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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48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3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48화

 

148화

 

 

 

 

 

 

 

“주군, 정말 그러깁니까?”

 

장추람이 겁을 상실하고 눈을 부라리는데, 소동동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섭지 않아요. 겉만 우락부락하지 마음은 순한 분 같은데요, 뭐.”

 

그 말에 장추람의 입술이 길게 늘어졌다.

 

“하, 하. 보셨죠? 사람 보는 눈은 소 낭자가 주군보다 나은데요?”

 

“쉰 소리 말고 빨리 갔다 와. 잠깐 쉬었다가 바로 출발할 거니까.”

 

“알겠습니다, 주군! 소 낭자, 가시죠.”

 

장추람은 북궁천이 변덕을 부리기 전에 앞장서서 전각을 나섰다.

 

그 때 북궁천이 갑자기 생각난 듯 장추람에게 물었다.

 

“추람, 물건 산다면서? 돈은 있어?”

 

멈칫한 장추람이 재빨리 품을 뒤졌다. 돈주머니가 손에 잡혔다. 그런데 아무리 만져 봐도 몇 푼 안 될 것 같았다.

 

“은자 두 냥만 빌려 주십시오.”

 

 

 

북궁천은 소동동과 장추람이 전각을 나가고 문이 닫힌 뒤에야 몸을 돌렸다.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번뜩였다.

 

아마 누군가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면 눈알이 얼어 버렸을지 몰랐다.

 

‘천사지존이 있는 상주에 있단 말이지?’

 

소존과의 기 싸움에서는 이겼다. 그러나 천사지존까지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는 머리 하나로 무림맹을 와해시킨 자가 아닌가?

 

급하게 쫓아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진아를 되찾으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하다못해 마음이라도 최대한 냉정하게 가라앉혀야 했다.

 

희생을 최소화하고, 진아를 아무 이상 없이 구하려면!

 

그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냉호가 말했다.

 

“주군, 만약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저희들은 생각 마시고 소군을 구하는 일에만 전념하십시오.”

 

“무슨 소리냐? 나더러 너희들을 버리란 말이냐?”

 

“원래 그게 북천의 공포, 마제 아니었습니까?”

 

그랬나? 자신이 그렇게 독한 놈이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훗, 그러고 보면 려려가 싫어할 만했군.’

 

북궁천이 씁쓸한 자조의 미소를 짓는데, 냉호가 특유의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주군의 마음이 유해지신 게 마음에 걸립니다. 소군을 구하는 데는 부드러운 주군보다 북천의 마제가 더 필요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 저희에 대해선 조금도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저희는 그렇게 하시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냉호…….”

 

북궁천도 자신의 성격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강해야 진아를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이번에 소존과의 기세 싸움에서도 조금만 약했다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아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수하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철교신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한마디 거들었다.

 

“북천의 무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소군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면 저희도 영광이죠.”

 

“너희들이 나를 나쁜 주인으로 만들려고 작정했구나.”

 

“소군을 되찾고 천사지존의 대가리만 부숴 주시면 됩니다, 주군. 그럼 좋은 주군으로 생각해 드리죠.”

 

“나쁜 놈들…….”

 

 

 

* * *

 

 

 

상남이 가까워지자 장추람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당화점에 도착하면 돌아가야 한다.

 

당화점이 가까워지면 그만큼 돌아갈 시간도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의 입이 열린 것은 상남의 외곽에 도착했을 때였다.

 

“저기, 소 낭자. 혹시 아는 남자 있수?”

 

“없어요.”

 

“아까 한 말, 정말 그렇게 봤수?”

 

“예?”

 

“마음이 순한 사람 같다는 거.”

 

“풋, 맞아요. 정말 그렇게 보여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만 봐도 그렇고요.”

 

“음, 그럼 내가 동생처럼 생각해도 되겠수?”

 

“오빠가 너무 많은 것은 싫어요.”

 

“…….”

 

거부나 다름없는 말.

 

장추람의 어깨가 살짝 처졌다.

 

그가 본 소동동은 아름다웠다. 용기도 있고 당당했다. 거기다 순수하기까지.

 

난생처음 여인을 보고 마음이 두근거렸다. 아마 북천에 이런 여인이 있었다면 이미 자식을 셋은 낳았을 것이다.

 

그래서 난생처음 용기 내 말해 봤는데 거절을 당하다니.

 

가슴이 쓰리다 못해 아팠다.

 

어렴풋이 주군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헌원려려가 떠나갔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 상황을 딛고 만 리를 달려와서 헌원려려를 되찾은 걸 보면 주군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싫다면 어쩔 수 없고…….”

 

그가 시무룩하게 말하는데, 소동동이 말을 이었다.

 

“저는 오빠보다 항상 저를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더 이상은 가슴 졸이면서 살고 싶지 않거든요.”

 

장추람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쾅!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후려친 그가 힘찬 어조로 말했다.

 

“나는 어떻소? 이 장추람이 소 낭자를 지켜 주겠소!”

 

“정말 그럴 수 있어요?”

 

“물론이오, 소 낭자!”

 

“하지만 장 공자님은 곧 떠날 분이시잖아요?”

 

“그게…….”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소군을 구할 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소군을 구해서 궁에 모셔다 드린 후 곧바로 소 낭자를 찾아오겠소.”

 

“굉장히 먼 곳에 사신다면서요?”

 

“하하하, 주군께선 주모를 위해 만 리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소. 나도 그럴 수 있소.”

 

그 때 취객 하나가 그들 뒤로 지나가다가 힐끔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짜식, 말로만 그러면 뭐해? 확 안아 버려야지. 여자를 다룰 줄 모르는구만?”

 

장추람은 취객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와락!

