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20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20화
120화
스무 명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잡초를 헤치며 다가오는 자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왜 지금처럼 긴박한 때에 나타나서 귀찮게 하는가 싶었다.
그래도 천사교 쪽을 돕기 위해 오는 자들일 수도 있는 일. 조장인 우조상은 좋은 말로 그들을 맞이했다.
“어디서 온 자들이오?”
북궁천 일행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저승에서.”
장추람의 장난 같은 말에 우조상이 흠칫했다.
“뭐?”
“너희들을 지옥으로 보내 주려고 왔지.”
“이제 보니 적이구나!”
늘어서 있던 삼조 조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들었다.
북풍사객이 먼저 그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일언반구도 없이 무기를 빼 든 그들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살수를 펼쳤다.
천사교 교도들이 대경해서 대응하려 했을 때는 이미 스무 명 중 반수 가까이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더구나 남은 자들도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이 손을 쓰자 싸움다운 싸움도 못 해보고 모두 지옥으로 달려갔다.
“먼저 가서 기다려. 다른 사람들도 곧 보내 줄 테니까.”
장추람은 검에 묻은 피를 죽어 있는 우조상의 옷에 쓱쓱 닦고 돌아섰다.
바로 그 때, 저 멀리 언덕 위에 서 있던 천사교의 무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정파 연합 세력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된 듯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북궁천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시작했군. 가자!”
날듯이 빠르게 내달린 북궁천 일행은 진원보의 담장을 넘어갔다.
갑자기 나타난 그들을 보고 경비무사들이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어차피 은밀하게 행동할 생각이 없는 북궁천 일행이었다.
상대의 말에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북풍사객과 장추람 등은 무기를 빼 들고 성큼성큼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뒤늦게 적이란 것을 깨달은 천사교도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적이다!”
“적이 안으로 들어왔다!”
일개 경비무사들로는 북천궁 최강을 자랑하는 장추람 등을 막을 수 없었다.
천사교도 십여 명은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못 해보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북궁천은 뒷짐을 진 채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기왕이면 높은 놈들이 나와라!”
곧 대답이 들렸다.
“어떤 놈이 감히 이곳에 들어와서 큰소리치는 거냐!”
“죽지 못해 환장한 놈이로구나!”
“토막을 쳐서 절여 먹을 놈! 이름을 밝혀라!”
욕설과 함께 여기저기서 수십 명이 나타났다.
개중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는 고수들도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나는 단화린이다! 시시한 놈들은 상대할 마음이 없으니 자신 있는 놈들만 앞으로 나와라!”
“오냐, 이놈! 내가 네놈을 토막 쳐 주마!”
나타난 자들 중 텁수룩한 수염이 얼굴을 반쯤 뒤덮은 중년인이 몸을 날렸다.
“너 따위가?”
성큼,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 철교신이 장창을 뻗었다.
찰나였다.
콰아아아!
장창 끝에서 일어난 시퍼런 회오리가 중년인을 덮쳤다.
눈을 부릅뜬 중년인은 들고 있던 칼을 벼락같이 휘둘렀다.
떠더덩!
둔중한 충돌음이 귀청을 먹먹케 하는가 싶더니, 옷이 갈기갈기 찢어진 중년인이 뒤로 날아갔다.
“크으윽!”
중년인의 앞섬은 이미 걸레가 되었고, 쩍쩍 갈라진 가슴과 배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
“멍청하게 생긴 놈이 제법 창을 놀리는구나!”
이번에는 빼빼 마른 사십 대 중년인이 검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그대는 내가 상대해 주지!”
장추람이 훌쩍 몸을 날리며 커다란 검을 내리쳤다.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듯했다.
빼빼 마른 중년인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검세에 기겁하며 장추람의 공격을 막았다.
쾅!
단발의 굉음!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진 중년인은 비틀거리며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장추람이 그를 쫓아 몸을 날리며 검을 뻗었다.
“그따위 검으로 비룡의 광풍신창을 논하다니. 간이 부었군!”
“크억!”
