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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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91화
191화
그를 직접적으로 호위하던 흑의중년인 둘은 보이지 않았는데 어제의 일로 내상을 입어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그의 뒤 백여 장 거리를 두고 삼사십 명이 따라왔다. 하지만 호연도광이 멈춰 서자 그들 역시 멈춰 서 상황을 주시했다.
천사팔혼에 둘러싸인 호연도광은 진아의 등을 쓰다듬으며 웃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북궁천, 금천장에 들어오면 내가 해칠 거라 생각했는가?”
북궁천은 호연도광이 아닌 진아를 응시하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데 왜 여기서 만나자는 거지?”
“듣는 귀를 최대한 줄이려고. 그리고 나는 누가 어둠 속에 숨어서 지켜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하하하하, 네 말도 일리가 있군.”
호연도광은 대소를 터트리고는 북궁천을 응시했다.
“결정을 내렸느냐?”
북궁천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천사팔혼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호연도광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젯밤의 일을 겪은 그들은 공포감이 들 정도로 강한 북궁천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전 공력을 끌어 올렸다.
그로 인해 그들 주위의 풀들이 가루가 되어 휘날리면서 갑자기 녹색 먼지가 자욱이 피어났다.
“웃기는군. 뭐 하는 짓이지? 내가 그렇게 무섭나?”
북궁천이 그 모습을 보고 조소를 지었다.
천사팔혼의 무표정한 얼굴이 묘하게 틀어졌다. 마른나무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는 듯했다.
그 때였다.
북궁천의 저 멀리 뒤쪽에서 복면을 쓴 냉호가 호연유를 어깨에 걸치고 나타났다.
북궁천이 손을 든 것은 그에게 보낸 신호였던 것이다.
호연도광이 그를 발견하고 혀를 찼다.
“쯔쯔쯔, 물러서라.”
자존심이 상한 천사팔혼은 북궁천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옆으로 갈라섰다.
곧 냉호가 도착해서 호연유를 북궁천 옆에 내려놓았다.
“어제 이야기한 대로 호연유와 아기를 바꾸자. 아기만 내놓으면 나는 즉시 북천으로 돌아갈 테니까.”
호연도광이 그 말을 듣고 하얗게 웃었다.
“후후후하하하. 북궁천, 본좌 역시 그에 대한 대답을 한 것 같다만, 설마 잊은 것은 아니겠지?”
북궁천은 동문서답하듯 냉호에게 말했다.
“그를 깨워라.”
냉호가 호연유의 혈도를 풀어서 정신을 들게 했다.
꿈틀거리며 고개를 든 호연유는 주위를 둘러보다 삼 장 앞에 서 있는 호연도광을 발견하고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아버님, 이놈들을 죽이고 저를 구해 주십시오!”
“구해 달라는군. 아들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할 생각인가?”
호연도광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유아야, 천사의 세상을 위하여 네 한 몸 바치도록 해라.”
“아, 아버님!”
“고통은 한순간이다. 잠깐만 참으면 되느니라.”
“저,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스릉!
칼을 빼 든 냉호가 호연유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그러자 북궁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진아를 돌려주지 않으면 아들의 팔이 잘릴 거다.”
“좋을 대로 하게.”
그러한 대답을 각오하고 있던 북궁천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찰나였다.
냉호의 칼이 햇살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아, 안 돼!”
호연유가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쉬아악!
냉호의 칼은 추호도 멈칫거리지 않고 호연유의 왼팔을 팔꿈치 어림에서 잘라 버렸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시뻘건 핏줄기!
초원에 수천 송이 혈화가 피어났다.
“끄아아아아! 사, 살려 주십시오, 아버님!”
무심한 눈으로 호연도광을 주시하던 북궁천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
호연도광의 눈빛은 바늘 끝만큼의 동요도 없었다.
웃음도 여전했다.
“그냥 목을 치는 게 나았을 텐데…….”
나직이 말한 그는 진아의 등을 쓰다듬던 손으로 진아의 손가락을 잡았다.
기겁한 북궁천이 다급히 소리쳤다.
“멈춰!”
우두둑!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며 자지러질 것처럼 몸부림쳤다.
“으아아아앙! 아아아앙!”
“진아야아아아!”
북궁천의 대경한 외침이 천공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호연도광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너무 놀라는군. 뜯어내려다가 뼈만 꺾은 것뿐이네. 유아의 팔이 잘린 거에 비하면 심할 것도 없는 일이지.”
“호연도과아아앙!”
북궁천이 삼 장의 거리를 환영처럼 좁히며 검을 뻗었다.
전력을 다한 뇌정무적세가 펼쳐지며 호연도광을 향해 수십 줄기 벼락이 밀려갔다.
기다렸다는 듯 천사팔혼 중 넷이 호연도광의 앞을 차단하며 북궁천의 공세에 맞섰다.
콰과광!
천사팔혼 중 두 사람이 뒤로 튕겨서 날아가고, 둘은 비틀거리며 주르륵 물러섰다.
셋이면 절대고수도 죽일 수 있다는 자들 넷이 단 한 번의 공격에 무력화된 상황.
가히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가공할 광경이다.
하지만 그사이 호연도광은 거리를 오 장 더 벌리고는, 시뻘게진 얼굴로 울고 있는 아기의 팔목을 잡았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이번에는 목을 쳐라. 그럼 나도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으마.”
북궁천은 온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저놈은 사람이 아니다.
마왕! 악령의 화신이다.
그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아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심장을 후벼 파고 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빨리 진아의 손가락을 맞춰 줘!”
“네가 결정만 내리면.”
“알았다니까! 어서!”
