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56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56화
156화
풍단의 몸이 덜덜 떨렸다. 목소리도 떨려서 잘 나오지 않았다.
그 때 악동초가 튕기듯이 땅을 박차더니 풍단을 걷어찼다.
퍽!
“크억!”
붕 날아가서 떼굴떼굴 굴러간 풍단은 안간힘을 다해 정신을 차리고 상체를 세웠다.
악동초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중문.”
뒤에 서 있던 삼십 대 중반의 무사가 슬쩍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악동초의 호위를 책임진 단혼절수(斷魂切手) 노중문이란 자였다.
“예, 방주.”
“이 병신 새끼를 호견(虎犬) 우리에다 처넣어서 오랜만에 사람고기 맛 좀 보게 해 줘라.”
풍단이 부들부들 떨며 악을 쓰듯 외쳤다.
“바, 방주! 살려 주십시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번만 봐주시면 혼을 바쳐서 충성을 하겠습니다!”
악동초는 그의 절규에 냉랭히 답했다.
“밤이 지나가기 전에 호가 놈도 잡아서 넣어 줄 테니까, 너무 억울해하지 마.”
* * *
“저기가 환금장(歡金莊)입니다.”
호양곽이 어둠침침한 건물 하나를 가리켰다.
이 층으로 된 건물은 상당히 컸다. 그 안쪽으로도 건물이 이어져 있었는데 경비가 제법 삼엄했다.
“겉으로는 평범한 곳처럼 보이지만 안쪽에 인신매매를 하는 시설과 도박장이 있습니다. 동마방의 가장 큰 자금줄 중 하나지요.”
골목 안, 어둠 속에서 환금장을 바라보는 북궁천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도박장이야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인신매매를 한다는 것이다.
“건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봐. 어디가 도박장이고 어디가 인신매매장인지.”
호양곽은 손으로 건물을 가리키며 도박장과 인신매매장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건물의 배치가 간단해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했다.
설명을 다 들은 북궁천은 호양곽을 직시했다.
“당신도 인신매매에 관여한 적 있어?”
“제가 악동초의 사업 중 가장 싫어하는 곳이 바로 저곳입니다. 술이나 여자, 도박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인신매매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최근 그 일로 인해서 악동초와 말다툼한 적이 있지요.”
“다행이군. 그 일에 관여된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치 않을 생각인데 말이야.”
호양곽이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그 때 북궁천의 입에서 한겨울 찬 서리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신매매장 안에 있는 자들 중 팔려 온 사람 외에는 모두 죽여라. 살려 둘 이유가 없으니까. 그럼 가 볼까?”
골목을 나선 북궁천 일행은 환금장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들이 담장을 넘어가자 경비를 돌던 자 몇이 그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대답 대신 섬뜩한 검광 도광이 허공을 갈랐다.
경비무사 넷이 제대로 저항도 못 해 보고 쓰러졌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으악!”
“침입자다!”
고함과 비명이 어둠 속에 울려 퍼지자 사방에서 무사들이 달려 나왔다.
북궁천 일행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썼다.
손을 쓰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장원 안의 무사는 모두 적이니까.
그들은 달려드는 자들을 베어 넘기며 호양곽이 설명해 준 도박장과 인신매매장으로 향했다.
그 시각.
지하 깊숙한 곳에서는 열띤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십 냥!”
“육십 냥!”
“난 팔십 냥.”
“귀찮군. 여기 백 냥!”
백 냥이 나온 후 한동안 장내가 조용해졌다.
매매 책임자인 남동사는 미소를 지으며 백 냥을 부른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칠호실에서 백 냥을 부르셨습니다. 또 없습니까?”
그가 서 있는 곳은 삼십 평가량의 원형 지하광장 한가운데였다.
밝은 불빛 아래에서는 반라의 여인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나이는 스무 살 전후. 하얀 피부가 백옥처럼 맑고 얼굴이 아름다워 욕망에 물든 남자들의 눈을 현혹하기에 충분한 여인이었다.
