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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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66화
166화
삼천 냥이 큰 금액이긴 하지만 지금의 북궁천에게 필요한 것은 황금이 아니었다.
“우리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합시다. 단순히 내가 강해서 아이를 구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고, 나에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뭐요?”
북궁천의 말에 중년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바로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북궁천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소. 말하기 싫다면 없었던 일로 합시다.”
그제야 노인이 입을 열었다.
“좋소. 이야기하겠소.”
중년인이 흠칫하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숙부님.”
“지금은 가린이를 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라.”
노인은 중년인의 입을 막고 주름진 눈으로 북궁천을 응시했다.
“금천장 지하에는 비밀통로가 얽혀 있소. 우리는 저들이 이미 그 통로를 발견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비밀통로에서 뻗어 나간 길 중 단 한 곳만큼은 저들도 발견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소. 그곳을 통해서 빠져나오면 저들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거요.”
천사교가 발견하지 못한 비밀통로.
아마도 이들이 입을 닫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통로의 중요성 때문인 듯했다.
“그 통로가 무슨 보물창고와 연결되어 있기라도 한 거요?”
북궁천은 떠보듯이 가볍게 물었다.
그런데 노인이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오. 금천장의 역사가 보존된 비고와 연결된 통로니까.”
억! 장난처럼 물어봤는데 정말이었다니!
말은 역사가 어쩌고저쩌고하지만 눈치를 보니 보물창고인 듯했다.
“그 통로는 철저히 감추어져 있는 데다 비밀문을 여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아예 들어갈 수도 없소.”
“금천장이 축적한 부라면 엄청나겠군.”
“함부로 욕심내면 들어간다 해도 나올 수 없으니 조심하시오.”
“대체 얼마나 되는 거요?”
“우리도 그 안에 든 물건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오. 그대로 사악한 자들에게 넘어가면 선조께 죄가 될까 봐 회수하려는 것일 뿐.”
“좋습니다. 뭐, 나야 받기로 한 보수만 받으면 되는 일이니까. 사실 돈은 적당히 있을 때가 좋거든요.”
북궁천은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며 담담히 말했다.
노인이나 중년인은 그의 말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았다. 세상에 황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도 어쨌든 그의 말을 믿는 척했다.
“그리 생각한다니 다행이오.”
“그런데 통로는 어디에 있소?”
“일을 시작하면 내부에 있는 우리 쪽 사람이 알려 줄 거요.”
“비밀문은 여는 방법도 그들을 만나야만 알 수 있소?”
“문을 여는 방법은 가린이가 알고 있을 거요.”
결국 그런 것이었나?
가린이라는 아이가 보고의 비밀문을 여는 방법을 모르던가, 아니면 이들이 비밀문을 여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거액을 들여 가면서 그 아이를 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너무 넘겨짚어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생각이 맞는 듯했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모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은 ‘알고 있을 거요.’라고 했다.
모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것은 나중에 알아보면 될 일.
북궁천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순순히 그들의 청을 수락했다.
그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비밀통로를 통해서 금천장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다면 진아를 구하기도 그만큼 쉬워질 테니까.
“좋소. 청을 수락하겠소. 대신 선금으로 일천 냥을 내놓으시오. 설마 전부 후불로 주겠다는 건 아니겠지요?”
중년인은 못 미더운 표정으로 노인을 일견한 후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품속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계약금으로 천 냥은 너무 많소. 우리가 준비한 것은 오백 냥이오. 중원제일이라는 장안전장에서 발행한 전표니 믿어도 될 거요.”
요즘 참 돈이 흔하다. 은자 오백 냥이면 일가족이 십 년은 먹고살 돈인데 말 몇 마디에 생기다니.
북궁천은 즐거운 마음으로 전표를 챙겼다.
“좋습니다. 일단 이것부터 받죠. 대신 약속을 어기면 그만한 대가가 돌아갈 거요. 명심하시오.”
“그것은 귀하 역시 마찬가지요. 선금만 떼어먹고 일을 하지 않으면 배로 물어내야 할 거요.”
“걱정 마쇼. 만약 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라지면 북혈회에 가서 연소랑에게 천 냥을 달라고 하시오. 그럼 두말 않고 줄 것이니까.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소. 일을 시작하면 정화문에게 말해 놓도록 하죠.”
북궁천이 밀실을 나가자 중년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숙부님, 저자에게 괜히 비고에 대해서 말한 것 아닐까요?”
“어쩔 수 없다. 어차피 가린이와 함께 그 통로로 들어가면 알게 될 일이 아니더냐?”
“하긴 그렇지요. 그런데 저자가 가린이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믿어 보자. 며칠 만에 동마방을 괴멸시킨 자가 아니냐? 더구나 황금에 눈이 멀면 없던 힘도 생기는 법이다. 때로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들지. 그게 바로 황금의 힘이니라. 너는 저자가 성공할 경우 뒷수습할 준비나 철저히 해 놓아라.”
“알겠습니다.”
“설령 실패한다 해도 정파연합이 천사교를 무너뜨릴 때까지 기다리면 될 일. 너무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지켜보도록 하자.”
7장. 개밥으로 만들어 버릴 놈들
숙야돈은 교호명의 시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관 속의 시신은 벌써 부패하고 있었지만, 상흔을 살펴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의외라 할 만큼 너무나 선명했으니까.
‘대단한 고수가 휘두른 칼에 당했다.’
그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듯 옆에서 고구선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자에게 당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결코 제 아래에 있는 자가 아닙니다.”
