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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53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53화

 

153화

 

 

 

 

 

 

 

풍단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마디 했다.

 

“잘 참으셨습니다, 방주. 요즘 천사교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데 다리 부러진 개 한 마리라도 아껴야지요.”

 

악동초가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천사교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면서?”

 

“예, 방주. 아무래도 소존이 상남을 빼앗긴 것 같다고 합니다.”

 

“젠장, 정파 놈들이 발악을 하는군.”

 

“그 말이 사실이라면 천사교가 지원무사들을 소집할지 모르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기랄, 아니꼬워도 별수 없지.”

 

투덜거리던 악동초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호양곽을 다그쳤다.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나가 봐!”

 

호양곽은 공수의 예를 취하고 절룩거리며 방을 나섰다.

 

뒤에서 악동초의 목소리가 꼬리처럼 들려왔다.

 

“쓸모없는 병신 같은 놈.”

 

탁.

 

방문을 닫은 호양곽은 으스러뜨릴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개밥이란 말이지? 쓸모없는 병신이라고? 이 독심마도 호양곽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악동초에게는 인육을 먹는 개가 있다. 그는 자신이 쓸모없게 되면 정말로 개에게 던져 줄 것이다. 지금까지 개에게 던져진 몇 명처럼.

 

천천히 걸음을 떼는 그의 이마 앞에서 잘려 늘어진 머리카락이 출렁거렸다.

 

‘그래, 머리카락이 잘린 순간 이 호양곽의 삶이 끝난 것인지도 모르겠군.’

 

 

 

* * *

 

 

 

여명이 밝아 올 무렵.

 

호연도광은 새벽에 찾아온 숙야돈의 보고를 받고 인상이 구겨졌다.

 

“상남까지 빼앗기고 영서 우영산장으로 후퇴했다고?”

 

“예, 교주.”

 

“이런 바보 같은 놈!”

 

“북궁천과 그의 일행이 먼저 침입해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제때 대처를 못 했다고 합니다.”

 

호연도광은 그것이 핑계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 말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미우나 고우나 자식이었다. 모든 책임을 자식이 지는 것보다는 남이 나누어 지는 게 나았다.

 

더구나 그 대상이 북천마제 북궁천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아기가 유아에게 있는 줄 알고 침입했나 보군.”

 

“보통 놈이 아닙니다. 아기가 우리 손에 있는 걸 알면 걱정되어서라도 손을 쓰지 못할 텐데, 망설임 없이 공격했다고 합니다.”

 

“북천을 피로써 정복한 놈이다. 일반적인 생각으로 마제를 평가하면 안 될 것이야.”

 

“어쨌든 아기가 이곳으로 보내졌다는 걸 알았다면 곧 저희 앞에 나타날 겁니다, 교주.”

 

“어쩌면 이미 근처까지 왔는지도 모르겠군.”

 

“놈이 아무리 폭급한 성격이라 해도 이곳에서는 제 뜻대로 할 수 없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후후후, 차라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안으로 뛰어들면 좋겠군. 그럼 요리하기가 훨씬 편할 텐데 말이야.”

 

“마제가 감정을 누르고 정파연합과 함께 움직일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마제의 정체가 밝혀진 한 전처럼 행동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정파 놈들은 마(魔) 자만 들어가도 거리를 두는 놈들이니까.”

 

“교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호연도광은 살기 띤 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정파연합 떨거지들은 지금 어디까지 왔느냐?”

 

“유원당이 소문만큼 뛰어난 자라면 지금쯤 단풍까지 밀고 올라왔을 겁니다.”

 

호연도광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눈빛이 순간적으로 새파랗게 번뜩였다.

 

그는 천하제일의 모사다. 뛰어난 군사 하나가 천 명의 무사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동안 놈을 너무 얕본 것 같다. 네가 책임지고 놈을 처리해라.”

 

“예, 교주.”

 

숙야돈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자칭 천하제이(天下第二)의 살수가.