 

느닷없이 소동동을 안은 그는 손안의 참새처럼 바들거리는 그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이 장추람, 항상 소 낭자를 지켜 줄 거요. 믿어 주쇼!”

 

그런데 사실 소동동은 가만히 있는데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장추람이 나간 지 반 시진 후.

 

북궁천은 전각으로 들어서는 장추람을 바라보며 눈을 껌벅였다.

 

보따리를 하나 안고 들어오는데 싱글벙글 표정이 밝았다.

 

“그게 뭐지?”

 

“당과입니다.”

 

“동동이 준 거냐?”

 

“돈 주고 샀습니다.”

 

“설마…… 은자 두 냥으로 전부 당과를……?”

 

“중원의 당과가 맛있다고 해서 꼭 먹어 보고 싶었죠. 하나 드시죠? 자네들도 먹어 봐.”

 

 

 

장추람이 돌아온 지 한 시진.

 

북궁천은 대주천을 마치고 전각을 나섰다. 삼룡과 사객도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상태에서 북궁천을 따라 나섰다.

 

그들 모두가 뭔가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장추람이 일인당 스무 개씩 강제로 나누어 준 당과였다.

 

 

 

* * *

 

 

 

“역시 그였군.”

 

유원당은 굳은 표정으로 나직이 말하며 허공을 응시했다.

 

어둠이 가기도 전에 황보청과 종리기진이 도착했다.

 

쉬지 않고 달려온 그들은 숨이 턱까지 차 있었다.

 

그들에게서 전말을 들은 유원당은 착잡함과 안쓰러움, 단호함이 복합된 심경으로, 자신이 의문을 품었던 싸움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그의 말을 들은 황보청은 의형이 걱정되어 침울해졌다.

 

“아기를 구했을 거라 보십니까?”

 

“나는 그가 아기를 구하지 못했을 거라 보고 있다.”

 

북궁천의 성격상 아기를 구했다면 그 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뒤집어엎어 버리지.

 

“그럼 대형은 아기가 위험할 줄 알면서도 소존과 싸운 거란 말입니까?”

 

“글쎄, 그것도 조금은 의문이다. 헌원려려를 찾기 위해 자존심과 명예를 버리고 만 리를 달려온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아들의 위험을 알면서도 저들에게 칼을 겨눌 수 있을까?”

 

“소존과 장로, 호법들이 부상을 입었다면서요?”

 

“그건 그렇지. 그래서 의문이라는 거야. 그는 왜 소존과 싸웠을까?”

 

“총군사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원당은 이마를 찌푸리고, 눈을 들어 허공을 보고, 코끝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그가 고도의 심리전을 벌인 것이 아닌가 싶다. 단, 그러기 위해선 아기가 이곳에 없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잘못하다가는 아기가 다칠지 모르는데도 말입니까?”

 

“쯔쯔쯔, 안 돌아가는 머리지만 좀 더 노력해서 굴려 봐라. 내가 왜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했겠냐?”

 

머리를 빡빡 굴린 황보청이 유원당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나중에 아기를 놓고 협상할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 아기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그래도 아주 멍청이는 아니군. 다른 뜻도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선 그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그러다 소존이 진짜 이성을 잃어서 아기를 해치면요?”

 

“좀 전의 말 취소다. 이 멍청아! 천사지존과 소존이 어떤 놈들이냐? 화가 났다고 해서 북천마제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패를 포기할 놈들이라면 세상을 이렇게 뒤흔들지도 못했을 거다. 더구나 이곳에 아기가 없었다면 어디에 있겠냐?”

 

황보청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천사지존에게 보낸 걸까요?”

 

“그렇다고 봐야지. 그런데 천사지존은 소존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서운 자다. 그자는 아마 소존이 죽어도 아기를 해치지 않을 거다.”

 

“제길, 그럼 대형이 소존을 죽여 버리는 게 나을 뻔했군요.”

 

“그로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 아들을 두고 거기까지 모험을 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절박했을 테니까.”

 

“좌우간 총군사의 짐작이 사실이라면, 대형과 천사교와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봐야겠군요.”

 

“맞아. 문제는 심계에서 그가 천사지존을 이길 가능성이 적다는 거다.”

 

황보청은 유원당의 말뜻을 깨닫고 눈이 커졌다.

 

“대형이 이용당할지도 모른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그 일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대형이, 대형이 저자들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유원당은 전날 이미 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한 터였다.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만약 그가 검을 우리 쪽으로 돌린다면, 나는 그를 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총군사…… 장인어른!”

 

황보청은 유원당의 단호한 말에 입이 바짝 말랐다.

 

묵묵히 앉아 있던 종리기진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초조한 표정으로 유원당을 바라보았다.

 

그 때 유원당이 황보청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일단 단풍의 적산채까지 밀고 올라간 다음에 전열을 정비하며 정파의 힘을 모을 생각이다. 그곳에 진을 치고 있으면 천사교놈들도 함부로 내려오지 못하겠지. 우리가 힘을 모으는 동안 너와 기진은 이곳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그를 찾아라.”

 

“예, 장인어른.”

 

 

 

* * *

 

 

 

어둠이 밀려가고 여명이 밝아오는 시각.

 

천사교 무리는 쉬지 않고 서쪽으로 이동했다.

 

호연유는 그 와중에도 급히 마련된 가마를 티고 있었다.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

 

그는 이를 갈며 북궁천을 욕했다.

 

정파연합에 패배한 것이 모두 북궁천 때문인 것 같았다. 실제로 그의 난입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고.

 

고개를 돌린 호연유는 옆에서 걷고 있는 사야승을 바라보았다.

 

사야승의 표정은 석고처럼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제기랄, 아기를 괜히 보냈어.”

 

“차라리 잘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아기가 있었다면 놈이 훔쳐갔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렇게 맥없이 당하지는 않았을 거요.”

 

사야승은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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