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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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23화
123화
산을 내려가자 골짜기에서 싸우는 자들이 보였다.
초강은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살펴보았다.
네다섯 명이 뒤엉켜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초상으로 봤던 능상악이었다.
그가 흑의인 둘에게 가로막힌 사이, 또 다른 흑의인 둘이 아기를 안고서 도주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천사교 놈들이다!’
아기를 안고 도주하는 걸 보니 아기에 대해서 모든 사실을 아는 것 같다. 누구의 아기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최악의 상황!
이를 악문 초강은 도주하는 자들을 쫓아갔다.
지금쯤은 능선 너머에 남은 암경회 사람들도 아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사람들을 데려올 때까지 놓쳐선 안 되었다.
추적을 시작한 지 일각.
흑의인과의 거리가 삼십여 장으로 줄어들었다. 조금만 더 쫓아가면 놈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듯했다.
초강은 흑의인과의 거리가 좁혀지자 더욱 조심해서 움직였다.
신법을 보니 자신보다 강할 것 같진 않았다. 둘이라 해도 상대해 볼 만했다.
문제는 아기였다.
아기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함부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선 그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일단 시간을 끌면서 지체시켜야 해.’
그 때 도주하던 자들이 초강의 추적을 눈치챘다.
아기를 안은 자는 계속 달리고, 다른 한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이를 악문 초강은 달리던 그대로 흑의인을 공격하며 소리쳤다.
“천사교의 쥐새끼들! 아기를 내놓아라!”
땅을 박차고 이 장 높이로 뛰어오른 그는 흑의인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쌍장을 떨쳤다.
후우웅!
강맹한 장풍이 흑의인을 덮쳤다.
흑의인은 검을 뻗으며 추강의 장에 정면으로 맞섰다.
마음이 다급해진 초강은 전력을 다해서 광선장법을 펼쳤다.
그는 이제 예전의 이류무사가 아니었다. 일류를 넘어서 절정경지에 이른 고수였다.
폭풍처럼 밀려간 장세는 단숨에 흑의인의 검세를 밀어냈다.
그러나 사밀영에 속한 흑의인 역시 약한 자가 아니었다.
그는 초강의 접근을 막으며 아기를 안은 동료가 멀어지도록 시간을 끌었다.
초강은 전력을 다해서 흑의인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칠팔초가 지났을 때, 초강의 장력이 흑의인의 검세를 뚫고 가슴을 두들겼다.
떠덩!
“크윽!”
강력한 장력에 적중당한 흑의인은 신음을 토해 내며 대여섯 걸음 물러섰다.
초강은 그를 놔둔 채 앞으로 몸을 날렸다.
아기를 안은 자가 굽이를 돌아가서 보이지 않았다.
거리가 더 벌어지면 놓칠지도 모르는 일.
전력으로 달려간 그는 아기를 안은 자가 먼저 지나간 굽이를 돌아갔다.
저만치 아기를 안은 자가 보였다.
하지만 초강은 그를 보고도 급히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아기를 안은 자가 커다란 바위 밑에서 흑의인 셋과 만나고 있었다.
이미 흑의인과 접전을 벌여 본 그였다.
둘만 공격해 와도 그로선 부담이었다.
‘제기랄!’
그가 걸음을 멈추자 흑의인 중 둘이 도검을 빼 들고 초강을 향해 몸을 날렸다.
후퇴하기에 늦은 상황.
초강은 공력을 팔성까지 끌어 올리고 그들을 향해 마주쳐 갔다.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초강은 처음부터 광선장법을 펼쳤다.
허리를 젖혀서 날아드는 검기를 피한 그는 허리를 젖힌 그대로 몸을 허공에서 한 바퀴 휘돌리며 장력을 떨쳤다.
파팡!
허공이 터져 나가며 강력한 장세가 상대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흑의인은 검을 연이어 다섯 번 휘둘러서 장세를 완화시키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사이 도를 든 자가 초강을 공격했다.
허공을 난자하며 날아드는 도세는 거리가 석 자 이상 떨어져 있는데도 살을 벨 것처럼 날카로웠다.
