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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54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54화

 

154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연풍척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모험심을 깨웠다.

 

“좋다, 그럼 한번 해 보자.”

 

 

 

* * *

 

 

 

북궁천이 거처로 돌아가는데 연소랑도 동행했다.

 

그녀가 더 참지 못하고 북궁천에게 물었다.

 

“어제 일, 어떤 대가를 원하는 거야?”

 

“금천장에 대한 정보를 모아 줘.”

 

연소랑은 북궁천의 답을 듣고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금천장에 대한 정보?”

 

“그래. 그리고 금천장 내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연소랑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기대했던 대가와는 전혀 다른 요구다.

 

자신이 짐작했던 대가를 요구하면 도끼눈을 뜨고 툭 쏘아 주려 했는데…….

 

뭐, 끝까지 요구하면 못 이긴 척 받아 줄 마음도 눈곱만큼은 있었고.

 

‘남자가 말이야, 나처럼 예쁜 여자가 옆에 있으면 욕심을 낼 줄도 알아야지.’

 

그녀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북궁천이 재촉했다.

 

“왜 대답이 없어?”

 

연소랑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조금만 기다려! 전에 금천장에서 일하다 나온 사람이 있으니까 보내 줄게! 됐지?”

 

그러고는 홱 몸을 돌려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왜 저래?’

 

북궁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처로 갔다. 그는 연소랑이 왜 짜증을 내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는 정말 이상하다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던 연소랑의 말과 달리 금천장을 잘 안다는 사람은 점심이 지나서야 왔다.

 

이름은 정화문. 나이는 서른다섯. 그는 북혈회 삼당 중 풍도당 휘하 향주 셋 중 하나였다.

 

그도 간밤의 소문을 들었는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찾아왔다.

 

“풍도당의 이향주 정화문이오. 금천장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는다 해서 왔소.”

 

“연소랑이 언제 귀하에게 말을 전했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북궁천이 넌지시 물어보았다.

 

“일각 전쯤에…….”

 

‘역시 그랬군. 그 여자가 왜 갑자기 심술을 부리는 거지?’

 

북궁천이 이마를 찌푸렸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며 괴이한 행동을 하자, 정화문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저기, 무엇을 알고 싶어서 부른 거요?”

 

그제야 북궁천이 의문을 털어 버리고 그를 상대했다.

 

“금천장 내부에 대해서 물어볼 것이 있어 불렀소. 그곳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시오?”

 

“금천장에서 삼 년을 일했소. 이 년 전에 시비 하나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그만두었지만, 내부의 지리라면 모르는 곳이 거의 없다고 자부할 수 있소.”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마도세력인 북혈회에 들어와 있겠지.

 

어쨌든 삼 년을 지냈으면 금천장에 대해서 어지간한 곳을 다 알 것 같다.

 

“좋소. 그럼 금천장의 건물 배치에 대해서 아는 대로 모두 말해 보시오.”

 

 

 

금천장은 정파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남들에게 드러내기 싫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정화문은 바로 그러한 일을 처리해 주는 부서에 있었다고 했다. 마치 회룡당 같은 곳 말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금천장의 구석구석 은밀한 곳까지 알고 있었다.

 

탁자 위의 종이에 붓을 죽죽 그어 가며 설명하는데 때로는 불필요한 것까지 설명해서 북궁천을 짜증 나게 했다.

 

“이 건물을 돌아 뒤로 가면 시녀들이 목욕하는 걸 볼 수 있소. 흐흐흐흐. 근데 말이오. 이것들이 누가 보는 줄 알면서도 버젓이 목욕을 할 때도 있다오.”

 

“잡소리는 집어치우고, 주요 건물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해 보시오.”

 

북궁천이 냉랭한 목소리로 정화문을 다그쳤다.

 

정화문은 서릿발처럼 차가운 북궁천의 눈빛에 목을 자라처럼 움츠렸다.

 

‘싫어하는 척하기는. 척 보니까 침을 질질 흘리면서 볼 것 같구만…….’

