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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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76화
176화
1장. 확실히 벗겨 주마!
북궁천은 아쉽게도 은신술 쪽으로 특별하게 익힌 재주가 없었다.
그는 북천의 주인, 마제니까.
은신술은 호위하거나 누군가를 암살할 때 필요한 무공, 패왕인 마제가 익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공력을 팔성까지 끌어 올려서 오감을 예민하게 증폭시킨 그는 금화전 일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소리 없이 움직였다.
승천무풍행을 펼쳐서 단숨에 십여 장을 건너뛴 그는 용마루를 타고 눈 깜짝할 새에 지붕 하나를 넘어갔다.
이제 금화전까지의 거리는 십오륙 장. 단층으로 된 지붕 하나만 넘으면 바로 금화전의 앞마당이다.
하지만 북궁천은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금화전까지 가려면 앞에 있는 지붕과 앞마당을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앞 지붕 너머에 서너 명이 잠복해 있었다.
그들의 실력이야 크게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들을 속이고 어찌어찌 통과한다 해도 앞마당을 지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심지어 허공을 날아서 금화전까지 간다 해도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없을 듯했다.
저쪽 건너편 지붕에 두어 명이 누워 있는 게 보이는데, 그들이 허공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진짜 질리도록 철저하군.’
그래도 가까이 접근한 덕분에 아기의 목소리를 좀 더 확실히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우는 소리 대신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부지…… 하부지…… 냥냥, 주주주…….”
슬쩍 고개를 들던 그의 몸이 솜씨 좋은 석공이 만든 석상처럼 그대로 굳었다.
울음을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북받쳐서 목에 힘을 주지 않으면 고함을 내질러서 진아를 부를 것 같았다.
돌이 지나면 몇 마디 할 줄 안다는 말을 듣긴 했다. 그래도 몸이 약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늦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찡하니 울리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려려, 우리 진아가 이제 말도 제법 잘해. 거기서도 들리지?’
그 때 들리는 카랑카랑한 노인의 목소리.
“클클클, 이 녀석. 잠도 안 자고 왜 온 방을 다 헤집고 다니느냐?”
누굴까?
설마 천사지존은 아니겠지?
절명마의라는 의원일까?
북궁천은 진아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서 청력을 극대화시키고 귀를 기울였다.
웅얼거리는 소리, 울먹거리는 소리,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북궁천은 눈을 반쯤 감고 진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아름다웠다.
자신의 품에서 저렇게 조잘거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빠, 엄마를 부르면서. 두 손을 흔들면서. 활짝 웃으면서…….
그럼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멈춰 버린 듯 그 자세 그대로 굳은 그의 표정에서 허전함과 갈망이 교차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진아의 목소리만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 바람에 달이 이동하면서 자신이 있던 곳의 건물 그림자가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건물 그림자가 밀려나면서 그의 몸이 반쯤 드러났을 때였다.
경비무사 중 하나가 북궁천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쪽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
앞마당을 오가던 자들 중 칠팔 명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서 지붕 위를 쳐다보았다.
북궁천이 있는 곳은 경비를 서는 구역이 아니었다.
“수상한 자다!”
누군가가 소리침과 동시에 잠복해 있던 자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오더니 북궁천이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금화전 쪽에서 세 줄기 인영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북궁천은 경비무사의 외침을 듣자마자 뒤로 몸을 뺐다.
진아에게서 멀어져야 한다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 발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가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정체를 드러내면 천사교 놈들이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진아를 내세울지도 모른다.
놈들의 사악함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미안하다, 진아야!’
냉정을 되찾은 그는 주욱, 오 장을 미끄러지듯 뒤로 날아갔다.
진아를 불러 볼 수도 없는 처지라는 게 너무나 가슴 아팠다. 심장을 빼놓고 가는 것만 같았다.
‘오늘은 그냥 가지만 언제든 지금의 빚을 백배, 천배로 돌려줄 것이다!’
이를 악문 그는 분노를 씹으며 철저히 달빛을 피해서 이동했다. 어깨를 움츠리고 허리를 굽힌 채. 그래야 체구가 작게 보일 테니까.
그러나 추적해 오는 자들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특히 금화전에서 날아든 세 사람은 한 번 몸을 날릴 때마다 칠팔 장씩 이동하며 북궁천의 뒤를 쫓았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이이익!
여기저기서 호각 소리가 호응하며 울려 댔다.
수백 명에 이르는 경비무사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호각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놈이 저쪽으로 간다!”
“천사의 위엄을 해치려는 놈을 잡아라!”
북궁천은 자신이 도주해야 한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마제가 등을 보인다는 것은 치욕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진아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담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십여 명이 지붕 위로 올라오며 자연스럽게 앞을 막았다.
그들은 사실 북궁천을 발견하고 올라온 것이 아니었다. 침입자가 지붕 위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고 무작정 올라온 것뿐.
지붕 위에 내려선 그들은 야조처럼 날아드는 북궁천을 보고 대경해서 소리쳤다.
“헉!”
“놈이다!”
북궁천은 날아가며 검을 빼 들었다.
살기가 솟구친 그는 단호하게 손을 썼다.
쉬아아악!
어둠이 갈라지며 무사들의 몸까지 갈라졌다.
두어 명이 급히 무기를 빼 들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으악!”
“크아악!”
일검에 세 사람이 쓰러지며 구멍이 뚫렸다. 북궁천은 잠시도 멈칫거리지 않고 그 구멍을 통과했다.
“저 위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라!”
비명을 들은 자들이 놀란 쥐오리 떼처럼 날아오르며 몇 겹의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았다.
