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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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26화
126화
1장. 등주지야
배가 고픈 듯 아기가 칭얼대며 울어 댔다. 그래서 수혈을 짚어 놓았다.
그러고는 가끔 풀어 주었다가 우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시 짚었다.
최근에 짚은 것이 한 시진 전. 그런데 숨을 쉬지 않는 것이다.
이상 없이 데려오라는 명령만 아니었다면 죽든 말든 상관할 바 없었다. 그러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아기가 잘못되면 자신의 인생도 끝장이었다.
‘혈도를 너무 오래 짚어 놓았나?’
급히 아기를 보따리 안에서 꺼낸 그는 혈도를 풀어 주고 가슴을 매만졌다.
날씨가 시원한데도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가 살아온 삼십오 년 동안 이토록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살기를 간절히 바란 것도 처음이었다.
그동안에는 죽이기만 했으니까. 죽이는 것만 배웠으니까.
평소 같으면 버리고 가면 그만인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흑의인 하나가 마차 문을 열고 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응초가 하는 행동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혹시 아기가?”
“맥이 멈춘 것은 아닌데 숨을 쉬지 않는다.”
“입에 대고 가볍게 숨을 훅, 훅 불어 넣으면서 심장을 눌러 보십시오. 오래되지 않았다면 막힌 숨통이 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
마응초는 아기의 입을 벌리고 숨을 불어 넣었다.
훅, 훅!
그러면서 손으로는 가슴을 계속 눌렀다.
하늘이 아기의 죽음을 원하지 않은 것인가?
다행히 십여 번 했을 때, 아기가 나직한 기침을 뱉어 내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컥, 컥. 아아아앙!”
아기의 울음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마응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후우우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그 때였다.
멈칫한 그가 강적을 노려보듯 아기를 바라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보따리를 완전히 푼 다음 아기의 기저귀를 풀어 보았다.
“제길, 먹은 것도 없으면서 많이도 쌌군.”
그날 마응초는 난생처음 아기의 뒤를 닦아 보았다.
잠시 후.
아기를 다시 보따리에 싼 마응초는 보따리를 메고 마차를 나왔다.
비는 이미 멈춰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기를 수하에게 맡기고 편하게 움직이고 싶었지만, 아기를 조장이 책임지라는 혈뇌의 명령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적을 만나 위험에 처하면 자신은 무조건 도주해서 아기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가자.”
* * *
마응초가 마차를 버리고 남쪽으로 달려갈 즈음.
풍산객잔에 인상 더러운 손님이 찾아왔다.
“혹시 이상한 마차 못 봤어? 다리가 짧은 멍청이 말 두 마리가 마차를 끈다고 하던데.”
점소이는 느닷없이 찾아와서 엉뚱한 질문을 해 대는 인상파 거한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거한의 얼굴에는 일곱 개의 크고 작은 상흔이 만발했다.
암경회 당하 지부인 귀랑회의 다섯 소두목 중 하나인 강패가 바로 그였다.
평상시 허름한 풍산객잔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던 강패가 왜 갑자기 마차를 찾는 걸까?
어째든 점소이는 시끄러워지기 전에 자신이 본 대로 말해 주었다.
“그 마차라면 제가 봤는데요?”
“그래? 언제 봤지?”
“아까 비가 한참 올 때요. 멍청한 작자들이 땅이 질척해서 바퀴가 빠질 텐데도 그냥 가더라니까요?”
비가 한참 올 때라면 대충 반 시진 정도 지났다는 말이다.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디로 갔지?”
점소이는 손가락을 펴서 남쪽을 가리켰다.
“저쪽으로요.”
강패는 더 묻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좋았어! 백 냥은 내 거다!’
암경회의 명령을 받은 두목이 놈들을 먼저 찾는 사람에게 백 냥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아마 놈들을 찾았다고 보고를 올리면 두목은 그 몇 배를 처먹을 것이다.
두목이야 얼마를 처먹든 아무래도 좋았다.
약속한 대로 백 냥만 내놓는다면.
‘그 돈이면 선향이와 열흘은 놀 수 있겠지. 흐흐흐흐.’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진 그는 말 등에 훌쩍 올라타고는 수하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달려갔다.
강패가 마차를 발견한 것은 반 시진 만이었다.
다리가 땅딸막한 말 두 마리가 한쪽 바퀴 축이 부러진 마차를 끌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강패는 질척한 땅에 찍힌 발자국을 살펴보았다.
숫자는 셋 정도. 서남쪽으로 발자국이 이어진 걸 보니 신야나 등주 쪽으로 가는 듯했다.
“뻐드렁니.”
“예, 형님!”
“너는 즉시 돌아가서 회주에게 알려라. 놈들의 숫자는 셋. 신야나 등주 쪽으로 가는 것 같다고.”
강패는 제법 그럴듯하게 추측하며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수하 다섯 중 뻐드렁니가 툭 튀어나온 청년이 말머리를 돌려서 당하로 달려갔다.
다른 청년이 부러운 눈으로 뻐드렁니의 등을 바라보고는 강패에게 물었다.
“형님, 우린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나랑 함께 놈들을 쫓아가야지.”
“예? 두목이 싸움을 피하라고 했지 않습니까?”
“누가 싸운대? 우리가 찾는 놈들이 맞는지 확인은 해야 할 것 아냐?”
“마차를 보니까 딱 떨어지는데요, 뭐.”
“그래도 낯짝을 눈깔로 확인을 해야 정확하지.”
은자 백 냥을 먹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하면 절대 돈을 줄 두목이 아니었다.
‘그 쪼잔한 인간이 반은 깎을걸?’
진창 속을 먼지 나게 돌아다녀 놓고 오십 냥을 생으로 뜯길 순 없었다.