 

“혈문과 마종보에서는 아직 답이 없느냐?”

 

“이 차 지원무사들이 며칠 안으로 도착할 겁니다.”

 

“그래? 다행이군.”

 

“그리고 교의 이름으로 청한 자들 중 십여 명이 본 교와 함께하겠다는 연락을 해 왔습니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어서 차후 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간을 찌푸린 호연도광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욕심이 지나친 놈들은 그만한 대우를 해 주면 되겠지. 그런 놈들은 결국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게 될 게야.”

 

 

 

 

 

 

 

2장. 바람은 불기 시작하고

 

 

 

 

 

연소랑은 아침이 되자 북궁천의 거처로 향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얼굴이 부스스했다.

 

언제 대가를 받겠다며 부를지 몰라서 걱정과 호기심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잠을 설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날이 샐 때까지 부르지 않았다.

 

안도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쳇!’

 

왠지 속은 기분.

 

그녀는 그가 도대체 뭘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마침 부친이 그를 만나 볼 겸 식사를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해서 일찍 찾아갈 핑계는 충분했다.

 

그런데 철교신이 북궁천 일행의 거처 앞에 도착한 그녀를 먼저 맞이했다.

 

웃통을 벗은 채, 돌덩이 같은 근육을 드러내고서.

 

연소랑은 걸음을 멈추고 철교신의 상반신을 감상했다.

 

‘호오, 굉장한 몸인데?’

 

사람이 오가는 걸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철교신은 뒤늦게 나타난 사람이 연소랑이란 걸 알고 화들짝 놀랐다.

 

“어어?”

 

나무에 걸쳐 놓은 옷을 후다닥 집어서 걸친 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무,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단천 좀 만나려고. 안에 있어?”

 

말을 하는 사이 연소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철규신은 그녀에게서 옅은 향이 풍기자 얼굴이 벌게졌다.

 

“이, 있소.”

 

그 때 방문이 열리고 북궁천이 나왔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께서 같이 식사하시자며 데려오래.”

 

“꼭 가야 하나?”

 

“다음에는 내 선에서 해결할 테니 오늘만 가. 그래도 회주의 얼굴은 봐야 할 것 아냐?”

 

“그건 그렇군. 좋아, 가지. 교신, 사람들 아직 자나?”

 

북궁천이 일행을 전부 데려가려고 하자 연소랑이 재빨리 말렸다.

 

“굳이 전부 갈 필요는 없어.”

 

 

 

연풍척은 딸과 함께 들어오는 북궁천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딸의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자신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자였다.

 

저런 자가 왜 북혈회에 들어왔을까?

 

아무리 계약 맺은 일만 해 주겠다고 했다지만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단천이오.”

 

북궁천은 무뚝뚝한 말투로 가명을 말하며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조금은 건방지게 보이는 태도.

 

그러나 연풍척은 개의치 않고 담담히 답했다.

 

“내가 회주를 맡고 있는 연풍척이네. 자리에 앉지.”

 

연풍척은 북궁천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 후 바짝 당겨진 마음을 풀고 웃음을 지었다.

 

목적이 뭐든 현재는 북혈회를 돕는 사람이다. 어젯밤만 해도 큰 도움을 주었고. 당장은 그거면 되었다.

 

“소랑이에게 말을 많이 들었네. 어젯밤 대단한 일을 해냈더군.”

 

“만족했다니 다행이군요.”

 

“호양곽이 당했으니 동마방주가 길길이 날뛰었을 거야. 어젯밤에 바로 쳐들어오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머리가 조금만 돌아가는 자라 해도 어느 것이 이익인지 계산하기 바빴을 거요.”

 

“그런가? 하하하하.”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시비가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연풍척은 이야기를 뒤로 미루었다.

 

“자, 식사부터 하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

 

“그래요, 아버지. 식기 전에 드세요.”

 

연소랑도 부친의 의견을 반겼다.