초강은 태극문의 신법인 태극팔상보를 펼쳐서 공격을 피하며 상대의 공세에서 멀어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검을 든 자가 다시 공격해 왔다.
그렇게 막상막하의 접전을 펼치며 순식간에 십사오 초가 흘렀다.
초강으로서는 엄청난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전이었다면 단 오초도 견디기 힘든 고수 둘을 혼자 상대하며 비등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성취에 기뻐할 정신도 없었다. 아기를 안은 자가 다른 흑의인과 함께 떠나가고 있었다.
“타앗!”
기합을 내지른 그는 상대의 공격 속으로 몸을 던졌다.
수세 일변도던 그가 갑자기 공세로 돌아서자 검을 든 자가 멈칫했다.
초강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쌍장을 휘두르며 상대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파바방!
허공이 터져 나가는 폭음과 함께 검세가 흐트러졌다.
뒤이어 한 뼘가량 벌어진 상대의 빈틈 사이로 장력을 떨쳤다.
“어림없다!”
칼을 든 자가 측면에서 초강을 공격했다.
그러나 초강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쾅!
검은 든 자가 가슴에 일격을 얻어맞고 입을 쩍 벌린 채 일 장가량 튕겨 나갔다.
동시에 몸을 트는 초강의 어깨를 칼날이 훑고 지나갔다.
섬뜩한 느낌과 함께 어깨가 저릿했다.
그러나 초강은 물러서지 않고, 몸을 틀면서 도세 속으로 뛰어들었다.
도를 든 자는 생각도 못 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도를 휘둘렀다.
“이놈이!”
쩌저정!
초강은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상대의 도세를 쳐 냈다. 그러고는 찰나의 틈이 보이자 주먹을 비틀어서 내질렀다.
주먹에서 발출된 경력이 한 자 거리를 두고서 도를 든 자의 어깨를 강타했다.
퍽!
“커억!”
뒤이어 초강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며 번개처럼 팔장을 내질렀다.
가히 폭풍 같은 공격이었다.
퍼버버벅!
“크어억!”
도를 든 자는 찰나간에 오장을 두들겨 맞고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초강도 수비를 도외시하고 공격을 하는 바람에 상처가 두어 군데 더해지면서 온몸이 빠르게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는 촌각도 머뭇거리지 않고, 아기를 안고 사라진 자를 쫓기 위해 돌아섰다.
‘놓치면 안 돼!’
그 때였다.
처음에 마주쳤던 흑의인이 어느새 쫓아와서 그의 등을 향해 몸을 날렸다.
등 뒤로 밀려드는 섬뜩한 검기!
‘제기랄!’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서 쓸 수는 없는 일.
초강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이 장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돈 그는 밑으로 떨어져 내리며 거꾸로 흑의인을 공격했다.
흑의인도 전력을 다해서 맞섰다.
두 사람이 격돌한 지 오초, 초강의 강력한 일권이 흑의인의 가슴에 격중했다.
“푸억!”
그러잖아도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던 흑의인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나가더니 바위에 처박히며 앞으로 꺼꾸러졌다.
초강은 아기를 안은 자가 사라진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짜릿한 통증이 몸 여기저기서 엄습했다.
지금 상태로는 쫓아간다 해도 잡을 수 없는 상태. 이를 악문 그는 그 자리에 앉아서 옷을 찢어 상처를 싸맸다.
‘일대에는 암경회 사람들이 깔려 있다. 놈들이 서쪽으로 가려면 그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어.’
* * *
진원보를 출발한 북궁천은 이튿날 아침 사시 무렵 남소에 도착했다.
가슴이 숯처럼 새카맣게 탄 그는 식사할 정신도, 기분도 아니었다.
적이 아기를 노리고 사람을 보냈다면 자신보다 하루 먼저 떠났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쯤 아기를 찾아냈을지도 모르는 일. 촌각이 아까웠다.
그런데 북궁천이 곧장 포원산장으로 가려 하자, 임강령이 멈춰 세웠다.
“잠깐만 기다리시게.”
