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62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62화
162화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언니. 오빠가 찾아서 무사히 데려올 거예요.”
“다 내 잘못이야.”
“그게 왜 언니의 잘못이에요? 짐승 같은 구양우경과 자식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기를 이용하려던 구양환의 잘못이죠.”
“차라리 처음부터 나는 놔두고 아기 먼저 찾아서 떠나라고 말할 걸 그랬나 봐.”
공손설이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림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언니도 참! 오빠 성격 언니가 더 잘 아시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오빠가 알았다고 하면서 진아만 데리고 그냥 떠났을 거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요. 그랬으면 아마 언니와 아기를 데리고 삼성궁과 싸우다가 전부 위험해졌을걸요?”
헌원려려 역시 그 일이 걱정되어서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자신은 구양우경에게 당하는 한이 있어도 북궁천을 매몰차게 대해서 아기를 데리고 떠나게 했으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진아가 지금과 같은 고생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결국 그것도 내 욕심이었어. 너무 겁이 나서 진아보다 나를 먼저 생각했는지도 몰라.’
헌원려려가 자책감에 눈물만 흘리자, 공손설이 눈물을 닦아 주며 그녀를 다독였다.
“언니는 쓸데없는 걱정 마시고 몸부터 나으세요. 여기 이 공자님이 가셔서 상황을 알아보신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아버님도 본 성의 무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무사들을 더 보낼 생각이신 거 같으니, 여차하면 오빠를 도울 수 있을 거예요.”
헌원려려는 손을 뻗어서 공손설의 가녀린 손을 거머쥐었다.
“고마워, 동생.”
“고맙기는요. 근데 사실 이제부터가 문제예요. 오빠가 분노해서 강호를 한바탕 휘저을지도 몰라요.”
당장은 아기 때문에 참고 있지만, 아기를 찾고 나면 원인을 제공한 자들에게 분노를 터트릴 것이다.
만에 하나 아기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분노의 화산이 터질 것이고.
“그래서 말인데요, 언니의 이름으로 아기를 찾으면 한눈팔지 말고 곧바로 돌아오라고 전할 생각이에요.”
헌원려려는 공손설의 말뜻을 짐작하고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도 실소를 지었다.
“그렇게 해.”
* * *
날이 밝았는데도 동마방은 움직이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북혈회를 공격하고 싶어도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아니, 공격은커녕 이제는 동마방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풍단이 당한 것까지 합하면 세 차례에 걸쳐서 이백 가까운 피해를 입은 상태.
더구나 남패령과 서마련에서 북혈회를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고 눈치만 보던 마도고수 중 상당수가 북혈회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가 속속 들어왔다.
악동초는 그렇게 된 모든 원인이 연소랑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순순히 자신의 뜻을 받아 줬다면 호양곽도 잃지 않았을 것이고, 상황이 이렇게 흐르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으아아아! 찢어 죽일 년! 네년이 감히 내 순정을 이렇게 짓밟다니!”
그는 자신의 분노를 모두 연소랑에게 쏟아 냈다.
애정이 증오로 바뀐 것이다.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처참하게 죽이고 말 것이다!”
연소랑은 악동초가 이를 갈든 말든 지금 상황이 즐겁기만 했다.
“그동안 어느 쪽에 붙을까 망설이던 사람들이 대거 본회에 가입을 요청하고 있어요, 아버지. 오늘 아침에 온 사람만 해도 삼십 명이나 돼요.”
연풍척도 한시름 던 듯 편안한 표정이었다.
“다행이구나. 이렇게 사람이 불어나면 동마방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거다.”
“단천은 어떻게 생각해?”
북궁천의 표정은 그들만큼 밝지 않았다.
“너무 세력이 급작스럽게 커지면 남패령이나 서마련도 이쪽을 견제하려고 할 거다.”
“그렇다고 해서 오는 사람을 안 받을 수도 없잖아?”
“당연히 그렇지. 그러니까 사람은 받아들이되 남패령과 서마련을 달래 줄 방법도 생각해 봐야 돼.”
“그들을 어떤 식으로 달래 줘야 하지?”
“그건 네가 생각해 봐. 나는 부수는 건 잘해도 달래 주는 건 영 젬병이거든.”
“누구 달래는 건 나도 잘 못하는데…….”
“달래기가 쉽지 않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어.”
“어떤 방법?”
“그들이 견제하기 전에 동마방을 함께 제거하고 나눠 가지는 거지.”
연소랑의 눈이 커졌다.
“동마방을?”
“그게 가능하겠나?”
연풍척도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려울 것도 없소. 지금 동마방의 상황은 최악이니까.”
“으으음, 그렇게만 된다면 최상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런데 천사교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천사교가 관여하기 전에 끝내면 되는 일이오. 일이 다 끝난 다음에는 그들도 뭐라 하지 못할 거요. 당장 정파연합과의 싸움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도 그렇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연풍척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럼 언제가 좋다고 보는가?”
“오늘 밤.”
연풍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 밤이라고? 너무 빠르지 않은가?”
“남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요. 그러니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오늘 밤이 가장 좋은 시기라 할 수 있소.”
“하지만 남패령과 서마련을 설득하려면 시간이 걸릴 거네.”
“내가 남패령과 서마련의 주인을 만나겠소. 적주원만 움직이면 홍무수도 어쩔 수 없을 거요.”
* * *
남패령주 적주원은 강호에서 화령마도(火靈魔刀)라 불리는 절정고수였다.
큰 키에 허리둘레가 일반인보다 세 배는 될 정도로 덩치가 커서 그와 친한 자들은 그를 패웅마(覇熊魔)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상주 남쪽에 있는 상주제일기루 화정루에 머물렀는데, 항상 서너 명의 여인을 끼고 다녔다.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인 술시 무렵.
