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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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40화
140화
그래선지 조사를 담당한 자들도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별 볼 일 없는 자들은 객당 한쪽의 구석진 곳에 모여 있었고, 실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유명세를 탄 자들은 곧장 내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머무는 객당에 자들은 대부분 일류 수준을 오락가락하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두 사람도 실력을 드러냈다면 내원으로 들어갔을 테지만, 자칫 의심만 살지 몰라서 중간 위치를 택했다.
“제법 칼 좀 쓰게 생겼군. 어디서 왔지?”
지송문은 옆자리에서 질문이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는 사십 대 전후로 보이는 중년인이 벽에 등을 기댄 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산서 임분에서 왔수.”
“멀리서 왔군.”
“산서는 철군성 놈들 때문에 우리 마도인들이 설 땅이 한정되어 있잖수. 그런데 천사교가 정파 놈들과 한판 붙었다기에 달려온 거요.”
“그래? 나는 호북에서 온 곽태문이라 하네. 자네들은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나는 송문이고, 이 친구는 강운이오.”
“눈빛을 보니 사람 꽤나 죽였을 것 같군.”
“흐흐흐, 솔직히 말해서 철군성 무사 일곱을 죽이고 도망쳐 왔수.”
곽태문이라는 중년인은 지송문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군. 철군성 무사를 일곱이나 죽이다니.”
“개중에는 조장이란 자도 있었수. 씨발, 열 명만 되었어도 전부 죽여 버렸을 텐데, 스무 명이 넘어서 별수 없이 도망쳤수.”
지송문이 욕을 섞어 가며 아쉽다는 투로 말끝을 흐리자, 담운이 곽태문에게 넌지시 물었다.
“곽 형은 어떻게 여기 온 거요?”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왔지.”
꼭 그런 이유 때문에 온 것은 아닌 듯했다.
곽태문은 하위무사들이 기거하는 곳에 있을 자가 아니다.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할 수 있는 고수. 이미 절정 경지에 발을 디딘 자다.
자신이 그보다 강하지 않았다면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 고수가 정말 돈 몇 푼을 바라고 이곳에 왔을까?
하지만 담운은 모른 척했다.
“우리는 무작정 오느라 자세한 것을 알아보지 못했소. 얼마나 준다고 합디까?”
“한 달에 은자 열 냥을 준다더군. 공을 세우면 그만큼 더 주고. 뭐, 살아남아야 받는 것이지만.”
“제기랄. 열 냥이 뭐야? 스무 냥은 줘야지.”
“공만 세우게. 그럼 한몫 잡을 수 있을 테니까. 듣자 하니 당주급 이상을 죽이면 백 냥을 준다더군.”
“그래요? 지미, 무리를 해서라도 높은 놈 하나 때려잡아야겠군.”
담운은 주먹을 불끈 쥐고 짐짓 눈을 부라렸다.
그 때 지송문이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계속 여기에 놔둘 건가? 어디에 배치를 하던가 해야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가 있지 말이야.”
지송문과 담운이 철은보에 들어온 지 두 시진쯤 지났을 때, 몇 사람이 객당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천사교의 교도 복장을 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집무사들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개중 마흔 전후로 보이는 빼빼 마른 자가 턱을 쳐들고 말했다.
“나는 야랑군 제삼대를 맡게 된 동철귀다. 본 교에 힘을 보태기 위해 온 그대들을 환영한다. 이제부터 그대들은 본 법당주 밑에서 정파 놈들과 싸우게 될 것이다. 모두 일어나서 나를 따라와라.”
야랑군(野狼群)은 몰려든 무사들을 다스리기 위해 만든 직제(職制)였다. 이미 이대 이백 명이 채워졌고, 이제 삼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모집무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웅성거리더니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 쫄따구나 하라는 건 아니겠지?”
“조장을 뽑겠지. 백 명 정도 된다고 했으니까 열 명은 뽑지 않겠어?”
