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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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67화
167화
두 사람은 소문에 귀를 기울이며 이곳저곳 탐문했다. 간혹 마도무사들과 티격태격 싸운 적도 있지만 대충 싸우다 물러나서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북혈회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 젊은 고수들이 있으며, 그들에 의해서 동마방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말도.
처음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귀동냥으로 그들의 모습을 듣고 보니 대형 일행과 비슷한 행색이 아닌가?
북궁천이 북혈회라는 마도문파에 들어갔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두 사람은 실수라도 할까 봐 함부로 다가가지 않고 무작정 북궁천과 마주칠 시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북궁천이 천사교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은밀히 움직이다 보니 좀처럼 마주칠 기회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드디어, 정말 우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북궁천 일행을 발견했다.
천사교 교도들이 떼로 들어온 걸 보고 외곽으로 나왔는데, 거짓말처럼 북궁천이 보인 것이다.
황보청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하지만 북궁천은 그들을 보고도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그는 황보청과 종리기진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냉랭히 한마디 던지고 몸을 돌렸다.
“따라와.”
북궁천은 황보청과 종리기진을 데리고 현도관 옆에 있는 야산 뒤쪽 조용한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서 포대 자루 두들기는 소리가 한참 동안 들렸다.
퍼벅! 퍼버벅!
북궁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을 두들겨 팼다.
황보청과 종리기진은 영문도 모르고 수십 대를 두들겨 맞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
대형은 아무 이유도 없는데 때릴 사람이 아니다. 자신들을 때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다행히 내공을 주입하고 때리는 것이 아니어서 고통스럽긴 해도 내상을 크게 입거나 하진 않았다.
정파 때문에 아들을 뺏겼다는 게 화나서 그런 걸까?
그럴지도 몰라.
자신을 못 믿고 따라온 것 때문에 짜증이 났나?
그럴지도…….
자신들을 통해서 분노를 풀려고 그러는 걸까?
그렇다면 맞지, 뭐.
대형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야 참을 수 있어!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황보청은 순전히 대형을 위해서 참았다. 반면 종리기진은 시간이 가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황보청과 같은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주먹을 휘두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형은 북천마제다. 마제가 그 정도 일로 화가 나서 자신들을 팬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어!’
그 때였다. 북궁천의 주먹질이 갑자기 멈췄다. 두 사람 합쳐서 꼭 백 대를 맞은 후였다.
“헉헉헉, 이제…… 기분 좀…… 풀어지셨습니까?”
황보청은 여기저기 터지고 먼지 구덩이에 처박혔으면서도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종리기진은 퉁퉁 부은 눈으로 북궁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라도…….”
북궁천이 두 사람을 노려보며 다그쳤다.
“유 원주께서 암살당하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너희는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내가 그리도 못 미덥더냐?”
“…….”
황보청과 종리기진은 머릿속이 텅 비었다.
잘못 들은 것 아닐까?
“그, 그게 무슨…… 말씀……?”
“서, 설마…….”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두 사람은 유원당과 헤어진 후 행여나 천사교의 눈에 띌까 봐 연락을 자제했다.
그 바람에 정파연합에 대한 소식을 일절 듣지 못한 상태였다.
북궁천에게 집중하라는 유원당의 명령도 있었고.
그런데 그사이 유원당이 죽다니!
“가라,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알아봐!”
* * *
“아직 알아내지 못했느냐?”
호연도광이 아기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마제의 행방을 물었다.
저러다 확 뜯어내지 않을까?
숙야돈은 그런 생각을 하며 담담히 대답했다.
“이틀 정도면 알아낼 것 같습니다, 교주.”
“그래? 흠, 이틀이면 알아낼 수 있단 말이지? 허허허허, 녀석. 손힘이 세군. 제 애비를 닮았나?”
건성으로 대답한 호연도광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웃을 때는 마치 친조부처럼 보였다.
하지만 숙야돈은 그런 호연도광의 눈 속에 깃든 짙은 욕망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그 욕망은 피의 욕망이다.
아기는 호연도광이 절대 지닐 수 없는 것을 지니고 있었다.
아기의 무방비적인 행복한 웃음. 적아를 구분하지 않는 아기의 웃음은 세상 그 어떤 행복한 사람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맑았다.
아마 그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손으로 웃는 아기의 목을 움켜쥐고 싶어 손이 떨릴 것이었다.
‘세상에서 진정으로 사악한 인간은 지존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호연도광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꿈꾸는 하늘이니까.
“유아는 아직도 영서에 있느냐?”
호연도광이 아기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수염을 쓸어 만지며 물었다.
꺄르르르.
아기가 이제 막 나온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숙야돈은 그 모습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예, 교주. 그동안의 실책을 만회한 후에 오실 생각인가 봅니다.”
“어리석은 놈. 역시 아직은 어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순순히 인정하고 정면으로 돌파할 생각을 해야 하거늘, 혼나는 게 무서워서 피하려고만 하다니.”
“너무 심려 마십시오. 소존께서도 이번 실패로 좀 더 성숙해지셨을 겁니다.”
호연도광은 숙야돈의 말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항상 이 애비를 넘고 싶어 했지. 그런 놈이 이 애비를 너무 몰라. 넘고 싶은 산이 있으면 그 산에 대해서 철저히 알아봐야 하는데 말이야.”
숙야돈은 움찔하며 슬쩍 눈을 들었다.
호연도광이 말을 이었다.
“적산채에 있는 놈들이 지금쯤은 혼란스럽겠군.”