 

어차피 이야기가 길어지면 화기애애한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딱딱한 이야기는 식사를 마치고 하는 게 나았다.

 

 

 

식사는 이런저런 사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각가량 진행되었다.

 

식사를 마치자 시비가 나와서 차를 따랐다.

 

북궁천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자 연풍척이 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 대답해 줄 수 있겠나?”

 

“말씀해 보시죠.”

 

“우리 북혈회에 들어올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왜 이곳에 들어왔는가?”

 

북궁천은 잠깐 대답을 미루고 생각을 정리했다.

 

대충 얼버무려도 되었다. 그렇게 해도 이들은 자신을 내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진아를 구해 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정면돌파를 택했다.

 

“천사교에 볼일이 있소. 그 때문에 그들을 파악해야 하는데 상주의 상황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걸 알았소. 그래서 일단 북혈회를 도와주면서 천사교를 살펴볼 생각이오.”

 

“으음, 그랬군.”

 

연풍척은 천사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니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연소랑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만약 당신의 일을 우리가 도와준다면, 당신은 우리에게 뭘 해 줄 거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 봐.”

 

북궁천의 자신만만한 말에 연소랑은 자신이, 북혈회가 원하는 것을 말했다.

 

“어젯밤 일로 동마방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그들을 막아 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군.”

 

“그럼 그렇게 하기로 계약한 거야?”

 

“차라리 이렇게 하지.”

 

“어떻게?”

 

“동마방을 정리해 버리는 거야.”

 

연소랑의 눈이 커졌다.

 

“동마방을? 그게 가능해?”

 

“못 할 것도 없지. 대신 그 이후에는 북혈회가 내 뜻대로 움직여 줘야겠어.”

 

말이 자신을 위해서 움직여 달라는 것이지, 결국은 북혈회를 자신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말이다.

 

“뭐야? 우리 북혈회를 털도 안 뽑고 통째로 먹겠다고? 그걸 말이라고 해?”

 

동마방을 무너뜨린다 해도 북혈회가 남의 손에 들어간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북궁천도 두 부녀가 반발할 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반발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하기에 뒷말도 준비해 두었다.

 

“오래 있지는 않을 거다. 짧으며 닷새, 길어도 보름을 넘기진 않을 거야. 그리고 떠나기 전에 누구도 북혈회를 건드릴 수 없게 만들어 놓겠다.”

 

닷새에서 보름?

 

그 시간이면 통째로 삼킨다 한들 소화도 안 될 짧은 기간이다.

 

연풍척은 북궁천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자네들의 능력을 정확히 모르네. 그걸 알아야 대답을 할 수 있을 같군.”

 

북궁천은 간략하게 대답했다.

 

“대답은 동마방을 정리한 다음에 해도 상관없소. 자세한 이야기도 그때 하고.”

 

연풍척은 그 일이 정말 가능할까 싶었다. 그가 아는 동마방은 고수 몇 사람 늘어났다고 해서 무너뜨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소랑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가능성이 크진 않아도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듯 느껴졌다.

 

“자신 있어? 호양곽을 이겼다고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냐?”

 

“북혈회로선 손해 볼 것이 없잖아? 어차피 당장 동마방과 싸우면 끝장날 텐데 말이야. 그렇게 안 되려면 남패령이나 서마련 밑으로 들어가서 생존을 모색해야 할 것이고.”

 

사실이 그랬다.

 

이러나저러나 북혈회에 위기가 닥쳤다는 것만은 분명한 상황.

 

연풍척은 문득 북궁천이 들어올 때 느꼈던 그 감정을 떠올리고 연소랑의 의견을 물었다.

 

“소랑아, 네 생각을 말해 봐라.”

 

연소랑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모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흥하든, 망하든.

 

“해 봐요, 아버지. 까짓거, 기껏 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어요?”

 

“간부들이 반대할지 모르는데도?”

 

“당장 말할 필요는 없어요. 사람들이 단천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그때 말하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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