원형 광장을 중심으로 벽에는 열두 개의 석실이 있었고, 어두운 석실의 입구에는 안을 볼 수 없게끔 주렴이 쳐져 있었다.
액수를 부른 자들은 그 안에서 주렴 사이로 상품을 관찰한 후 금액을 정했다.
“자, 다시 한번 보십시오.”
남동사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젖혀서 얼굴을 밝은 불빛 아래 드러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여인이 입고 있던 얇은 옷을 쭉 잡아 찢었다.
적당한 크기의 가슴과 군살 없는 하얀 배가 드러났다. 그리고 배에 걸친 옷자락 사이로 곱게 자란 방초가 보일 듯 말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석실 안 여기저기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곧 새로운 금액이 나왔다.
“백이십 냥!”
“백삼십 냥!”
“백오십 냥 내겠소!”
칠호실에서 백오십 냥이 나오자 다시 장내가 조용해졌다.
남동사는 열을 셀 때까지 기다린 후 석실을 둘러보았다.
“더 없습니까?”
누구도 그 이상의 금액을 부르지 못했다.
“좋습니다. 그럼 칠호실 손님에게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무사 하나가 광장으로 들어서더니 여인을 끌고 나갔다.
남동사는 옷 한 번 찢은 것으로 오십 냥을 더 챙기고 석실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진짜 고심해서 금액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환금장이 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뛰어난 상품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보시면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그는 손님들의 호기심을 잔뜩 끌어 올리고는 여인을 끌고 나간 쪽을 바라보았다.
“데려와라.”
그의 말이 떨어진 직후 무사 하나가 여인을 끌고 광장으로 들어섰다.
얇은 녹의를 입은 그녀는 이제 십칠팔 세 정도의 소녀였다. 그녀가 밝은 불빛 쪽으로 힘겹게 걸어올 때마다 석실 안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오, 진짜 멋지군.”
“굉장한데?”
“어디서 저런 계집이……!”
“으으음, 이거 앞전에 괜히 샀군.”
그사이 녹의소녀가 중앙에 섰다.
적당한 키에 잡티 하나 없는 백옥 같은 피부, 허리는 한 줌밖에 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탄력이 살아 있는 가슴은 한 손에 가득 찰 듯했다.
거기다 커다란 눈과 긴 눈썹, 적당히 살이 오른 볼과 붉은 입술, 오뚝한 코 등 균형을 이룬 얼굴은 눈을 떼기 힘들 만큼 아름다웠고, 특히 파르르 떠는 눈은 보는 것만으로도 욕망이 솟구칠 정도였다.
남동사는 그녀를 잡고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얼굴과 몸매만 아름다운 게 아닙니다. 목소리는 꾀꼬리가 우는 것 같고, 걸음걸이로 봐서 밤에 남자를 천당으로 열두 번 보내고도 남을 계집입니다.”
석실 안의 손님들 눈빛이 욕망으로 물들어 가는 게 보이는 듯했다.
한 바퀴 돌고 멈춘 그는 소녀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진 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은자 삼백 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 즉시 석실 안의 손님들이 앞 다투어서 금액을 불러댔다.
“삼백오십!”
“난 삼백칠십 냥!”
“삼백팔십 냥!”
가격이 쉬지 않고 올라가며 순식간에 사백 냥을 넘어섰다.
이대로 올라가면 금방 오백 냥을 넘길 듯했다.
바로 그 때, 지금까지 한 번도 나서지 않았던 구호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천 냥.”
지하광장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계집 하나에 은자 천 냥이라니!
남동사조차 놀라서 구호실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백 냥에서 칠백 냥 사이를 생각했다. 그 정도만 해도 지금까지 팔린 계집 중 가장 비싼 가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 냥이라고?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되물어보았다.
“천 냥이라 하셨습니까?”
“물론이다.”