“지미, 실력을 시험해 봤으면 바로 뽑아야지, 이런 어중이떠중이들하고 함께 졸병으로 지내란 건가?”
“뭐? 그럼 내가 어중이떠중이란 말이냐?”
“아니면 말지 왜 성질을 내?”
“이 씨발놈이. 시비는 네가 걸었잖아?”
“이 새끼가 어디서 욕이야? 죽고 싶냐?”
웅성거리던 모집무사 사이에서 시비가 붙자 동철귀가 싸늘하게 소리쳤다.
“조용히 해! 이제부터 한 식구가 되어서 적과 부딪쳐야 하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싸우겠다는 건가?”
“이 자식이 시비를 걸잖소?”
“내가 언제 너한테 말했냐?”
“조용! 앞으로는 싸우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 싸우고 싶으면 목을 내놓고 싸워라. 그만 입 다물고 따라와!”
동철귀가 냉랭히 말하고 몸을 돌렸다.
무사들은 병아리처럼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지송문과 담운도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소군이 계신 곳과 가까운 곳이면 좋은데…….’
* * *
“어떤 새끼들인데 감히 어르신을 납치한 것이냐!”
노굉화는 아혈이 풀어지자마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 술이 덜 깬 듯했다. 아니면 정말로 멍청해서 아직도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가.
북궁천은 어디서 개가 짖냐는 듯 신경도 쓰지 않고 팔뚝 굵기의 통나무를 일곱 자 높이의 석벽에 박았다.
푹!
마치 못이 두부에 박히듯 통나무가 석벽을 쑥 파고들었다.
“손을 묶어서 여기에 매달아.”
장추람이 밧줄로 노굉화의 손을 익숙하게 묶더니 불끈 들어서 통나무에 매달았다.
노굉화의 몸이 바닥에서 한 뼘 정도 허공에 떴다.
“이걸 풀지 못할까?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
“네가 누군지는 관심 없어. 내가 알고 싶은 걸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나는 혈문의 추혈당주 노굉화다! 나를 풀어 주지 않으면 네놈들도 모두 갈기갈기 찢겨서 죽게 될 것이다! 어서 밧줄을 풀어라!”
노굉화는 혈문이라는 이름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지 모른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는 북궁천의 눈썹 한 올도 움직이지 못했다.
북궁천은 한눈에 봐도 단단하게 느껴지는 박달나무 몽둥이를 장추람에게 넘겨주었다.
“여긴 천장과 벽이 두꺼워 방음이 잘되는 곳이야.”
북궁천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신도 소동동의 기척을 모를 뻔했으니까.
“소리를 지르고 싶으면 마음껏 질러. 대신 목소리가 커지면 그만큼 때리는 손에 힘이 더 들어갈 거다. 시끄러우면 짜증이 나는 법이거든. 추람, 일단 한 대 쳐 봐.”
“자, 잠깐!”
딱!
“아악!”
“저런, 뼈를 쳤군. 쯔쯔쯔.”
어쩐지 소리가 이상하다 했더니 무릎뼈를 친 듯했다.
북궁천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고는,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군. 하지만 이해해. 때리다 보면 실수할 때도 있으니까.”
“으으으으, 대, 대체 왜 나를…….”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자고. 너무 일찍 입을 열면 저 친구가 실망할 테니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지옥의 유부에서 흘러나오는 사자의 목소리가 저럴까 싶다.
한 대 맞고 나서야 술이 깬 노굉화는 등골을 타고 쫘악 소름이 끼쳤다.
“뭐, 뭘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냐?”
“추람, 시작해.”
장추람은 이를 드러내며 씩 웃고 몽둥이를 들었다.
영락없이 고문하는 것을 즐기는 표정.
더구나 몽둥이를 건넨 놈이 비도로 나무를 침처럼 뾰족하게 깎고 있는데, 아무래도 고문에 쓸 도구를 만드는 듯했다.
“손톱 밑을 깊게 파고들려면 더 뾰족해야 할 것 같군.”
