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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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51화
151화
1장. 북혈회
연소랑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상주는 예전의 상주가 아니야. 하루에도 수십 명씩 마도의 고수들이 모여들고 있지. 이곳에 모여든 마도의 무사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글쎄, 한 천 명?”
연소랑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기특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 정도라도 생각한 걸 보니 아주 맹탕은 아니군.”
맹탕?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더 많다는 뜻처럼 들려서 놀람이 앞섰다.
“더 되나?”
“적어도 이천오백. 많으면 삼천.”
북궁천의 눈이 커졌다. 그는 정말로 놀랐다.
사실 천 명도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많이 부른 숫자였다. 그런데 그보다 몇 배나 많다니.
정파연합은 이곳의 상황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말 그렇게 많아?”
“그중 일천 정도는 천사교에 가입했다고 보면 돼.”
“나머지는?”
그 말에 연소랑이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
“끼리끼리 세력을 형성해서 상주를 분할하고 있지.”
“그래? 그런 세력이 몇 곳이나 되지?”
“넷.”
“천사교와 어떤 관계지? 전부 천사교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필요하면 공조하고, 평상시에는 서로에게 관여하지 않아.”
“천사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많나 보지?”
“솔직히 천사교의 교리가 좀 사악하긴 해. 그래도 그들 덕분에 정파와 맞설 수 있으니 배척하지도 않는 거지.”
“천사교는 반기를 드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다는 게 이상하군.”
“필요할 때 쓰면 되는데 뭐하러 건드려서 싸우려고 하겠어? 싸워 봐야 정파만 좋아질 텐데.”
“호불호를 떠나서 상부상조하자는 거군.”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여기도 그 세력들 중 하나인가?”
북궁천이 마침내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연소랑이 잠깐 뜸을 들이고 입을 열었다.
“맞아. 우리는 그중 상주 북쪽을 장악한 북혈회(北血會)야.”
“이름이 괜찮군.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든 이유는 ‘북(北)’ 자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연소랑은 왜 북궁천이 마음에 들어 하는 줄 생각도 못 하고 빙그레 웃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말한 김에 다른 곳에 대해서도 말해 주지그래?”
나머지 삼파의 이름은 동마방(東魔幇), 남패령(南覇令), 서마련(西魔聯)이었다.
그중 동마방이 가장 커서 무사의 수가 오륙백이나 되었고, 남패령과 서마련이 사백 명 가까운 무사를 모아서 뒤를 바짝 좇았다.
연소랑이 속한 북혈회는 그들에 비해서 세력이 약했는데, 무사의 숫자가 이백이삼십 명 정도고 대부분 북쪽에서 내려온 무사들이었다.
“너희도 말투를 보니 북쪽에서 온 것 같은데, 어차피 이곳에서 지낼 거면 우리와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겠어?”
연소랑이 북궁천 일행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말투 때문이었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그런데 우리는 어디에 귀속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거래라면 몰라도.”
“거래?”
“그래. 몇 가지 조건을 걸고 계약을 하는 거지. 대가를 받고 북혈회의 일을 도와준다든가 하는 식 말이야.”
“흠, 그것도 나쁜 생각은 아닌데? 상 숙부는 어떻게 생각해요?”
연소랑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앉아 있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실력만 뛰어나다면 계약을 못 할 것도 없지. 생각한 조건이라도 있나?”
“상주에 머무는 동안 북혈회를 위해서만 일을 해 주겠어. 금액은 그때그때 정하고. 대신 우리에 대해서 지나친 간섭만 하지 않으면 돼. 나는 개인적인 볼일까지 간섭당하는 것이 싫거든.”
중년인의 이마에 주름이 몇 줄 파였다.
“조건이 너무 애매하군.”
“북혈회에도 나쁘진 않을 거야. 최소한 다른 자들을 위해서 북혈회에 검을 겨누지는 않을 테니까.”
그 때 냉호와 신경전을 벌였던 장한이 조소를 지었다.
“훗, 너희가 우리에게 검을 겨눈다 해서 우리가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여자, 어떻게 하겠어?”
연소랑은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빙긋 웃음을 지었다.
“당신 말도 일리가 있어. 최소한 우리에게 손해 갈 일은 없으니까.”
“맞아. 역시 말이 통하는군.”
“대신 숙식을 제공할 테니 우리와 함께 지내.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믿음이 약해지거든.”
“그렇게 하면 우리도 좋지. 단,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행동을 너무 제약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는다면.”
“북혈회에 피해를 주진 않을 거야.”
“좋아. 자! 그럼 이야기는 대충 된 것 같고, 이제 이름을 말해 봐.”
북궁천은 가명과 실명의 앞뒤를 떼어서 이름 하나를 만들었다.
“단천.”
* * *
“단천이란 자, 믿을 만하겠더냐?”
쉰 살 정도로 보이는 중년인의 질문에 연소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누군가를 완벽히 믿는다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잖아요, 아버지.”
“그건 그렇지.”
“제 눈에 콩깍지가 씐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에요. 상주에 들어오자마자 저희가 관할하는 청운객잔에 들어와서 다른 자들 눈에 띄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뺏겼으면 곤란한 자들을 적으로 맞이할 뻔했어요.”
북혈회주 연풍척은 딸의 판단을 믿었다.
연안(延安) 연가장이 섬서 북부를 장악한 삼절맹에 무너진 후 살아남은 식솔을 데리고 상주에 들어온 지 석 달 반.
