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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49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49화

 

149화

 

 

 

 

 

 

 

북궁천이 나타났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던 그였다. 만약 소존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화살을 자신에게 돌릴지 몰랐다.

 

그런데 호연유가 눈빛을 새파랗게 번뜩이며 다시 물었다.

 

“아기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서 놈에게 보내 보면 어떻겠소?”

 

사야승은 고개를 저었다.

 

“역효과만 날지 모릅니다. 놈이 이성을 잃고 분노해서 정말로 아기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문제가 커집니다.”

 

호연유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오. 어차피 놈을 상대하려면 속마음을 정확히 알아봐야만 하오. 그러기 위해선 뒷골이 띵할 정도로 충격을 줘야만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나쁜 생각도 아니야. 어떻게든 그놈만 끌어들일 수 있으면 정파 놈들에게는 악몽이 될 테니까.’

 

마제를 이용할 수만 있다면 아기의 손가락 하나 정도야…….

 

그렇게 생각한 사야승은 더 이상 호연유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론은 교주께서 내리실 테니까.

 

 

 

* * *

 

 

 

“그놈, 손가락 꼬물거리는 게 무척 귀엽군. 상태는 어떤가?”

 

“몸이 허약하긴 합니다만, 그리 심각한 상태는 아닙니다, 교주. 구양환이 손자가 될지 모른다 생각해서 제법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유아 놈도 빨리 장가를 가서 이런 손자를 하나 얻어야 하는데 말이야.”

 

호연도광은 잔잔한 웃음을 지으며 아기를 바라보았다.

 

철은보에서 아기가 도착한 지 한 시진.

 

일단 절명마의 곡화산이 먼저 아기의 상태를 검사했다.

 

절맥증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도 무척 심한 상태였다가 많이 나아진 듯했다.

 

곡화산은 그 이유로, 삼성궁이 아기에게 영약을 복용시키고 뛰어난 의술을 지닌 의원이 오랜 시간 치료를 한 것 같다고 했다.

 

어쨌든 호연도광으로선 아기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니 다행이었다.

 

아기는 매우 중요한 인질이었다.

 

손상이 있으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졌다.

 

“지금보다 건강하게 되려면 얼마나 걸리겠나?”

 

“이삼 일이면 충분합니다, 교주.”

 

호연도광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아기의 하얀 손가락을 잡았다.

 

우윳빛 손가락은 너무나 부드러워서 씹으면 입안에 향기가 가득 찰 것 같았다.

 

그는 아기의 손가락을 뜯어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하얗게 웃었다.

 

“네 목숨은 네 아비에게 달렸느니라. 몇 번쯤 반발하는 척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만. 후후후후흐흐흐…….”

 

곡화산은 호연도광의 웃음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부하는 그조차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10장. 무법지대

 

 

 

 

 

상주에서 남서쪽으로 이십여 리.

 

천금산 아랫자락에는 거대한 장원이 십여만 평의 대지를 차지한 채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천사교가 총단으로 사용하는 금천장이었다.

 

금천장은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상주 일대에서 무소불위의 권위를 자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천사교도들이 불개미 떼처럼 몰려왔다.

 

천년만년 위세를 떨칠 것 같던 종남파와 화산파를 산속 깊숙이 처박은 그들의 무력은 금천장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했다.

 

더구나 상전처럼 떠받들었던 화산파가 천사교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

 

금천장은 저항다운 저항도 해 보지 못한 채 장원을 천사교에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그 와중에 장주인 금화검 금옥궁과 그의 두 아들은 머리가 잘려서 정문에 내걸리고, 그의 부인과 딸은 처참하게 윤간을 당한 후 죽어 갔다.

 

당시 살아난 무사는 백여 명 정도. 그들은 복수를 다짐하며 도주했는데, 아직까지 그들이 나타났다는 말은 없었다.