호연도광은 그제야 꺾인 아기의 손가락을 잡고 바로잡았다.
아기가 다시 한번 자지러질 것처럼 울더니 빠르게 소리가 작아졌다.
북궁천은 분노의 불길이 이는 눈으로 호연도광을 노려보았다.
“누굴 죽이면 되느냐, 호연도광.”
호연도광은 품속에 손을 넣어서 서찰을 하나 꺼냈다.
어느새 웃음이 사라진 그의 표정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차가웠다.
“이 안에 적힌 대로 해라. 약속된 일을 모두 완수하면 너는 아기를 데리고 북천으로 떠날 수 있을 거다.”
서찰이 허공을 가르며 북궁천에게 날아갔다.
북궁천은 아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아를 보며 서찰을 받았다.
‘아비를 잘못 만나서 네가 고생하는구나. 미안하다, 진아야.’
그는 서찰을 보지도 않고 품속에 넣었다.
그 때 호연도광이 말했다.
“갈 때 유아의 목을 베고 가라. 그래도 아들인데, 내 손으로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니냐?”
마지막까지 그는 북궁천의 마음을 짓눌렀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진아가 참혹한 꼴을 당할 거라는 뜻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북궁천은 이를 갈면서 돌아섰다.
호연유를 죽이지 말고 그냥 갈까 생각도 했다. 자신이 그를 죽이면 호연도광이 진아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냉호와 호연유가 있는 곳에 도착한 그는 생각을 바꿨다.
호연유는 팔만 잘린 것이 아니라 무공도 폐지된 상태다. 옆에 두고 병신이 된 아들과 계속 마주한다는 것은 지독한 고통일 터. 그것이 오히려 진아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호연유, 네 아비가 너를 죽이라는군.”
“사, 살려 줘…… 제, 제발 살려…….”
“여인들이 네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며 죽어 갈 때, 너는 그녀들을 살려 줬느냐?”
“그, 그건…….”
“단숨에 죽는 걸 다행으로 알아라, 개자식아.”
그런데 북궁천이 검을 움켜쥐자, 그의 마음을 읽은 냉호가 먼저 칼을 휘둘러서 호연유의 목을 쳐 버렸다.
북궁천보다는 자신이 죽여야 아기에게 악영향이 덜 끼칠 거라 생각한 것이다.
북궁천은 그의 마음을 눈치채고 씁쓸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놈 목은 전부터 내가 자르고 싶었는데, 아쉽군.”
그는 돌아서 있어서 호연도광을 볼 수 없었다. 그때만큼은 호연도광의 눈빛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찰나간에 사라졌지만.
‘이놈! 유아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철저히 이용해 주마!’
그가 어떤 생각을 하든 북궁천은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호연도광, 착각하지 마라.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까.’
아직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었다.
그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지만, 끝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 * *
마제와 아기에 대한 소문은 우영산장에도 전해졌다.
전열을 정비하며 천사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정파연합은 분노하는 한편으로 우려를 금치 못했다.
초원에서 마제와 천사지존이 만났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려진 것은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 추측하자면 마제가 천사지존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 듯 보였다.
그로 인해서 수많은 의견이 분분히 오갔다.
“마제가 천사지존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면 우리에게 적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남궁 가주, 그는 무작정 천사지존의 뜻대로 움직일 사람이 아닙니다. 조금 더 지켜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백리 대협, 노부도 모르는 바는 아니오. 하나 전쟁에서는 적과 친구만이 있을 뿐이오. 관계를 명확히 해야만 실수를 막을 수 있소이다.”
“아미타불. 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하는 행동이라 해도 잘못은 잘못이오. 만약 그가 정말로 천사지존의 뜻에 따라서 해악을 끼친다면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 그 일이 어디서 비롯된 잘못입니까? 사실 이번 일은 그에게만 잘못을 뒤집어씌울 수도 없는 일입니다.”
“사공 공자의 말뜻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이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정파의 고수들을 죽이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직 그가 정파에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벌써부터 그를 판단하려고 합니까?”
“미리 대비를 하자는 뜻이네. 일이 터진 다음에 후회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렇게 왈가왈부하며 의견이 분분할 때 공손후가 조용히 일어났다.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우리 철군성은 그가 잘못을 저지르기 전까지는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어떤 결정도 따르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여무경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어, 공손 공자? 판단을 유보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결정이 내려지면 따라야 하지 않겠나?”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군요.”
“뭘 말인가?”
공손후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정파연합 수뇌부를 둘러보았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입을 닫고 그를 쳐다보았다.
좌중이 조용해지자 공손후가 말했다.
“그는 본 성의 막내사위가 될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 매제가 될 사람이지요.”
그는 떠나올 때 공손설에게서 받은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 몸을 돌렸다.
* * *
북궁천은 빙 돌아서 벽성장으로 돌아갔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발에 무쇠추라도 달린 듯 무거웠다.
벽성장에 도착해서 호연도광이 준 서찰을 읽어 본 그는 사객을 영소로 보내 정파연합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나서서 한시 빨리 일을 처리하고 진아를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할수록 자신을 다독였다.
호연도광의 요구는 두 가지였다.
처음에는 고수 십여 명만 죽이면 된다고 했지만, 자신이 한 번 거부함으로써 한 가지 조건이 더해진 상태였다.
문제는 더해진 조건이었다.
―정파연합이 완연한 패색을 보이면 아기를 내주겠다.
천사지존은 온갖 핑계를 대서 자신을 이용해 먹을 생각인 것이다.
요구 조건을 행하면서 철저히 대응하지 않으면 덫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지 몰랐다.