처음 북혈회를 만들 때 이십여 명이었던 인원이 어느덧 이백을 넘어서고 있었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자들과 몇 번이나 피 튀기는 싸움을 벌여야 했고, 그 와중에 위기를 맞은 적도 대여섯 번이나 되었다. 그때마다 딸이 현명한 판단을 내려서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름대로 탄탄한 세력을 구축해서 동마방이나 남패령, 서마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가 되었다.
모든 게 딸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좋다, 그럼 그들은 네가 관리하도록 해라.”
“알았어요.”
“동마방 놈들이 영월루 일대를 욕심낸다고 하던데, 그 일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
“영호 당주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며 동마방 사람들을 만나러 갔어요. 지금쯤 이야기가 끝났을 테니 돌아오면 알 수 있겠죠.”
“영호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느냐?”
연소랑의 입가에 다시 쓴웃음이 맺혔다.
“솔직히 동마방에서 내보낸 호양곽은 영호 당주에게 버거운 상대예요. 잘되면 좋겠지만 손해 볼 각오도 해야 할 거예요.”
“도둑놈들. 남패령과 닷새를 싸워서 겨우 얻은 곳을 거저먹으려고 하다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쉽게 넘겨주진 않을 테니까요.”
연소랑이 짐짓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며 부친을 안심시켰다. 그 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회주, 영월루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 * *
북궁천 일행에게는 장원의 뒷마당 쪽에 있는 방 세 개가 주어졌다.
각 방마다 침상 세 개와 탁자 하나, 의자 네 개가 있었고, 탁자 위에는 찻주전자와 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북궁천은 냉호와 함께 방을 쓰기로 했다.
옆구리의 검을 풀어서 침상 한쪽에 세워 놓은 북궁천은 탁자 위에 있는 찻주전자에서 차를 한 잔 따라 마셨다.
‘상주가 이런 상황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군.’
마도의 무사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말을 듣긴 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마도가 천사교를 중심으로 뭉쳐 있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는 차라리 더 나았다.
북혈회를 이용하면 진아를 찾는 일에 도움이 될 듯했다.
“밖으로 나가서 천사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겠습니다, 주군.”
냉호의 말에 북궁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금천장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조사해 보지 않는 한, 이곳 사람들이 아는 것 이상은 알아내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 때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연소랑이 굳은 목소리로 북궁천을 찾았다.
“단천, 안에 있어?”
“들어와.”
문이 열리고 연소랑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해 주어야 할 일이 하나 있어.”
“지금?”
“그래, 지금.”
“무슨 일인지 말해 봐.”
연소량은 동마방과 협상을 하기 위해 북혈회 간부가 영월루에 간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데 놈들이 억지를 부리면서 영호 당주와 일행을 강제로 굴복시키고는 나를 찾고 있어. 동마방의 방주란 작자가 전부터 나를 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땅딸보 돼지 같은 놈이 처음부터 나를 목적으로 영월루를 건드린 것 같아.”
“내가 뭘 해 주길 바라는 거지?”
“저들은 아직 단천 일행을 모를 거야. 그러니 영월루에 들어가서 혼란을 일으켜 줘. 그럼 기회를 봐서 우리가 영호 당주 일행을 구해 낼 테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군. 은자 백 냥이면 어때?”
“백 냥?”
“설마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백 냥은 너무 비싸.”
“영호 당주라는 자가 그 정도 값어치도 없나?”
“그건 아니지만…….”
“대신 우리가 구하는 것까지 마무리 지어 주지. 어때?”
연소랑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백 냥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할 수 있겠어?”
“못 믿겠으면 말고.”
“좋아, 어디 솜씨 한번 볼까?”
북궁천은 침상 위에 내려놓은 검을 들어서 옆구리에 끼우고 옆방을 향해 말했다.
“장추, 일하러 가자. 잠은 갔다 와서 자.”
그러고는 깜박 잊었다는 듯 고개를 돌려 연소랑을 바라보았다.
“목표를 초과달성하면 그에 대해서도 값을 치러 줄 건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면.”
“금액이 부담되면 돈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대신해도 돼.”
북궁천의 말에 연소랑이 움찔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돈 대신 바랄 것은 한정되어 있다.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 때 방을 나서려던 북궁천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지금 영월루로 가면 되나?”
“그, 그래.”
“어디에 있지?”
“사람을 붙여 줄게.”
* * *
영월루의 이 층은 난장판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이십여 개 탁자 중 부서진 것이 반은 되었다.
온통 피범벅이 된 바닥에는 열두어 명이 쓰러져 있었는데, 반 정도는 죽은 듯 움직임이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을 무기를 든 무사 이십여 명이 형형한 눈을 번뜩이며 에워싸고 있었다.
“늦는군.”
“곧 올 겁니다, 대주.”
동마방 흑운대 대주 호양곽은 앞에 놓인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잉어찜을 한 점 집어 먹었다.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얼굴에 사선으로 깊은 상흔이 있었는데 그로 인해서 인상이 더 날카롭게 느껴졌다.
“방주는 왜 그런 선머슴아 같은 계집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옆에 서 있던 장한이 비릿한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앙칼진 맛은 있잖습니까?”
“천사교가 곧 대대적인 무사 파견을 요청해 올지 모르는데 계집에게만 신경 쓰고 있으니 원…….”
호양곽은 불만을 드러내며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방주인 귀살부(鬼殺斧) 악동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력이 커지면서 패기가 죽고 욕심만 넘쳤다. 이러다가는 언제 남패령이나 서마련에게 먹힐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