 

슬쩍 북궁천의 눈치를 살핀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험, 알겠소. 아마 천사교의 수뇌부는 이쪽에 거주하고 있을 거요. 죽은 선 장주의 가족이 지내던 곳인데, 정원에서 매화가 피면 일대가 꽃으로 뒤덮이는 곳이오. 그리고 그 옆에는…….”

 

 

 

정화문은 한 시진 가까이 금천장을 설명하고 방을 나갔다.

 

북궁천의 머릿속에는 그가 설명한 금천장의 내부 정경이 그림을 그리듯 새겨졌다.

 

금천장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었다. 그 안에서 삼천의 무사가 생활할 수 있다 하니 천사교가 그곳을 총단으로 삼을 만했다.

 

진아는 그 넓은 곳 어디에 있을까?

 

허공을 바라보며 진아를 떠올리던 북궁천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서둘지 말자. 이제 한 발 다가섰으니 곧 만날 수 있겠지.’

 

 

 

* * *

 

 

 

석양이 지고 어둠이 세상을 덮어 갈 무렵.

 

발신자의 이름도 없는 서신 하나가 북궁천에게 전해졌다.

 

서신은 연소랑을 통해서 전해졌는데, 직접 가져온 연소랑은 아직도 기분이 안 풀렸는지 서신을 휙 던져 주었다.

 

까칠한 말투와 함께.

 

“아는 사람도 없다면서 웬 서신이야? 수상한데?”

 

“글쎄, 나도 모르겠군. 읽어 보면 누가 보냈는지 알겠지.”

 

북궁천은 연소랑이 보는 앞에서 봉인을 뜯었다.

 

서신은 한 장밖에 되지 않았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글은 더 간단했다.

 

 

 

술시 말, 영월루로 가겠소. 머리카락을 잘랐으면 내 목도 알아서 하시오.

 

 

 

“응? 뭐야? 호양곽이 보낸 거잖아?”

 

고개를 쭉 빼고 서신을 보던 연소랑의 눈이 보름달처럼 동그래졌다.

 

북궁천은 서신과 봉투를 손안에 쥐고 가루로 만들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가 왜 당신에게 이런 서신을 보낸 거지?”

 

“돌아가서 뒈지게 혼난 모양이다.”

 

“땅딸보의 더러운 성격을 생각하면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뭐.”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는 식으로 말하던 연소랑이 멈칫하더니 북궁천을 올려다보았다.

 

“가만? 내 목도 알아서 하라고? 혹시 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동그래진 연소랑의 눈이 잘게 떨렸다.

 

“설마 당신…… 처음부터 생각하고 머리카락만 자른 건 아니겠지?”

 

“내가 귀신인 줄 알아? 잔소리 말고, 영월루에 사람을 보내서 그가 오면 가만 놔두라고 해.”

 

“알았어. 그런데 말이지, 그를 믿을 수 있을까?”

 

“그거야 그를 만나 보면 알겠지.”

 

북궁천은 연소랑이 더 잔소리를 하기 전에 몸을 돌렸다.

 

나중에 그를 이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살려 주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 나쁘기는커녕 너무 좋아서 탈일 정도다.

 

‘예정보다 조금 일찍 시작할 수 있을 것 같군.’

 

 

 

* * *

 

 

 

술시 말.

 

전날의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영월루에 또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층 구석진 곳에 호양곽이 앉아 있었다.

 

창백한 표정, 눈가와 턱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고, 입술은 터진 부위가 부어서 전보다 배는 두툼해진 상태였다.

 

그의 주위에는 다섯 명이 서 있었는데, 그들 역시 바짝 긴장해서 석상처럼 굳은 표정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는 북혈회 무사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에서 가만 놔두라는 연락이 와서 놔두긴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을 눈앞에 둔 듯했다.

 

저벅, 저벅, 저벅.

 

북궁천은 팽팽한 긴장감을 감도는 이 층을 태연히 가로질러서 호양곽의 자리로 다가갔다.

 

장추람을 비롯한 북천궁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북궁천의 명으로 영월루의 외곽을 밤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얼굴이 어쩌다 그렇게 됐지?”

 

의자에 앉은 북궁천이 호양곽의 얼굴을 보더니, 이유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했다.

 

전이었다면 눈빛을 시퍼렇게 빛내며 칼을 뺐을 호양곽이다.