남동사의 미소가 짙어졌다. 오십 냥에 사 온 계집을 천 냥에 팔면 이득이 얼마란 말인가?
“더 없습니까?”
그래도 그는 혹시 하는 마음에 다시 물어보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상을 부르진 못했다.
그는 시간을 더 끌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그럼 이 계집은…….”
그런데 그가 말을 다 내뱉기도 전, 출구 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고개를 돌려 출구가 있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이냐?”
출구 쪽 계단에서 무사 하나가 내려오더니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상한 자들이 침입했다고 합니다, 당주!”
“뭐야? 대체 어떤 놈들이 겁도 없이 이곳을 공격한단 말이냐?”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도박장 쪽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뭐 해? 빨리 나가서 놈들을 막아!”
그 때였다.
쾅!
천둥소리와 함께 출구의 철문이 통째로 떨어져서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남동사는 그제야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알고 수하들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손님들을 비상통로로 대피시켜라! 어서!”
그런데 석실 안쪽에서도 굉음이 울렸다.
쿠궁!
뒤이어 냉랭한 목소리가 북풍한설처럼 지하광장을 휘몰아쳤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은 누구도 이곳을 나가지 못한다.”
남동사가 악을 쓰듯이 외쳤다.
“놈을 잡아!”
무사 셋이 목소리가 들린 출구 쪽 계단 위로 올라갔다.
퍼버버벅!
“크억!”
“으아악!”
비명이 연이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무사들이 계단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뒤쪽에서도 비명과 겁에 질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안 돼!”
“으악!”
“사, 살려 줘!”
그 와중에도 간간히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 내가 누군지 알고 칼을 겨눈단 말이냐!”
비상통로로 들어온 사람은 냉호와 철교신이었다.
냉호의 도와 철교신의 창은 어느 때보다 무정했다. 상대가 말단 무사든 고위 관리든 따지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마제의 명령에 따라서 지하에 있는 자들의 숨통을 끊었다.
그사이 북궁천이 지하광장 바닥에 내려섰다.
남동사는 여전히 광장 중앙에 서 있고, 부들부들 떨던 소녀는 한쪽 구석으로 도망가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남동사가 그를 보고 악을 쓰며 수하들을 다그쳤다.
“저놈을 죽여라!”
남아 있던 무사 셋이 북궁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북궁천은 묵혼을 빼며 허공을 가볍게 그었다.
쉬아아악!
“크억!”
“케엑!”
무사들은 그에게 접근도 못 해 보고 혼이 달아났다.
남동사는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셋의 합공은 자신조차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일검에 죽어 버리다니!
상대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고수였다.
‘으으으, 도대체 저놈이 누군데…….’
그 때 석실에 있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뛰어나왔다. 뒤쪽 비상통로로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안 그들은 환한 불빛에 마지막 희망을 품었다.
고급스런 의복이 환한 불빛에 드러나서 자신들이 범상치 않은 신분이라는 것을 알면 살려 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정가장의 주인인 정만채라고 한다! 나를 살려 주면 은자 천 냥을 주마!”
“본인은 성주의 조카니라! 나를 죽이면 너희도 성치 못할 것이다!”
“포정사사가 내 친구네! 살려 주게나! 살려만 주면 은자를 원하는 대로 주겠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한껏 포장하며 위협도 하고 사정도 하며 살길을 도모했다.
그러나 북궁천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검을 휘둘렀다.
“너희들은 살 자격이 없다!”
사정하던 자들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고, 목에서 피가 튀었다.
“끄어어억!”
“으으으, 아, 안 돼…….”
남동사가 그 틈을 노려서 출구 쪽으로 몸을 날렸다.
북궁천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좌수를 뻗어 건곤패력장을 펼쳤다.
남동사는 가공할 경력이 밀려들자 황급히 몸을 틀며 쌍장을 뻗어서 대응했다.
‘반탄력을 이용해서 빠져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