장추람의 검은 빼빼 마른 중년인의 어깨와 가슴을 동시에 갈라 버렸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정평 난 고수 둘이 졸지에 당하자 천사교 무리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사이에도 북풍사객과 냉호는 달려드는 자들을 상대하며 대여섯 명을 더 쓰러뜨렸다.
그 때 안채 쪽에서 칠팔 명의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자들이 나타났다.
“물러서라!”
그들을 본 북궁천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이제야 쓸 만한 자들이 나타나는군.”
“어떤 놈이 단화린이냐?”
새로 나타난 칠팔 명 중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노인이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살점 하나 보이는 않는 마른 얼굴, 창백한 안색.
그는 귀곡사(鬼哭死) 궁치라는 자로 천사교 십호법 중 하나였다.
북궁천은 묵혼을 사선으로 늘어뜨린 채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를 찾는가?”
“죽일 놈. 듣던 대로 정말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당신은 죽어도 되겠어. 얼굴을 보니 이미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군.”
“내 네놈의 목을 뜯어서 개밥으로 던져 주겠다!”
궁치가 노성을 내지르며 양손에 든 철조를 가슴 높이로 들었다.
철조가 시퍼렇게 물드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팔목까지 파랗게 변했다.
“저승에 가거든, 곧 다른 사람들도 올 거라고 전해!”
북궁천은 싸늘하게 몇 마디 내뱉고는 단걸음에 궁치와의 거리를 일 장으로 좁혔다.
“죽어라, 이놈!”
궁치가 기다렸다는 듯 철조를 휘둘렀다.
푸르스름한 조영이 허공을 덮자 고약한 냄새가 퍼졌다. 궁치가 삼십 년 동안 연마한 청귀독조(靑鬼毒爪)가 펼쳐진 것이다.
북궁천은 청귀독조의 중심을 향해 묵혼을 밀어 넣었다.
순간, 북성팔검 중 파혼성광이 펼쳐지며 묵혼 끝에서 시커먼 검강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갔다.
쾅!
굉음과 함께 궁치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크으윽, 이런 빌어먹을!”
겨우 중심을 잡은 궁치의 얼굴이 구겨진 철판처럼 일그러졌다.
하지만 북궁천의 공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예전보다 더욱 강해진 그의 공력은 가히 하늘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궁치와의 정면 대결은 그에게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했다.
“그딴 실력으로 나를 죽이겠다고!”
성큼성큼 궁치를 향해 다가간 북궁천이 묵혼을 사선으로 그었다.
쉬아아악!
허공이 쩍쩍 갈라지며 묵빛 강기가 궁치를 덮쳤다.
궁치는 미친 듯이 철조를 휘둘렀다.
철조에서 흘러나오는 고약한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까가강! 쩌정!째쟁!
서너 번의 부딪침으로 철조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그리고 종내는 묵혼의 검첨에서 뇌전처럼 뻗어 나간 검강이 궁치의 가슴을 뚫어 버렸다.
퍽!
“크악!”
가슴이 뚫린 궁치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꿰뚫린 그의 심장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끄으으으, 네, 네놈도 청귀독에…… 곧 내 뒤를…….”
북궁천은 짜증을 내듯이 그를 향해 좌수를 뻗었다.
쾅!
궁치의 몸이 이 장이나 날아가 널브러졌다.
숨을 서너 번 쉴 시간.
그 짧은 시간에 십호법 중 하나인 궁치가 죽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에 천사교 무리들은 얼이 반쯤 빠졌다.
북궁천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대한 많은 피해를 줘야 하는 것이 목적인 그다.
상대는 천사교 무리 중 능히 간부급 실력을 지닌 자들.
궁치의 말대로 청귀독에 중독되었다면, 독이 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숨통을 끊어 놓아야 했다.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린 그는 허공 삼 장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묵혼을 뻗었다.
한편, 호연유는 단화린의 등장 소식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뭐야? 단화린이 뒤쪽에 나타났다고?”
“그렇습니다, 소존!”
“몇 놈이나 되느냐?”