북궁천이 귀안당의 눈을 피해서 방문했을 때도 그는 커다란 방 안에서 여인 셋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연 회주가 보냈다고?”
적주원은 앞섶이 벌어진 그대로 북궁천을 맞이했다. 온통 털로 뒤덮인 가슴은 그가 정말 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소.”
“무슨 일로 왔지?”
북궁천은 대답하기 전에 옆을 둘러보았다.
호위무사로 보이는 자들 넷이 그를 반원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먼저 이들을 물리쳐 주시오.”
적주원은 북궁천을 빤히 바라보더니 손을 저었다.
“나가 있어라.”
호위무사들은 북궁천을 싸늘한 눈으로 응시하고는 뒷걸음질을 치며 방을 나섰다.
북궁천이 이번에는 적주원 곁의 여인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 여인들도 잠시 자리를 비워 주었으면 하오만.”
“흠, 무슨 일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 너희들도 나가 있어.”
반라에 가까운 옷차림을 하고 있던 여인들이 엉덩이를 흔들면서 방을 나갔다. 그중 두 여인은 북궁천을 향해 추파를 보내기도 했다.
“호호호호, 잘생긴 공자님, 나중에 봐요.”
“언제든 찾아오시면 공짜로 대접해 드릴 게요.”
여인들마저 밖으로 나가자, 이제 적주원 곁에 남은 사람은 적주원 뒤에 서 있는 두 사람뿐이었다.
적주원이 자세를 바로하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두 사람은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네. 그러니 이해하게나.”
북궁천도 그들까지 내보내진 않았다. 적주원이 뒤를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상관없소.”
“좋아. 이제 말해 보게. 내 재미를 앗아 가도 될 만큼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각오해야 할 거야.”
북궁천은 말을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회주께선 동마방을 칠 생각이시오.”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적주원이 움찔했다. 그의 입가에 떠 있던 웃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마방을 친다?”
“그렇소.”
적주원의 두툼한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더니 대소가 터져 나왔다.
“하, 하하, 와하하하!”
그렇게 우스운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본다는 듯 의자의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미친 듯이 웃던 그는 어느 순간 웃음을 뚝 멈췄다.
그러고는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연 회주가 두어 번 승리하더니 너무 서두르는 것 같군.”
“기회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소?”
“그것도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지.”
“능력은 지난 이틀간 보여 줬다고 생각하오만.”
적주원은 입을 꾹 닫고 북궁천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네가 동마방을 물 먹였다는 그 친구인가 보군.”
“좋을 대로 생각하시오.”
“아주 마음에 들어. 그 건방진 태도도 마음에 들고.”
“나도 령주가 마음에 들려고 하오.”
“그래? 그거 잘됐군. 그럼 이렇게 하지. 내 밑으로 들어오게. 최고의 대우를 약속하지. 어떤가?”
북궁천이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오. 그런데 나는 나보다 약한 사람 밑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소. 해서 하는 말인데, 나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해 보시오.”
적주원의 넓적한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농담이 지나치군. 지나친 농담은 화를 불러오는 법이라네.”
“그 말은 나를 이긴 후에 해도 될 것 같소만. 이길 자신이 있다면 못 할 것도 없는 일 아니오?”
적주원의 짙은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하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젊은이를 교육시켜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그는 흥이 돋은 어조로 말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키는 무척이나 커서 북궁천과 비슷했다. 거기다 허리가 아름드리나무처럼 굵었다.
그런데 그가 일어서자, 그의 뒤에 서 있던 두 사람 중 오른쪽에 서 있던 자가 급히 앞으로 나섰다.
“제가 상대해 보겠습니다, 령주.”
적주원이 손을 저었다.
“아니야. 내가 직접 하겠다. 오랜만에 몸 좀 풀어 봐야겠어.”
적주원은 솥뚜껑 같은 손을 맞잡고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꺾었다.
두어 걸음 걷는 사이에 두 사람의 간격이 일 장으로 줄어들었다.
순간, 적주원이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일 장 거리가 찰나간에 좁혀지면서 커다란 주먹이 북궁천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그때만큼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날아들면서 발을 휘두른 듯했다.
북궁천은 그 자리에 서서 손바닥으로 적주원의 주먹을 후려쳤다.
퍽!
호랑이처럼 달려들었던 적주원이 쿵쿵거리며 일 장 뒤로 물러섰다.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니 제법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공력을 끌어 올린 그는 몸을 날리며 쌍장을 엇갈려 쳐 냈다.
폭풍 같은 장력이 북궁천을 향해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북궁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화령마도라는 별호로 인해 그의 장기가 도라 생각했는데, 권장법도 여느 권장법 고수 못지않게 강력한 것이다.
‘제법이군.’
북궁천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보며 북두패왕권을 펼쳤다.
적주원이 강하다 해도 천사교 장로에 비하면 약했다. 진평천에 비해서도 약했고. 그 정도로는 그를 어렵게 할 수 없었다.
격돌 삼초 만에 적주원의 안색이 시뻘게졌다. 그리고 오초가 되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장권이 허공을 격한 채 맞부딪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서 죽을 맛이었다.
콰광!
결국 굉음과 함께 뒤로 주르륵 물러난 적주원은 눈을 부릅뜨고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이, 이런 빌어먹을!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도를 쓰고 싶으면 쓰시오.”
무심한 북궁천의 말에 적주원은 이를 악물었다.
모두가 알고 있듯 그의 장기는 도였다. 그러나 남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장법 역시 도 못지않았다. 장법에서 밀린 이상 도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