“왜 그러십니까?”
“근처에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네. 제법 정보에 밝은 사람이니 어제 오늘 사이에 포원산장 근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면 그가 알 거네. 그러니 잠깐 쉬는 셈치고 그를 만나 보고 가면 어떻겠나?”
북궁천은 순순히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오백 리를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다.
다른 사람도 조금씩은 지쳤지만, 특히 진원보 싸움에서 부상을 입은 북풍사객은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진 상태였다.
그 몸으로 지금까지 처지지 않고 따라와 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앞장서시죠.”
임강령은 남소에서 북쪽으로 십 리가량 떨어진 풍가장으로 갔다.
풍가장은 고색창연한 건물 대여섯 채로 이루어진 아담한 장원이었는데, 주인인 풍사청은 남소 일대에서 나름대로 유명했다.
나이 마흔둘에 남소 일대 기루를 장악하고, 남소의 흑도 무리를 한 손에 쥔 사람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워낙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겨서 남소 사람 중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없었다.
아침부터 나이 어린 첩을 껴안고 용을 쓰던 그는, 임강령이 왔다는 말을 듣더니 품 안의 첩을 던져 버리고 뛰어나왔다.
“아이고, 임 대협! 이게 몇 년 만입니까?”
통통한 몸매, 둥근 얼굴.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가는 눈 가장자리로 환한 웃음이 번졌다.
마치 헤어졌던 친구를 십 년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운 표정.
하지만 임강령은 그의 표정을 믿지 않았다.
아마 속으로는 ‘저 웬수가 무슨 일로 왔지?’ 그렇게 외치고 있을 것이다.
삼 년 전 자신에게 두들겨 맞고 부러진 갈비뼈가 아직도 욱신거릴 테니까.
“부탁 하나 할 게 있어서 왔다.”
“임 대협께서 저처럼 별 볼 일 없는 흑도인에게 부탁하실 게 있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봅니다.”
“너하고 농담할 시간 없다. 잔소리 말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
움찔한 풍사청은 눈을 내리깔았다.
“말씀해 보십쇼.”
“어제와 오늘 새벽까지 포원산장 북쪽 이삼십 리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최대한 빨리 알아봐라. 만약 싸움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아봐.”
“언제까지…….”
“반 시진. 우리가 식사를 끝낼 때까지 알아 와라.”
“예? 여기서 포원산장까지 이백 리나 되는데, 어떻게 한 시진에…….”
“어제 벌어진 일은 이미 다 알 것 아니냐? 그리고 아침 일찍 벌어진 일도 지금쯤 속속 정보가 들어오고 있을 것이고.”
풍사청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임강령의 눈치를 봤다.
“그거야 뭐…….”
“지금도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빨리 가서 알아봐!”
그 때 북궁천이 말했다.
“흑도에 몸을 담고 있다면 왕두평을 알겠군.”
눈을 돌려 북궁천을 바라본 풍사청은 눈이 마주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끝 모를 지저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 이러할까?
숨이 턱 막혀서 몸이 굳어 버린 듯했다.
그나마 능글맞은 성격 덕분에 가까스로 숨을 몰아쉰 그는 입술을 잘게 떨며 물었다.
“와, 왕두평이라니요? 어떤 왕두평을 말씀하시는지……?”
“남양 암경회의 회주.”
풍사청의 눈꺼풀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렸다.
그는 더 이상 모른 척하진 못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공, 공자께선 그분을 어떻게 아십니까요?”
“며칠 전 그에게 한 가지 일을 시킨 적이 있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암경회의 왕두평은 환락방을 누르고 남양 제일의 흑도 세력이 되었다.
풍사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물.
그런 왕두평에게 일을 시키다니!
풍사청은 감히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머리를 굴렸다.
“그럼 임 대협께서 말씀하신 일도 그 일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북궁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빨리 알아봤으면 좋겠군.”
왕두평이 관련되어 있다면 미적거릴 수 없었다.
더구나 북궁천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오한이 드는 자다. 이런 자의 말을 거부해 봐야 말년만 힘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