“모두 여덟 명이라 합니다.”
“여덟? 그럼 양평에서 사라진 놈들이 나타났다는 말이로군.”
호연유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사야승을 바라보았다.
양평에서 북궁천 일행의 행적을 놓친 것이 마음에 걸린다 했더니, 결국 그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뭐랬소? 철저히 감시하라고 하지 않았소?”
“죄송합니다, 소존. 곧 놈들을 잡아들이겠습니다.”
“지금 본 교의 장로들 중 장원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누구요?”
“곡 장로와 은 장로께서 계십니다.”
호연유가 발작하듯이 사야승을 다그쳤다.
“둘 다 보내시오. 마종보와 혈문에서 온 사람들도 보내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오늘 놈을 죽여야 하오!”
“하오나 곧 연합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서 이 차 전력을 파견해야…….”
호연유가 인상을 쓰며 사야승을 쏘아보았다.
“그곳은 일단 천귀군부터 보내시오. 오늘 단화린을 죽이지 못하면 머리 위에 칼을 이고 사는 꼴이 될 거요. 아니, 그 전에 이곳부터 무너지겠지. 나도 갈 것이니 어서 사람들을 보내시오!”
사야승은 호연유마저 나서자 더 이상 거부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소존.”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사방에서 몰려든 천사교와 마종보 무사들의 숫자가 칠팔십 명에 달했다.
그나마도 쓰러진 사십여 명을 제외한 숫자였다.
콰광!
장추람은 상처 입은 호랑이처럼 날뛰며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검기가 광풍폭우처럼 휘몰아치며 일 장 이내를 완전히 장악했다.
그와 부딪친 자들은 핏덩이가 울컥 솟구쳐서 가슴을 틀어막는 충격에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
반면 냉호의 칼은 은밀하고 섬뜩했다.
허공을 가르는 그의 칼에서는 소름끼치는 기음이 흘러나왔다.
빠르고 은밀한 데다 살기 넘치는 도세!
그의 칼날은 아수라의 이빨처럼 달려들어서 상대의 몸을 난자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도 철교신보다 사납지 않았다.
평소의 과묵하던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죽음의 사자가 전장을 휩쓸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모습이 바로 전장에서의 본래 철교신이었다.
―흑룡과 한룡을 만나는 한이 있어도 비룡과는 마주치지 마라!
오죽하면 북천에서 그런 말이 떠돌겠는가?
“모조리 죽여 주마! 얼마든지 덤벼라!”
철교신이 광기를 드러낸 것은 장판도에서 싸울 때가 처음이었다.
그 후로 격렬한 혈전이 벌어지면 한 번씩 광기를 드러냈다.
바로 오늘처럼!
퍼버버벅!
콰직!
적의 심장에 창을 틀어박은 그는 홱 뿌리듯이 창을 휘둘렀다.
꼬치처럼 창끝에 꿰어져 있던 상대가 허공으로 날아가며 혈우를 뿌렸다.
그 때였다.
콰과과광!
“크아악!”
“끄어어어어.”
번천지복의 굉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북궁천이 싸우던 곳에서 터져 나온 소리였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처절한지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조차 싸우던 중에 눈길을 돌렸다.
‘맙소사!’ 소리가 절로 나왔다.
북궁천을 공격하던 자는 모두 여섯 명.
개개인이 절정고수고, 개중 두어 명은 장추람 등도 일이십 초 안에 승부를 내기가 쉽지 않은 고수였다.
그런 자들 여섯이 태풍에 허리가 꺾인 나무처럼 사방으로 날아가서 피를 쏟고 있었다.
북궁천은 그들 한가운데에 오연히 선 채 오만한 눈길로 사위를 쓸어 보았다.
가히 절대의 위엄!
그토록 악착같이 달려들던 천사교 무리들조차 질린 표정으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바로 그 때!
화르륵!
세 사람이 지붕을 날아 넘어서 땅에 내려섰다.
그들 중 한 사람을 알아본 북궁천의 입가에 한겨울 북천의 찬 바람 같은 냉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