볼일이 있어서. 좀 비켜 주겠나?”

 

“건방진 놈들이군. 안에는 우리가 모시는 공자께서 계신다. 루주를 만나려거든 기다려라.”

 

“기다릴 시간이 없어서 올라온 거야.”

 

“말투를 보니 시골 촌놈들 같은데, 어디 부러지기 전에 얌전히 물러나라.”

 

“시간이 없다니까?”

 

장추람은 앞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훗, 내 말이 말 같지 않게 들리나 보군.”

 

장한이 가볍게 코웃음 치더니 장추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장추람은 장한의 손을 가볍게 쳐 내고는 손바닥을 뒤집으며 쑥 뻗었다.

 

장한이 엇? 하며 흠칫함과 동시, 장추람의 손바닥이 가슴에 틀어박혔다.

 

퍽!

 

“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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