북궁천의 쌓이고 쌓인 분노가 그들을 향해 폭발했다.
살기충천한 검세가 폭풍처럼 쏟아지며 전방을 휩쓸었다.
콰과광! 쩌저저정!
맞부딪치는 자마다 살이 갈라지고 내부가 터져 나갔다.
“으악!”
“크어어억!”
어둠이 찢기며 비명이 암천 허공을 울렸다.
잠깐 사이 이십여 명이 죽거나 처절한 부상을 당한 채 땅바닥을 기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북궁천도 걸음이 늦춰졌다.
바로 그 때, 양쪽에서 세 사람이 지붕 위로 날아들었다.
“이놈!”
“킬킬! 감히 어딜 도망가려고 하느냐!”
“죽고 싶지 않으면 검을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귀검(鬼劍) 양사고, 살혼도(殺魂刀) 음청수, 마겸(魔鎌) 도양대문.
그들은 최근 들어 천사교에 가입한 일천 무사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양사고는 구량에 비해도 뒤지지 않는 자였다.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지 못해서 몸이 달아 있던 그들은 이 기회에 침입자를 잡아 교주에게 자신들의 실력을 각인시키고 싶었다.
북궁천은 죽기도 싫었고, 무릎을 꿇기는 더더욱 싫었다.
감히 마제에게 무릎을 꿇으라니!
홱 몸을 돌린 그는 그 말을 한 음청수를 향해 일자패천검을 펼쳤다.
음청수는 내리치는 도를 검으로 막으려는 북궁천을 보고 조소를 지었다.
‘별 볼 일 없는 놈이군!’
도는 검에 비해 중병이다. 더구나 내려치는 도세를 검으로 막는다는 것은 하수나 할 짓이었다.
쉬이이익!
찰나간에 거리가 일 장으로 줄어드는가 싶더니, 도검에서 뻗어 나간 기운이 석 자 거리를 두고 충돌했다.
쾅!
단발의 굉음.
“크흡!”
눈을 부릅뜬 음청수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북궁천은 격돌의 여세로 자연스럽게 몸을 틀며 양사고와 도양대문의 공격을 막아 냈다.
콰광!
자신만만하던 양사고와 도양대문도 몽둥이에 두들겨 맞은 개처럼 옆으로 튕겨 나갔다.
북궁천은 그들을 놔둔 채 담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천사교의 개들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공력을 칠성 정도만 끌어 올려서 반격했다. 천사교의 장로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수준으로.
그가 일성 공력만 더 끌어 올렸어도 양사고 등은 밀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죽여 주마!’
북궁천이 세 사람과 격돌하고 담장을 넘어가려하자 천사교도들이 그를 막기 위해서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천사의 아들들아! 놈을 막아라!”
“목숨을 던져 놈의 진로를 차단하라!”
뒤늦게 천사교에 들어온 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마도인들이었다. 개중 공을 탐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달려드는 자들도 있지만 그런 자들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본래의 천사교도들은 그자들과 달랐다.
그들은 천사의 적을 맞이하면 목숨을 초개처럼 던졌다. 적과 싸우다 죽으면 천사지존이 자신들을 안식처로 데려다 준다고 믿었으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자들.
그들은 광기를 젖은 눈빛을 번뜩이며 북궁천의 공세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북천마제를 막을 수는 없었다.
북궁천은 광풍 폭우와 같은 공격으로 천사교도 이십여 명을 베어 넘기고 독수리처럼 몸을 날렸다.
바로 그 때!
저 멀리 금화전 쪽에서 광소가 터져 나왔다.
“와하하하! 마·제·여! 아·들·을·보·러·왔·느·냐?”
담장 위를 날아가던 북궁천은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움찔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금천장에서 광소를 터트리며 소리칠 수 있는 자가 누구겠는가?
천공을 울리며 사람의 가슴을 기이하게 파고드는 사이한 음성은 결코 평범한 자들이 흉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다.
천사지존! 내 아들을 내놓아라!
북궁천의 목 안에서 분노의 외침이 맴돌았다.
하지만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한 그는 이를 악물고 담장을 넘어갔다.
뒤에서 천사지존의 사이한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들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거든, 나·를·따·르·라!”
북궁천의 몸이 잘게 떨렸다.
‘헛소리하지 마라, 천사지존! 마제는 누구의 명도 따르지 않는다!’
그는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감각을 키울 때 외에는 칠성 공력만 썼다. 살수처럼 복면을 쓰고 회의를 입었다. 몸을 움츠려서 체구를 작게 했다.
소문으로 도는 마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과 행동.
아마 천사지존은 아직 자신이 누군지 모를 가능성이 컸다. 지레짐작하고 있는 것일 뿐.
대꾸하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셈이 된다.
어쩌면 천사지존도 그러길 바라고 자신을 자극하는 것일지 몰랐다.
그는 머리 하나로 무림맹을 와해시킨 자가 아닌가. 그 정도 심계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네놈의 간계에 속을 줄 아느냐?’
그가 냉소를 지으며 날듯이 달리는데, 또다시 천사지존의 목소리가 어둠을 흔들었다.
“와하하하! 그대는 본좌가 모를 줄 아는가 보구나! 어리석구나, 마제여!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아기는 무사할 것이다!”
나름대로 천사지존의 심계를 간파했다 생각하고 있던 북궁천은 그 말에 심한 갈등을 겪었다.
정말 자신을 알아본 것일까?
그럴 수도 있었다. 금화전을 살펴보기 위해 몰래 접근할 만한 강호고수는 한정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