 

어쨌든 그 후로 금천장은 천사교의 총단으로 탈바꿈했고, 마도의 새로운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봄이 되자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도무사들은 수십 년간 정파의 눈치를 보는 것에 지친 터였다. 그들은 천사교가 정파연합에게 밀리지 않고 위세를 떨치자 봄바람을 타고 상주로 몰려들었다.

 

섬서, 감숙, 호북, 사천, 하남, 심지어 안휘와 산서의 무사들도 있었다.

 

어중이떠중이인 낭인도 많았지만, 개중에는 내로라하는 고수도 적지 않았다.

 

그 바람에 상주에는 무사가 넘쳐났고, 매일 밤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지는 게 일상이었다.

 

무법지대(無法地帶). 마도의 성(城).

 

상주는 이제 관조차 손을 대지 못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당파 싸움에 혈안인 황궁은 천사교가 건네는 엄청난 황금에 눈이 멀어 못 본 척했고.

 

 

 

북궁천 일행이 무법지대 상주에 도착한 것은 밤이 깊어 가는 시각, 해시가 되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상주를 빙 돌아서 금천장으로 달려갔다.

 

십여 리를 달려 야산 위에 오르자, 화톳불이 여기저기서 타오르는 금천장이 저만치 보였다.

 

어찌나 규모가 큰지 장원이라기보다 성에 가까웠다.

 

‘저기에 진아가 있단 말이지?’

 

“여기서만 바라봐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저기에 내 아들이 있다는 게 느껴져.”

 

정말일까?

 

장추람을 비롯해서 냉호와 철교신, 북풍사객도 궁금했다.

 

그 때 장추람이 힐끔 북궁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군, 바로 들어가 보실 겁니까?”

 

그러고 싶다. 당장 달려가서 진아를 만나고 싶어 미칠 것 같다.

 

하지만 그는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서 감정을 억눌렀다.

 

“추람.”

 

“예, 주군.”

 

“내가 그렇게 무식하게 보이냐?”

 

“그런 것이 아니라…….”

 

“저 넓은 장원 안에 이천이 넘는 무사가 있다. 더구나 우리는 진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어.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거꾸로 놈들에게 당할지 모른다.”

 

금천장과 철은보는 모든 면에서 천양지차다. 천사지존과 소존 역시 크기가 다르고.

 

세력과 사람이 다르면 상대하는 방법도 달라야 하는 법.

 

어설프게 건들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질 수도 있고, 그만큼 진아만 힘들어진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많은 정보를 얻은 다음 신중히 움직여야 해.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빼내기가 그만큼 더 힘들어질 거다. 후우, 북궁천! 진아가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라!’

 

한참 동안 금천장을 바라보던 북궁천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돌렸다.

 

조금 더 보고 있으면 진짜로 심장이 터지든가, 아니면 금천장을 향해 달려갈 것 같았다.

 

“일단 상주로 들어가자.”

 

삼룡과 사객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북궁천 일행은 어둠의 장막이 뒤덮인 상주로 향했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알아볼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상주에는 마도무사들이 들개 떼처럼 득시글거렸다.

 

지금 자신들의 모습은 누가 봐도 마도의 낭인 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자신들과 비슷한 자들이 상주 안에 수백 명은 될 것이었다.

 

더구나 소존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들의 꼬리를 잡은 것은 단풍을 지날 때쯤. 아마 그들은 빠르면 내일 오전, 늦으면 오후에나 도착할 듯했다.

 

그 말인즉, 북궁천 일행의 움직임에 대해서 천사교가 아직 모르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여덟 명이 두세 명씩 셋으로 나누어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움직였다.

 

 

 

* * *

 

 

 

상주에 도착한 북궁천 일행은 식사도 할 겸 구석진 골목 안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섭셔!”

 

점소이가 힘찬 목소리로 북궁천 일행을 반겼다.

 

객잔 안은 자리가 절반 정도 비어 있었다. 상주의 상황을 대변하듯 손님은 대부분 무사들이었고, 양민은 구석에 앉아 있는 네 사람이 전부였다.