 

그러나 지금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제 귀하가 볼 때보다 조금 안 좋아졌을 뿐이오.”

 

“동마방주도 사람이 못됐군. 다친 수하를 때리다니.”

 

“임무에 실패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두들겨 맞고 왔으니 화내는 건 당연한 일 아니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이면 왜 다친 곳을 또 때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사람이 그런 것을 생각하고 때리겠소?”

 

악동초에 대한 마음을 슬쩍 떠봤는데 원망하지 않고 감싸는 호양곽이다.

 

북궁천에게는 그 점이 이상하게 보였다.

 

악동초가 싫어서 자신을 찾아온 거라 생각했거늘.

 

“그를 원망하지 않나 보군.”

 

“아무리 내가 마도인이라지만 몇 대 때린 것 때문에 모시던 사람을 원망할 정도로 속 좁은 사람은 아니오.”

 

“그럼 뭐가 문제여서 나를 찾아온 거지?”

 

호양곽은 숨을 들이쉬며 북궁천을 직시했다.

 

“그가 나를 다그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방을 위해 열심히 일한 나를 한 번 실수했다고 개밥 취급한 것은 용서할 수 없소.”

 

“악동초가 사람 보는 눈이 없군. 악이 바친 들개를 개밥 취급하다니.”

 

“그 말을 듣고서야 어제 머리카락이 잘린 것으로 지금까지의 삶이 끝났다는 걸 깨달았소. 해서 이제부터는 다른 삶을 살 생각이오. 머리카락을 자른 사람이 귀하이니 목을 치든, 아니면 앞으로의 삶을 이끌어 주든 귀하가 알아서 하시오.”

 

“정말 동마방과 등을 돌릴 생각인가?”

 

“나 때문에 동마방과 싸우는 게 무섭소? 그들이 두렵다면 지금까지 한 말은 없던 걸로 하겠소.”

 

순간, 북궁천의 잔잔한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호양곽. 나는 누가 나를 떠보는 걸 무척 싫어한다. 앞으로 내 밑에서 살아가려면 그런 말버릇부터 고쳐라.”

 

호양곽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자신을 받아들이겠다는 뜻.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호양곽이 새로운 주인을 뵈오.”

 

북궁천은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나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려 주겠다. 그때까지는 궁금해도 참아라.”

 

호양곽은 정말 궁금했다.

 

북혈회에 있다고 해서 북궁천이 북혈회 무사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북궁천을 품기에는 북혈회가 너무 작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궁금해도 참으라 하니 참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저 친구들은 어떻게 할 건가?”

 

“악동초가 잘 모르고 있는 게 있습니다. 흑운대는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지 악동초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가 주군의 수하가 된 이상 흑운대도 주군의 수하가 될 겁니다.”

 

“모두 몇 명이지?”

 

“저까지 스물네 명입니다.”

 

“앞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군.”

 

“예?”

 

“스물네 명이나 먹여 살리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더구나 어제 부상을 입은 사람이 많을 테니 약값도 많이 들 것이고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손을 적당히 쓰라고 할 걸 그랬어.”

 

호양곽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생각한 젊은 주인의 성격을 조금 수정했다.

 

다행이었다.

 

‘따분하진 않겠군.’

 

그 때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그대 때문에 왔나 보군.”

 

북궁천의 말에 호양곽의 표정이 굳어졌다.

 

들리는 소리로 봐서 동마방 무사들이 몰려온 듯했다. 자신의 배신을 눈치챘다는 뜻.

 

이를 지그시 악문 그는 허리춤의 도병을 움켜쥐었다.

 

“저 때문에 온 자들이니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이봐, 내가 부상에서 회복되지도 않은 사람을 내세울 만큼 인정머리 없는 사람처럼 보여?”

 

“그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나서지 말고, 여기서 구경이나 해. 다치면 약값만 더 드니까.”

 

북궁천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호양곽은 묘한 표정으로 그의 등을 보며 따라갔다.

 

가슴이 뛰었다.

 

어릴 적, 자신이 하늘처럼 생각했던 사람을 눈앞에서 직접 봤을 때보다 더 심하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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