북궁천이 나무 침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투로 말하자, 노굉화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 뭐든 물어보라니까! 이, 이봐, 몽둥이는 내려놓고 말로 하자!”
하지만 장추람은 못들은 척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 퍼버벅! 빡!
“으악! 아아악! 사, 살려…… 크억!”
몽둥이가 노굉화의 몸을 십여 번 어루만진 후에야 북궁천이 몽둥이질을 멈추게 했다.
“그만.”
“몇 대만 더 때리죠.”
장추람이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자, 금방 죽어 갈 것 같던 노굉화가 번쩍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뭐든 말할 테니 물어만 봐! 어서!”
북궁천이 그의 눈을 직시했다.
“조금만 더 참아. 이 침을 시험해 보고 물어볼 테니까. 손은 묶여 있으니 발부터 시작해 봐야겠군.”
그러고는 비도로 깎아 만든 나무 침을 들고 일어났다.
노굉화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끄으으으, 제, 제발…….”
그 때 북궁천이 나무 침을 노굉화의 어깨에 비틀면서 천천히 꽂았다.
“잘 들어가는군. 발톱 사이로도 들어가겠어.”
나무 침을 타고 핏물이 주르륵 흘렀다.
노굉화는 비명을 지를 시간도 없었다. 거칠게 깎인 나무 침이 발톱 사이를 파고들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사정해 봐야 했다.
“무, 물어보라니까. 뭐든…… 제바아아알…….”
북궁천은 못들은 척 나무 침을 하나 들고 노굉화를 발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발톱 사이에 침을 박아 보고, 그래도 안 되면 힘줄을 뜯어내 보자고.”
끝내 노굉화의 입에서 공포에 질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끄으윽, 크흐흑. 뭘 알고 싶은데…….”
그 때 슬쩍 눈을 든 북궁천이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철은보에서 지내나?”
“그, 그렇다.”
“천사교의 소존을 본 적 있어?”
“봤다.”
“그놈 이름이 뭐야?”
“그, 그건 나도 잘 모르…….”
북궁천이 허리를 숙이며 발을 향해 손을 뻗었다. 노굉화가 발작하듯이 외쳤다.
“정말이다! 소존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멈칫한 북궁천이 한기가 펄펄 날리는 눈을 쳐들고 노굉화를 노려보았다.
“소존이 아기를 하나 데려왔다던데, 들어봤어?”
“드, 들었다.”
“지금도 철은보에 있나?”
“그럴 거다. 호, 혹시 아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냐?”
푹!
북궁천이 노굉화의 허벅지에 나무 침을 꽂았다.
“아악!”
“아기에 대해서 말해 봐. 아는 것 전부.”
7장. 멈추지 마요
동경을 보며 눈썹을 다듬었다.
하얀 살결에 난 몇 개의 보기 싫은 털을 뽑아내자, 가느다란 눈썹은 여인이 봐도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 완벽해졌다.
호연유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은빛 도관을 머리에 썼다.
“소존.”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멈칫한 호연유는 마저 도관을 손본 후 대답했다.
“무슨 일이냐?”
“아기가 이상합니다.”
호연유는 눈살을 찌푸리고서 방문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니? 어디가?”
“얼굴이 파랗게 변하고 젖을 토해 냈는데 숨소리가 매우 거칩니다.”
“뭐? 혹시 뭘 잘못 먹여서 체한 거 아냐?”
“속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유모 말로는 젖을 먹고 한참 지난 후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냐? 의원은 불렀느냐?”
“예, 소존.”
공연히 마음이 불안해진 호연유는 몸을 일으켰다.
아기는 그에게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백설처럼 하얗고 핏줄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피부는 세상의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웠다.
보고 있으면 질투심이 들 정도였다.
그는 그 아기를 장난감처럼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장난감.
그런데 그 아기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그는 곧장 아기가 있는 방으로 갔다.
아기가 있는 방에는 사야승과 유모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