 

북궁천 일행은 다섯을 셀 시간의 차이를 두고 차례차례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북궁천은 냉호와 함께 창가 쪽에 앉고, 장추람과 철교신과 지송문이 입구 쪽에, 임표와 담운과 구자강이 주방 쪽에 자리를 잡았다.

 

냉호가 먼저 간단한 요리를 몇 가지 주문하면서 방까지 예약했다.

 

술은 시키지 않았다. 북궁천이 술을 끊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북천에서 내려와 함께 지내는 동안 술 마시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고.

 

그런데 북궁천이 직접 술을 시켰다.

 

“이봐, 술도 가져와. 적당한 걸로.”

 

냉호는 물론이고 다른 탁자에 있던 장추람 등도 놀란 표정으로 북궁천을 힐끔거렸다.

 

“뭘 그렇게 봐?”

 

냉호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술을 끊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했지.”

 

“괜찮겠습니까?”

 

“너희들은 술을 마시고, 나는 곡차를 마시는 거야. 됐어?”

 

냉호도 싫지는 않았다.

 

그동안 술벌레가 요동을 쳐도 주군 때문에 마시지 못한 그들이었다. 싫어하기는커녕 북궁천의 결정을 반겼다.

 

“한두 잔 마시는 거야 나쁠 것 없죠.”

 

다른 탁자에 있던 장추람과 철교신, 북풍사객의 얼굴도 밝아졌다.

 

 

 

술잔에 가득 찬 맑은 술 위에 헌원려려의 모습이 비쳤다.

 

그녀는 잘 있을까?

 

‘잘 있겠지. 꼬맹이가 방정맞긴 해도 정은 있으니까.’

 

술잔에 파문이 일더니 공손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는 짓이 여우 같아서 그렇지, 나름대로 귀여운 면이 있었다.

 

누가 데려갈지 몰라도 꽉 잡혀 살 것이 분명했다.

 

‘저번에 보니까 가슴이 커졌던데, 정말 시집가도 되는 나인가?’

 

그는 아직도 그 점이 의문이었다.

 

세 번째로 작은 아기의 얼굴이 비쳤다.

 

얼굴은 희미했다. 어쩌면 그게 당연했다.

 

헌원려려와 자신을 대충 섞어서 자신이 상상한 얼굴이니까.

 

수룡위사대원의 말대로 하얗고 인형처럼 예쁜 얼굴로 말이다.

 

‘내가 니 아버지다, 진아야.’

 

아기가 방긋 웃는다. 꼬물거리는 손을 내민다.

 

아부, 아부 하면서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다.

 

북궁천은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 지으며 술잔을 응시했다.

 

‘괜찮을 거야, 우리 진아는 아무 이상 없을 거야. 아무 걱정 마라, 진아야. 이 아버지가 좋은 의원을 알고 있단다. 성격이 조금 괴팍하긴 한데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의원이지. 그 의원이 네 병을 고쳐 줄 거란다. 그러니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라. 이 아버지가 찾아갈 동안만…….’

 

눈앞이 흐려졌다.

 

안개가 낀 것만 같았다.

 

진아의 모습도 흐릿해지더니 안개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북궁천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가슴에 담아 두겠다는 듯 술잔을 들어서 가슴속 깊이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술잔을 내려놓다 말고 멈칫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냉호가 얼버무리며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탁자 하나 너머 쪽에 있던 장추람과 철교신은 말없이 술잔만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그들은 보았다.

 

북천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마제의 눈에 눈물이 서려 있는 걸.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보나 마나 아기 때문이겠지.

 

어떤 놈이 북천마제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했던가?

 

마제에 대해서 좆도 모르는 것들이 나불대는 헛소리다.

 

그런 말을 한 놈들은 전부 입을 꿰매 버려야 한다.

 

때려죽일 놈들!

 

지들이 마제의 뭘 알아서?

 

“한 잔 주쇼!”

 

갑작스런 냉호의 행동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북궁천은 별일 다 본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냉호는 단숨에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고 북궁천에게 잔을 내밀었다.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냉호, 네가 갑자기 분위기 잡으니까 이상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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