“유원당이 죽었으니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던져 주면 덥석 물겠지?”
“그럴 것이긴 합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는 숙야돈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호연도광이 묻는 뜻을 아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호연도광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던져 줘.”
“하오면 소존은…….”
“그 정도 미끼는 있어야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 않겠느냐? 어디 이 기회에 유아의 운명을 시험해 볼까? 죽는지, 사는지.”
숙야돈은 자신을 향해 웃는 호연도광의 하얀 이가 오늘따라 붉게 느껴졌다.
아들을 미끼로 던지다니.
‘정말 지독하시군.’
* * *
조양장으로 돌아간 북궁천은 입을 꾹 닫은 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장추람 등은 일절 입을 열지 않고 발걸음 소리도 조심했다. 마제가 분노했을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그 때 연소랑이 다급한 걸음으로 찾아왔다.
“단천도 왔어?”
입구 쪽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철교신이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연소랑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상하게 연소랑만 보면 몸이 굳었다. 심장도 평소보다 빨리 뛰었고.
“오, 오셨소.”
말도 더듬었다.
“다행이네.”
연소랑은 철교신의 행동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북궁천의 방으로 향했다.
“저기, 지금 대형 기분이 무척 안 좋소. 조금 있다가 오면 안 되겠소?”
“나도 급하거든?”
연소랑이 철교신을 흘겨보며 당장 만나야 한다는 투로 말했다.
철교신은 눈을 흘기는 연소랑의 모습을 보고 입을 반쯤 벌렸다. 마치 바위가 살짝 금이 가서 벌어진 듯했다.
심장은 어찌나 세게 뛰는지 귓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이, 이쁘다.’
그사이 연소랑이 철교신의 곁을 지나쳤다.
옅은 향기가 코를 스쳤다.
‘냄새도 좋고.’
그는 그 향기를 더 맡기 위해서 코를 내밀고 소리 나지 않게 킁킁거렸다.
막 건물을 돌아 나오던 냉호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소랑이 뭐라고 했는데 저 바윗덩이가 물어뜯으려는 시늉을 하지?’
북궁천은 굳은 표정으로 연소랑을 맞이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소랑이 급히 자신을 찾아왔을 때는 그만한 일이 있기 때문일 터. 유원당의 죽음을 아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슨 일이지?”
연소랑도 철교신의 말대로 북궁천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고 눈치를 보며 의자에 앉았다.
“숙야돈이 왔었어. 근데 단천더러 금천장으로 오래.”
“숙야돈이?”
“그래.”
북궁천은 연소랑의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혈뇌와 함께 천사교를 지탱하는 쌍교령 중 하나, 사뇌 사교령 숙야돈. 그는 천사지존을 가장 가까이서 받드는 자다.
그가 자신을 직접 만나려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 그만한 이유는 셋 중 하나다.
호기심? 아니면 교호명의 죽음 때문에? 그도 아니면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서?
“어떻게 할 거야?”
“오라면 가 봐야지.”
그 말에 연소랑이 불안한 표정으로 넌지시 물었다.
“그가 높은 자리를 준다고 할지도 모르는데. 설마 덥석 물진 않겠지?”
“아주 높은 자리를 준다면 생각해 봐야지.”
“단천은 천사교가 얼마나 악한지 알아? 그들하고 어울려 봐야 좋은 꼴 못 볼걸?”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북혈회가 마도 세력이라는 걸 잊은 것 아냐?”
북궁천이 슬쩍 건드리자, 연소랑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우리가 비록 마도에 속해 있긴 했지만, 그들처럼 사악한 짓을 하진 않아!”
“마도가 사악한 짓을 안 한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군.”
“정말이야! 물론 다 괜찮은 사람들만 있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대부분은 남들 눈치 안 보고 감정대로 행동하다 보니까 마도 소리를 듣는 것뿐이라고!”
“정말 그럴까?”
“정말이라니까!”
북궁천은 빽 소리를 지른 연소랑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연소랑이 몸을 뒤로 빼며 수상하다는 투로 말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걱정 마. 예뻐서 보는 거 아니니까.”
사실이 그랬다. 뭔가 해 줄 말이 있는데 해 줄까 말까 고민했을 뿐이다.
그래도 연소랑은 기분이 무척 나빴다.
여자에게 그런 말을 대놓고 하다니!
그럼 자신이 밉다는 거야, 뭐야?
“단천 마음대로 해! 천사교에 가서 죽든가 말든가 나는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
확 쏘아붙인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 때 북궁천이 말했다.
“곧 폭풍이 불지 모른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가서 회주하고 상의해 봐.”
연소랑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폭풍? 정파연합의 공격 말이야?”
그녀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북궁천이 생각하는 폭풍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아직 모든 것을 다 말해 줄 순 없지만.
“그보다 더 복잡해. 좌우간 숙야돈이 직접 움직였다면 천사교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소리야. 내 말 명심해. 잘못해서 폭풍에 휘말리면 그동안 쌓은 탑이 모두 무너질 테니까.”
* * *
낮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 대더니 석양이 질 무렵이 되자 구름이 잔뜩 꼈다.
북궁천은 어스름이 밀려들 즈음 조양장을 나섰다.
장추람 등이 함께 가겠다고 청했지만, 북궁천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송문의 손길이 닿은 그의 모습은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허름한 옷을 벗고 새 무복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은 데다 머리카락 묶은 형태도 바뀌었고, 남색 영웅건을 이마에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