“상주에서 이런 도흔을 남길 만한 실력을 지닌 도객이 몇이나 될 거라고 보느냐?”
“다섯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숙야돈은 고구선의 말을 인정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호명은 북혈회를 주 목표물로 정하고 감시를 지휘했다.
현재 가장 의심 가는 자들은 북혈회에서 영입했다는 자들이다. 그들이 범인이라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실력이라고 봐야 했다.
‘놈을 금천장으로 보내라 했으니 그때 확인해 보면 되겠지.’
만약 놈들이 오지 않는다면 그걸 핑계로 북혈회를 압박하면 된다.
손해 볼 것이 없었다.
* * *
휘이이잉!
강한 바람에 낡은 문이 덜컹거렸다.
마른 땅에서 피어난 흙먼지가 누렇게 변색된 지붕을 휩쓸고 지나가는 오후.
“바람 한번 더럽게 불어 대는군.”
북궁천이 실눈을 뜨고 투덜거리며 현도관 문을 밀었다.
미리 냉호를 보내서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 문이 열려 있는 걸 보니 진평천 등이 먼저 온 듯했다.
그는 내부를 휘둘러본 후 전에 만났던 전각으로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다가가자 방문이 열렸다.
북궁천은 마치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의 맞은편에는 진평천과 명원 도장, 그리고 송선 도장만 앉아 있었다.
“여러분들이 동원할 수 있는 무사는 몇이나 됩니까?”
북궁천이 삐딱하니 고개를 들고 물었다.
진평천이 머릿속으로 숫자를 생각하며 대답했다.
“종남과 화산의 제자가 이백 정도, 그 외에 우리를 돕겠다는 자들이 칠팔십 정도 되네.”
“실력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은 빼고 말씀해 보쇼. 적과 부딪치면 빠르게 치고 빠져야 하는데 어중간한 사람은 방해만 될 뿐이니까.”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송선 도장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대놓고 불만을 터트리지는 못했다.
대신 명원 도장이 입을 열었다.
“쓸 만한 사람들만 동원하다 보니까 그 숫자인 거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 때 꾹 참고 있던 송선 도장이 입을 열었다.
“금천장을 공격할 생각인가?”
북궁천이 송선 도장을 째려보았다.
“돌았습니까? 그 인원으로 금천장을 어떻게 칩니까?”
‘그래, 나 미쳤다!’
송선 도장은 진짜 돌아 버린 사람처럼 눈을 번들거리며 북궁천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북궁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천장을 직접 치진 못한다 해도 날파리 정도는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명원 도장이 침중한 표정으로 우려를 표했다.
“그러다 보면 금천장의 주력이 우릴 노리고 본격적으로 움직일지 모르네. 공연히 타초경사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구먼.”
“그러기 위해서 공격하자는 겁니다.”
그래야 진아를 구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쉬워질 테니까.
진평천과 두 장로야 꿈에도 생각을 못 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 금천장에서 주력을 빼내기 위함이란 말인가?”
“빼낸다기보다 흔드는 거죠. 두렵습니까?”
“누가 두렵다고 했나?”
“사실 두려울 만도 하지요. 천사교주가 미친 척하고 화산파와 종남파부터 정리하겠다고 날뛰면 버틸 수 없을 테니까요.”
사실이 그랬다. 그것 때문에 정파연합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천사교를 지켜보고 있었다.
송선 도장도 그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곁가지를 제거해 봐야 별 이익이 없을 것 같네만?”
“도사 양반이 뭔 이익을 그리 따지쇼? 천사교 놈들을 제거하면 그것으로 족한 거지.”
“…….”
송선 도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진짜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표정만 지을 뿐.
북궁천은 신경 쓰지 않고 할 말만 했다.
“정파연합과 보조를 맞추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 정파연합에 연락해서 날짜를 한번 잡아 보쇼. 아무래도 그들이 공격해 오면 저들이 그쪽에 더 신경 쓰지 않겠습니까?”
함께 안 하겠다면 어쩔 수 없고.
그런데 진평천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총군사가 암살당했는데 그럴 정신이 있을지 모르겠군.”
“…….”
이번에는 북궁천이 말문을 열지 못했다.
몸이 석상처럼 굳은 그는 물끄러미 진평천을 바라보기만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문제는 진평천이 헛소리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원당이 죽다니!
“지미…… 그러게 몸조심을 해야지. 왜 그리 나대?”
“왜 그러는가?”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북궁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돌아섰다.
‘어떤 패 죽일 놈이……!’
현도관을 나온 북궁천을 보고 냉호의 표정이 굳었다.
‘씨발, 무슨 일이 있었는데 표정이 저러지? 삼 년 전 응평 싸움에서 미쳤을 때하고 똑같잖아? 안에 있는 늙은이들이 주군의 자존심이라도 건드렸나?’
장추람과 철교신, 북풍사객도 왠지 모를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묵묵히 따라가기만 했다.
그런데 그들이 상주로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저만치에서 두 사람이 달려왔다. 황보청과 종리기진이었다.
후줄근한 낭인 차림. 언뜻 봐서는 알아보기 힘들 만큼 변한 모습이었다.
천사교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 변장을 한 듯했다.
그럼에도 북궁천은 그들을 단번에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다.
“대형!”
황보청이 환하게 웃으며 북궁천을 불렀다.
낭인처럼 꾸미고 상주는 물론 일대를 돌아다니며 북궁천을 찾았다.
북궁천이 금천장을 방문했으면 분명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을 텐데 아무 일도 없이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