“가자, 놈들을 찾으면 오늘 밤에는 내가 한턱 쏜다. 아주 화끈하게!”
* * *
유시 초.
남양에 도착한 북궁천은 곧장 암평도국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왕두평이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단 공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왕두평은 북궁천 일행을 자신의 거처가 있는 암향장으로 안내했다.
북궁천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놈들에 대해서 들어온 소식이 있소?”
“방성에서 마차를 구해 남쪽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역시 남양으로 온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
“교활한 놈들. 우리를 위로 올라가게 해 놓고 거꾸로 내려왔군.”
“아기를 숨기기 위해서 마차를 구한 것 같습니다만, 다행히 그곳 마장을 저희가 운영하는지라 운 좋게 놈들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위치는?”
“아직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만, 남양과 남소 사이를 지나서 등주로, 아니면 남양과 당하 사이를 통과해서 진평으로 갈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풀었으니 곧 소식이 올 것입니다.”
북궁천은 앉아서 기다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침에 납치당했다. 지금 시각은 유시.
놈들이 아기에게 젖을 주고 이동하진 않을 터. 아기가 힘들어할 것을 생각하면 촌각도 아까웠다.
눈을 반쯤 감고 허공을 응시하던 그는 왕두평이 말한 두 곳 중 하나를 택했다.
“우리는 당하 쪽으로 내려가서 등주 쪽으로 꺾어지겠소.”
“등주로 가면 백 리 이상 돌아가야 합니다, 단 공자.”
왕두평은 마음이 급할 납치범들이 그 거리를 돌아갈까 싶었다.
그러나 북궁천은 그 이유 때문에 등주를 택했다.
“어차피 남쪽으로 돌아가는 것, 백 리 정도 더 돌아가지 못할 것도 없지.”
적의 눈을 피하는 데 유리하다면 백 리는 먼 거리가 아닌 것이다.
“그것도 그렇군요.”
“시간이 없으니 바로 출발하겠소.”
“지금쯤은 단 공자의 일행들에게도 소식이 전해졌을 겁니다. 그분들은 진평으로 가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등주에 가시게 되거든 취향루를 찾아가십시오. 제 말을 하면 어떤 부탁이든 성심성의껏 도와 드릴 겁니다.”
북궁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짧게 대답한 그는 방을 나섰다.
왕두평은 북궁천 일행이 암향장을 떠난 후로도 한참 동안 입구를 바라보았다.
한초상이 곁으로 다가와서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회주, 그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사람입니까?”
“우리 암경회의 모든 무사가 나서도 단 공자의 일행 중 한 사람도 제대로 막지 못할 거다.”
“예? 설마…….”
“한 당주, 단 공자와 함께 있던 중년인이 누군지 아느냐?”
“글쎄요.”
“그가 바로 고검 임강령이다.”
한초상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눈을 홉떴다.
“고, 고검이라고요?”
“그래, 그런데 고검이 입 한 번 뻥끗 못 하고 있다가 나갔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한초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고검 임강령을 제삼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단화린이란 이름을 귀가 따갑도록 듣긴 했지만, 설마 그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한 터였다.
왕두평은 그런 한초상의 반응을 보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맺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더 단 공자의 명을 받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하늘이야.”
* * *
강패는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한 시진이면 낯짝을 볼 수 있겠지. 길면 두 시진?
그런데 어스름이 깔리고 있거늘, 낯짝은커녕 꼬리도 보지 못했다.
빌어먹을!
슬슬 짜증이 났다.
‘이 개자식들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러다 등주까지 가는 거 아냐?’
자신을 따라온 네 놈은 죽을상이었다.
자신도 장시간 말을 탔더니 엉덩이가 다 아팠다.
더 따라가야 하나? 돌아갈까?
갈등이 일었다.
울화통이 터진 그는 가슴이 타 버리기 전에 화기를 밖으로 분출했다.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개새끼들아! 지옥 끝까지 따라갈 테니까!”
그 때였다.
오른쪽 언덕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죽고 싶으면 바위에 머리를 처박지, 왜 귀찮게 따라와?”
강패가 기겁해서 고개를 돌렸다.
어둑해지는 언덕 위에서 두 줄기 시커먼 그림자가 솟구쳤다.
강패와 그의 수하 넷이 말고삐를 잡아챘을 때 그림자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말을 돌려서 도망가기에는 늦은 상황.
그는 등에 매고 있던 칼을 뽑았다.
“두 놈밖에 안 된다! 막아!”
다른 네 사람도 엉겁결에 칼을 빼 들고는, 떨어지는 그림자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두 흑의인은 천사교 혈교령 휘하 비밀 조직인 사밀영의 고수들이었다.
당하 귀랑회의 일개 건달들이 막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일격필살의 마음으로 도검을 휘두른 터였다.
쉬아아악!
서걱!
흑의인들이 휘두른 도검에 귀랑회의 청년 둘이 말과 함께 쩍 갈라졌다.
“끄악!”
“흐어억!”
쩡!
강패의 칼도 중동이 부러져서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나마 그는 삼류심법이라도 익힌 덕에 몸이 양단되진 않았다. 하지만 눈앞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거센 충격이 전신을 휩쓸자 온몸이 굳어 버렸다.
말이 그 충격에 깜짝 놀라서 날뛰었다.
히히히힝!
강패는 그 와중에도 고삐를 놓치지 않았다.
흑의인이 강패의 칼을 부러뜨리고 바닥에 내려선 순간, 갑자기 말이 튀어 나갔다.
두두두둑.
강패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고삐를 붙잡고 말 등에 몸을 붙였다.
목이 콱 막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칼을 들었던 팔은 아무 감각이 없고, 배 속에선 내장이 터진 것처럼 극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흑의인은 즉시 강패의 말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그 때, 청년 중 하나가 흑의인의 앞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